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1 회: 엘프의 숲으로 -- >
"매직 에로우(Magic Arrow)!!"
청초한 이미지가 감도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온몸을 휘날리며 자신의 무기인 궁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눈앞에 있는 기사에게 쏘았다매직 에로우였다.
기사는 날아오는 매직에로우를 횡으로 그어버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매직에로우가 너무도 쉽게 와해되어 버리자 여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대로라면 당하고 말아. 일단 숲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어.)눈앞에 있는 여성의 정체는 리프레 숲에 살고 있는 고위급 엘프였다.
엠틀란트의 경비병 제이슨이 말한 고위급 엘프가 바로 그녀인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일렌시아였다.
엘프의 축복을 걸어주기 위해 잠시 필드로 나왔다가 재수없게도 레벨 470 에 달하는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엘프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아침과 낮에 행동하는 종족이다.
밤이 되면 숲으로 돌아가 보초를 서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고위급 엘프들은 오히려 밤에 활동하면서 몬스터들에게 엘프의 축복을 걸어주었다.
오늘 근무를 맡게된 여성엘프가 바로 일렌시아였다.
일렌시아는 매번 그랬던것처럼 엘프의 축복을 걸어주며 인간들에게 방해공작을 펼쳤다.
하지만 일렌시아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한 플레이어가 있었으니.
그의 정체는 오딘길드의 오스카였다.
레벨이 무려 470에 육박하는 거물급 플레이어!
랭킹 38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유저가 바로 그였다.
"도망을 치려고 하는건가?"
오스카가 놓치지 않겠다는듯 엘프의 뒤를 쫓았다.
덱스가 무척이나 높았던 탓에 엘프의 움직임을 쉽게 따라잡을수 있었다.
"이야압!"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오스카가 들고 있던 파멸의 검이 일렌시아의 복부쪽으로 파고들었다. 기겁한 일렌시아가 얼른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오스카가 내지른 검이 너무 깊게 파고든 탓에 그의 검을 완전히 피해내진 못했다.
츄아아악!
"꺄악!!"
일렌시아의 허리부분에서 새빨간 핏줄기들이 스멀스멀 배어나왔다.
파멸의 검이 일렌시아의 복부를 노렸지만, 일렌시아가 몸을 비튼 탓에 허리에 격중하고 만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검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는 거였다. 일렌시아는 허리츰에서 나오는 피를 지혈하기 위해 얼른 혈도를 짚었다. 다행히 피가 조금씩 멎기 시작했다.
"엘프가 혈도를 알고 지혈을 하다니. 대단한걸?"
오스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그럴것이 혈도를 짚으면서 지혈을 감행하는 엘프를 처음보았기 때문이었다.
"크윽. 고,고위급 엘프들은 손쉽게 할수 있는 기술이다!"
"고위급 엘프라…… 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걸 보니 그렇게 고위급 같아보이진 않은데……"
일렌시아의 레벨은 아직까지 400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오스카의 레벨은 470이다. 스탯차이만 해도 이백개가 넘게 차이난다. 무엇보다 평지에서 싸웠던 것이 화근이었다.
만에하나 숲에서 싸웠더라면 자신의 무기인 궁을 십분 활용해 기사를 퇴치할수 있었을 것이다.
오스카가 유들유들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한손으로 일렌시아의 턱을 괴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름다워. 정말 내여자로 만들고 싶을 정도야."
"ㅤㅌㅞㅅ!"
자신을 농락하는 기사의 태도 때문에 일렌시아는 수치심을 느꼈다.
급기야 그녀는 오스카의 검에 목을 들이밀기까지 했다.
자결하기 위해서였다.
"농락하지 말고 얼른 죽여라! 이 나쁜놈!!"
"내가 그렇게 나쁜짓을 했었던가?"
"이 가증스러운 인간! 네놈들이 저지른 악행을 정녕 모른단 말…"
"이봐 엘프 아가씨. 말은 똑바로 하자고. 그건 고대의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이야. 안그래? 그리고 나는 분명히 아가씨한테 말했어. 몬스터들에게 버프를 걸지 말아달라고 아주 공손하게 말이야. 어때? 내말이 틀려?"
사실 오스카는 엠틀란트 필드에 있는 보스 몬스터 사우론을 잡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가 우연찮게 버프를 걸고 있는 일렌시아를 발견했다.
생전 처음보는 엘프의 모습에 오스카는 호기심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몬스터들에게 버프를 걸지 말아달라고 공손히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프는 눈앞에 있는 기사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오히려 그녀는 기사에게 검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저주받을 인간종족을 죽이고자 검을 휘두른것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눈앞에 있는 기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그녀는 자신의 특기인궁술을 펼치며 기사를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궁술도 소용이 없었다.
