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8 회: 넘버원 -- >
"으아!!"
"어이구. 이건 곤욕이다 곤욕. 그러니까 내가 사람이 좀 드문 둔치로 가자고 했잖아?"
지강혁이 이윤정을 보면서 볼멘소리를 하자 이윤정도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듯 했다.
"헤헤 미안해요 오빠."
"뭐 어쩔수 없지. 밥먹고 슬슬 돌아가자. 더이상은 여기 못있겠다."
쉴려고 왔는데 오히려 피로만 더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팬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지강혁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버렸다. 팬들은 페이가 일행이라고 소개하자 그들에게도 접근하면서 이것저것을 캐물어 보았고, 어떤 이들은 지강혁에게 잘생겼다 라고 칭찬하면서도 페이가 낫다느니, 연예인 아무나 하나느니, 벼래별 소리를 다 했다.
어지간 하던 지강혁도 그말을 들으니 괜시리 기분이 상하는건 어쩔수 없었다.
막말로 놀러왔다가 페이의 팬들에게 그런소리를 들었는데 빈정 상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있겠나?
"형 저 때문에 죄송해요."
"개념없는 팬들이 죄지 뭐. 너무 신경쓰지마."
"네 형."
식사를 하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을 찾았고, 다행히 팬들은 고급레스토랑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가격이 생각보다 무척 비싼 까닭에 출입하기가 애매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페이를 보기 위해 레스토랑에 무단으로 난입할순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결국 팬들은 그제서야 해산을 해버렸고, 지강혁은 페이와 함께 이곳에 자리를 할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여진이 녀석 집에 갔나 모르겠네?'
이윤지와 이윤정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여동생이 화가 단단히 나버렸고, 그결과 여동생이 뚝섬까지 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뚝섬에 당도하자 여동생은 크게 긴장을 한듯 가슴을 부여쥐고 있었다.
결국은 페이 자신에게 강혁 오빠를 볼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서 페이의 뒤만 졸졸졸 따라 다녔다. 물론 핑크색 모자를 꾹 눌러쓰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채말이다.
페이가 지강혁과 상봉(?) 했을때는 마치 007 첩보요원처럼 그 뒤를 미행만 할뿐이었고, 페이는 가끔 뒤를 한번씩 둘러보면서 여동생의 존재를 확인만했다. 그러다가 팬들이 몰려와 둘러쌓여 버렸고, 급기야 여동생과 떨어지고 말았다.
'전화라도 좀 해봐야겠다.'
혼자 밥먹고 있는게 조금 그래서 자리에서 슬며시 빠져나온뒤 화장실에 가서 핸드폰을 꺼내 여동생에게 연락을 취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한번 울리자마자 여동생의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게 들려왔다.
"페이는 어디간거야?"
"잠시 화장실 간다면서 나갔어요. 왜그래요 오빠?"
"아니 그냥. 또 어디갔나 궁금해서."
"페이가 워낙 유명인사라 바쁘잖아요. 우리가 이해해줘야죠 오빠."
"그래 윤지 네말이 맞다. 우리가 이해해야지.
사실 이정도는 각오하고 나온거잖냐."
유명인사와의 동행은 늘상 피곤함을 따르는법이다.
어느정도 각오를 하고 나왔기에 처음과는 달리 마음 한편이 가벼워지는것 또한 사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지강혁은 카페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지강혁이 돌아가려 하자 페이가 뚝섬을 좀더 둘러 보면서 행사장이나 가보자고 설득 했지만, 지강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키지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사람 많은곳을 싫어하는 그의 특성상 번거로운건 딱 질색이었다.
지강혁은 곁에 있던 이윤지와 이윤정에게도 양해를 구한뒤 먼저 그곳을 빠져 나왔다.
"너희들끼리 놀다가 집에 들어가. 난 먼저 가볼게."
"오빠 정말 가게요?"
