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0 회: 환상의섬 라이올라 -- >
"어? 언니 저기좀 봐바. 저기 사람이 둥둥 떠있어."
윤지가 손가락으로 측면을 가리키자 윤정이를 비롯한 원정대원들의 시선이 대번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정말이었다. 제법 레벨이 높아보이는 플레이어 하나가 구명조끼 하나만을 걸친채 의식을 잃고 바닷길을 떠내려 오고 있었다.
"언니 어떻게 하지?"
"윤정아 어떻게해? 그냥 지나칠까?"
리나는 라이올라 원정대에 속한 부원정대장이다. 출항전 헨리가 리나에게 부원정대장직을 내림과 동시에 갑판위의 통솔권을 모조리 위임한 상태였다. 그래서 갑판위에 있던 원정대원들은 윤정이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흐음.."
리나는 고심끝에 헨리에게 먼저 보고를 하기로 한뒤 갑판 밑으로 내려가서 전후사정을 원정대장 헨리에게 보고했다. 헨리가 뜻밖이라는듯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어왔다.
"사람이 둥둥 떠있다고?"
"응 오빠. 어쩌지?"
"레벨은 몇정도 ㅤㄷㅚㅆ어?"
"레벨은 300 이고, 소울레이디라는 길드에 소속된 소서리스(여자마법사)야."
생각보다 높은 레벨에 헨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라이올라 섬근처에서 플레이어를 만날줄은 생각도 못한 터였다. 자신보다 한발먼저 라이 올라 원정대를 꾸려 출항을 하지 않고선 플레이어가 이곳에 있을 까닭이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일어났을 것이다. 괜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헨리는 잠시 노를 젓는것을 미루고, 갑판위로 올라간뒤, 소환수 ㅤㅂㅞㄺ구를 시켜 망망대해에 둥실 떠있는 소서리스를 탐색해보라 일렀다. 잠시후 탐색을 마친 ㅤㅂㅞㄺ구가 헨리에게 보고를 올렸다.
[리나의 말대로 레벨 300에 소서리스 직업군을 가지고 있는 여성 플레이어다.
현재 HP상황은 200 이하다. 출혈이 심해서 점점더 HP가 빠지고 있다. 이대로 놔둔다면 5분후에 죽을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5분이라면 충분히 구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헨리는 갑판위에 있는 원정대원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 저분을 구할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 전진할까?"
"형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냥 버리고 가야죠!"
"오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괜히 구해줬다가 라이올라섬에 같이 당도하기라도 한다면 저 여자와 경쟁을 해야 한다구요"
"게다가 레벨이 300인 소서리스에요. 길드도 있으니까 귀환주문서를 먹기라도 한다면 길드원들에게 보고를 올리고 그들이 라이올라 섬으로 찾아오겠죠.
아무튼 저는 반대에요."
원정대원들의 상당수는 반대의사를 표출했다. 괜히 그녀를 살렸다가 라이올라섬에 같이 도착이라도 한다면 그녀와 경쟁을 해야하는 입장에 놓이기 때문이다. 신규던전이라 미개척 던전이 많을터! 그걸 소울레이디 길드원이 발견하게 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반대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다 죽어가는 플레이어를 살려서 라이올라에 데려갈 이유가 원정대원들에겐 전혀 없었다. 죽던 말던 내버려둬도 전혀 상관이 없는것이었다.
헨리는 곁에 있던 부원정대장 리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흠.곤란한 질문이네요 오빠"
"윤지 너는?"
"제 생각에는 레일리 NPC가 말한 보스 몬스터와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떠내려 온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레벨 300에 달하는 고렙 유저가 저렇게 될 리가 없을테니까요. 차라리 저 여자를 구해서 전후사정을 물어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그말에 반대파 아이들이 윤지를 나무라며 목소리를 높히기 시작했다.
"윤지야 너 지금 장난해? 저런 녀석을 살려서 뭘하겠다는 거야?"
"맞아! 그건 말도 안돼!"
"정보조사라면 레일리 NPC가 말한대로 다 해뒀잖아? 그래서 화살을 비롯한 원거리 투척용 무기들도 대량으로 사온거고."
"거기에 대한 정보는 익히 알고 있지만, 전투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모르지 않아?"
