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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70화 (70/378)

< -- 70 회: 타락한 신관 신드라 -- >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적안의 소녀가 파전 그릇을 싹싹 긁고 있는 소리였다.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적안의 소녀는 파전을 무려 세판이나 비웠다. 한창 클 나이때라 녀석의 먹성은 실로 대단했다.

[어째 너보다 더 많이 먹는것 같다 ㅤㅂㅞㄺ구야?]

[원래 마족들의 식성은 알아주는 법이다. 저 정도로 놀라면 곤란하다 주인]

순간적으로 녀석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헨리였다.

"후하아~!!"

파전 그릇을 옆에 두고, 적안의 소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헨리는 한껏 기대하는 눈초리로 적안의 소녀를 바라봤다.

퀘스트 내용중 라이올라 섬의 향기 수치가 10이 되면 말이 통한다고 했었다.

이미 스탯을 쌓은지 오래였기에 헨리는 적안의 소녀에게 말을 걸어볼 요량으로 맛있니? 라고 물어보았다.

소녀는 아무런 말없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고개를 꾸벅 숙이며 헨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왔다.

"어 이상하다? 왜 말을 안하지?"

"글쎄다 주인."

헨리는 혹시나 싶어 퀘스트창을 열어보았다. 라이올라 섬의 향기 스탯이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말을 걸어볼 요량으로 안녕? 이라고 말했다. 녀석은 생뚱맞은 얼굴로 헨리를 쳐다보기만 할뿐이었다. 마치 저게 무슨 소리지? 라는 표정이었다.

"어 이상하다? 왜이러지?"

"설마 말이 안통하는게 아닐까?"

눈치빠른 ㅤㅂㅞㄺ구가 정확히 맥점을 짚었다.

사실 적안의소녀 신지는 말을 할줄 아는 NPC다. 다만 할줄 안다는 그 말이 천계에서만 사용한다는 <천계어>라는게 문제였다.

타락한 신녀 신드라는 신지를 낳고, 자식을 가르칠때 신족의 언어를 가르치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한 연유 때문에 신지는 인간의 언어를 전혀 몰랐고, 매번끙끙대면서 섬 주민들에게 밥을 구걸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수 없다."

"무슨 방도라도 있는건가 주인?"

퀘스트의 내용은 적안의 소녀를 신드라에게 데려다 주는것이지. 적안의 소녀에게 말을 가르치는게 아니었다. 헨리는 적안의 소녀를 데리고 미지의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그간 요리를 해주고 적안의 소녀에게 그 요리들을 바친(?) 덕분에 소녀는 헨리를 잘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여기 안들어갈거니?"

어찌어찌 데리고 오는덴 성공했지만, 적안의 소녀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사원에 들어가는걸 꺼려했다. 무서웠다. 어두운게 싫었고, 뭔가가 튀어나올것 같은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절로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적안의 소녀는 사원에 접근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이런 제길!!)

헨리는 난감했다. 저 안에 들어가야 신드라를 만나볼수 있는데, 녀석이 들어가려고 하질 않으니 실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어째 일이 술술 잘 풀린 다고 했다.

"어쩔수 없다 주인. 적안의 소녀를 설득해야 한다"

강제로 데리고 간다면 녀석과의 친밀도가 대폭 하락하는건 물론이거니와 퀘스트 자체에 차질을 빚게된다. 이렇게 된 이상 ㅤㅂㅞㄺ구의 말대로 소녀를 설득해야했다.

헨리는 손짓과 발짓을 이용해서 적안의 소녀에게 들어가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소녀는 계속 거부의사만 밝힐뿐 사원에 들어가려고 하질 않았다. 그렇게 1시간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소녀를 설득하질 못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질 않으니 의사전달이 너무 어려웠다. 보다 못한 ㅤㅂㅞㄺ구가 촌장에게 한번 물어보는게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결국 헨리는 촌장 레스피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뒤 소녀를 데리고 촌장의 집으로 갔다. 레스피노와 레일리가 반갑게 헨리를 맞이해주었다.

