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9 회: 넘버원 -- >
"어이쿠!"
지강혁은 옆을 헤집으면서 의도적으로 40대 중년인을 밀쳤다.
지강혁의 힘에 밀린 40대 중년인이 옆으로 살짝 밀렸고, 그로인해 다수의 인파가 피해를 보게 되었다. 한창 여름인 8월이었다. 안그래도 곳곳에서 풍겨오는 땀냄새 때문에 몹시 불쾌한 상황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밀어대니 더 짜증이 났다.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지강혁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능글맞게 죄송하다고 말했고, 그녀의 등뒤편에 자리를 하고 오른손을 들어 손잡이를 잡았다.
40대 중년인이 지강혁을 죽일듯이 쏘아보았지만 지강혁이 물러섬없이 마주노려보자, 이내 움찔하고 쥐죽은듯이 가만히 서있기만 할뿐이었다.
[신도림. 신도림 역입니다.]
안내멘트가 흘러나오고 신도림에 도착했다. 신도림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지강혁의 집은 신도림 부근이라서 여기에서 내리면 된다.
이제는 지옥철에서 해방이었다. 지강혁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기지재를 활짝 펴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댔다. 피곤을 달래기 위해 뚝섬에 갔다가 오히려 피곤을 더 끌어안고 복귀를 하는것 같아 기분이 좀 찜찜한게 사실이었지만, 착한일을 두번이나 해서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한번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린일. 그리고 나머지 한번은 예쁘장한 여성에게로 부터 치한을 퇴치해준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 이제 슬슬 집에 가볼까나?'
무엇보다 졸려서 미칠것만 같았다. 집에 가면 늘어지게 한숨 자고 넘버원을 할생각이었다.
'응?'
막 지강혁이 자리를 털고 개찰구를 빠져 나갈때였다. 누군가가 갑자기 지강혁의 앞을 떡하니 가로막았다. 자세히 보니 방금전까지 같이 있었던 핑크색 모자녀였다. 핑크색 모자를 쓰고 있던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마음을 다잡고 모자를 훌렁 벗어제끼곤 지강혁에게 아는척을 해왔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지강혁이 바로 그 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이 자신을 아는척 하자 그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다단계 하는 여잔가?'
가끔 친구들에게 예쁜 여자가 꼬셔서 다단계 하는 곳으로 끌고 가는 수법이 통용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강혁은 혹시나 해서 이 여인이 다단계를 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말하는 뉘앙스를 보니 전혀 그게 아니었다.
마치 오래 지내던 여자아이가 한 오빠를 찾아 헤매이는듯한 그런 뉘앙스였다.
하지만 지강혁은 눈앞에 있는 여인을 당최 알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곁에 이토록 아리따운 여인은 윤지를 제외하곤 단 한명도 없다. 여자라는 존재와도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아는 여자도 극히 드문 판국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느닷 없이 아는척을 해오는 것이다.
유심히 보고 또 바라봤지만, 정말로 모르는 여인이었다.
"강혁오빠. 저 정말로 모르시겠어요?"
"사,사람 잘못 보신거 아닌가요? 전 진짜 모르겠는데…"
이름까지 알고 있는걸 보면 뭔가 있는것 같긴 했는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강혁은 끝까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처음 여자친구를 알게 된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5년전 이야기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틀림없다.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나는 날라리 양아치 소리를 들어가면서 온갖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고 다녔다. 서울에서 난다고 하는 패거리들과 어울리며 담배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깽판도 부려봤고, 일진회라는 곳에 가입하면서 어깨에 힘도 줘봤다. 그리고 아이들을 쥐어패기도 했고 병원에 가서 무릎을 꿇어 용서를 빌어보기도 했으며 소년원에도 가봤다.
나는 인간쓰레기로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신짓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왜그랬는지는 모른다. 그저, 혈기 왕성하고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랄까? 아무튼 그렇다.
어릴때는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돌아가신할머니가 그렇게 말해주곤 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로인해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되었고, 친인척과도 인연을 끊어버렸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안면을 바꾼 그 태도가 나와의 인연을 끊게 만들어 버렸다.
