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7 회: 넘버원 -- >
샤워를 마치고 가볍게 식사를 한후 넘버원에 접속했다.
업데이트 문제 때문에 접속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대략 50분 정도 기다리니 드디어 접속이 가능해졌다.
홍채인식과 지문인식이 끝이나고, 넘버원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번 그렇듯 접속하자마자 ㅤㅂㅞㄺ구가 말을 걸어왔다.
[주인 어젯밤에는 왜 오지 않았지??]
[아 그게 말야]
이제부터 신지키우기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해서 접속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잊고 사냥터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보고자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뒤지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서 접속을 못한거다.
"그나저나 너 모습이 좀 변했다?"
레벨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ㅤㅂㅞㄺ구의 모습이 조금 변해 있었다.
하얀 도마뱀 같은 형상이었는데, 얼굴이 제법 드래곤답게 변해 있는것이다.
날개도 조금더 길어졌고, 무엇보다 하얀 뿔들이 살짝 돋아나 있었다.
아마도 패치를 통해서 소환수의 모습이 조금 변형이 된듯 싶었다.
[이번 패치로 인해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질것 같다 주인.]
[흠. 모습때문에 그렇기도 하겠네.
하지만 이제 그런거에 신경쓰지 않으려고.]
[괜찮나?]
[전에도 말했다시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어. 게다가 이번 패치로 인해 드래곤들이 잠에서 깨어나버렸어. 곧 대대적인 침공작전이 펼쳐질 거야.
그렇게 되면 많은 몬스터들이 성을 습격하겠지.
그것들을 막으려면 너의 힘이 필요해.
말인즉 이젠 더이상 너의 정체를 숨길수가 없다는거지.]
[난 주인이 시키는대로 움직일 뿐이다.
주인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녀석 철들었군. 일단 마을이나 좀 둘러보자.]
이번 업데이트로 새로운 NPC들이 생성되었다.
새로운 NPC들을 통해 퀘스트를 받을수도 있고, 여러가지 정보들을 숙지할수 있는 것이다.
정보들을 숙지해서 나쁠건 없어보였기에 헨리는 ㅤㅂㅞㄺ구를 데리고 마을 주위를 맴돌면서 견문을 넓히기 시작했다.
신지 키우기는 그 다음의 일이었다.
* * *
넘버원 최남단에 위치한 거대한 섬이었다.
이섬의 이름은 라이올라.
넘버원 최강의 생명체인 드라이언이 살고 있는 섬이기도 했다.
드라이언의 레어는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셔보는 바깥공기로군"
제법 나이가 지긋한 금발의 노인이 지팡이를 짊어진채 섬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정체가 바로 드래곤 로드 드라이언이다.
그의 곁에는 10여명에 달하는 인간과, 나가족의 족장 , 그리고 드워프족의 족장이 시립해 있었다. 인간의 정체는 바로 폴리모프한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블랙드래곤 아르키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하얀 빛무리와 함께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오는군"
드라이언의 예상대로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는 바로 블랙드래곤 아르키우스였다. 아르키우스가 나타나자 드라이언은 모든 종족의 수호자들을 대동한 채 자신의 레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먼저 입을 연것은 드래곤 로드였다.
"일찍이부터 나가족의 족장과 드워프족의 족장이 나를 찾아왔군.
그래 나를 찾아온 연유가 무엇이지?"
족장들은 인간들의 만행을 부풀려 드라이언에게 고했다.
드래곤들이 수면기에 들어갔을때, 모든 종족원들을 등지고 전쟁을 시작한 인간들에게 벌을 내려달라는 간청이었다.
한쪽 말만 듣고 결정을 내릴순 없는 노릇이라서, 드라이언은 곁에 있던 아르키우스를 보며 정황을 물었다.
유일하게 아르키우스만이 수면기에서 깨어나 여러종족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아르키우스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낱낱히 드라이언에게 고했다.
이야기를 듣고난 드라이언이 분개했다.
"감히 위대한 드래곤 종족에게 도전을 해왔다고!?"
드라이언이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그렇습니다 로드. 인간들은 간악하게도 저의 레어에 침입하여 많은 몬스터들을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레어에 쌓여있는 보물을 약탈 하려 했지요.
더욱이 로드께서 수면을 취하실동안 인간들은 정복전쟁을 일삼으며 드워프족과 나가족에게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피해를 받은건 엘프족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어찌해서 엘프족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건가?"
"사실…"
아르키우스를 대신해 여러 족장들이 드라이언에게 엘프족의 일들을 낱낱히 보고했다.
"뭣이? 엘프들이 인간들과 정전협정을 맺었다고?"
이야기를 듣던 드라이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로드."
"흠 그렇게 되었군. 엘프의 수호성자가 인간들과 협정을 맺을줄이야."
"이렇게 된 이상 엘프족도 섬멸해야 합니다 로드."
평소 엘프족과 사이가 좋지 못한 드워프족장이 팔을 걷어붙히며 나섰다.
하지만 드라이언은 경거망동 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건 인간들이라네. 그러니 인간들에게 징벌을 내려야 마땅하지.
리프레의 엘프족장은 내가 친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겠네."
"치,친히 엘프의 숲까지 걸음을 옮기시려고 그러십니까?"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지.
그나저나 인간들이 정복전쟁을 일으켰을 줄이야…
이렇게 된 이상 징벌은 불가피하겠군."
"징벌뿐만이 아닙니다 로드. 이 기회에 인간들을 전부 말살해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건 추후에 결정할 문제라네. 일단 수호성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먼저야."
