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6 회: 오티를 가다 -- >
(쳇!)
혹시나 싶었다.
윤지가 바깥으로 나가길래 혹시나 싶어서..
불안한 마음에 그녀를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역시나였다.
윤지와 강혁이 형이 서로 앉아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둘이 여기서 뭐해?"
"어 페이왔냐?"
"오빠 저 그럼 들어가볼게요."
"아 그래."
황급히 자리를 뜨는 윤지.
윤지의 모습이 사라지자 페이가 대뜸 나를 보며 성질을 부려온다.
"형 그렇게 안봤는데 뭡니까!?"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
일단 진정시킬 요량으로 녀석을 계단에 앉혔다.
"얌마."
"왜요?"
"눈치깠어."
"눈치 까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윤지가 눈치깠다고 새꺄.."
페이에게 윤지가 해주었던 말들을 간략히 요약해서 설명해주었다.
물론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라는 치명적인 말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자 대뜸 안색이 창백해지는 페이녀석..
그리고는 이제 어쩌냐며 나에게 칭얼대기 시작한다..
"어쩌긴 뭘어째 임마.
오래 봐가면서 친해지다가 고백하는 수밖에 더 있겠냐?"
"아.. 시간 질질 끄는거 싫어하는데…"
"니가 좋아하는 여자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데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
어쩔수 없어 그게 싫으면 니가 깔끔하게 포기하던가."
"쳇..그나저나 의외네요. 저렇게 촉이 좋을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너도냐? 나도 그랬다. 장난으로 포커한번 해봐라 이랬더니 빵터지더라.
아무튼 윤지 생각 말해줬으니 이제 니가 하기에 달린거다.
정말 좋아하고 윤지랑 사귀고 싶다면 존중해주면서 잘해봐.
난 더이상 개입 안할테니까"
"알겠어요 형. 그리고 아까 화내서 미안해요."
"나였어도 화냈을거다. 너무 신경쓰지 말고 내일 아침 9시에 출발이니까 들어가서 잠이나 푹 자둬라. "
"흐흐 역시 쿨하시네요. 제가 이래서 형을 좋아하는겁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하더니 대뜸 내 목을 조르며 앵겨오는 녀석..
"저리 꺼져 이 게이새꺄!!!"
"아잉!!"
이새끼 진짜로 게이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암! 그렇고 말고!!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힘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뒤 세수를 하고..이빨을 닦고.. 짐을 챙겼다.
아침은 이미 뒷전..
강당에 모여 오티 퇴소식을 깔끔하게 치르고..가평역에 당도한후기차에 올라탔다.
내 옆자리는 당연히 페이녀석..아니 페이새끼...
"형 이거 제 번호니까 심심하면 연락해요.
제가 술 많이 사줄게요."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법..
놈의 연락처를 재빨리 입력했다.
"형 이번호 함부로 알려주면 안되요 알겠죠?"
"그정돈 알고 있어 임마."
"역시 철두철미 하시군요 흐흐흐."
그렇게 말하더니..대뜸 창가쪽에 누워 잠을 청하는 페이녀석..
하기사 술을 그렇게 먹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겠지..
"2박 3일간의 오티식이 모두 끝났습니다.
모두 피곤할 텐데 집에 들어가서 푹 쉬시고, 입학식때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고. 황찬영 교수의 해산아래 모든 아이들이 뿔뿔히 흩어졌다.
페이는 내일 있을 스케줄 때문에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회사차량에 올라타 경기도로 이동했고, 윤지와 윤정이도 피곤했는지 딴길로 새지않고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개중에는 끼리끼리 모여서 놀자고 제안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형도 가실래요?"
"하하 미안. 어제 너무 무리해서 먹었더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말야.
게다가 가지고 온 짐이 너무 많아서 움직이기가 좀 그러네 하하하"
"그럼 어쩔수 없죠 뭐. 입학식때 봐요."
"그래. 잘가라 현수야."
"네 형!"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니 무거운 짐을 이끌고 집이 있는 신도림으로 이동..
30분만에 집에 도착한 나는 씻는것도 포기한채침대에 큰대짜로 뻗어 버렸다.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3주후에 입학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뻐서 미칠것만 같았다.
이토록 설레이는 기분은 생전 처음이었다.
"대학생활이라…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 * *
"아 짜증나. 보충수업은 대체 왜한다니 진짜?"
"내말이 그말이야! 한창 방학시즌인데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보충만 시키잖아! 진짜 대한민국 보충제도좀 없애주면 안되나?"
"아 정말 하기 싫어!!"
"고2때는 양호하기라도 했지. 고3되니까 진짜 가관이네 가관!
안그러냐 여진아?"
"우리 짜증나는데 보충이나 땡땡이 칠까?"
"학주가 가만히 있을까?"
"괜찮아 나만 믿어. 지까짓게 어쩌겠어!"
봉긋 솟은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쳐대며..
강여진이라는 여자아이가 선봉에 나섰다.
그러자 그녀를 따르는 여고생 세명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그녀들이 향한곳은 근처에 있는 시네마 하우스.
이번에 개봉하는 루나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감성적인 로맨스 영화로 많은 여고생들의 심금을 울린 그작품.
인터넷 평점만도 무려 9점대에 달하는 대작중에 대작이었다.
"아..이런거 보고 질질 짜면 안되는데 너무 슬프고 재밌다."
"감동적이었어.."
"여진아 다음에는 어디갈꺼야?"
"그냥 커피숍 가서 수다나 좀 떨래?"
"그러자! 커피숍은 내가 쏜다!"