윤정이가 불쑥 끼어들더니 헨리는 보며 다시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오빠. 저 여자는 레일리가 말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전투를 치뤄본 소서리스일거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건져올려서, 전투에 대한 패턴같은걸 물어 보는게 좋을거 같아요."
"윤정아 그건 아니라니까 그러네? 만약 라이올라에 같이 발을 들여놓았다가 저여자가 미개척 던전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어쩔건데?"
"우리가 반드시 라이올라 섬에 갈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만에하나 전투에서 패해서 저 여자처럼 되면 어쩔려고 그래?"
"그,그건.."
"확실하게 하자는거야. 확실하게. 그리고 나에게 칭얼대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어차피 결정은 강혁오빠가 하는거니까."
그러자 반대파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헨리를 둘러쌓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반대의사를 재차 강조하면서 헨리를 설득했다. 하지만 헨리의 마음은 이미 구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만약 헨리가 레오로 플레이 했다면 가차없이 그녀를 죽였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방해되는 인물은 틀림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헨리로 플레이 하고 있었다. 게다가 윤정이의 말대로, 신규던전을 향해서 배를 이끌고 나가는 터라 신규던전 몬스터들의 공격패턴을 전혀 알지 못한다. 무릇,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야 사냥이 편해지고, 플레이 하기가 쉬워지는 법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것처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 헨리는 전투에 관한 정보를 물어볼 요량으로 결국 반대파 아이들을 뿌리치고 빈사상태에 빠진 소서리스를 건져올렸다.
윤정이와 윤지는 직접 힐과, 활력 스킬을 퍼부어 눈앞에 있는 소서리스를 간호했다. 잠시후, 소서리스가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치켜떴다. 주위를 둘러보던 소서리스가 이제서야 상황이 파악된듯 곁에 있던 윤정이와 윤지를 보며 고마움을 전해왔다.
"가,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호호 별말씀을요. 저희는 원정대장 헨리님이 시킨대로 했을 뿐이랍니다"
소서리스가 헨리를 살피더니 이내 뭔가를 깨달은듯 살짝 놀란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아이디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제국의 용사 칭호를 받으신 분이군요?"
이미 제국의 용사 칭호를 받은지 한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울레이 디 길드원이 자신을 알아본 것이다. 이번에는 헨리가 놀랄 차례였다.
"생각보다 정보력이 무척 뛰어나시군요."
"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렇답니다. 아무튼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소서리스 나니아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며 헨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헨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나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잠시 나니아 님께 여쭤볼게 있는데, 이야기좀 나눌수 있겠습니까?"
* * *
소울레이디 길드원이 타고 있던 전투함선에는 총 30명에 달하는 길드원이 있었다. 그들의 평균레벨은 자그마치 300이었다. 그에 반해 눈앞에 있는 범고래장군의 레벨은 고작해야 300에 불과했다. 그래서 길드마스터 레오나는 범고래장군을 한없이 얕잡아 보고 있었다.
처음 범고래장군이 물대포를 발사할때만 해도 별거 아닌 공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물대포에 격중당한 레벨 300짜리 소서리스가 단 한방에 목숨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레오나는 얼른 마법사들을 시켜 공격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무용지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범고래장군이 소환수들을 소환해 배를 공격하게 한 까닭에 배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고, 그로 인해 마법 명중률이 급격하게 떨어져 버리고 만것이다.
수군 경험이 전무했던 탓에 배가 흔들릴때마다 소울레이디 길드원들은 크게 동요하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개중에는 소환수들의 공격과 배의 흔들림 때문에 바닷가로 떨어져 나가는 무리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해상전투를 생각했던게 아니라 여신의 공깃방울을 챙겨오지도 않았다. 그 탓에 물에 빠지면 물속성 저항력에 시달려 움직임이 거진 마비가 되다 시피 했다. 결국 물에 빠진 소울레이디 길드원들은 제대로된 저항한번 하지 못하고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갑판위의 전투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마법사로 이루어진 탓에 공격력은 높았지만 방어력은 실로 형편없었다.
더욱이 배의 흔들거림으로 인해 [명중률 50퍼센트 반감효과]마저 발생해 버렸다. 결국 레오나를 비롯해 소울레이디 길드원들은 범고래 장군과 그 휘하 소환수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멸에 이르고야 말았다.