(겨우 이정도인가? 내가 엘프를 너무 과대평가 한거 같군.)애시당초 오스카는 그녀를 죽일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복부를 베지 않고 허리를 살짝 벤 그가 아니던가?
마음먹었다면 1분 이내에 여성엘프를 죽일수도 있었다.
"엘프들은 온순하다고 들었는데 당신을 보니 썩 그렇지도 않은것 같군."
"이 가증스러운! 너희들 인간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너무 화내지 말라고 엘프아가씨. 예쁜얼굴에 주름질라."
오스카는 그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렌시아는 순순히 포기한듯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어이 아가씨.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당신을 죽일생각이 전혀 없거든?
그러니까 얼른 사라지라고."
그 말에 놀란건 일렌시아였다. 자신을 죽이면 어떤 아이템이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레벨이 400인만큼 좋은 아이템을 드랍할수도 있었다.
그런데 놓아주겠다니?
"어,어째서지?"
"뭐가?"
"왜? 왜 나를 살려주는거지?"
"거참 살려줘도 뭐라고 하네. 이유는 간단해. 난 엘프와 적이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 우리 길드장 형님도 엘프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거든.
이제 이유가 됐나?"
"……"
오스카는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엘프를 보더니 뭔가가 떠오른듯 구급상자를 꺼내들었다.
"이 몸으로 이동하는것도 힘들겠군. "
"뭐,뭘하려는 거지!?"
"가만히 있어봐 엘프 아가씨. 검상을 치료해줄테니까."
말뿐만이 아니었다. 오스카는 구급상자에서 붕대와 각종 약초를들 꺼내들었다. 검상에 좋다는 약재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오스카는 약재를 빻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빻은 약재들을 일렌시아의 허리에 가져갔다.
"조금 따끔거려도 참아. 아파도 흉터를 없애는덴 그만이니까."
"……"
[인간들이 엘프의 숲에 들어오려고 하면 먼저 그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한뒤쫓아내도록 해라. 무조건적인 살생은 아니된다.]
[놈들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입니다. 그런데 위협사격이라뇨?
그냥 죽여버리는게 더 낫습니다!]
[그렇습니다 수호성자님!]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들이다.
인간들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해왔다고는 하지만 그들중에서도 착한 인간이 있다. 몇몇 나쁜인간들 때문에 그들을 죽여서는 아니된다.
그러니 위협사격을 가하고,
그래도 접근을 시도한다면 말로 설득하도록 해라.]
[그렇게 해서도 안되면 어쩝니까?]
[그때는 죽여버리도록 하라.]
인간들로 인해 리프레 숲의 절반이 불타버리고 말았다.
숲을 사랑하고 숲을 매개체로 살아가는 엘프종족에게 있어 숲은 그야말로 터전이나 다를바가 없었다. 그런곳을 인간들이 전부 불태워 버린것이다.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인간놈들을 살려두라고? 그럴순 없다!]
몇몇 엘프들은 수호성자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간들을 활로 쏴죽여버렸다.
거기에는 일렌시아도 끼어있었다.
어릴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녀는
[인간들은 무조건 사악하다] 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일을 계기로 그러한 마음가짐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중에서도 착한 인간이 있다는것을 몸소 느낀것이다.
"고,고맙다."
막 자리를 뜨려던 찰나. 일렌시아가 살며시 일어나더니 오스카에게 대뜸인사를 건네왔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치레였다.
이번에는 오스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래도 예의를 아는 종족인가 보군?"
"너희들이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좋은 관계가 될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전쟁은 불가피 하게 되었다."
곧있으면 모든 드래곤들이 수면기에서 빠져나온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의 대한 대대적인 징벌이 이루어질터였다.
"고대의 인간들로 인해 후손이 피해를 볼줄이야…
조금 억울한감도 없지않아 있긴하지만 뭐 어쩌겠어? 하하하."
"팔자 좋은 인간이로군…"
"내 성격이 원래 이렇거든."
오스카는 일렌시아의 곁으로 스윽 다가갔다.
움찔한 일렌시아가 살며시 뒤로 물러났다.
"뭘하려는거지?"
"하나 물어볼게 있어서 말야. 저기에 있는 저 사람 누구야?"
"사람? 인간을 말하는건가?"
일렌시아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질 않았다.
"아무도 없…"
쪽!
오스카는 입술을 떼자마자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우하하하 성공이다!! 어이 쭉빵 엘프!
다음에 만날땐 서로 웃으며 인사하자고!
