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7 회: 넘버원 -- >
"그런데 저 여인은 누구인가요?"
제르의 시선이 옆에 있던 윤지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미모가 워낙 빼어났기에 시선이 절로 윤지에게 돌아간 것이다.
"아는 여동생입니다. 우연찮게 이곳에서 만나서 같이 머물고 있었죠"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둘씩이나 데리고 다니시다니, 정말 부럽군요. "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소드마스터님은 이곳 브루시아를 안떠나실 요량입니까?"
두명의 소드마스터와 1만에 달하는 용병들. 그리고 많은 전사들이 브루시아를 떠나 다른 왕국으로 이동했다. 다름아닌 드래곤 방어전 이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제르는 떠날 생각은 커녕 거의 눌러 앉다 시피 하면서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오딘 마스터의 명령 때문에 이곳에 있게 되었지요.
그간 레벨업만 하느라 유희를 즐길새도 없었는데,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각종 퀘스트만 깨고 있는 중입니다."
"그랬군요. 그나저나 드래곤들이 언제 공습을 취해 올까요?
저는 그게 제일 궁금하군요."
"랜덤으로 발생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지요.
하지만 곧 나타날거라고 확신합니다."
이곳은 교역도시 브루시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인간들의 교역을 방해하고 타격을 입히려면 반드시 브루시아 왕국을 멸망 시켜야 한다. 그래야 인간들에게 치명타를 먹일수 있는 것이다. 헨리 또한 그점을 잘알고 있었기에 드래곤들이 반드시 쳐들어 오리라는것쯤은 예상했다.
문제는 시기였다.
방비가 허술할때를 노려 드래곤이 쳐들어 온다면 막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제르와 헨리, 그리고 신지와 윤지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눠가면서 친밀도를 다져나갔다. 제르의 시선은 계속해서 신지에게 향해 있었다.
길드가 없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자신이 소속된 길드에 넣어보고자 한마디 한마디를 은근슬쩍 던졌지만, 신지는 그때마다 헨리에게 팔짱을 낄뿐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녀석이 정말…'
윤지는 은근슬쩍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경쓰지 않으려 했는데 은근슬쩍 팔짱을 껴대면서 헨리에게 앙탈을 부리는 신지를 보니 괜시리 열이 올랐다.
고작 NPC 따위에게 질투심을 느낀 것이다. 처음에는 NPC인데 뭐 어때? 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팔짱을 끼는것 부터, 뽀뽀를 하는것 까지. 간혹 야한농담도 주고받고 있었다.
도무지 NPC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이었기에 윤지는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움은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사모하는 남정네가 다른 여인(?)과 즐겁게 놀고 있는데 기분이 좋을 여자는 없다. 그것이 게임상의 NPC라고 해도 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어둠이 몰려들어왔다. 성루에 있던 경계병들이 다급히 횃불을 밝히면서 철통경계에 임했다. 낮과는 달리 밤이 되면 넘버원 몬스터들이 더욱 흉폭해 지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지금은 한창 드래곤 방어전 이벤트 때문에 몬스터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알수가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경비병들은 철통경계에 임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요함만이 찾아왔다. 어지간한 경비병들도 무료함을 느끼면서 하품만 해대고 있었다. 벌써 열흘째였다. 드래곤은 커녕 개미새끼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흐아암~~ 무료하군."
"이봐 비온.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면 어떻게해?"
큰소리로 떠들었다가 당직사관에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경비병들은 추궁을 당할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비를 설땐 조용히 이야기 해야한다.
비온이라 불린 30대 경비병 NPC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소리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열흘동안 안오는걸 보면 드래곤 새끼들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간게 틀림없어 그런데도 왜 그렇게 좌불안석인지 모르겠군. 하여간 귀족 새끼들은 겁은 존나게 많다니까? 안그래 비온?"
"이,이사람아. 그렇게 크게 떠들면 안된다니까 그러네?"
"자네도 참 겁이 많군. 드래곤은 이미 도망갔다니까 뭘 그렇게 두려워 하고 난리인가?"
"거참!"
"놈들도 대가리가 있다면 이곳에 쳐들어 오진 않을거야.