예린이라는 여자아이의 진두지휘아래 여고생 넷은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중.. 한창 수다를 떨며 놀고 있던 찰나..
제법 잘생긴 남자 하나가 그녀들 사이에 끼어들며 말을 걸어온다.
그의 시선은 여진이에게 꽂혀 있었다.
"너 혹시 남친 있니?"
8개의 눈동자가 남자를 훑었다.
여자 꽤나 홀리게 생긴 남자...
여진이를 제외한 여고생 셋은 제법 괜찮다는듯 표정이 썩 좋은편..
하지만 여진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가 않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말을 거는 기생오라비..
"한번더 말할게. 너 남친.."
"꺼져"
"...뭐라고… ?"
"좋아하는 남자 있어. 그러니까 꺼져"
표독스럽게 쏘아대는 여진이의 태도에 오히려 놀란건 여고생 3인방..
그녀들은 애써 좋은말로 남자를 달래기에 이른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바보야. 저정도면 엄청 잘생긴건데 뭣하러 빼는거야!?"
"척보면 모르니? 아직도 못잊고 있는거잖아 저 멍충이가!"
"설마 그새낄 아직도 못잊는거야?"
"어휴 답답하다 답답해! 지 버리고 떠난줄도 모르고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 "
"진짜 강여진 대단하다! 대단해!! 3년동안 어쩜 그렇게 일편단심이냐?
생긴건 모든 남자 다 후리고… "
"시끄러워!"
듣기가 거북했는지 친구들의 말을 끊어버리는 여진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괴로워서..힘들어서..
그리고 친구들이 그사람을 욕하는걸 듣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어휴 저 멍청한년.. 생긴게 아깝다 생긴게!!"
"너무 그러지마 이년아. 각자의 스타일이 있는 거잖냐?"
"내가 답답해서 그래 내가 답답해서!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새끼보다 잘생긴애들 수두룩하고, 돈많은 놈도 많은데 왜 그딴새끼 못잊냐고! 아 개답답하다 진짜."
"미친년 지가 승질내고 난리네."
"아 몰라! 괜히 짜증난다. 빨리 커피나 마셔 자리뜨게!"
"하아~~"
한숨만 절로 나오는 이상황.
어디에 있는지...그토록 찾고 또 찾아도 보이지 않는 그 남자.
연락이라도 한번 올까 싶어, 핸드폰 번호도 바꾸지 않고 3년동안 기다렸지만, 연락한번 없는 상태..
이제 기다리는것도 지쳤는지, 매번 한숨만 푹푹 쉬어대는 여진이..
"저 왔어요..."
"강여진!!!"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오는 어머니의 호통소리..
아무래도 학주가 집에 연락을 한듯 싶다.
"이년아! 도대체 언제 철들래!!"
"미안 엄마.."
"중학교때는 곧잘 하던 녀석이 왜 이렇게 망가진거야. 왜!"
엄마의 말대로 중학교땐 전교1등을 놓친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남자에 대한 마음고생 때문에 이제는 전교 꼴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여진이의 어머니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발 정신좀 차려라 제발! 응?"
"윽박지른다고 되겠어 엄마?"
낯익은 목소리의 개입.
고갤 돌려보니 쇼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오빠의 모습이 보인다.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오빠...
뭔가 할말이라도 생각났던지 내손을 부여잡고 자신의 방으로 끌고간다.
엄마는 뒤에서 계속 잔소리만 퍼부어대는중..
아..살기 싫다...그냥 콱 죽어버릴까..?
"왜?"
"병신아 너 답지 않게 왜 그렇게 풀이죽어 있냐?"
평소대로라면 성질을 바락바락 내면서 엄마에게 대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인지 고분고분한 여동생..
"용건만 말해. 왜 불렀어.."
"물어볼게 있어서 불렀다."
"니가 나한테 물어볼게 있었니?"
표독스럽게 쏘아 붙히는 여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너 혹시 지강혁 이라는 이름 아냐?"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무런 대답없이 멍한 표정을 짓는 여동생..
"……"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그이름..
그이름이 오빠의 입에서 튀어 나오고 말았다.
오빠가...오빠가 지강혁이라는 이름을 도대체 어떻게 아는거지..?
내가 잘못들었나..?
혹 잘못들은 건가 싶어서 다시한번 물어보니.
지강혁이 누구인지 재차 묻는 오빠..
"나이는 스물셋이고, 명성고 졸업했다고 그러더라. 아냐?"
"너,너어!! 그거 어떻게 안거야! 누구에게 들었어!!"
오빠의 멱살을 잡고 미친년마냥 흔들어댔다.
오빠가 진정하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흥분할대로 흥분한 나는 소리만 바락바락 지를뿐..
"아따 망할년 힘한번 엄청나네!"
"누구에게 들었냐고!!"
"직접들었어 직접! 됐냐!?"
"마,만난거야? 그 오빠 만난거야!? 어디서 만났는데!!어디서!!"
여동생에게 자초지종을 전부 말해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여동생 여진이..
아무래도 강혁이 형이 말한 그 여동생이 내 여동생인듯 싶었다설마했는데,, 정말 설마 했는데 형의 첫사랑이 내 여동생일 줄이야..
어째 일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돌아가는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걸 말해줘야 하나..말아야 하나..?
============================ 작품 후기 ============================
오티 파트 끝.
12시에 올리려 했지만 친구들과의 약속상 지금 올립니다.
내일 뵐게여!
<이제 게임이야기랑 대학 이야기가 섞여 나올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