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1 회: 타락한 신관 신드라 -- >
적안의 소녀에게 국어 공부를 가르친지 어언 3일째. 촌장에게 신드라에 관련된퀘스트를 받을때만 해도 헨리는 의욕이 넘쳤다. 적안의 소녀인지 뭔지, 빨리 친해지고 신드라에게 데려다줘서 퀘스트를 끝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적안의 소녀 퀘스트를 받는데 하루가 소모되었고, 적안의 소녀와 친해지는데 이틀이 걸렸으며, 녀석에게 말을 걸어볼 요량으로 다시 3일동안 라이올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라이올라 섬의 향기를 몸속에 간직했다. 모두합쳐 총 6일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모된 것이다. 뭐, 그사이에 레벨도 올렸고 골드도 벌고 얼마 안하는 아이템도 얻었다지만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는데 드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6일 동안 불철주야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퀘스트진행상황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어지간하던 헨리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냥하고 돈을 벌기에도 바빠죽겠는데, 꼬마아이 국어공부를 봐주고 있으니 속에서 열불이 나서 미칠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적안의 소녀를 욕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한가지 다행인점은 녀석의 머리가 매우 뛰어나다는 거였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를 단 한번만에 외웠다. 뿐만 아니라 가르쳐준 단어는 까먹질 않고 머릿속에 차곡차곡 새겨넣었다.
3일동안 윤지와 함께 말을 가르쳤다. 그 덕분에 적안의 소녀와 간략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마도 신과 마왕의 피가 섞인 존재라 그런지 지능지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서 손쉽게 언어습득이 가능한듯 싶었다.
"고,,맙,습..니다"
아직은 어눌했지만 확실히 의사표현을 하는 신지였다. 신지는 인간의 언어를 가르쳐준 윤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제 기본적인건 된거 같아요 오빠."
"아무튼 3일동안 너가 고생이 많았다. 고마워"
사실 윤지는 별로 한게 없었다. 국어책을 들고 연상법을 이용해 신지에게 말을 가르친게 전부였던 것이다. 신지의 머리가 워낙 좋아서, 한번 말하면 열을 알아 듣고 거기에 관련된 단어마저도 모조리 깨우쳤다. 넘버원 자체 인공지능이 워낙 높은 까닭에 쉽게 익히는 것이다. 막말로 헨리가 그렇게 가르쳤어도 신지는 손쉽게 인간의 언어를 습득했을 것이리라.
"그럼 오빠. 이제 뭐하실거에요?"
3일동안 신지에게 밥을 해다 바치고, 국어공부도 가르쳤다. 그리고 ㅤㅂㅞㄺ구의 보호아래, 마을 사람들과의 마찰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문에 신지와 헨리의 친밀도는 어느덧 80을 돌파하고 있었다. 신지는 헨리를 친오빠 대하듯 대했다.
이젠 슬슬 퀘스트를 진행할 차례였다.
"퀘스트 진행을 해야할거 같아. 그러니까 윤지 너는 이제 사냥하러 가봐도 돼"
"겨우 3일 밖에 안가르쳤는데 정말 괜찮아요?"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신지에게 의사전달은 이제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헨리는 윤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응 괜찮아. 그러니까 얼른 가봐."
윤정이와 페이가 계속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붙잡고 있기가 미안해져 그렇게 둘러대었다. 윤지는 신지에게 살며시 다가가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3일동안 같이 지낸터라 신지는 윤지에게도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밀도도 벌써 30을 돌파했다.
"언니는 가볼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 알겠지?"
"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법이다. 윤지는 이제 두번다시 볼수 없는 신지를 두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막상 헤어지려니 아쉽네...)
신지를 데리고 신드라에게 가면 퀘스트는 완전히 끝난다. 그 때문에 더이상신지와 함께 할수 없게된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신지야 너 뭐먹고 싶은거 없어?"
아쉬움을 달래고자 헨리가 물었다. 마지막이니만큼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떠나보내고 싶었다. 신지는 생긋 미소만 지을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방금 식사를 마친터라 배가 부른 까닭이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신지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엄,마??"
"응 신지야. 너희 엄마가 미지의 사원에 계셔. 그러니까 거기가서 엄마를 만나뵈야해. 너의 엄마가 너를 애타게 찾고 있거든."
"저,정말?"
더듬더듬 대꾸하는 신지의 눈에는 어느새 닭똥만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라는 소리에 울컥해서였다.
지난 5년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라이올라 주민들에게 구걸하기를 수백차례. 엄마는 행방불명된지 오래였고, 사람들은 자신을 멸시하고 무시해왔다.
발로 걷이차이기도 했고, 개처럼 던져주는 음식들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왔다. 엄마를 찾기 위해서 섬 주변을 배회했고, 밤에도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엄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죽을수가 없었다. 엄마를 만나서 어릴때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적안의 소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평생의 낙이자 행복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무데도 없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엄마의 품에 안겨 단 한번만이라도 행복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고 찾고 또찾았다. 하지만 엄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저,,정말.어,엄마가 있는곳을..아,,알아?"
"오빠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러니까 날 믿어."
친밀도가 어느덧 80을 돌파한 상태라서 신지는 곧이곧대로 헨리의 말을 믿었다믿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실로 다행이었다.
"여,여긴.."
정확히 3일전에 왔던 어둡고 음침하고 무서운 미지의 사원이었다. 신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사원을 보고 공포감을 느낀 탓이었다.
"저,저,정말 여기야?"
"응. 정말 여기에 너희 엄마가 있어."
"거,거짓말 아니지?"
[꼬마야 거짓말 아니니까 믿어라.]
보다 못한 ㅤㅂㅞㄺ구가 나서서 신지를 타일렀다.