무엇보다 브루시아는 교역도시라고. 교역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있는줄 알아? 영지민의 수만해도 백만이 넘어. 백만이. 그런데 드래곤들이 무슨 깡으로 이곳을 쳐들어 오겠어?"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체에 속한만큼그들도 마법을 무한정으로 사용할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백만에 달하는 인간들을 상대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일도 없을거야. 아무일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 완만히 해결 될테니까."
"그,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지. 하지만 드래곤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종족일까?
동료가 계속 걱정어린 푸념을 늘어놓자 비온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거참 답답한 친구로군. 드래곤들이 대가리가 박혀 있는 이상…"
비온의 말은 채 이어지질 못했다. 넘버원 전역에 한차례 메세지가 울려퍼진후성인 머리통만한 화염구가 비온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이건!?"
헨리가 한창 소드마스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찰나였다.
갑자기 넘버원 내부에서 세계후가 울려퍼지더니 경고 메세지가 급작스럽게 떠오르며 헨리의 상태창에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띵!! 레드 드래곤 프시케가 플레이어 [헨리]님이 있는 브루시아 왕국을 공격했습니다! 브루시아 왕국이 적의 몬스터로 인해 순식간에 포위 당해버렸습니다! 모든 몬스터를 물리치고 레드 드래곤 프시케의 공격을 막아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죽게 됩니다!]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패하면 귀속이 되어 있는 아이템도 드랍당합니다.>>
공습 메세지가 떴음에도 불구하고 헨리와 소드마스터 제르는 경거망동 하지 않았다.
"드디어 드래곤들이 공세를 취한 모양입니다."
"흐흐흐 멍청한 녀석들. 넘버원에서 가장 강력한 소드마스터가 이곳에 있는줄모르고 감히 쳐들어오다니!"
신지에게 당했던 설움과 드래곤의 대한 분노를 여지없이 보여줄 생각이었다.
제르는 헨리와 신지, 그리고 윤지와 함께 성 외곽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성외곽은 이미 전장터가 되어 있었다.
각종 몬스터들은 성문을 뚫기 위해서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인간들은 기어오르는 몬스터들에게 뜨거운 물과 돌을 던져 방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리치다! 리치를 죽여라!!"
"그리폰이 나타났다! 궁수들 위치로!!"
그리폰과 리치, 게다가 덩치가 큰 와이번들 까지 하늘에서 인간들에게 총공격을 감행했다. 와이번 한마리가 한번의 도약으로 무려 5명의 인간을 낚아챈뒤 성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 순식간에 5명의 인간이 목숨을 잃었다.
인간들은 수많은 화살들을 와이언에게 날렸다. 세네방의 화살을 견뎌내긴 했지만, 수십발의 화살은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레드 와이번 하나가 화살세레에 맞고 성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윤지야 힐을 넣어줘!"
"네 오빠!"
"신지야 너는 제르님을 도와서 성문으로 가! 그리고 밀집해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마법을 쏘아붙혀!"
"응 알았어!"
신지는 제르와 함께 조를 이뤄 성문으로 나아갔다.
성문에는 수백마리의 몬스터들이 밀집대형을 이루며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신지는 마나를 한창 끌어모으다가 정확히 몬스터들의 중심부로 쏘아붙혔다. 모든것을 불태워 버린다는 익스플로전이 성문 앞에 적중했다.
새빨간 불꽃과 함께 검푸른 연기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면서 몬스터들의 사체가 공중으로 튀겼다.
제르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연무장에서 보여준 움직임 때문에 마법사가 격수 계열의 스탯을 많이 찍었나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마법데미지는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그였다.
그런데 왠만한 마법사들보다 INT의 수치가 월등히 높은것이 아니던가?
그것도 레벨 290의 플레이아가 말이다.
'정말 엄청난 여자로군. 도대체 어떻게 스킬을 찍었기에?'
"제르씨 뒤를 조심해요!!"
신지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제르가 황급히 뒤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오우거 한마리가 흉폭한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아가리를 벌려오고 있었다. 제 아무리 소드마스터라곤 하나 오우거의 송곳니에 걸리면 무사하지 못한다.
'이크!'
제르는 한번의 도약으로 오우거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그간 배워두었던 보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전투가 중요하다. 전투가 끝나면 다시한번 신지씨를 설득해봐야겠다'
딴생각을 하다가 죽을뻔해서인지 제르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