소설리스트

넘버원-287화 (287/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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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의 접속이 뜸해지면서 넘버원 길드원들의 불만이 조금씩 조금씩 쌓였고, 결국 화가 폭발한 몇몇 길드원들이 회의에서 언성을 높히기 시작했다.

그동안 헨리를 감싸주었던 아영과 윤지, 그리고 페이도 더이상은 어쩔수없다는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벌써 일주일째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거진 보름정도를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었다면 이해라도 했을텐데, 한창 중요한 시점에서 접속이 뜸하다보니 넘버원 길드원들도 이상한 생각을 할수밖에 없었다.

"길드를 버리겠다는 거야 이건!"

"길드를 버리는게 아니라, 넘버원이 질렸나 보지 뭐"

"하긴 그럴만도 할거야. 넘버원으로 돈도 많이 벌었겠다.

마음먹으면 이리우스를 이용해 넘버원이 되는것도 순식간이겠다.

질릴만도 하겠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되는거야?"

"뭘 어떻게 돼? 다른 길드를 알아보거나, 강혁이형을 설득하거나 둘중 하나지."

"계속 미안하다고만 하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잖아?

내가 다 답답할 노릇이다. 어이구야!!"

"너희들 혹시 뭐 들은거 없어?"

모두의 시선이 윤지와 페이에게 향했다.

그나마 여기서 지강혁과 가장 친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감추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게임이 질려서 포기한건지……"

"윤지야 너에게도 아무런 말이 없니?"

"응 그러네."

"윤지한테도 아무말 없는거 보면 이건 뭔가 있는거야. 뭔가가!"

"그 뭔가가 도대체 뭘까??"

"그걸 알았다면 이러고 있겠니? 응??"

"이 기집애는 왜 나한테 짜증을 내고 난리야!"

"야야 그만들해! 왜 서로 언성을 높혀?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차분하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어. 강혁 오빠가 넘버원 포기한게 확실해.

윤지랑 페이한테도 아무말 안했다는건 그냥 질렸다는거야."

"에휴 모르겠다. 난 나갈게."

"야 너 정말 나가게?"

"길드 마스터는 코빼기도 안보이고, 시험은 다가오고, 뭣하러 내가 넘버원하니? 그냥 시험공부나 하면서 전액장학금이랑 1년 정액권이나 노려볼란다."

재수없으면 전쟁에 휘말려 죽임을 당할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아이템을 드랍할수도 있기 때문에 지휘관이 없을땐조용히 접속종료를 하는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지금은 한창 전쟁중이니까.

"나도 나가야겠다. 그럼 다들 수고해"

30여명의 넘버원 길드원중 절반 이상이 넘버원을 빠져나갔고, 나머지 인원들은 한숨만 푹푹 쉬면서 집무실 밖으로 이동했다.

사냥을 하는 간부도 있었고, 전쟁을 통해 장사를 하는 간부도 있었다.

거진 안약 장사였다.

페이도 하는수없이 넘버원을 빠져 나가버렸다.

"그러니까……요즘 통 강혁이형이 데이트를 안해준다?? 뭐 이런소리야?"

"음… 데이트를 안해주는건 아니구, 그냥 전화로만 깔짝깔짝 이야기 하는게 전부야. 지난주에 공원한번 거닌게 다니까."

"흐음 그래??"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물어?"

"아니, 혹시 강혁이형이 너랑 계속 놀러다니나 싶어서."

수능이 끝나면서 여동생 강여진은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학교에 가더라도 영화를 보거나, 놀면서 시간을 떼우는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혹여 지강혁과 데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가 싶어 물어봤지만, 예상과는 달리 여동생 또한 지강혁을 많이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야…"

"응? 뭐가 수상해?"

"너랑 데이트도 안하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넘버원도 접속하지 않고 있어.

도대체 강혁이형은 뭘하면서 지내는걸까? 너도 궁금하지 않아?"

"어? 이상하다? 나한테는 넘버원 한다면서 바쁘다고 그러던데??"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응. 데이트 하자고 졸라도 요즘 바쁘니까 이해해 달래.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했지."

"이상한데? 나한테는 넘버원 안한다고 말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지?"

"뭐야? 그럼 강혁이 오빠가 나하고 오빠한테 거짓말 했다는거야??"

"아무튼 내일 학교에 가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게 제일 좋을거 같아."

왈가왈부하면서 서로 아가리만 놀려봤자 입만 아플뿐이다.

내일 아침에 같은 수업을 들으니 만나서 이야기하면 모든 정황이 드러날 것이다.

그시각 지강혁은 오랜만에(?) 넘버원에 접속하면서 헨리를 플레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새벽 6시다.

그러다보니 넘버원 길드원들은 단 한명도 없었고,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ㅤㅂㅞㄺ구와 신지가 전부였다.

다행히 신지는 아직까지 무사했다.

레오를 하면서 혹여 신지가 죽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었는데 ㅤㅂㅞㄺ구가 명령을 잘 수행해준듯 싶었다.

ㅤㅂㅞㄺ구가 짐짓 굳은 표정으로 헨리에게 말했다.

"주인. 언제까지 이짓을 계속 할건가?"

"릴리스의 정보를 캐낼때까지 한다고 했잖아?"

"그냥 넘버원 길드원들에게 말하는것이 낫지 않겠나?

