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넘버원-144화 (144/378)

< -- 144 회: 넘버원 -- >

헨리의 직언대로 회의의 방향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주된 내용은 산적단들의 항복 여부와 그들에게 허락하는 세부사항들이었다.

막말로 군량을 모조리줄테니 투항하라고 할순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필요한것이 바로 협상이다.

서로 윈윈하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기사들과 참모진들은 머리를 맞대고 그 일을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콧수염을 제법 멋드러지게 기른 중년기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일단 발데스 마을의 군량미가 풍족한 형편이니, 군량을 빌미로 녀석들을 우리 마을로 귀속시키는것이 좋겠습니다."

말인즉 먹을것으로 놈들을 회유하자는 소리였다.

곁에 있던 기사는 다른의견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산적들의 숫자가 대략 1만 정도에 달합니다.

병사 3천을 비롯해, 그들이 이끌고 있는 식솔들과 민간인들을 포함하면 말이지요. 그들을 보살피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터.

일단 협상을 벌이기 전에, 영지민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물자 협조도 감수를 해야만 합니다."

발데스 마을의 군량미가 풍족하다곤 하나, 전적으로 영지민들의 삶의 부유해진 덕분이지, 라이델 자작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영지민들은 배불리 먹고 지내는 반면, 영주인 라이델 자작의 부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실로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그로인해 영주인 라이델 자작은 우선적으로 영지민들에게 협조 공문을 띄운후, 일정량의 군량미를 따로 거둬 들여야만 했다.

다행히 발데스 마을의 영토는 넓은터라 1만명의 산적단원들을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역시나 문제인건 군량이었다.

라이델 자작의 곁에 있던 참모 실리온이 세부적인 방안을 제시해왔다.

"먼저 영지민들에게 따로 20퍼센트의 군량미를 거두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1만에 달하는 산적단원들을 1년동안 먹일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그 1년동안 그들을 우리마을에 귀속시킨 연후, 천천히 밭과 논을 개간.

그들을 우리 발데스 마을의 영지민으로 만들면 됩니다."

"좋은 생각이오. 하지만 영지민들이 순순히 20퍼센트의 군량미를 내놓을지가 좀 걱정이구려."

실리온이 염려 말라는듯 라이델 자작을 안심시켰다.

"영지민들은 라이델 자작님을 아버지 처럼 떠받들고 있습니다.

설마하니 그들이 영주님을 버리기야 하겠습니까?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알겠소. 그럼 실리온 그대가 직접 영지민들에게 공문을 띄우도록 하시오.

그 사이 나는 사신을 파견해 파우스 산으로 보내도록 하겠소."

"알겠습니다 영주님."

실리온은 그길로 병사 1백을 데리고 마을로 나갔다.

그리고는 마을 곳곳에 방문을 한장 한장씩 붙히며 작금의 상황을 영지민들에게 알렸다.

영주인 라이델 자작이 곤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자 영지민들은 하나같이 영주를 돕기위해 선뜻 20퍼센트의 곡물을 바쳐왔다.

개중에는 요구한 20퍼센트 보다 더 많은 곡식을 바치는 영지민들도 있었다.

라이델 자작은 영지민들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대대적으로 잔치를 벌여 영지민들을 크게 위로한뒤 각각의 족장들에게 이같이 선포했다.

[나는 죽을때까지 그대들을 돌보고 발데스 마을의 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오.

오늘의 고마움은 평생 잊지 않겠소!]

"영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주님!"

"영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이것도 모자르지요! 암요!"

영지민들로부터 20퍼센트의 곡식을 거두니, 창고에 곡식이 가득해졌다.

이제는 산적들에게 보낼 사신을 뽑을 차례였다.

라이델 자작은 사신이 될만한 참모감을 물색했다.

기사들보다는 참모들의 지략과 언변술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일부러참모들을 가려뽑은 것이다.

많은 참모들중 라이델 자작의 눈에 들어온 자는 시리우스 라는 30대 중반의 참모였다.

그는 담대한 성격에, 언변술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라이델 자작은 시리우스에게 명을 내린뒤 그를 산적단의 진영으로 보냈다.

시리우스는 기사 두명을 대동한채 산채를 방문했다.

나름대로의 문화와 법도를 가지고 있었던터라 산적들도 사신을 베어버리는 무도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예법상 사신을 만나 대화를 하는것이 전부였다.

대화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군량미를 대어 줄테니 그만 고집 부리고 산채를 떠나 발데스 마을에 정착해살라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가미되어 있었다.

1년동안 군량미를 대주면서 밭과 논을 하사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산적들은 냉랭한 미소로 사신들을 대하고 있었다.

"힘으로 안되니 머리를 써서 우리들을 말살하겠다는 작전이로군.

이같은 하찮은 계략에 내가 속을줄 아는가!?"

산채의 대장 짝귀는 가당찮다는듯 사신을 내쫓아 버렸다.