"예전에 휴이라트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다가 운좋게 특기- 수영- 을 배운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어렵게나마 저 혼자 생존할수 있었던 것이죠."
특기- 수영은 물속성 저항력을 조금이나마 제거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나니아 같은 경우는 바람속성을 주력으로 익히고 있는 소서리스다.
그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바람의 정령 윈디아를 소환해낼수 있었다.
"윈디아를 타고 도주에 도주를 거듭했어요. 하지만 범고래장군의 물대포를 맞고 치명상을 입은채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죠. 다행히 배안에 구명조끼 아이템이 있어서 어느정도 버틸순 있었답니다."
문득 헨리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만약 저 말이 다 사실이라면 원정대원들의 목숨이 한낱 파리목숨이 될 공산이 매우 컸다. 헨리는 먼저 원정대원들을 전부 끌어모은후 추후의 일을 상의하기로 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연히 헨리였다. 그는 나니아가 말한 내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원정대원들에게 전부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난 원정대원들은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원정대원들중 레벨이 가장 높은 자는 전사계열의 STR기사 하나와, 방금전에 건져올린 소서리스의 300레벨이었다. 그런데 범고래 장군의 레벨이 300이란다.
게다가 소환수들의 레벨 또한 250을 형성하고 있었단다. 이건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싸움이었다. 개죽음이 뻔한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원정 대원들은 하나같이 침묵만 지키고 있을뿐 누구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때였다.
"이상하군요. 제가 여정을 떠났을때, 범고래 장군의 레벨은 120 이었는데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레일리였다. 헨리가 레일리를 보며 물어왔다.
"120 이라고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네차례에 걸쳐 라이올라 섬으로 여정을 떠났어요.
그때 범고래 장군을 한번 본적 있었는데 레벨이 120에 불과했죠.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죠?"
"원정대원들의 평균 레벨에 따라 보스 몬스터의 레벨이 정해지는것 같아요"
"아! 그러고보니…"
뭔가 느껴지는게 있는지 나니아가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난뒤 헨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소울레이디 원정대원들의 레벨을 평균적으로 나눠보니 딱 300이 나오네요.
아무래도 레일리가 말한대로 같아요."
"오오? 그렇다면 범고래 장군이 나온다고 해도 무리없이 레이드를 펼칠수 있겠군요?"
레일리가 불쑥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꼭 범고래 장군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소라장군이나 게장군등이 나올수도 있죠.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그말대로였다. 하지만 헨리는 범고래 장군이 나올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범고래 장군을 빗대어 표현을 한것이었다.
"그럼 이제 문제는 놈의 공격패턴을 파악하는건데… "
헨리를 비롯해, 원정대원들의 시선이 나니아에게 향했다. 나니아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울레이디가 전멸한 이상 이제는 이들을 따라 라이올라 섬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거기에서 사냥을 하고 귀환주문서를 먹은후 택배 시스템을 이용해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섬으로 이동시켜야 많은 돈을 벌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넘버원 길드에 적극 협조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범고래 장군의 공격 패턴과, 소환수들의 공격패턴을 전부 말해주었다.
대략 10분정도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브리핑은 거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였다.
넘버원 내부에서 갑자기 알림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사방이 빨간빛으로 물들더니 엄청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고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띵!!!<< 라이올라의 보스 몬스터 <<범고래 장군>>이 나타났습니다!!!>>
1분후 범고래 장군과의 해상전투가 시작됩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범고래 장군에게 패한다면 배에 타고 있는 모두가 죽게 됩니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말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20여미터에 달하는 범고래 한마리가 파도를 휩쓸며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안좋은 예감은 왜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군!)느낌상 범고래 장군이 나올것 같았는데 정말 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된이상 이판사판 합이 육판이었다.
"닻을 내려 얘들아!!"
"예 형!"
수심이 얕기에 닻을 내리는데 무리는 없었다.
"배를 최대한 고정시키고 죽기로 싸운다!!"
탱커를 앞세우고, 뒤를 받쳐줄 마법사들을 배치하고, 노를 젓는 격군들까지 모조리 갑판위로 올라왔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는 범고래 장군과의 마지막 일전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