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7 회: 넘버원 -- >
"흠. 요리재료가 다 떨어졌네"
아침밥을 해먹기 위해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데 들어 있는거라곤 김치와 물 그리고 각종 음료수들 뿐이었다. 장을 한번 봐야할거 같아서 오랜만에 바깥세상나들이나 할겸 근처에 있는 마트로 걸음을 옮겼다.
꽁치 통조림. 햄, 참치, 3분 요리등등 마트에 들려 각종 물품들을 사들였다.
대개가 쉽게 쉽게 해먹을수 있는것들이었다.
"아이고 학생. 또 이런거만 사가지고 가는거야?"
마트에 자주 들리다보니 어느덧 계산대 아줌마와는 절친사이가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해먹을수 있으니까요."
"아이고 그래도 된장찌개랑, 나물볶음 같은게 건강에 좋아. 그러니까 왠만하면 이런건 조금씩만 먹어. 어머니한테 불고기 같은것도 좀 보내달라고 하고 말이야"
걱정이 돼서 그렇게 조언을 해준거였다.
나는 아줌마에게 빙그레 미소를 짓고선 마트를 벗어났다.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남들처럼 보내주시곤 하셨겠죠…)어릴때 부모님은 전부 돌아가셨다.
남들은 자식이 혼자 원룸에 산다거나 자취를 한다고 하면 각종 음식들을 택배로 보내주곤 했다. 김치와 더불어 몸에 좋다는 보약과, 고기류의 음식들.
다 자식들이 걱정이 돼서 그렇게 보내주는거다. 혹여 몸은 상하지 않을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까? 이런 걱정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화도 매일 하면서 대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회사에서 욕은 먹지 않고 잘 사는지. 이렇게 안부를 묻는 이유도 다 걱정이 되어서였다.
(하긴. 오히려 엄마에게 화를 내는 인간들도 무척 많은데 뭐.)사람들은 간혹 어머니들이 전화를 하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여자보단 남자들이 그런경우가 상당히 많다.
제일 심각한 경우가 바로 게임을 하고 있을때다.
특히 제일 집중하고 있을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절로 짜증이 나서 말을 조금 거칠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 딴에는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한건데, 아들노무 새끼는 짜증을 내니 서로가 기분이 안좋을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살아있을때 잘하라고. 돌아가시면 그런 잔소리도 들을수 없다고…
"밥하는게 제일 귀찮군."
아무래도 혼자 살다보니 밥을 하는게 귀찮을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요리를 해야 한다는것이 매우 귀찮다.
마음같아선 뭐라도 좀 시켜먹고 싶었지만 최소 2인분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돈낭비를 하게된다.
그럴바엔 차라리 혼자서 해먹는게 나은듯 싶었다.
한창 투덜거리면서 밥을 지지고 볶고 있을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왔다.
놀랍게도 윤지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MT에서 한창 놀고 있을 녀석이 갑자기 전화를 해온게 궁금했다.
"어 윤지야. MT에서 잘 놀고 있어?"
"오빠 뭐해요?"
되례 나에게 물어오는 녀석. 그냥 요리를 하고 있다고 짤막하게 말해주니마침 잘됐다고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한다.
"너 MT는 안갔어?"
"콜록콜록..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못갔어요.. "
하필이면 엠티전날에 심한 감기에 걸렸다. 그 때문에 MT를 가기는 커녕 꼬박하루동안 집에 처박혀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주사를 맞은 덕분에 금방 나아졌긴 했지만, 집에 혼자 있다보니 심심한건 둘째치고, 밥을 어떻게 해먹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윤지는 혼자 살고 있는 강혁을 떠올리고 전화를 했다. 혼자 먹긴 좀 그러니까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을 한것이다.
신도림 역에서 윤지를 만나 감기에 좋다는 죽집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너 많이 아파보이는데, 이렇게 나와있어도 되는거야?"
척보기에도 얼굴에 나 아픔. 이라고 씌어있었다. 그만큼 안색이 창백했고, 많이 힘들어 보였다. 지금은 누워서 쉬는게 나을듯 싶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억지로 바깥에 나왔다.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몸이 더 안좋아진다나 뭐라나..
"아무튼 밥먹고 집에가서 약먹어. 그리고 한숨 푹자고."
"그럴거예요 오빠"
한창 이야길 하는 도중 음식이 나왔고, 흡입하듯 죽밥을 챙겨먹었다.
그에 비해 윤지는 먹는것도 버거워 보일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곧잘 먹더니 이내 못먹겠다면서 죽을 남기는 녀석.
"약을 먹으려면 다 먹어야돼. 그러니 억지로라도 먹어."
결국 꾸역꾸역 다 먹더니, 계산을 마치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윤지다.
계산은 내가 하려고 했는데 왜 지가하지..? 괜시리 미안해져서 편의점에 들려따뜻한 건강음료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배시시 웃는 윤지.
그나저나 엄청 아파보이네..
"여기가..너의 집이야?"
