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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243화 (243/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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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오님이 내 제안을 거절했단 말이더냐?"

천상계의 대천사 루시엘라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곁에 있던 가드리안에게 다시금 물어보았다. 가드리안이 쩔쩔매며 말을 받았다.

루시엘라의 평소 성품은 선(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는 험악해지는 특징이 있었다.

자칫 불똥이 튈수도 있기에 가드리안이 좋은말로 그녀에게 해명하려했다.

"루시엘라님의 임무가 막중하시어, 카이오님께서 배려를 하는 차원에서 천상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듯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한가지 방법밖에 없을것 같군요."

방법이 있다는 말에 루시엘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방법이 무엇이지?"

"바로 루시엘라님이 직접 카이오님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제가 짐작해보건데 카이오님은 아직까지 루시엘라님을 잊지 못하고 계신듯했습니다."

루시엘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기쁜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득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루시엘라는 천상계를 함부로 비울수가 없는 몸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하계로 내려가게 되면 절대로 혼자서 이동할수 없다.

천상계의 고위급 간부들이 그녀를 호위한다는 명분하에 매번 동행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명실상부한 천상계의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마족들이 호시탐탐 천상계의 간부들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인간계에 강림했다가 자칫 불의의 사고를 당할수도 있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를 하고자 간부들은 항시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철통같이 호위했다. 아마도 하계에 내려간다면 최소 100여명의 천사들을 대동하고 하계에 내려가야 할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계가 또 시끄러워지게 된다.

루시엘라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카이오의 성정상 한다면 하는 남자다.

천상계에 올라오지 않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한만큼 쉽게 올라올 인사가 못됐다.

머리를 쥐어짜냈지만 결국 마땅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카이오를 천상계로 데려오고 싶었다.

5천년전 카이오가 그랬던것처럼 이번에는 루시엘라 본인이 카이오에게 당당하게 고백하여 사랑을 쟁취하고 싶었다.

5천년의 세월동안 많은 혼사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혼사를 전부 뿌리치고 카이오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마계에서 실종된만큼 카이오가 죽었다고 믿는 천사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카이오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카이오의 신변이 확인되었다.

이제는 그에게 마음을 전하면 모든것이 해결된다.

"카이오님의 봉인을 풀어준 남자가 있다고 들었다.

제국의 용사 헨리라고 했던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루시엘라가 뜬금없이 제국의 용사 헨리를 입밖으로 꺼냈다. 가드리안도 헨리를 잘 알고 있는 눈초리였다.

대마왕 루시퍼의 공격으로부터 인간계를 지켜내고, 나아가 드래곤과 엘프족과의 화합을 이뤄낸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그 덕분에 제국의 용사 칭호와, 인의의 용사 칭호를 받은 인간이 아니던가?

"인간계에서 제법 유명한 인사지요. 운좋게도 그 인간이 카이오님의 봉인을 해제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카이오님은 제국의 용사 헨리와 동행을 하고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당장 이 서신을 제국의 용사 헨리에게 전하도록 해라."

"혹, 제국의 용사를 이용하여 카이오님을 천계로 불러들일 작정이십니까?"

루시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인듯 하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하려면 주변인물들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으라고 했다.

루시엘라는 그점을 마음속 깊히 새긴연후 카이오의 최측근인 헨리의 마음을 사고자 헨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가드리안은 루시엘라의 편지를 소매속 깊히 감춰두고 하계로 내려갔다.

그녀가 향한곳은 제국의 용사가 머물고 있는 라덴 영지였다.

라덴 영지에 도착한 가드리안은 곧장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시각 헨리는 카이오와 한창 설전을 펼치면서 혈압을 높히고 있는 중이었다.

망할 노친네가 잠재능력좀 개방시켜 달랬더니 끝끝내 거절했다.

그러면서 원하는것은 어찌나 많은지!

밥해달라! 던전 구경시켜달라! 세공품좀 사달라!!

해달라고 해서 다 들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능력 개방은 딱 한번밖에 해주질 않았다. 딱 한번!!

어지간한 헨리도 성질이 났다.

하지만 밖으로 표출했다간 카이오의 심기를 건드릴수 있기에 울화통을 참고 또 참을수밖에 없었다.

한창 헨리와 카이오가 투닥거리고 있을때였다.

경비병 NPC가 집무실로 들이닥치면서 놀라운 보고를 전해왔다.

"천상계의 천사 가드리안님이 영주님을 뵙고자 하계로 내려오셨습니다!"

헨리는 급히 가드리안을 불러들였다.

NPC의 말대로 정말로 천사 NPC가 헨리 본인을 찾아왔다.

카이오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척보기에도 눈앞에 있는 천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천사가 틀림없었다.

5천년전 루시엘라의 종녀 역할을 하면서 간간히 봤던 천사가 바로 그녀였다.

가드리안이 카이오를 알아보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너,너는?"

"편지는 읽어보셨습니까 카이오님?"

"그래. 읽어보았지."

"루시엘라님께서 카이오님을 많이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지금당장 천상계에 오르도록 하시지요.

루시엘라님이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수는 없구나."

"어,어째서입니까?"

"루시엘라, 아니 루시엘라님은 현재 대천사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천사이니라 그렇다면 천계의 모든일을 관장하신다는 말씀이온데, 내가 만약 천계에 올라가 루시엘라님을 뵙게 된다면 루시엘라님의 마음만 어지러워질 뿐이다. 더욱이 나는 100여년도 채 살지 못하는 늙은몸이지."

"라일강의 정기를 받으신다면 수명은…"

"시기를 놓쳐 라일강의 정기를 받지 못했다.

이유는 네가 더 잘알것이라 믿는다."

라일강의 정기.

천계의 인물들이 태어났을때 라일강의 정기를 받아 수명을 연장시킨다.

막중한 소임을 받들고 천상계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수명을 연장시켜야 하기 때문에 천사들은 천년마다 한번씩 라일강을 찾았다.

그리고 정기를 받아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려나갔다.

하지만 카이오는 검에 봉인되어 있었던 까닭에 정기를 공급받지 못했고 또한 그 시기마저 놓쳐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그저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한낱 노인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천상계의 기술들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었고, 잠재능력 개방. 창조능력 발휘 등의 기본적인 능력만 구사할수 있을 뿐이었다.

실질적인 공격 능력은 아무것도 지니고 있질 않았다.

가드리안은 주름진 카이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라일강의 정기로 젊음을 유지한 덕분에 그녀와 루시엘라는 아직까지 빼어난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카이오는 다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가드리안은 눈물을 흘렸다.

5천년전 그 용감했던 천사가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감정이 복받친 것이다.

카이오는 손녀딸을 다독이는것 마냥 가드리안의 등을 쓸어 주면서 마냥 껄껄 거릴 뿐이었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구나. 너는 지금당장 천계에 올라가 루시엘라님에게 나의 말을 전해 주었으면 한다."

가드리안이 계속 설득했지만 카이오는 듣는둥 마는둥 할뿐이었다.

급기야 그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계속되는 설득에 지친 나머지 호숫가를 둘러보면서 마음 한편을 정화할요량으로 호숫가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카이오가 사라지자 가드리안이 이번에는 헨리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헨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카이오의 마음이 저토록 확고한 탓에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가드리안이 소매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헨리에게 내밀었다.

헨리가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대천사 루시엘라님이 건네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 퀘스트 내용이 적혀있으니, 꼭 보는것을 권장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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