주인은 잘 모르겠지만, 길드원들의 반발이 매우 거세다.

차라리……"

"내가 레오라는걸 알게 된다면 녀석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쌓일거야.

그건 절대 발설 못해."

"……"

정확히 3일전.

이리우스도 여러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불만이 많았다.

한창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게다가 드라이언파가 밀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이라는 놈은 접속을 하지 않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헨리가 들어왔을때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생전 처음으로 주인에게 대든것이다.

ㅤㅂㅞㄺ구까지 화를 내자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헨리는 자신의 정체가 레오인것을 밝혔고 ㅤㅂㅞㄺ구와 신지에게만 말해주었다.

물론 ㅤㅂㅞㄺ구가 드래곤의 맹세를 어기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알려준 내용이었다.

드래곤의 맹세 때문에 ㅤㅂㅞㄺ구는 절대로 입을 열수 없다.

신지도 마찬가지였다.

창조주 벨제부로에게 묵언의 맹세를 했기 때문에 헨리가 레오라는 사실을 절대 말할수 없게 되었다.

"오늘 대대적인 회의가 열렸다.

거기에서 수많은 길드원들이 반발했고, 윤지와 페이, 그리고 윤정이도 가만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필시 그 세명도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을 거다.

적어도 그 세명에게만큼은 레오라는걸 알리는게 좋을것 같다."

ㅤㅂㅞㄺ구가 저렇게까지 말하는걸 보니 일이 어그러져도 보통 어그러진게 아닌듯 싶었다.

"일단 이거 받아라."

헨리가 A4용지 두장 분량의 보고서를 내밀었다.

ㅤㅂㅞㄺ구가 물었다.

"릴리스의 대한 정보인가?"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줬다는 말은 하지말고 그냥 드라이언에게 둘러대라.

운좋게 릴리스를 만나서 정보를 파악할수 있었다고."

"알겠다 주인. 아무튼 일을 빨리 끝내는게 좋을것 같다."

다음날 아침.

오전 9시 수업이기 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지척이라서 금방 도착했다.

8시 50분에 강의실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었다.

"오빠 여기에요."

윤지와 윤정이다.

페이와 함께 넷이서 같은 교양수업을 듣는중이라서 일주일에 두세번은 얼굴을 마주한다.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페이가 안보이네?"

"갑자기 방송 스케쥴 생겼다고 못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구나."

"오빠 수업 끝나고 우리 식사나 같이해요. 오빠에게 말할게 있거든요."

아마도 넘버원에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수업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2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셋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할게 뭐니 윤정아?"

이윤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오빠. 저희 길드에서 나갈게요."

"……뭐라고? 다시한번 말해볼래?"

"길드에서 나간다구요. 말리셔도 소용없어요.

저랑 윤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온거니까요.

"유,윤지야 윤정이 말이 정말이니?"

"네 오빠."

"……"

"………"

"………"

집으로 돌아온 이윤지와 이윤정은 뭔가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윤지는 믿을수 없다는듯 연신 고개를 도리질 쳤고, 이윤정 또한 꿈인가 싶어 자신의 볼을 콱!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나올정도로 매우 아팠다.

"후~"

이윤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헨리를 처음 만났을때가 생각났다.

지강혁의 컨트롤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몬스터들의 덱스가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어그로를 잘 끌었다.

실로 놀라운 컨트롤이었다.

사냥속도가 배가 되었다.

윤지와 리나는 사냥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런 위험없이 사냥에 임했다. 전부 지강혁의 현란한 컨트롤 덕분이었다.

윤지와 리나는 헨리에게 친구를 신청했고, 셋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헨리의 컨트롤 실력은 PVP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대마왕 루시퍼와의 이벤트전을 비롯해, 엘프와 드워프의 종족 전쟁 이벤트를 치뤘을때도 그는 단 한번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고, 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을 높히샀고, 한편으로는 새삼 그를 존경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보통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것 마냥 엄청난 충격이 동반되었지만 말이다.

"언니, 강혁 오빠의말… 사실이겠지?"

"그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거라 생각하니?"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이라서 말야."

"하긴… 처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괜시리 미안하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빠를 의심하고 욕했잖아…"

"말을 할수 없었던 거지. 막말로 헨리 오빠가 [그놈]이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헨리 오빠가 휴식을 취하겠다고 선포했을때도 그래.

그때 이리우스가 레오를 한번 죽였다고 했잖아?

헨리오빠가 갑자기 나타난것도 그랬고, 그러면서 ㅤㅂㅞㄺ구를 엄청 혼내기도 한것도 그때였어. 아무래도 강혁 오빠의 말은 사실인것 같아."

"예전에 오엑스 이벤트 할때 도움을 준것도 그것 때문이었나봐."

"이럴게 아니라 넘버원에 접속해서 한번 편지 날려보자.

답변 오면 100퍼센트일거 아냐?"

"그래. 그러는게 좋겠어."

두 여자는 화장도 지우지 않고 곧바로 넘버원에 접속했고, 동시에 레오에게 편지를 날렸다.

마침 레오는 릴리스와의 친밀도 문제로 인해서 일찌감치 넘버원에 접속한 상태였다.

레오는 두 여인에게 편지가 오자 간단하게 답장해주었다.

[길드원들좀 잘 다독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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