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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각 카이오는 호숫가에 앉아 루시엘라가 건넨 편지를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벌써 12시간동안 호숫가에서 미친놈 마냥 멍하니 입을 벌리면서 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웠다.
천상계에 올라가서 루시엘라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3년동안 그녀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고, 이제는 결실을 맺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신마대전이 발발하는 탓에 혼인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어 버렸고, 결국 싸움에서 생포당한 카이오는 5천년동안 마검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우여곡절끝에 마검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이제 남은 수명은 고작해야 100여년 뿐. 그는 자신의 수명을 잘 알고 있었다.
라일강에 가서 정기를 받아 새생명을 얻을수도 있었지만, 라일강에 갈수있는 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인간들과는 달리 천계의 인물들은 라일강 출입에 제한을 받는다.
헨리에게 도움을 청할까 생각해봤지만, 헨리라고 해서 퀘스트를 무조건적으로 수행할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 중요한것은 루시엘라와의 혼인이 아니라 천상계의 안녕이었다.
혼인을 하고 루시엘라의 일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한창 명상을 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였다.
문득 등뒤에서 낯익은 기척이 전해졌다.
고갤 돌려 뒤를 보니 헨리와 이리우스가 어느샌가 와있었다.
헨리는 조용히 카이오의 옆자리에 앉았다.
"할배 뭐해요?"
"그저 조용히 호숫가를 바라보며 생각을 좀 하고 있었지."
왠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 않고 나긋하게 말하는 카이오였다.
헨리가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옛날 생각했죠?"
"허허 녀석. 이제는 완전히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구나."
"뭐, 거진 한달동안 같이 지냈는데, 이정도도 눈치못채면 바보죠."
"하기사 그렇기도 하겠군. 그런데 왜 나를 찾아온게냐? 또 잠재능력을 개방시켜 달라고 조르려고 온게야??"
"졸라도 개방 안시켜줄거잖아요?"
"녀석 눈치한번 빠르군."
"물어볼게 있어요. 카이오 할배"
"무엇을 말이냐?"
"천상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아요?"
헨리가 갑자기 천상계 이야기를 꺼내자 카이오의 얼굴이 짐짓 어두워졌다.
카이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단다.
하지만 내가 천상계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득이 될게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루시엘라의 일만 방해하게 될뿐이지.
더군다나 나의 수명은 많이 남지 않았어. 고작해야 90년 100년 살까 말까지."
"천상계에서 수명은 중요한 역할을 하나봐요?"
"의당 그럴수밖에. 인간도 나이가 들면 약해지듯이 천상계 인물들도 나이가 들면 약해지는건 물론이거니와 사용할수 있는 기술도 많이 줄어들고 말지.
즉 밥만 축내는 노인과 다를바 없어지는게야.
내가 천상계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실이 되면 실이 되었지. 득이 되진 않을터.
그래서 천상계로 올라가는것을 망설이는 게지."
"그래도 루시엘라님이 카이오 할배더러 소환명령을 내렸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루시엘라님이 아직 카이오 님을 사랑하고 있는것 같은데 그냥 확 혼인하고 루시엘라님의 빽을믿고 천상계에 눌러살면 안돼요??"
헨리의 말에 카이오가 쓴웃음을 지었다.
"빽이라……하긴 그렇게 할수도 있겠군. 하지만 말이야…
나는 진심으로 루시엘라를 사랑하고 있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고자 사랑하는 여인을 곤경에 빠뜨리게 할순 없는 노릇이지."
천상계도 인간계와 마찬가지로 파벌이 매우 심한 편이다.
천사들이 대천사 자리를 꿰차기 위해서 파벌을 형성했고, 몇몇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은 트집잡을거리를 만들어 대천사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했다. 만약 카이오가 천계에 눌러살게 된다면 대천사 자리를 노리고 있는 천사들이 갖은 이유를 대면서 대천사 루시엘라를 곤경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그것은 카이오가 원하는 바가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나의 능력은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는중이야.
잠재능력을 개방하는 능력도 언제 사라질지 알수 없는 상황이지."
