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4 회: 타락한 신관 신드라 -- >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망자에게서 들려오는 음습한 소리였다. 헨리 일행은 사원에 발을 들여놓을때부터 저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이동해왔다.
처음에는 몬스터가 내는 소리인줄 알고 ㅤㅂㅞㄺ구에게 스캔마법을 펼치라 일렀지만 다행히도 저건 몬스터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사원 내부에서 들려오는 음향효과 같은 것이었다.
윤지와 윤정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나올법한 사운드 효과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니 저도 모르게 몸이 굳고 만 것이다그녀들과는 달리 헨리와 페이는 오히려 재미있다는듯 서로 농담 따먹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귀신이 튀어나오면 진짜 재밌겠다 그치?"
"형 귀신의 집 온거 같지 않아요?"
"좀 그런느낌이 들긴 드네. 하여간 넘버원의 그래픽 효과랑 사운드 효과는 정말 끝내주는거 같아."
캡슐장치로 구동하는 가상게임이라곤 하나 넘버원의 기술력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주변에 있는 해골바가지들과 독극물들. 그리고 돌아다니고 있는 박쥐들을 보면 저것이 정말로 진짜일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한 그래픽이었다.
마치 현실안에서 또다른 현실을 접하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으으 음산해서 더는 못 견디겠어."
결국 참다 못한 리나가 음성장치에서 배경사운드를 꺼버리기에 이르렀다.
이동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걷고 걷고, 또 걷기를 수십여분. 어느덧 버프효과가 45분 남았다는 메세지가 전해져 왔다.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벌써 1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만 것이다.
"이상한데?"
헨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방을 바라봤다. 눈앞에 보이는건 일자로 된 통로 하나뿐. 몬스터라고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었다. 결국 그는 소환수 ㅤㅂㅞㄺ구에게 의지하기로 하고 ㅤㅂㅞㄺ구에게 스캔 마법을 펼쳐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잠시후 스캔을 펼친 ㅤㅂㅞㄺ구가 헨리에게 보고를 올렸다.
"전방에 감지되는 몬스터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다만?"
"전방 500 미터 지점에서 무언의 마기(魔氣)가 느껴진다."
기가 느껴진다는 말은 생명체가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헨리는 ㅤㅂㅞㄺ구의 말을 믿고 부리나케 지하통로를 통과했다.
"어 형? 저게 뭐죠?"
빨강색 광채를 줄기차게 내뿜으며 정체모를 신관 석상 하나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기는 신관 석상에서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랭커 10위를 달리고 있는 레오로 1년간 플레이 했지만 이런건 생전 처음 접해보는 광경이었다리나와 윤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한동안 넋놓고 석상을 쳐다보기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가만히 있던 페이가 슬그머니 석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석상을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페이야 무슨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이 된 윤지가 주의를 주었지만 페이는 연신 괜찮다면서 석상을 살폈다.
주위에 몬스터가 없다는 사실을 헨리에게 미리 들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촐싹대고 있는 것이다.
페이는 석상을 때려도 보고, 검으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신관 석상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빨간 광채만 줄기차게 뿜어낼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것도 이상했고, 석상 하나만 달랑 놓여져 있는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국 헨리 일행은 석상을 한번 파괴해 보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게 석상 하나라서 저게 단서가 될 공산이 매우커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다들 뒤로 물러서."
넷중에서 힘이 제일 높은 헨리가 석상을 파괴하기로 하고, 나머지 셋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헨리는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일도양단의 수법으로 석상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하지만 쩌어엉! 하는 소리만 들려올뿐 석상은 미동도 하질 않았다. 오히려 헨리의 손만 아련하게 저려왔다. 그만큼 석상은 매우 뛰어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덜덜덜덜덜
"으으.. 손이 막 저려온다."
"얼마나 딱딱하길래 그래요?"
"크윽..너도 격수니까 한번 쳐봐 그럼 잘알거야"
헨리의 말에 페이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페이는 헨리가 그랬던것처럼 있는 힘껏 석상을 내려쳤다. 하지만 그도 헨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쩌어엉 소리와 함께 팔만 달달달 떨려온 것이다.
덜덜덜덜...
"크억..뭐가 이렇게 단단한거야!!"
페이가 질린다는듯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석상을 때려도 보고 쥐어뜯어도 보고, 요리조리 살펴도 봤지만 무엇하나 밝혀낸게 없었다. 더욱이 버프 효과는 고작 35분만이 남은 상태였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금세 2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헨리는 다시한번 ㅤㅂㅞㄺ구에게 의지해보기로 했다. 드래곤 종족원인만큼 아는게 많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ㅤㅂㅞㄺ구는 한동안 스캔마법을 펼치더니 이내 뭔가를 알아낸듯 밝게 웃으며 헨리에게 보고를 올렸다.
