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3 회: 넘버원 -- >
또옥. 또옥.
차디찬 물방울이 한올 한올 떨어지면서 제이든의 얼굴을 적셨다.
머리가 지끈거림과 동시에 온몸이 노곤해졌다. 기운이 없었고, 무엇보다 현기 증이 계속 치밀어 올라 미칠것만 같았다.
제이든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깜깜한 어둠 때문에 시야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동굴안에 비치되어 있던 하얀 수정들이 이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야를 밝혀 주었다. 제이든이 막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노인의 짙은 음성이 제이든의 귓가를 강타했다.
"눈을 뜬 모양이로군."
제이든의 시선이 대번이 뒤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나이가 지긋한 금발의 노인 하나와 젊은이 하나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바로 블루드래곤 워러와 드래곤 로드 드라이언이 그들이었다.
제이든은 반사적으로 그들이 드래곤이라는것을 깨우치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드라이언의 입가에 만족스런 빛이 떠올랐다.
"제법 예의를 아는 종족이군."
"위,위대하신 존재를 뵙게 되어 필생의 영광이옵니다."
"인간이 내뱉은 말이지만 그래도 듣기는 좋구먼. 여기서 이야기 하는건좀 그러니까 나를 따라오게"
제이든은 드라이언을 따라 쭉 걸어갔다. 잠시후 하얀 천장과 함께 드라이언의 레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어에 들어서자마자 드라이언이 제이든에게 물어왔다.
"그래 나를 보자고 한 연유가 뭐지?"
드라이언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여지껏 인간들이 드래곤 레어에 찾아온 경우는 드래곤 사냥을 위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였지. 이처럼 사신으로 파견되어 온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고 잠시 살려둔것이 아니던가?
"저는 드래곤 로드께 한가지 청을 하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인간따위가 나에게 청을 하겠다??"
"결코 해가 되는 조건이 아닙니다."
"이놈! 감히 로드와 거래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단 말이냐!!"
블루 드래곤 워러가 성을 이기지 못하고 성인 머리통만한 파이어볼을 생성해냈다. 드라이언이 급히 워러를 말리고 들었다.
"어디 한번 말해보아라. 그 요구조건이 뭔지 궁금하구나."
킹 서펜터들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드래곤의 양손날에 뭉쳐진 냉기들을 보고 나서였다. ㅤㅂㅞㄺ구의 양손에는 거의 5미터에 달하는 얼음덩어리들이 줄기차게 생성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얼음덩어리들은 더욱 커졌다.
ㅤㅂㅞㄺ구의 음성이 헨리에게 닿았다.
[주인 잠시 물러서라.]
캐스팅 시간이 긴걸보니 어마어마한 마법을 발현시킬 모양이었다. 헨리는 재빨리 ㅤㅂㅞㄺ구 뒤쪽으로 몸을 빼냈다. 주인이 몸을 빼자 ㅤㅂㅞㄺ구는 캐스팅 해두었던 광범위 마법을 발현시켰다.
[눈앞에 있는 적들을 모조리 말살할 지어다! 블리자드!!(blizzard)]
블리자드.
화이트드래곤과 블루드래곤만이 시전할수 있다는 마법으로, 보통 복수의 적들을 상대로 구사하곤 한다. 확률적으로 상대를 냉각시키면서 빈사상태에 빠뜨리는 패시브 효과가 곁들어져 있어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시동어와 함께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서펜터떼가 있는 곳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워낙 많은 얼음덩어리가 날아오다보니 피하는건 애시당초 무리였다.
서펜터들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몸으로 버티기를 시도했다.
블랙 서펜터들을 비롯해 제법 몸이 단단하다고 장평이 나있는 화이트 서펜터들은 블리자드에 격중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HP를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반해 옐로우 서펜터들과 그린 서펜터는 블리자드의 공격한방에 빈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몇몇 서펜터들은 패시브 효과를 받아 얼음속에 갇힌채 꽁꽁 얼어버린 상태였다.
ㅤㅂㅞㄺ구는 그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력한 꼬리치기 한방으로 얼음을 박살내버렸다. 그와 동시에 서펜터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고, 수많은 경험치와 더불어 골드들이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헨리와 일행들은 난파선에서 그랬던것처럼 골드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펜터 녀석들 생각보다 마법 저항력이 엄청 좋은걸?"
화이트 드래곤 이리우스는 2차각성을 마친 에인션트급 드래곤이다.