언제 올라왔는지 기억도 안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아니면 중학교 때였나? 세상을 부정하면서 그때부터 삐뚤어졌던것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남중을 나왔는데, 남자들만 있었던 터라 제법 치고받는 싸움이 많았다. 세력 싸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중학교에도 세력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하게 지냈던걸로 기억난다.
나는 스타일 자체가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때는 그랬다. 하루는 조용히 거리를 거닐고 있는데, 왠 여자아이가 와서 편지를 주고 총총 사라지더라. 러브레터. 사랑의 편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고 부끄럽긴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인기의 상징이라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그랬다.
문제는 그때부터 생겨났다. 일진회에 속해 있던 중학교 3학년 짱이 러브레터를 준 [옆학교의 여자아이]를 사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러브레터를 받았고, 그 소문은 돌고 돌아 3학년 짱에게 전해졌다.
더욱 놀라운건 내가 3학년 짱을 상대로 이겼다는 거였다어릴때 시골 촌구석에 살면서 운동을 해오며 몸을 다져왔고, 격투기 같은걸좋아라 해서 태권도와 유도, 그리고 합기도를 고루 배우며 권투도 습득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일진회? 이딴건 개풀 뜯어 먹는 소리다.
싸움 잘하는 새끼가 무척 드물고, 간혹 잘하는 새끼가 한두명 있긴 한데 그저 [허세로 무장한 집단]이라고 보면 매우 편하다.
내가 중3 짱을 이기자 소문은 기세좋게 번져 나갔다.
결국 사단이 터지고 말았다. 중1인 나에게 고딩 두명이 덤벼든 것이다.
그중 한명은 나에게 쥐어터진 중3 짱의 친형이었다.
사실 소싯적의 싸움은 거의 체격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체격이 좋으면 작은 새끼 셋도 가능하다. 어릴때는 체격이 좀 좋아서 중1때 키가 174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놈들도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2명이 아니던가? 죽을 각오를 하고 놈들에게 덤벼들었다.
선빵을 때리면 80퍼센트는 이길테니까 말이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고 나는 2명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바닥에 쓰러졌다.
물론 상처가 많아서 곧바로 병원에 실려가긴 했지만 어찌되었건 이긴건 이긴거였다.
중1이 고1 두명을 때려눕혔다?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부모님을 어릴때 야위고, 친척들에게 배신을 당한 나머지 그들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세상을 부정했던 것 같다.
중3 짱을 이기고, 중3짱의 친형과 고등학교 1학년 한놈을 상대로 2:1을 이겼다. 소문은 기세좋게 번져나갔고, 졸지에 중학교 짱이 되었다.
그때부터 아마 술을 시작했던것으로 기억한다.
담배는 처음엔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폐가 좋지 않아서 담배를 하면 할머니 건강이 악화 될거라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했다.
중학교 시절은 별거 없이 그냥 끝이났다. 남중이다 보니 여자와의 썸씽은 있을래야 있을턱이 없었고, 3년동안 맘에 안드는 새끼 쥐어패가며 빵셔틀 몇명과 함께 명성고교에 진학을 했다.
명성고교는 생각보다 성적이 좀 되야 갈수 있는 명문고등학교다.
내가 이곳에 갈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빵셔틀 한놈중 국회의원 아들놈하나가 있었는데, 그놈이 유독 나와 성격이 잘맞았다.
빵셔틀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친구였고, 무엇보다 말만 빵셔틀이지, 실제로는 녀석과 피씨방에서 밤낮없이 게임하며 친분을 쌓아나갔다.
놈이 어려운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그놈도 나를 도와주니 저절로 친해져버렸고, 놈의 아버지 힘으로 사립 고교 명성고등학교에 입학할수 있었던 것이다. 등록금은 불우이웃 장학 어쩌고 저쩌고 하는것 때문에 10퍼센트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명성고교에 진학함에 있어 애로사항은 전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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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진vs이윤지
난 강여진이 끌리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