난 오스카라고 해!!"
일렌시아는 분노어린 눈빛으로 화살과 전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스카에게 쏴버렸다.
슈우우웅!
"이크! 성질하고는!"
"가,감히 내 입술을!! 거,거기서지 못하겠느냐!!"
졸지에 첫키스를 빼앗겨버린 일렌시아.
그녀의 두눈에서 시퍼런 광망의빛이 토해졌다.
잡히면 정말이지 사지가 절단될것 같았다.
오스카는 배운 보법을 십분 발휘해 재빨리 그자리를 떠나버렸다.
일렌시아는 공허한 눈빛으로 놈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뿐이었다.
* * *
슈슈슝! 슈슝! 슈슈슝!
"으아아아악!!"
파박!파박!파바박!
수십 수백개에 달하는 화살들이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전부 헨리를 향해 쏘아진 화살들이었다.
헨리는 재빨리 화살을 피하며 놈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몸놀림이 무척 빨랐던 탓에(?) 엘프들의 공격을 전부(?) 회피할수 있었다.
헨리가 숲의 초입지역을 벗어나자 그제서야 화살비가 사그라들었다.
"헉헉.헉헉! 뭐,뭐야 이거? 어떻게 된거야?"
장장 4시간에 걸쳐 엘프의 숲 리프레에 당도했다.
비로소 퀘스트를 깰수 있다는 부푼 마음은 안고 숲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날아오는건 수백개에 달하는 화살세레들이었다.
정말이지 민첩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고슴도치가 되어도 이상하게 없었다.
"젠장! 젠장! 다와서 포기할순 없어!"
헨리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한번 초입지역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자…
슈슈슝! 슈슝! 슈슈슈슝!
"아아아악!!"
파바바박! 파박! 파바박!
미친듯이 날아오는 화살세레..
아까와 마찬가지로 헨리를 향해 쏘아진 화살들이었다.
헨리는 다시한번 화살비를 피하면서 초입지역을 벗어났다.
그러자 화살비가 또다시 사그라들었다.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ㅤㅂㅞㄺ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위협사격을 가하는것 같다 주인.]
"위협사격이라고?"
[엘프들은 아무리 못해도 기본 150의 레벨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주인의 레벨은 고작 33이다.
100짜리가 33짜리를 맞추지 못하겠나?
그것도 저렇게 많은 화살을 쏘는데?]
ㅤㅂㅞㄺ구의 말을 듣고보니 일리가 있었다.
녀석의 말대로 놈들의 레벨은 죄다 150을 상회하고 있다.
레벨이 10 만 차이나도 명중률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워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백개의 달하는 화살들이 자신의 몸을 모조리 비껴나갔다.
"내 회피율이 높았던게 아니라 일부러 안맞춘거였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먼저 대화를 한번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주인?]
"대화? 엘프들이 인간들의 말을 할줄 알아?"
[3,4계급의 하급 센티널들은 인간들의 말을 할줄 모르지만 2계급 이상의 고위급 엘프들은 인간들의 말을 능수능란하게 할줄 안다고 들었다.
일단 2계급 이상의 고위급 엘프들을 찾아서…]
ㅤㅂㅞㄺ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헨리가 짜증어린 표정을 지으며 ㅤㅂㅞㄺ구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ㅤㅂㅞㄺ구가 울상을 지었다.
[왜,왜 때리나 주인!!]
"야이 멍청한 도마뱀아. 보초를 설 정도라면 실력이 떨어지는 삼사급 하급 센티널 일텐데 어딜가서 2계급 고위 엘프를 찾는다는 말이냐! 앙?"
[그,그것도 그렇군.]
"이런걸 소환수라고 데리고 있으니 쯧쯧."
[칫]
"삐지지 말고 스캔마법좀 펼쳐봐.
스캔으로 놈들의 레벨을 파악할수 있잖아?"
인간 마법사가 구현하는 스캔과는 달리 드래곤이 시전하는 스캔은 플레이어들과 몬스터들의 레벨까지 전부 보여준다.
때문에 빛의 주문서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한동안 탐색에 열을 올리던 ㅤㅂㅞㄺ구가 마법을 해제한뒤 헨리에게 말했다.
[죄다 150 에서 200전후다 주인. 하지만 그들중 한명은 270을 상회하고 있다.]
"270 이라고? 혹시 2계급 엘프의 레벨이 몇인지 알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300이상은 된다고 들었다 주인.]
헨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말인즉 지금 보초를 서고 있는 놈들은 죄다3,4계급의 하급엘프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말을 건넬수도 없게 된다.
"지랄났네. 그럼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