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8 회: 넘버원 -- >
"라이델 자작님이 없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라이델 자작님은 국왕전하를 알현하기 위해 수도로 향하신상태입니다."
"수도라… 그렇다면 언제쯤 라이델 자작님을 뵐수 있지요?"
"글쎄요. 자세한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수일이 걸리지 않을까 싶군요.
그런데 무슨 용무로 저희 영주님을 찾으시는 것입니까?"
문지기의 질문은 너무도 당연했다.
생판 모르는 초짜베기 전사 하나가 갑자기 영주를 만나겠다고 설치니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현재 헨리는 제국의 용사라는 칭호를 잠시 벗어둔 상태였다.
견문을 넓힐때는 좋았지만, 계속 칭호를 달고 이동하니 자신을 알아본 영지민들이 계속 찾아와서 말을 걸어왔다.
영주를 만나 속 사정을 살펴보려고 하는 마당에 인파들이 자꾸만 몰려드니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개중에는 사인을 요청하는 꼬마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사실 지방 하층민인 그들로써는 제국의 용사를 평생 한번 볼까말까한 고위급 인사다.
그말인즉 연예인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그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게된 헨리는 과감히 제국의 용사 칭호를 벗어 두었다.
NPC들은 그제서야 흥미를 잃고 헨리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돌변한 그들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길을 막는 사람들이 없어지니 편안해진것도 사실이었다.
아마도 제국의 용사 칭호를 달고 있었더라면 문지기가 여타부타 하지 않고 자작의 정보를 알려주었을 것이다하지만 칭호를 벗어던진 상황이라서 기본적인것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을뿐이었다.
'어차피 국왕을 알현하러 갔다고 했다. 그말인즉 며칠뒤에 돌아온다는 말과 다름이 없지. 칭호를 낀다고 해도 달라질건 없을것 같아'
칭호를 끼고 벗고는 자유다.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면 되는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칭호를 낄 생각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지방민들은 제국의 용사 칭호를 매우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때문에 칭호를 끼고 이동하면 인파가 금세 몰리고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된다. 헨리가 원하는 것은 신지를 육성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누구와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성품이기도 했지만지나치게 관심을 받는것도 썩 좋아하지 않은 그였다.
그래서 그는 발데스 마을에서는 칭호를 벗고 행동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였다.
'산적들의 레벨이 200대라고 했었지? 일단 면상이나 좀 봐둘까?"
헨리의 레벨은 200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을 감안한다면 최대 300레벨의 몬스터까지도 상대가 가능하다. 게다가 레벨을 무려 2배나 상승시켜주는 각성의 비약도 여러개가지고 있는 헨리가 아니던가?
물론 수십초의 제약이 따른다지만, 각성의 비약이 있는 이상 쉽게 죽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헨리는 먼저 주변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고 마을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 외곽에 이르자 경비병 하나가 헨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금은 산적단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헨리의 레벨이 산적단보다 낮았다면 외곽출입을 자제하라고 조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헨리의 레벨은 산적단보다 다소 높다.
그래서 경비병은 주의하라고만 짤막하게 경고해 주었다.
헨리는 가볍게 목례를 취하고선 바깥으로 나왔다.
한창 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산 하나가 우뚝 솟은게 눈에 들어왔다.
바로 파우스 산이었다.
산적단의 거점이자, 레벨 200대의 산적소굴 던전이 바로 그곳인 것이다.
헨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산적소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주변에는 드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었던 터라 초입지역까지는 아무런 습격없이 이동할수 있었다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파우스산 초입지역에 도착한 헨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세가 매우 험준하고, 길목마다 목책이 둘러쳐져 있었다방어에 각별히 신경을 쓴듯한 모습이었다.
일개 산적들이 목책까지 구비하면서 방어를 할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라헨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인간은 인간이라는 건가?'
몬스터들은 지능이 매우 딸린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목책같은 도구를 만들줄 모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산적단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베이스로 만든 던전형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능이 매우 높다는 이점이 있었다.
협공을 가할줄도 알고, 유인을 해 매복지계로 적을 섬멸시킬줄도 아는것이 바로 산적단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헨리는 곧바로 뒷걸음질을 쳤다.
상대가 지능이 뛰어나면 상대하기가 버겁기 때문에 한발 뺀 것이다.
만약 오크나, 트롤, 언데드 따위의 몬스터였다면 그것들을 잡아 신지의 레벨업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이다. 지능이 뛰어난 인간을 상대로 혼자서 싸우는것은 자살행위와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곁에 ㅤㅂㅞㄺ구라도 있다면 어찌어찌 해보겠는데 말야.'
만약 ㅤㅂㅞㄺ구가 있었다면 하늘을 날면서 요새화된 파우스산을 둘러보며 정찰을 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쉽게 요새를 무너뜨릴수 있다.
게다가 하늘을 날면서 공격을 퍼부을수도 있기 때문에 산적단을 전멸시키는것도 가능할 것이다.
제 아무리 인간이라고는 하나 드래곤을 상대할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ㅤㅂㅞㄺ구는 현재 수행을 떠난 상태.