에인션트급 드래곤이 블리자드라는 마법을 쏘아붙혔지만 서펜터들은 단 한방에 죽지 않았다.
전적으로 서펜터들의 가죽에 새겨진 마법저항력 때문이었다.
헨리는 토리 NPC가 왜 서펜터들의 가죽을 구해오라고 하는지 알것 같았다.
이정도의 마법저항력이라면 드래곤의 공격도 어느정도 방어할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얘들아 혹시 가죽 나온거 있어?"
"형 이쪽은 하나도 없어요"
"오빠 이쪽도요"
"여기도 없네요."
벌써 5시간째 사냥을 하고 있었지만, 서펜터의 가죽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들도 서펜터의 가죽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할뿐이었다.
헨리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5시간동안. 그것도 드래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펜터들을 거의 학살하다 시피했고, 몬스터를 거진 1만마리 정도 잡았다고 확신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개의 가죽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신지야 너 투시능력 사용할수 있잖냐. 서펜터에게도 가능해?"
"가능은 한데 하루에 한번밖에 못써."
"두번은 안되는거야?"
"응 오빠."
신지의 투시능력은 아이템을 보는건 물론이거니와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을때보스 몬스터가 무슨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도 볼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다.
"아!"
그순간 뭔가를 떠올린 헨리가 손뼉을 쳤다. 일행들의 시선이 대번에 헨리쪽으로 향했다.
"이럴게 아니라 차라리 킹 서펜트를 잡아볼래 얘들아??"
"킹서펜트? 보스를 말하는거군요 오빠?"
"바로 그렇지."
킹 서펜트와 퀸 서펜트는 서펜트들의 보스다.
즉 녀석들도 서펜트이기 때문에 서펜트의 비늘을 드랍할 공산이 매우컸다.
게다가 신지의 투시능력이 한번 남아있기 때문에 투시를 해보고 비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을 노려서 잡기만 하면 아이템을 얻을수 있는 것이다.
헨리는 일행들을 이끌고 서펜트 던전 깊숙히 나아갔다.
하지만 생전 처음 와보는 던전이라서 길을 잘 몰랐다.
헨리는 저 멀리 있는 플에이어에게 다가가 길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순순히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막말로 경쟁을 하는입장에서 정보를 알려준다는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별다른 수가 없었기에 헨리는 무작정 깊숙한 곳으로만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ㅤㅂㅞㄺ구야 스캔 펼치면서 레벨 높은놈 보이면 바로 보고해라"
"알겠다 주인"
"드래곤로드 드라이언님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들과 어울린다는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발상입니다. 대관절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무엇입니까?
인간계 최강종족이 아니옵니까? 그런 존재가 인간을 주인이라 일컬으며, 인간을 따라다닌다는것 자체가 드래곤 로드 드라이언님을 모욕하고 반항하는 행위입니다."
"……"
"그리고 제국의 용사 헨리가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마족입니다.
5천년전 마족과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드래곤 종족은 크나큰 피해를 입었습니다그년이 성장하고 로드께 검을 겨눌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당장 죽여 없애 싹을 잘라두어야만 합니다."
제이든은 열변을 토해내면서 드라이언과 워러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라이언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워러만이 제이든의 의견에 적극 찬동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실 제이든이 하는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위대한 드래곤 종족원이 로드의 말을 거역하고 인간을 따라나섰다는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은 거였고, 무엇보다 같이 여행하는 존재가 마족이었다.
마족은 5천년전 자신들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한 생명체.
크기전에 싹을 밟아두어야 하는것이 옳은 일이었다.
"인간보다 위험한것이 마족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마족 여인만은 반드시죽여 없애야 합니다. 인간의 말대로 최악의 경우 로드께 검을…"
"그럴일을 절대로 없을 거예요."
블루드래곤 워러의 말을 살며시 끊고,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이언은 여인을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가 고개를 조아리며 드라이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오 어서오시오 신녀. 몸은 좀 어떠시오?"
"덕분에 쾌차하였습니다. 호의에 정말 감사를 표합니다."
"신녀의 일은 곧 나의 일이기도 하오. 무탈한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이구려"
신녀라 불리는 여인은 빙긋 웃으면서 드라이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제이든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여성의 등장에 제이든은 바싹 긴장했다.
아무리 봐도 드래곤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 같지도 않았다.
도무지 정체를 알수 없는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