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넘버원-185화 (18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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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삼겹살집에 들어서던 이윤지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용기내어 약속을 잡았고 드디어 지강혁과 1:1 데이트를 하나 싶었다.

영화를 볼생각에 이미 표까지 두개나 예매하고 왔다.

그런데 왠 낯선 여인. 아니 여고생 하나가 지강혁의 곁에 찰싹 달라 붙어서 고기를 냠냠쩝쩝 먹고 있는것이 아니던가?

"윤지야 여기야!"

지강혁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이윤지의 이름을 불렀다.

이윤지는 조용히 지강혁 맞은편에 앉았다.

"윤지야 미안해. 혼자 오려고 했는데 이녀석을 차마 그냥 보내기가 좀 그래서 데리고 왔어. 정말 미안하다."

"호호 아니에요. 잘 하셨어요 오빠."

왜 데리고 왔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어찌 그럴수 있단 말인가?

이윤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좋은말만 해준뒤 지강혁 옆에 있는 여고생을 한번 쳐다보았다. 여고생이라기 보다는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로 보였다얼굴이 조금 성숙해보였는데, 여고 교복을 입고 있는걸 보니 틀림없는 여고생이었다.

"이분은 누구에요?"

"내가 말했던 그 꼬마아이야. 어제 넘버원에서 말해줬지?"

"아,이분이 그분이에요?"

"응. 이녀석이 그녀석이지. 여진아 이쪽은 이윤지라고 나랑 같은 대학에 다니는 여자애야. 넘버원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사이이기도 해."

"안녕하세요. 강여진 이라구 합니다."

"호호 반가워요 전 이윤지에요."

강여진 또한 누가 올줄은 생각도 못한터라 조금 뻥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며칠전 함께한 그 여인이 아니던가?

틀림없이 강혁오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예쁘게 꾸미고 나올리가 없었다.

이윤지 또한 강여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여고생은 척 보기에도 지강혁에게 마음이 있는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찰싹 달라붙어서 삼겹살을 낼름낼름 받아먹을리가 없다. 두 여인은 한동안 서로를 탐색하면서 고기만 한점 두점 집어먹을뿐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강혁의 말에만 간간히 대꾸할뿐이었다.

지강혁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기는 커녕 그저 허허거리면서 두 여인과 삼겹살만 미친듯이 집어먹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엄청 소심한거 같아. 그러면 내가 유리해.'

한동안 이윤지를 견제하면서 탐색에 열중하고 있던 강여진이 먼저 칼을 뽑아들었다. 자고로 용기있는 여자가(?) 미남을 쟁취(?)한다는 말이 있다.

상대는 소심에 극치를 달리고 있는 여인이다. 이러면 적극적인 여자가 이길확률이 매우 높은법이다. 강여진은 쌈을 하나 싸서 그것을 지강혁에게 먹여주었다. 이윤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내색하나 하지 않고 마주 쌈을 싸서 지강혁에게 먹여주었다.

두 여성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전기 스파크가 치지직 하며 두 여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나 잠시만 화징실좀 다녀올게"

지강혁이 잠깐 자리를 떴다.

졸지에 둘만 남게된 두 여인은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삼겹살만 한점 두점집어먹고 있을 뿐이었다. 먼저 정적을 깬것은 강여진이었다.

"언니 강혁오빠 좋아하세요?"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이윤지의 표정이 살짝 달아올랐다.

당돌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닌 고3 이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강여진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작 삼겹살을 먹기 위해서 그렇게 꾸미고 나오셨을리는 없으실테고.

척 보기에도 강혁오빠에게 [나 관심있어요 라고] 표현하신것 같아요. 그쵸?"

"호호 제법 당돌하시네요."

"네 제가 그런말을 좀 많이 들어요."

"당돌하다의 어원은 건방지다 라는 말이 될수 있어요.

그러니까 썩 좋은 의미만은 아닌거죠."

이윤지가 언어적 지식을 이용하면서 공격을 감행할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라강여진이 살며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이윤지의 말에 대꾸했다.

