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6 회: 7권 -- >
"자매들 가증스러운 오크들을 모조리 도륙시키도록 해요!"
2계급 고위엘프의 진두지휘아래 엘프들이 기세좋게 오크들에게 돌진을 감행했다.
농성전을 펼치면서 오크들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놈들은 무지막지하게 덤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시간동안 엘프족의 성채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무작정 공격만 일삼은탓에 체력은 금방 바닥나 버리고 말았다.
2계급 고귀엘프 일렌시아는 지쳐있는 오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고기세좋게 오크들을 베어넘기기 시작했다.
일렌시아의 레벨은 500을 훨씬 상회하는 고위엘프!
그러다보니 오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었고, 오크들은 30리나 쫓기면서 1만에 달하는 병력피해를 입고 말았다.
일렌시아는 기세좋게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며 오크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깊숙하게 추격을 한것이 화근이 되어버렸다.
오크진영에서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진에서 휴식을 취한 오크들이라서 상대하는게 여간 까다로웠다.
"퇴각! 퇴각하도록 해요 자매들!!"
결국 숫적인 측면에서 밀리고 만 나머지 일렌시아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말았다. 오크들은 치밀하게 포위망을 구성했다.
오크족의 우두머리는 지능을 겸비하고 있는 고위오크.
어느정도 기본 사고는 있었던터라 손쉽에 엘프들을 유인해 내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일렌시아가 이끄는 오백명의 엘프들을 포위할수 있었다.
그녀들은 사력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산등성이에 올랐다.
이제 산등성이만 넘어서면 진채가 코앞이다.
하지만 오크들의 손은 거기까지 미쳐 있었다.
일렌시아는 오크들의 전력을 가늠해 보았다.
대략 500여 마리다.
그에 반해 일렌시아가 이끄는 엘프는 고작해야 30여명 뿐이었다.
한바탕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려 470여명의 엘프 자매들을 잃어버렸다.
물론 오크병력 1만을 잡아죽여서 엄청난 이득을 보긴 했지만, 그녀들은 레벨이 500이 넘어서는 고위급 엘프들이고, 죽은 오크들은 고작 300레벨의 중급 오크들이었다.
여기서 일렌시아가 죽게 된다면 오히려 오크들이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오크들은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도끼를 들고 그녀들에게 달려들었다.
'어? 저 엘프는 일렌시아 아닌가?'
요레이의 망원경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레오는 눈에 익은 한 여인을 발견했다. 바로 일렌시아였다.
일렌시아.
마왕 케루빔이 다크포탈을 작동시켰을때, 헨리를 안내해준 고위급 여성엘프로써, 헨리가 제국의 용사 칭호를 받게끔 도와준 여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오크들에게 포위당해 크나큰 곤경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를 어쩌지? 살려야 되나?'
헨리로 플레이 했다면 무조건 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레오로 플레이 하고 있다.
엘프들을 살려준다고 해도 엘프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카오틱 유저라서 그렇다.
'그래도 살리는게 좋겠지?'
일렌시아가 있어 제국의 용사 칭호를 받았고, 지금의 헨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차마 내버려 두기가 좀 뭐했다.
'숫자는 대략 300여마리.'
오크들의 레벨은 척보기에도 300-400으로 보였다.
일렌시아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충분히 쓰러뜨릴수 있는 전력이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이미 수십군데의 상처를 입은 몸이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오크들을 감당할수 없다.
"취익! 취익! 죽어라 엘프!!"
오크전사 하나가 용기있게 도끼를 치켜들고 일렌시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용기만 가상할뿐 애시당초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일렌시아는 검을 들어 오크의 머리통을 쪼개어 버렸다.
동족 하나가 비명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오크들은 겁을 먹기는 커녕오히려 투지를 더 불태우며 일렌시아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일렌시아의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곁에 있는 엘프 자매들은 이미 모조리 숨을 거두었다.
남은건 일렌시아 혼자뿐이었다.
'내 삶도 여기서 끝인가 보구나.'
파란만장한 150여년의 생활.
이제 이 삶도 종지부를 찍어야 할때가 온것 같았다.
'오크에게 죽느니 차라리 자결을 하겠다.'
눈앞에 있는 오크의 숫자는 대략 200마리.
중간보스급 오크가 3마리 끼어 있기 때문에 더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아니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그녀는 검을 빼어들고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수호성자님 안녕히……'
피유웅! 피융! 퓽!!