결국 헨리는 신지의 안전을 위해서 잠시나마 발을 빼고 다시금 마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단 견문을 좀더 넓힌후 근처에 어떤 마을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라이델 자작이 올때까지 마을 NPC들과의 친밀도나 올리면서 퀘스트를 하자는게 바로 헨리의 생각이었다. 헨리는 다시금 제국의 용사 칭호를 갈아 끼운뒤마을로 향했다.
[따스한 치유의 손길이 할머니 NPC [아인]에게 전해집니다.
아인의 활력이 20 상승합니다.
아인이 온화한 미소로 헨리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NPC 아인의 아들 아일이 고개를 조아리며 헨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도그럴것이 헨리가 시전한 치유와 활력 스킬로 인해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발데스 마을은 워낙 시골마을이라, 병원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 흔한 주점과, 마을상점도 몇십분 걸어 나가야 발견할수 있을 정도로 외진곳에 사는 인간들이 무수히 많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는것도 일이었다.
헨리는 지금 일일 건강검진사가 되어 지방을 둘러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 수고를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발데스 마을의 지도를 얻기 위해서다.
발데스 마을은 최서단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로, 이번에 새로히 등장한 신규 마을이다.
때문에 발데스 마을의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헨리는 혹시나 싶어 넘버원 사이트에 들려 발데스 마을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넘버원 기자단이 미리 올려놓은 무료정보 소스가 몇개 있었다.
운좋게도 발데스 마을 주변에는 레벨 80-100의 사냥터 던전이 매우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의 위치는 모두가 유료정보였다.
그것도 1천만원이라는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선정되어 있는 것이다.
고작 80-100의 던전이 1천만원이라니?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여겼다.
헨리는 다른 정보들도 일람했다.
그중에서 눈에 번쩍 뜨일만한 정보가 하나 들어왔다.
발데스 마을 NPC들에게 퀘스트를 수락하고 클리어 하다보면 발데스 마을 지도를 건네준다는 고급정보였다.
만약 지도만 있다면 신지를 강화시킬 신규던전을 발견할수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발데스 마을의 영주인 라이델 자작이 돌아올때까지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지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 간호 퀘스트를 비롯해, 벌목 베기. 밭 개간하기 등등.
잡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헨리가 막 20번째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NPC 가디언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가디언이 헨리에게 큼지막한 지도 하나를 건네주었다.
[자네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네.
우리 발데스 마을 사람들을 많이 도와 주었다지?
게다가 제국의 용사 칭호를 가지고 있는걸 보니 선행을 매우 좋아하는 인물이 틀림없어 보이는군.
이건 발데스 마을의 지도들일세.
퀘스트를 주는 NPC며, 각종 던전들이 위치해 있는 고급지도이지.
이 지도를 통해 NPC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어려운점을 보살펴 주면 나에게는 더 바랄것이 없겠네!"
가디언 NPC는 제국의 용사 헨리를 믿고 그 지도를 맡겼다.
여지껏 그간 행해온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그의 맘에 꼭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도를 건네주면 헨리가 모든 NPC들의 퀘스트를 수행해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헨리는 지도를 받자마자 NPC들의 퀘스트 수행은 커녕자신의 동료인 신지의 강화를 위해서 다짜고짜 레벨 80대의 던전으로 걸음을 옮겨 버렸다.
"흐흐흐 어차피 퀘스트 수행에 있어 기간제한이 아무것도 없다.
말인즉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핫핫핫!!"
기간제한이 없는 퀘스트를 굳이 뭣하러 수행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 시간동안 동료의 레벨업을 도와주는게 훨씬 탁월한 선택이었다.
멍청하게 NPC들의 잡 퀘스트를 도와주는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아니 멍청이들이 하는짓이었다.
막말로 보상이 좋은것도 아니다.
퀘스트 하나 수행할때마다 보상품이라곤 쌀과자 50-100개가 전부였다.
레벨 200이 넘는 헨리는 고급회복포션을 사용하는 마당이다.
쌀과자 따위의 하급품이나 사용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는 미련없이 레벨 80대의 다크 슬라임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긴후신지 강화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아쉽게도 다크 슬라임 던전에는 사람이 몇 있어서 신규던전 보너스 경험치는 받을수가 없었다.
최초로 발견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생각보다 다크 슬라임의 경험치가 매우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80레벨의 몬스터는 경험치 1500을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크슬라임은 1600을 준다.
무려 100이나 더 주는것이다.
헨리는 하루에 100분은 라바나 던전에서 신지를 강화하고, 나머지 시간은 발데스 마을 던전에서 신지를 강화시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며칠후였다.
한창 신지를 강화하던 헨리에게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자세히 보니 발데스 마을 촌장에게서 온 편지였다.
간혹 편지기능을 사용하는 NPC들이 더러 있었다.
지난번 용궁퀘스트를 했을때 거북장군과 같은 기능을 사용하는 NPC들이었다.
편지를 읽어보던 헨리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영주인 라이델 자작이 드디어 영지로 돌아왔다는 편지내용이었다.
'좋았어. 이렇게 되면 영주를 한번 만나봐야겠군!'
우두머리를 만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신지를 강화시킬 생각이었다마을 NPC들과는 달리 귀족들은 제법 고가의 아이템을 보상품으로 내걸곤한다. 퀘스트의 난이도도 높을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자신만만했다.
그도 그럴것이 레벨도 높고, 곁에는 강화를 끝마친 신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무도 당당히 영주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