"수명만 늘리면 능력이 다시 되살아 나나요?"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나는 이미 라일강에 갈수 없는 몸이거든."
"만약에요. 정말 만약에 카이오님의 수명을 늘릴수만 있다면 천상계에 올라가실수 있는거에요??"
카이오는 전대 천사들중 최강의 천사였고, 무력이 매우 뛰어난 엘리트였다.
때문에 젊음을 다시 되찾을수만 있다면 천계에서도 그를 받들어 모실것이다.
카이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는 그제서야 마음을 다잡고 배낭속에서 자그마한 호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헨리가 말했다.
"한가지만 약속해요. 천계에 올라가면 절대로 나를 잊지 않겠다고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인게냐?"
헨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호리병의 병뚜껑을 열어제낀뒤 라일강의 정기를 개봉시켰다. 그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호리병에 채워져 있던 라일강의 정기들이 하늘위로 치솟더니 거친 바람을 일으키면서 카이오의 몸속으로 잠식해 들어간 것이다.
정기가 유입될수록 카이오의 몸속에 자그마한 변화들이 생겨났다.
매마른 근육들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고, 좀비를 연상케 하는 얼굴이 젊은이의 그것처럼 윤기가 바들바들해지고 살집이 올랐다.
근육도 엄청나게 자라났고, 150cm의 짤막한 키도 185cm의 건장한 체격으로 변모했다.
변신과정을 마치자 넘버원 내부에서 알림말이 흘러나왔다.
띵!!
<대천사 루시엘라의 부탁>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대천사 루시엘라의 부탁으로 라일강의 정기를 이용해 천사 카이오의 수명을 늘리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천사 카이오>가 <대천사 카이오>로 변모합니다!
대천사 카이오가 모든 천계의 기술을 습득 하였습니다!
잠재능력 개방 기술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대천사 카이오에게 잠재능력을 개방받을시 랜덤하게 500-1000의 능력치가 상승됩니다!
<부여받은 만큼의 잠재능력(1000) 스탯이 감소합니다.>
대천사 카이오를 각성시키면서 헨리는 비약적으로 건강해지고 강력해진 카이오를 볼수 있게 되었다.
카이오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헨리가 라일강의 정기를 모아서 자신의 수명을 늘려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이오가 헨리를 쳐다보았다.
헨리 또한 카이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카이오는 정말로 잘생겼다.
천계의 모든 여신들이 탐할 정도로 빼어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여리여리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칼날같은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기세에 잠식당한다면 그 누구라도 카이오를 대적할수 없을것 같은 위압감이 절로 들었다.
"어떻게 된것이냐? 네가 어째서 라일강의 정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야?"
말투까지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노인의 말투였는데 이제는 젊은이의 음성이었다.
헨리는 그간 있었던 일을 전부 카이오에게 말해주었다.
카이오가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하니 루시엘라가 헨리에게 퀘스트를 의뢰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젊음을 되찾았으니 루시엘라님에게 달려가세요.
대천사로 각성하셨으니 다른 천사들도 기쁘게 카이오님을 맞이할겁니다."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헨리는 그길로 이리우스를 대동한채 카이오를 천계로 데리고 올라갔다. 아영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또다시 오딘에게 보고를 올릴 공산이 매우 크다.
그것을 방지하려면 신속하게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만 했다.
잠재능력도 개방시키고 아영의 이목을 피하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헨리는 대천사 루시엘라가 머물고 있는 성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잘 따라오던 카이오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5천년만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보려 하니 긴장이 된 것이다.
"뭘 그렇게 움찔해요? 안와요?"
"자,잠깐만 기다리거라. 마음의 준비좀…"
안그래도 급해 죽겠는데 카이오가 자꾸만 뜸을 들이자 헨리가 거침없이 카이오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어댔다.
힘을 많이 올린 덕분에 헨리의 힘은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카이오는 헨리에게 질질질 끌려가버렸고, 결국 루시엘라가 있는 성전 앞에 무사히 당도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