[석상의 HP게이지가 아주 조금 줄어 들었다 주인.]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처음 스캔을 펼쳤을때 신관의 석상이라고만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은 신관의 석상 닉네임과 더불어 그 아래쪽에 HP가 표시되어 있다. 아무래도 석상 자체가 몬스터로 분류 되는것 같다.]
ㅤㅂㅞㄺ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석상은 몬스터가 틀림 없었다. 헨리가 반색하며 ㅤㅂㅞㄺ구에게 물었다.
[그럼 석상을 쥐어패면 뭔가 나타날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다 주인]
헨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멍청히 서있는 몬스터라면 레벨 1짜리라도 잡을수 있다. 헨리는 ㅤㅂㅞㄺ구가 알려준 그대로를 일행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럼 서둘러 공격해요 오빠"
1.2배 버프시간은 고작해야 35분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둘러 몬스터를 퇴치해야만 했다. 리나와 윤지는 헨리의 공격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화염계 마법을 석상에게 쏘아 붙혔다.
"나도 가만히 있을순 없지!!"
헨리와 페이도 함께 가세해 석상을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어력이 워낙 높은탓에 석상은 쉬이 깨지질 않았다. 초조해진 헨리가 ㅤㅂㅞㄺ구에게 물었다.
"HP 몇 남았어?"
[대략 10퍼센트 남았다. 곧 깨질것 같다 주인.]
ㅤㅂㅞㄺ구의 말대로였다. 석상의 HP는 고작해야 10퍼센트에 불과했다. 헨리 일행은 힘을 쥐어 짜내 석상을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대략 3분정도 열을 올려 공격한 결과 넘버원 내부에서 반가운 메세지가 전해져 왔다.
띵! <미지의 사원에 배치되어 있는 [신관 석상]을 파괴하였습니다!>
파괴된 석상을 통해 지하로 이동할수 있습니다. 지하에는 각종 언데드 몬스터들과 더불어 타락한 신관 [신드라]가 출현하니 각별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와자자작! 와자작!
석상이 무너지면서 새빨간 마기의 빛이 조금씩 사그라들더니 이내 석상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 구멍이 바로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인 셈이었다.
헨리일행은 거침없이 통로안으로 들어갔다. 소환수 ㅤㅂㅞㄺ구가 라이트를 켠 덕분에 주위는 대낮처럼 밝았다. 헨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건 몬스터들의 잔해와 1층에서 보았던 독극물의 흔적뿐이었다. 아마도 초입지역이라 몬스터가 없는것 같았다. 헨리는 제일 앞장서서 이동을 시작했다. 대략 3분정도 이동했을 때. 문득 ㅤㅂㅞㄺ구가 경고성을 내질렀다.
[주인 전방에 수십마리의 몬스터들이 즐비하게 깔려있다. 레벨은 전부가 100이상이다!]
"뭐라고오!?"
헨리는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몬스터들의 레벨이 100이 넘을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1층에서 상대했던 석상의 레벨이 고작 50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큰일이군."
원정대원중 레벨이 가장 높은 이는 리나의 84레벨. 윤지와 자신은 비슷한 레벨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떨거지 페이가 레벨 48에 불과하다. 레벨 100 짜리몬스터에게 맞으면 최소 2-3방이면 목숨을 잃을터였다. 헨리는 ㅤㅂㅞㄺ구에게 전해들은 보고를 일행들에게 전부 말해주었다. 그들도 헨리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멤버로 몬스터를 하나라도 잡을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돌아갈까?"
지금 중요한건 정보조사를 하는거지. 사냥이 중요한게 아니다. 괜히 버프시간을 이용하려고 했다가 죽기라도 하면 페널티를 받아 접속을 하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수도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돌아가는쪽으로 가닥을 잡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언데드 몬스터이다보니 근접 캐릭은 [시독]의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다. 물론 맞지 않으면 특수효과 시독이 걸리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냥 각개격파 식으로 사냥해봐요 오빠"
"예전에 묘지에서 사냥한것처럼 한번 해봐요."
윤지와는 달리 리나같은 경우는 어느정도 현질을 한 덕분에 공격력이 여타의 마법사들보다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공격력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또한가지 희소식은 그녀들이 바로 "불"속성의 소서리스들 이라는 점이었다.
불에 약하다는 시독 언데드 몬스터이기 때문에, 1.5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1.3배의 추가데미지를 입힐수 있다.
"흐음 좋아."
생각끝에 헨리는 그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후 페이를 보면서 단단히 일렀다
"넌 무조건 도망치는데 주력해. 절대 포위당하지 말고 알았어?"
"알았어요 형"
움직임이 느린 언데드 몬스터이기 때문에 포위만 당하지 않으면 페이도 충분히 피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헨리는 무조건 도망만 치라고 명령을 내린 후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이제는 자신이 어그로를 끌어야만 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나머지는 윤지와 리나가 처리해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