이윤지가 물어봤지만, 지강혁은 빙그레 미소만 지을뿐, 뚝섬 지하철 역으로 뚜벅 뚜벅 걸어갔다. 이미 집에 가기로 마음을 정한 까닭에 더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졸지에 이윤지만 덩그러니 놓여져 버리고 말았다. 페이와 이윤정이 다가가 그런 이윤지를 좋은말로 달랬다.
"형이 바쁜일이 있었나봐. 너무 신경쓰지마 윤지야."
"그래 윤지야."
사실 페이와 이윤정은 이윤지가 지강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기에, 둘을 이어주고자 오늘같은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이윤정의 뚝섬행으로 인해 무산이 되어버렸고, 결국지강혁은 떠나가고 말았다. 이윤정은 괜시리 여동생에게 미안해졌다.
이럴줄 알았으면 인적이 드문곳에 가서 2:2로 재미있게 놀걸 그랬다는 후회마저 물밀듯이 들어왔다.
"흐아암~ "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는 다름아닌 지강혁이었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해서인지 무척이나 피로했고, 눈이 점점더 감겨만갔다. 지금 당장 돗자리를 깔고 누운다면 1분안에 잘 자신이 있을만큼 그는 식곤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면서 지하철이 들어왔다.
지강혁은 지하철에 몸을 실은뒤 주위를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자리가 제법많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2호선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앉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몇자리가 비어있는게 아닌가?
지강혁이 재빨리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끄트머리 쪽이라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면 아주 편했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끝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아ㅤㅆㅏㄷ.
그순간. 뚝섬 역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2호선에 우르르 몰려들었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빈자리는 금새 메워졌고 지하철은 이미 지옥철로 탈바꿈된지. 그저 운이 좋아 맨앞자리에 있었던 탓에 지강혁이 벤치에 앉아 있을수 있게 된거였다.
지강혁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공교롭게도 앞자리에 할머니 한분이 있었다.
척보기에도 거동이 매우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이셨다.
잠이 와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웃어른을 공경하라고 어릴때부터 부모님에게 신신당부를 들은터라 지강혁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웃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처음에는 한사코 괜찮다면서 만류하던 할머님이었지만, 지강혁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재차 권유했고, 할머님은 그제서야 마지못한듯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면서 연신 지강혁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지강혁은 왠지 모르게 너무나 뿌듯했다. 의당 당연한 일을 했지만서도 할머님이 고마워 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정말 착한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철이라는 소문답게 2호선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후 1시밖에 안됐는데 이지경이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사람들이 엄청 몰린듯싶었다.
'응?'
한동안 지하철 안에서 이동하던중 이었다.
지강혁의 옆에 있던 여성이 자꾸만 온몸을 비틀면서 무언가에 저항하는 제스쳐를 취해왔다. 자세히 보니 왠 40대 남성 하나가 여성에게 신체접촉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손은 허벅지를 사이를 매만지고 있었지만, 척 보기에도 지하철치한이 틀림없어 보였다.
'살다살다 치한을 다 보게 되네'
간혹 야동을 다운받아 볼때 지하철 치한이라는 제목이 있긴 했는데 설마 싶었다. 사람이 많은데 설마하니 여자들의 은밀한 부위를 직접적으로 만지겠나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인간이 눈앞에 있었다.
지강혁은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어쩌지? 도와줘야하나?'
지강혁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무런 관심없이 이동만 하고 있었고, 오로지 지강혁만 그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강혁은 여성의 옆모습을 살펴 보았다.
긴생머리에 핑크색 모자를 쓰고 있었고, 청바지에 하얀티를 입고 있는 예쁜 여성이었다. 생긴건 20대 초반정도랄까? 척보기에도 대학생으로 보였다.
'엄청 이쁘네. 하긴 그러니까 치한놈이 발정나서 저짓을 하는거겠지'
못생긴 여자에게 치한짓 하는 치한은 없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답이 간단하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