"녀석과 친해지긴 했는데, 사원에 가기를 무척 꺼려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녀석을 데려갈수 있을까요?"

헨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낱낱히 밝힌후, 레스피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레스피노라고 해서 뾰족한 방책이 있는건 아니었다.

"차라리 이렇게 해보세요 원정대장님."

잠자코 있던 레일리가 입을 열자. 헨리가 한껏 기대하는 눈초리로 레일리의 입을 주시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어둡고 음침한 곳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곳에 엄마가 있다고 말을 해줘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사원으로 들어가서 엄마를 만나보려고 할거에요"

"하지만 녀석이 그말을 믿을까요?"

"원정대장님이 믿게 해야죠.그러기 위해선 신지와의 친밀도를 더 높여야겠죠?"

"크억.."

그말인즉슨 밥셔틀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안그래도 밥하기 귀찮아 죽겠는데, 또다시 밥셔틀을 해야한다니!? 그것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주인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

[또 문제가 있냐!?]

[주인과 나는 수화에 대해 문외한이다. 그래서 적안의 소녀에게 의사전달을 하지 못하는 거지.]

[서론 말고 본론만 말해. 그래서 문제가 뭐라는거야?!]

짜증이 난 헨리가 인상을 팍 구기며 ㅤㅂㅞㄺ구에게 신경질을 냈다.

[아무래도 신지에게 말을 가르쳐야 할것 같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말이다.]

[뭐라고!? 말을 가르치라고!?]

[그렇다 주인.]

[야 임마! 말을 가르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줄 알기나 해!? 그리고 막말로! 이 퀘스트는 녀석을 신드라에게 데려다주면 끝나는 퀘스트라고! 그런데 무슨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거야!?]

[그럼 주인은 적안의 소녀에게 엄마가 있다는것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지?]

[그,그건..]

[라이올라 섬에서 수화를 할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아니, 수화를 할 줄 안다고 쳐도, 적안의 소녀가 수화를 알아들을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내가 보기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일 같은데?]

[그,그러고보니..!]

뭔가를 깨달은듯 헨리의 표정이 별안간 심각해졌다.

사실 ㅤㅂㅞㄺ구가 말한 그대로였다. 수화를 표현할줄 안다고 해도, 녀석은 신과 마왕의 피를 가지고 있는 반신반요다. 문제는 반신반요인 적안의 소녀가 인간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알아보지 못한다는거였다. 이렇게 된이상 ㅤㅂㅞㄺ구가 말한대로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이해를 시켜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엄마가 있다는것을 알려줄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으으..알았다. 해보자."

막말로 퀘스트를 포기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이 퀘스트를 깨기위해그동안 공들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헨리는 ㅤㅂㅞㄺ구의 말대로 적안의 소녀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부터 새롭게 시작하기로 하고, 적안의 소녀를 자신의 무릎팍 위에 앉힌뒤, 그날부터 바로 국어 공부에 돌입했다.

오로지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였다. 퀘스트만 아니었다면 이 꼬마녀석에게 밥을 해주기는 커녕 아는척도 안했을 것이다.

(일단 퀘스트나 깨고 보자!)

다음날 아침. 9시

S대학교 넘버원 학과에 소속된 <임폴턴트 정보학> 강의실 안에 수강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오늘은 2주전 교수님이 내주었던 라이올라 정보조사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서로 수다를 떨면서 동기생들의 보고서를 훑어보며 자신의 것과 비교를 시작했다.

두툼한 보고서가 있는가 하면 꼴랑 A4 용지 두장 분량에 달하는 성의없는 보고서도 눈에 띄었다.

"윤지야 너는 분량이 어느정도 나왔어?"

학생들의 관심은 윤지에게 향했다. 넘버원 학과에서 성적이 제일 뛰어나 절로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윤지가 가져온 보고서는 대략 열장 안팎이었다.

이정도면 생각보다 무난한 분량이었다.

"다들 거기서 거기인거 같네."