아픈 윤지를 혼자 돌려보내기가 뭐해서 결국 그녀의 집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생각보다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원룸치곤 매우 넓었고, 컸다. 우리집에 비하면 거진 2배의 크기랄까? 가격도 무척이나 비싸보이는 고급 원룸이었기에 입을 쩍 벌리면서 놀라워할수 밖에 없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오빠. 이제 혼자 집에 들어갈게요"
"윤지야 너 저녁은 어쩔거야?"
점심때 혼자 밥먹기가 그래서 나를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물어봤는데 음식을 잘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저녁은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려나 싶었다.
"저녁때도 나 불러서 먹을 생각은 아니잖아?"
"요리를 해서 혼자 해먹어야죠.. 아니면 2인분 시켜서 먹던지.."
"그럼 돈낭비가 심한데."
"제가 요리를 잘 못해서 어쩔수 없는걸요.."
"흐음.."
결국 생각끝에 윤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집이라 그런지 매우 깨끗하고 단정했다. 좋은 향기까지 방안을 가득메우고 있었다.
"자 요리를 시작해볼까?"
윤지가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차가운 요리보다는 따뜻한 국요리를 해주는게 나을듯 싶어, 냉장고를 뒤적거려 보았다. 다행히 미역이 있었다.
이것저것 하는것 보단 미역국 처럼 따뜻하게 데워먹을수 있는 요리가 나아보여서, 미역국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점심을 얻어먹었으니, 이정도는 해주는게 도리일듯 싶었다.
"7시쯤에 데워서 먹으면 될거야. 냉장고에 보니 김치도 있던데, 같이 먹으면 맛있어."
"..."
집안에 들어오겠다고 했을땐 깜짝 놀랐다. 다큰 성인남녀가 같은 방안에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자고로 여자의 적은 남자라는 말이있다. 단둘이 있으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몰라서 그런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망설였던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순둥이라곤 하지만, 윤지 또한 알건 다 아는 나이다. 더욱이 지강혁은 남자였고, 한창 불타오르고 있는 20대 초반이 아니던가? 아픈 자신을 덮칠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한사코 거절 하려 했지만, 지강혁은 순수한 얼굴로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약한 윤지는 차마 나가주세요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침대위에 누워 한껏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강혁의 행보를 주시하고만 있었다.
다행히 지강혁은 요리에만 열중하고 있을뿐, 음란한 행위를 하거나, 음란한 눈초리로 훑어보진 않았다. 윤지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윤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정말 고마워요. 미역국 잘먹을게요.."
"하하 뭘 이런걸로. 아무튼 밥 잘먹고 약 꼬박꼬박 챙겨먹어. 그리고 넘버원플레이 할 생각말고, 푹쉬구. 알겠지?"
"네 오빠.."
"응 그럼 푹 쉬도록 해."
뚜뚜뚜.
뚜뚜뚜.
"...끊어버렸네..."
강혁오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나 조금 하려고 했는데, 뭐가 급한지 강혁오빠는 전화를 단 30초만에 끊어버렸다. 괜시리 얄미워진 윤지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여튼 이상한 사람이야.. 아니.순수하다고 해야할까?"
윤지를 본 남자들의 시선은 마치, 저 여자를 어떻게 해서든 한번 따먹어볼 요량으로 게슴츠레한 표정을 지으며, 풍만한 가슴과 한껏 업이된 엉덩이를 쳐다보았다. 페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좋아한다곤 하나, 매번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간혹 음란한 말을 지껄이기도 한다.
남자들의 본능이라곤 하나, 윤지는 남자들의 그런점이 너무 싫었다.
대놓고 하지말라고 하면 안하긴 하지만 시선은 어쩔수가 없다. 가슴에 와닿는 시선과,뒤에서 엉덩이를 보며 숙덕거리는 모양새가 너무 싫어서 남자 기피증 이 다시금 도지고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달랐다. 무엇보다 여자를 위해주고, 배려해주며 음란한 말을 지껄이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남자들이었다면, 집안에 단둘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 무슨 수작이라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강혁은 수작은 커녕 밥만 해주고 곧바로 집에 돌아가버렸다. 윤지는 이점이 무척이나 신기했고, 생소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제부턴 남자출입을 자제시켜야겠어.."
우우우웅~우우우웅
한창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핸드폰 진동소리가 울렸다.
윤지는 혹시 강혁오빠의 전화인가 싶어 얼른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페이였다.
"응 페이야.."
"윤지야 너 감기 지독하게 걸렸다며? 괜찮아?"
"응. 밥먹고 약먹으니까 조금 나아졌어."
"그래? 정말 다행이다. 아무튼 약 꼬박꼬박 챙겨먹고, 밥같은건 시켜먹어너무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후후 뭘 그런걸 가지고! 내 여잔 내가 지켜야지!"
"나 니여자 아니거든?"
"그래그래 알았어. 좌우지간 푹쉬고 있어! 조금있다가 다시 연락할게!"
뚜뚜뚜.
뚜뚜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