"소심하게 있는것 보다는 당돌해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런 성격으로는 마음에 있는 남자에게 어필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물론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예외라는게 있는 법이에요.

내성적이고 소심하다고 해서 마음에 있는 남자에게 어필 못한다는건 너무 1차원적인 사고방식이죠 그렇지 않나요?"

"호호 언니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시네요. 언어적 지식도 무척 뛰어나시고요.

그러니까 S대에 진학하신 거겠죠??"

"누구나 노력하면 되는거랍니다. 저는 노력을 해서 S대에 진학했고 노력을 해서 언어적 지식을 습득한거죠. 그쪽도 좀더 노력해서 공부를 한다면 저와 같이 S대 진학은 물론이거니와 언어적 지식도 습득할수 있을거라고 봐요.

아주 대놓고 자신을 깔아뭉개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여진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그녀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마침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온 지강혁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두 여인은 언제 그랬냐는듯서로에게 고기를 한점씩 건네주면서 화기애애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강혁은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둘의 성격이 맞지 않아트러블이 생기면 어쩌나 고민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보니 서로에게 고기를 한점씩 건네주면서 방긋이 웃고 있는게 아니던가?

척보기에도 사이가 좋은 자매같아 보였다.

"이야 벌써 친해진거야~?"

"호호 오빠. 이 언니 엄청 웃겨요. 개그우먼 해도 될거 같아요"

"호호 오빠. 여진씨 정말 재미있는 분 같아요."

"뭐? 노래방에 가자고?"

"네 오빠. 우리 노래방 한번 가요~ 오빠 노래도 잘하잖아요??"

노래방을 가자고 조르는 강여진의 부탁 때문에 이윤지의 얼굴에 난감함이 서렸다. 이미 영화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지강혁과 함께 그곳으로 가야만한다. 그런데 강여진이 먼저 초를 친 것이다.

강여진과는 달리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터라 그녀는 지강혁에게 먼저 이것을 하자, 저것을 하자라고 과감하게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강여진은 성격 자체가 할말을 다하고 리드를 잘하는 성격이다.

그러다보니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지강혁은 강여진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이윤지가 영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무엇보다 노래방에 가자는 물음에 이윤지가 [그럼 그렇게 해요] 라고 말을 해버려서였다.

이윤지는 강여진의 성격이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러웠다.

강여진처럼 적극적으로 밀어부쳤다면 지강혁과 단둘이 데이트를 했을테고, 또한 영화를 보면서 돈독하게 정을 쌓아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말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지강혁을 따라 노래방으로 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강여진의 노래실력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페이 강승일의 여동생답게 그녀또한 노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아서 고음처리는 기본이었고, 어렵다고 알려진 가성과 미성부분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지강혁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강여진에 비하면 후달리는게 사실이었다. 이윤지야 말할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탬버린만 한번 두번쳐댈뿐 단 한곡도 부르지 않고 강여진과 지강혁의 노래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강여진이 다가와 이윤지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언니 한번 불러보세요."

"호호 미안해요. 난 노래를 잘 못해요."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한번 해봐요~"

"그래 한번 해봐 윤지야."

어릴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이후로 노래방을 단 한번도 와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노래를 듣는것만 좋아했지 부르는건 별로 안좋아했다하지만 지강혁이 요구를 하니까 무작정 빼기에도 좀 그래서 결국 이윤지는 마이크를 잡고 말았다.

"오호? 나도 여자랍니다!!??"

예전에 핫했던 장나라 라는 여가수가 부른 노래로, 여자의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였다. 간혹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남성을 상대로 부르곤 했는데 설마하니 이윤지가 나도 여자랍니다를 부를줄은 생각도 못한터라 강여진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어디한번 봐볼까?'

마이크를 빼는 여자치고 노래를 잘하는 여자는 매우 드물다.

때문에 강여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1분정도가 지나자 강여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이윤지의 노래실력이 일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여자랍니다 노래가 그렇게 어려운건 아니지만, 고음처리도 완벽했고 무엇보다 목소리 톤 자체가 가수와 매우 흡사했다.

지강혁은 넋을 놓고 이윤지를 쳐다보고 있는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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