사실 예전에도 한번 하이든 영지의 파스텔 자작으로부터 권고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도 파스텔 자작이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으로 짝귀를 꿰어 들이려고했다. 설마 귀족이 간계를 부릴까 싶어, 짝귀는 믿을만한 수하들을 먼저 보내약속한 군량미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파스텔 자작은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파견한 수하 산적들을 모조리죽여버린뒤 산채를 급습해 버렸다. 그로인해 산채의 영지민 1천명이 전사하고 만 것이다.

그에 반해 파스텔 자작이 이끄는 기사단의 피해는 경미한 수준이었다.

단 한번의 기습공격으로 1천명의 적을벤 파스텔 자작은 자신의 전공을 국왕 로이드 3세에게 올렸고, 로이드 3세와 중앙귀족들은 그들에게 거액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이게 바로 1년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일 때문에 짝귀는 귀족들을 매우 불신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는 사신들에게 냉소를 지으면서 연신 축객령을 내리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무어라 대꾸를 하려던 찰나,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케 하는 산적 하나가 큼지막한 도끼를 치켜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한번더 지껄인다면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만 꺼져라!"

"살려 보내주는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제아무리 담대한 성격의 소유자라곤 하나, 산적들의 기세가 무지막지 했기에 시리우스는 어쩔수 없이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뭐라고? 전혀 믿지를 않는다고?"

"그,그렇습니다 영주님"

시리우스가 송구한듯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지막히 말했다.

라이델 자작은 조금 의외라는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1년동안 군량미를 대어주고, 땅과 밭, 그리고 논까지 제공해 주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줄줄 알았다.

그 때문에 영지민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20퍼센트의 곡식을 거둬들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뜻밖에도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만 것이다.

라이델 자작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한번 사신을 보내보았다.

이번에는 트레벨이라는 참모가 나섰다.

시리우스와는 달리 제법 나이가 지긋한 노참모였는데, 언변술이 시리우스보다 월등히 뛰어났기에 라이델 자작이 그를 믿고 보낸것이다.

하지만..

"뭐라고요? 또 실패를 했단 말입니까?"

트레벨이 면목없다는듯 고개를 조아리며 떠듬떠듬 대꾸했다.

"도무지 말을 들어주질 않더군요. 아무래도 예전에 파스텔 자작에게 당한 분노와 설움 때문에 귀족들을 믿지 않은듯 보였습니다."

"허허, 이거 정말 큰일이군요."

생각치도 못한 뜻밖의 변수에 라이델 자작의 고심은 날로 깊어져 가고만 있었다.

결국 그는 여러 참모진과 기사들을 대대적으로 소집.

회의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회의에 나선 참모들이 각각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된이상 본인이 직접 가리다. 내가 간다면 반드시 믿어줄 것이오."

영주인 자신이 가서 권고를 요청한다면 의심많은 짝귀도 틀림없이 믿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라이델 자작은 자신이 직접 사신이 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사들과 참모진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는 흉폭하고 잔인무도한 산적놈들이다.

예법을 알고 있다곤 하나, 라이델 자작이 사신으로 파견된다면 무슨짓을 저지를지 알수 없다.

최악의 경우 라이델 자작을 죽여버리고 그 기세를 몰아 이곳 발데스 마을로 쳐들어올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기사들과 참모들은 간곡하게 라이델 자작을 말리고 나섰다.

결국 라이델 자작은 뜻을 접을수밖에 없었다.

"이젠 어쩔수가 없군요. 그 방법을 써야만 할것 같습니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노참모 트레벨이 말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라이델 자작이 트레벨을 보며 물어왔다.

"무슨 좋은 방책이라도 있으시오?

"영지에서 기거하고 계시는 그분에게 한번 부탁해 보시지요."

"그분? 아!? "

무언가가 퍼뜩 떠오른듯 라이델 자작이 손뼉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용사님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바로 그렇습니다."

제국의용사 헨리.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넘버원 플레이어와는 다르게 제국의 용사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다. 제국의 용사 칭호는 모든 인간NPC에게 플러스 50의 친밀도를 얻을수 있는 레전드리급 칭호다.

이것은 산적이고 뭐고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도 적용하는 보너스 수치였다.

예전에는 패치가 되기 전에 생성된 NPC들에게만 적용된 사항이었지만, 작금의 업데이트로 인해, 패치 후에도 인간들에게 말을 걸면 친밀도 50이 생성되게끔 수정이 이루어졌다.

만약 헨리가 제국의 용사 칭호를 착용한 상태에서 산적들에게 말을 건다면 친밀도가 반드시 생성될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짝귀와 말을 할수 있을 테고, 제국의용사라는 명성 때문에라도 짝귀가 귀기울여서 라이델 자작의 요구조건을 수락할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구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제국의 용사님에게 부탁을 해보도록 하십시다!"

"수하에게 들으니 연인분(?)과 함께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연무장으로 가서 직접 모시고 오지요"

"그렇게 해주시오 트레벨 참모"

제국의 용사 칭호가 있기 때문에 칭호를 본다면 친밀도가 오를테고, 또한 절대로 제국의 용사를 적대시 않을 것이다.

그게 인간 NPC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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