두루두루 살핀 윤정이가 그렇게 말했다. 사실이 그랬다. 제일 많이 작성해온 녀석은 고작 11장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강혁오빠는 왜 안오는거지?"

"그러게. 여태껏 지각한적 한번도 없었는데."

"교수님도 아직 안오셨잖아? 다행이네 뭐"

교수의 성격상 단 1초라도 늦으면 바로 체크를 해버린다. 그런데 때마침교수까지 지각을 하고 만 것이다.

철컥!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학생들의 시선이 대번에 그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지강혁이었다.

"어 형 왔어요?"

"강혁오빠 빨리와서 앉아요"

"헉헉.. 교,교수님은?"

"아직 안오셨어요."

[다른 학교와는 달리 우리 넘버원 학과는 출석률을 많이 본다. 그러니 출석에 각별히 신경 써주기 바란다.]

대학교에 다니면 흔히 결석 한번 정도는 눈감아주곤 한다. 점수를 깎더라도 2번째 결석부터 깍는 것이다. 하지만 S대 넘버원 학과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면 인정사정없이 점수를 깍아버렸다.

더욱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라서 출석 점수가 깍이면 타격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출석을 해야만 했다.

천우신조였다. 지각해서 점수가 깍일줄 알았는데 교수까지 지각을 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더 빨리 강의실에 도착했다. 이렇게 되면 지각한걸 모르기 때문에 점수가 깍일 일은 없었다.

"어이구 다행이다"

"뭐하느라 늦은거에요?"

곁에 있던 페이가 물어왔다.

"아. 그게 말야.."

어젯밤.

적안의 소녀에게 말을 가르치느라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하고 말았다.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건 그때였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PC를 켜고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아침7시가 되어 있었다.

"조금만 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자버렸어. 그래서 늦은거지."

머리는 산발이 된지 오래였고, 바지도 츄리닝 차림이었다. 누가보면 조선시대의 망나니라고 오해할듯 싶은 패션이었다.

보다못한 페이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모자였다.

"머리가 좀 그러니까 이거라도 쓰고 계세요. 제가 주는 선물이에요."

"오 그래? 고맙다 페이야."

"여지껏 형한테 신세진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뭐. 그런데 형은 보고서 몇장 나왔어요?"

"한 20장 나온거 같은데?"

라이올라 섬에 가는 방법과, 라이올라 던전의 몬스터레벨. 그리고 퀘스트내용까지 전부 보고서에 작성한터라 그렇게 많이 나온거였다페이가 놀랍다는듯 혀를 내둘렀다.

"하여튼 정말 정보조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요.."

"제국의 용사 칭호 때문에 NPC들이 잘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그걸 보고서에 적어넣은것 뿐이야."

"부럽네요 형."

"그나저나 윤지야."

내가 부르자 윤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네 오빠?"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말야."

"네 말씀하세요"

"너 혹시 초등학생을 가르쳐본적 있니?"

고3 졸업을 하고 잠시 친척동생을 가르쳐본적이 있었던 터라 윤지는 별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3학년짜리 동생 가르쳐준 기억이 있어요."

"그럼 오늘 끝나고 넘버원에서 나좀 도와줄래? 마침 누굴 가르쳐야 하는데 도무지 가르치질 못하겠어."

"아..퀘스트 하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뭘 가르치는 퀘스트인가요?"

"에..뭐,,그렇다고 볼수 있지. 아무튼 시간되면 나좀 도와줄래?"

윤지는 생긋 웃으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고마워. 그럼 수업 끝나고 밤에 넘버원에서 좀 보자."

"네 오빠."

(후우 다행이다..)

어릴때부터 게임만 주구장창 해왔던터라 누구를 가르쳐본 기억도 없었고나 자신도 공부를 매우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적안의 소녀에게 국어를 가르치려니 실로 난감했다. 결국 생각끝에 윤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윤지는 넘버원 학과내에서도 성적이 으뜸이다. 더욱이 초등학교 친척동생을 가르쳐본 경험도 있다고 했으니, 신지를 가르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퀘스트가 잘 끝나면 그때 윤지에게 보상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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