엘프족의 수호성자라면 매우 유능하고 똑똑한 인물이다.
그런인물이 이유없이 인간들과 정전협정을 맺진 않았을터.
드라이언은 수호성자가 왜 인간들과 정전협정을 맺었는지가 궁금했다.
"금방 다녀올테니 잠시 기다리고들 있게나."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로드"
블랙드래곤 아르키우스가 호위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렇게 하게"
곧이어 두마리의 커다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골드드래곤 드라이언과 블랙드래곤 아크리우스가 각성체로 변신을 한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고룡답게 골드드래곤의 크기는 거의 30미터를 육박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르키우스는 아직 웜급에 이른 드래곤이라서 크기는 거진 18-20미터에 불과했다.
"자 그럼 리프레로 가세나"
대응마법진이 펼쳐져 있다면 공간이동을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응마법진은 없었다.
전적으로 날아서 이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르키우스와 드라이언은 장장 1시간의 비행끝에 남단에 위치한 엘프의 숲에 도착할수 있었다.
"드,드,드래곤입니다!"
"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수호성자님!!"
거대한 두마리의 드래곤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센티널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드래곤들을 맞이했다. 수호성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갑작스럽게 나타난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수호성자는 예를 다했다.
엘프들의 예의에 드라이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마음에 드는 것이다.
드라이언과 아르키우스는 엘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시도했다.
나이가 지긋한 금발의 엘프가 모습을 드러내자 수호성자가 얼른 그를 저택안으로 들였다. 먼저 말문은 연건 수호성자였다.
"위대하신 드래곤 로드께서 어찌 이곳까지 방문하시게 되었습니까?"
"허허 내가 드래곤 로드라는걸 어떻게 알았지?"
"보유하고 계신 마나량을 측정해보고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수 있었지요."
드라이언이 놀랍다는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군."
"위대하신 존재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연유로.."
드라이언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 듣자니, 자네가 인간들과 정전협정을 맺었다는 소리를 들었다네.
그말이 정녕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듣기론 인간들이 먼저 여러 종족들을 대상으로 정복전쟁을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그런 인간들과 정전협정을 맺은건가?"
선제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을 용서하다니?
드라이언의 상식선에선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더이상의 전쟁은 백해무익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협정을 맺게 되었지요."
"전쟁이 백해무익하다고?"
"드래곤 로드께 긴히 청이 있습니다."
수호성자가 마음을 다잡고 그렇게 말했다.
드라이언은 문득 궁금해졌다.
"무슨 청인가?"
"부디 인간에 대한 징벌을 없던일로 해주실수 없으십니까?"
엘프 족장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드라이언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만 할뿐이었다엘프족장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인간들이 정복전쟁을 일으켜 많은 종족원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른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고대의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이었으며 벌써 천년이라는 긴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허울만 전쟁이라고 할뿐, 지금은 모든 종족원들이 잠정적인 휴전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런 그들이 언제부터고 위대하신 드래곤 종족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인간들에 대한 징벌 때문이지요."
"다른 종족원들이 우리들을 이용해서 인간들을 멸하겠다는 얄팍한 속셈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네."
"그래서 이렇게 간청을 드리는것입니다.
현재 상황은 휴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종족께서 인간들에게 징벌을 가하고자 전쟁을 선포하게 되면 또다시 많은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저는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종종원들이 헛되게 목숨을 잃는 일은 더더욱 바라지 않지요.
옛부터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위대한 존재께서 인간들에게 징벌을 내린다고 한들, 그런일들은 수도 없이 되풀이 될것입니다."
"……"
"이렇게 간청드리겠습니다. 부디 전쟁을 일으키지 말아주십시오"
드라이언은 수호성자를 쳐다보기만 할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네의 말은 충분히 알아들었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좀 무리일듯 싶네"
드라이언이 고심끝에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 드래곤들은 벨제부로님이 창조하신 최강의 생명체라네.
벨제부로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계를 조율하는 막중한 소임을 맡기셨지.
분쟁을 일으키는 종족이 있으면 종족원들에게 엄벌을 내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종족이 있으면 그들을 성심성의껏 도우라고 말일세.
우리는 벨제부로님의 명령을 따르는 종족원.
그렇기 때문에 분쟁을 일으킨 인간들에게 벌을 내릴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네."
"천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암묵적으로나마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다시 깨버린다면 또다시 많은 희생이 따를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위대하신 드래곤 종족원이 희생될수도 있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들의 일은 각 종족을 조율하는 것일세. 우리의 입장도 충분히 헤아려줬으면 좋겠다네."
"……"
"역시 엘프들은 사리가 밝은 종족이구먼. 게다가 평화를 사랑하기 까지 하니 벨제부로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어."
드라이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우리 드래곤 종족원들은 엘프들을 공격하지 않겠네.
하지만 한가지는 명심하게. 엘프들이 인간들을 돕는순간, 리프레 숲을 전부 태워버리라는 것을 말일세."
인간을 돕지 않으면 그냥 놔두겠지만, 인간을 돕겠다면 너희들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수호성자는 말없이 드래곤로드를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소임에 충실할뿐이네. 그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군.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수호성자는 저택 바깥까지 나가 드래곤로드를 배웅했다.
이윽고 각성체로 화한 아르키우스와 드라이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드라이언의 시선이 다시 수호성자에게 닿았다.
"엘프족과는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심정이라네.
그러니 처신을 잘하게"
"알겠습니다."
"믿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