헨리는 신지의 손을 잡고 사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쭈뼛거렸지만 신지는 이내 헨리와 ㅤㅂㅞㄺ구를 믿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일단 석상을 파괴해볼까?"
1층에 놓여져 있는건 단 하나뿐인 석상이다. 석상을 파괴하면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생성된다. 헨리는 신지를 잠시 뒤로 물려세우고 핏빛의 장검을 꺼내들었다. 검신이 달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이야압!!"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헨리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석상의 방어력이 워낙 높은터라 쉬이 깨지질 않았다. 보다 못한 ㅤㅂㅞㄺ구가 공격에 가세했다. 아직 레벨이 낮아 고위급 마법을 펼칠순 없었지만 매직 미사일과 같은 기초마법은 구사할수있었다.
와자자작! 와자작!
석상이 무너지면서 새빨간 마기의 빛이 조금씩 사그라들더니 이내 석상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 구멍이 바로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헨리는 신지와 ㅤㅂㅞㄺ구를 이끌고 거침없이 통로안으로 들어갔다. 소환수 ㅤㅂㅞㄺ구가 라이트를 켠 덕분에 주위는 대낮처럼 밝았다. 헨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건 전과 마찬가지로 몬스터들의 잔해와 1층에서 보았던 독극물의 흔적뿐이었다. 헨리는 제일 앞장서서 이동을 시작했다. 대략 3분정도 이동했을 때.
ㅤㅂㅞㄺ구가 경고성을 내질렀다.
[전방에 좀비마법사 출현이다. 그외 20여마리의 몬스터들도 함께 있다.]
신지를 데려다주는 퀘스트라서 헨리는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몬스터들을 피해 방을 쭉 돌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몬스터들이 중앙에 전면 배치 된 상태라 외곽지역은 매우 허술했다.
"ㅤㅂㅞㄺ구야 스캔 펼쳐서 레벨 제일 높은놈 찾아봐"
신드라가 보스 몬스터이니 레벨이 제일 높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명령을 내린 거였다. 잠시후, 스캔을 펼치던 ㅤㅂㅞㄺ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방에는 레벨 100-120 녀석들만 있다. 아무래도 다음 방으로 가야할것 같다"
"파이어볼!!"
"파이어 애로우!!"
콰쾅!! 콰콰쾅!!
그시각 윤지는 페이와 함께 합류한뒤 라이올라 섬에서 한창 사냥을 하고 있었다. 파티원이 잡고 있는 몬스터는 라이올라 식인목이었다. 사람을 비롯해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식인목은 레벨 110의 중급 몬스터였다.
그들이 이곳을 사냥터로 삼은 이유는 몬스터들의 속성이 나무와 언데드라는 점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무는 불에 약한법이다.
넘버원의 특성상 상성에 따른 데미지 추가 효과는 무려 50퍼센트가 증가한다.
10의 데미지를 가한다면 나무와 언데드 몬스터에겐 15의 데미지를 줄수 있다는 말이다.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100임에도 불구하고 레벨 110의 식인목들은 제대로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가고 있었다.
"휴우.잠깐 쉬었다가 할까?"
1시간 내내 쉬지않고 사냥만 하다보니 피로도가 제법 쌓였다. 피로도를 풀려면 휴식을 취해야 해서 페이는 윤정이와 윤지에게 잠시 쉬자고 제안했다.
페이는 앉아서 쉬고 있는 윤지 곁에 다가가 물었다.
"이제 완전히 끝난거야?"
"응?뭐가?"
"강혁이형 도와주는거 말야. 꼬마아이 국어공부 가르쳐주는거랬나?"
"아? 그거? 방금 막 끝났어. 이제 안도와줘도 된대."
"그럼 이제 사냥 계속 할수 있는거네?"
"응 그런셈이야."
지난 3일동안 강혁이형에게 윤지를 빼앗겨(?)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 페이였던가? 이제는 강혁이형에게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마음 한편이 편안해졌다.
"이제부턴 우리끼리 사냥하고 그러자. 솔까말로 3일동안 너 1렙도 못하고 강혁이형이랑 그 꼬마녀석 도와주기만 했잖아?"
"강혁오빠가 나한테 해준게 많잖아? 그래서 도와준것 뿐이야. 그리고 동기생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게 뭐가 문제인데?"
"문제는 아니지만, 너무 너의 시간을 빼앗는거 같아서 그렇게 말한거야 난"
"니가 무슨말을 하는지 다 이해했어. 절대 그런거 아니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니마음 잘아니까 더이상 잔소리 하지말고 그냥 지켜보라는 의미였다.
결국 페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소리 더했다간 윤지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것 같아서 입을 열수 없었던 것이다.
(칫.. 남의 속도 모르고 바보같이...)괜시리 화가났다. 윤지가 3일 내내 왜 꼬마아이를 가르쳐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 시간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윤지와 함께 사냥하면서 웃고 떠들고 싶었다. 그런데 지강혁 때문에 그 일이 틀어지고 만 것이다.
물론 지강혁이 악의로 그런게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괜히 열이 받고 못마땅했다. 그냥 윤지 옆에 다른 남자가 있는게 너무나도 싫었다.
남에게 신경쓰지말고 우리끼리 사냥하면서 즐기자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윤지는 그냥 흘려들을뿐 심각하게 생각하질 않았다. 그래서 더욱더 답답했다.
"어? 강혁이 오빠에게 편지왔네?"
"뭐?"
한창 속으로 지강혁을 씹고 있던 찰나, 편지가 왔다는 윤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페이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윤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지는 아무것도 모른채 헨리가 보내온 편지를 읽기만 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