느닷없이 3개의 화살이 전장으로 날아왔다.
"키에엑!!"
"캬아악!!"
"취이이익!!"
눈앞에 있는 오크 세마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기가 막히게도 화살은 전부 오크들의 눈을 찔렀고, 오크들은 시야를 잃어버려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것은 중간보스급 오크 세마리가 전부 실명사태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중간보스급 오크는 550레벨이다.
눈앞에 있는 일렌시아라고 해도 3대1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한순간에 중간보스급의 오크들을 무력화시켜 버린것이다.
일렌시아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서 한 인간 플레이어가 보법을 펼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누구지?'
그녀는 유심히 인간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카오틱 플레이어였다.
오크들 손에서 살아난다고 해도 카오틱 플레이어의 손에 걸리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오죽했으면 오크들보다 더욱 잔인한것이 카오틱 플레이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일렌시아가 미련없이 검을 치켜들어 자결을 시도했다.
그순간 카오틱 플레이어가 일갈을 내질렀다.
"멈춰라!!"
갑작스러운 일갈에 일렌시아의 시선이 카오틱 플레이어에게 다시 향했다.
놀랍게도 카오틱 플레이어가 어느새 눈앞까지 당도했다.
실로 엄청난 스피드였다.
카오틱 플레이어는 일렌시아를 일으켜 세우는가 싶더니 복부를 한번후려쳤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일렌시아는 한순간에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축 늘어졌다.
카오틱 플레이어는 일렌시아를 들쳐 업더니 곧바로 그곳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카오틱 플레이어의 레벨은 무려 565다.
강한 인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오크전사들을 상대로 200:1 싸움은 도저히 승산 없는 싸움이다.
지금은 빠른 발을 적극 활용해서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더니 오크들이 바로 그러했다.
왠 인간이 나타났나 싶어서 방심하고 있는데 눈앞에 있는 엘프 여인을 잡아채고 도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장 셋을 실명상태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부대장급 오크들이 고함을 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취이익! 인간을 잡아라! 인간을 잡아라!!취이익!!"
오크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인간을 뒤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DEX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 터라 인간을 뒤쫓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오크들은 인간을 놓치고 말았다.
꿈뻑꿈뻑.
일렌시아가 두눈을 치켜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여,여긴…?'
숲이었다.
그늘진 공간과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공간이었다.
따스하고 서늘했다.
척 보기에도 천당은 아닌것 같았다.
"여? 일어났구만??"
일렌시아가 소리가 난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카오틱 플레이어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일렌시아가 장검을 빼어들고 카오틱 플레이어를 가리켰다.
카오틱 플레이어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너를 살려주었는데, 너는 나를 죽이려 드는거야?
어이 이쁜이. 정말 그런거야?"
"……"
정상 플레이어가 아닌 카오틱 플레이어니까경계하는것도 무리는 아닐터.
카오틱 플레이어는 말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렌시아에게 다가가 과일바구니를 내밀었다.
그녀가 기절해 있을때 짬을내어 따온 과일들이었다.
"엘프들은 과일을 주식으로 삼는다며?
일단 이거라도 먹고 체력좀 회복시키라고."
일렌시아는 심사가 복잡해졌다.
눈앞에 있는 카오틱 유저는 척보기에도 매우 악날해 보였다.
닉네임 자체가 매우 붉다.
동족들을 수도 없이 많이 죽였다는 증거다.
그런데 왜 엘프인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지?"
"뭐가?"
"왜 나를 살려준거지?"
"살려주는데 이유가 있냐?"
"넌 카오틱 플레이어다.
오크보다도 못한 쓰레기라고 칭해도 할말없는 존재지.
내말이 틀리나?"
"쓰레기라…? 살려준 생명의 은인에게 쓰레기라고 말하는걸 보니 엘프들의 인성도 글러먹었구만. 그치??"
"……"
"뭐 원한다면 지금 죽여줄수도 있어. 그걸 원하나?"
"……"
일렌시아는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었다.
생에 대한 집착은 누구에게나 있는법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살아난 여전사가 아니던가?
그리고 수호성자에게 어떤 연유로 패퇴했는지 보고를 올려야 했다.
지금 죽을순 없었다.
"한가지만 확실히 말해주마.
나는 동족을 많이 죽이긴 했지만, 엘프들을 죽이진 않았다.
그것만 명심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