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넘버원-35화 (35/378)

< -- 35 회: 오티를 가다 -- >

"자 이거 받아."

"이건… "

페이가 내민건 하얀 강아지 인형..

쫑긋 솟은 두귀가 마치 여우의 그것마냥 귀엽고 예뻤다.

"이걸 가지고 오티에 왔을리는 없을텐데…

어디서 구했어?"

"아~ 잠깐 시간나서 강혁이 형이랑 시내에 나갔다 왔거든 요기 요 앞에 인형뽑기 가게에서 뽑아온거야."

"그렇구나. 아무튼 고마워"

받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백구 인형을 받아주는 윤지.

난생 처음 선물이라는것을 해본터라 부끄럽기가 실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가볼게!"

쫓기듯이 후다닥 자리를 뜨는 페이녀석...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윤지였다.

"마셔라~ 마셔라~ 아~ 술들어간다 ㅤㅉㅠㄱㅤㅉㅠㄲㅤㅉㅠㄲㅤㅉㅠㄲ!!"

"강혁 오빠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랜덤게임!~"

벌써 소주 2병을 비운 상태…

머리가 어지러워 죽겠다. 더는 못 마시겠다.

하지만 분위기를 생각하자니 빼기가 좀 뭐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눈치게임 1 !!"

눈치게임이었다.

기습공격이 가능한 게임이라서 게임을 시작한 이가 걸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2 !!"

"3 !!"

"3 !!"

우하하하 걸렸다 걸렸어!!!

"아씨!"

"아 또 걸려버렸네!"

두명의 여자아이가 걸렸다.

2조 아이와 12조 여자아이..

나보다 3살이나 어린 스무살 병아리들이다.

그나저나 무슨놈의 술들이 이렇게 센건지…

일인당 최소 2병이상은 마신듯 싶은데, 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절정에 다달은듯 싶다.

여기에 있다가는 정말 술독에 빠져 죽을것 같아서 슬그머니 자리를 이동..

5조와 6조등 왕래가 없던 조들을 골라 방문하니 반갑게 나를 맞아주는 아이들..

술은 뒷전이었고, 오로지 수다만 떨고 있는중..

아무래도 여기는 술을 먹기보단 이야기를 많이 하는듯 싶었다.

어찌보면 잘됐다고 해야하나?

"오빠는 레벨이 어떻게 되요!?"

키는 160대 초반.

얼굴이 무척 앳된 제법 귀요미 스타일의 여자아이가 물어왔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40도 안됐어."

"정말요 오빠?"

"와 형 레벨이 40도 안됐다고요?"

곁에서 같이 놀라는 남자아이.

왠지 나를 무시하는것 같아서

놈에게 되물어보았다.

"넌 몇인데?"

"전 160대에요."

"저도 160대!"

높군.

나보다 무려 4배나 높은 수치라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그러자 지들끼리 이야기 하는중..

다음방에 들렸다.

이번에는 7조 8조가 모여있는 방.

"오 강혁이 형이다!!"

"요리사다!!"

"오빠 우리방에 왔으면 환영주 마셔야 돼요!"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붙들려서 술한잔을 비우고..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넘버원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떼우고 있는중인데 얘네들은 아까전 애들보다 레벨이 무려 40이나 높은 200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11조 애들과 2조 애들도 여기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상태.

아무래도 레벨을 물어보고 비슷한 동레벨 애들끼리 모여서 술을 먹는 모양...집에 가서 친구추가를 하고 같이 파티사냥을 하기엔 그게 용이할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원리라고 해야하나..?

그럼 나는 윤지랑 윤정이랑 같이 먹어야겠군.

"아 형 어디갔다가 온거에요!? 한참 찾았네!!"

1조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대뜸 역정을 내는 페이녀석그나저나 이게 뭔일이다냐...

1조에는 남자새끼 한마리 없고.

전부 여자만 있는상태..

그것도 무려 10명이나.

"뭐야 왜 여자애들 밖에 없어!?"

귓속말로 자그맣게 속삭이니.

"저보러 왔대요."

나에게 똑같이 귓속말로 답변하는 페이녀석.

하기사..이런날이 아니면 언제 아이돌가수와 술을 한잔 하겠는가?

어찌보면 여자아이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갔다.

"오빠 오셨으면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윤정이의 말마따나 자리에 앉고..

그녀가 주는 술을 한잔 받고 입속에 털어넣었다어지럽다.

이제 정말 한계다.

진짜 한잔만 더 먹으면 토할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대한 술을 빼고 또 빼고...

아이들 이야기에 두귀를 쫑긋 세우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역시나..또 넘버원 이야기...

"레벨이 낮아서 힘들어 죽겠다니까?

게다가 카오 유저들이 어찌나 많은지! 불안해서 사냥을 못하겠어!"

"카오 유저들이 늘어난건 레오라는 랭커 때문이라고 우리 오빠가 그러더라."

"레오 랭커!?"

(움찔...)

"레오는 다른 랭커와는 달리 독을 주로 구사하는 랭커래.

그래서 엄청 생소한 스킬트리를 구사한다고 그랬어."

"나도 그말 들었어."

"넘버원 게시판에도 레오 때문에 독공 플레이어들이 늘었다고 하던걸?

생각해보면 카오 유저들이 늘어난 이유는 바로 레오 때문이지 뭐"

"근데 나는 생각이 다른게… 직접 레오를 본적이 있거든?"

"뭐? 레오를 직접 봤다고!?"

레오를 봤다는 소리에 여자아이들과 페이의 시선이 대번에 지민이에게 쏠리는중..

"며칠전에 대호 산맥에 사냥 하러 갔다가 우연찮게 봤었어.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초보자들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길래마음놓고 사냥할수 있었지.

뿐만 아니라 간혹 레벨 100짜리 카오 유저들이 나타났는데 레오를 보자마자 재빨리 도망가더라구."

"그럼 레오에게 신세를 진거야?"

"결과론적으론 그렇게 된 셈이지."

"에이 그건 말도 안돼. 레오는 싸가지 바가지에 성격이 무척 괴팍해더욱이 PK를 즐기는 유저가 바로 레온데 레오가 초보자들에게 자비를 베푼다는게 말이 되니?"

...난 초보자들을 죽인 기억이 단 한번도 없는데, 저 아가씨는 도대체 무슨근거로 저런말을 지껄이는걸까..

역시 [소문은 와전된다]라는 말이 틀린말이 아니로군..

허참...

"너도 레오를 만나봤나봐?"

"아는 언니가 레오에게 죽은적이 있거든. 아무튼 레오 그녀석은 정말 질이 나쁜 녀석이야. 난 그렇게 믿고 있어."

"음.. 이상하다. 초보자들은 전혀 건드리지 않던데."

"너가 잘못 본거겠지. 레오 그자식이 절대 그럴리가 없어!

얼마나 잔인하고 나쁜 녀석인데! 윤정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소문은 많이 들었어. 그런데 직접 보진 못해서 잘 모르겠는걸?"

"아무튼 레오는 기피대상 1호야 1호!

페이야 너도 초보자니까 레오를 보면 무조건 피해다니도록 해 알겠지!?"

"들어보니 나쁜놈이네! 나도 레벨이 얼마 안되니까 조심해야겠다."

칼날바람이 몰아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밤은 바람한점 없는 고요한 날씨였다.

계단머리에 앉아 턱을 괴고 녀석들이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내가 그렇게 나쁜짓을 많이 했던가?"

1시간동안 내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쁜짓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한 말로 초보자를 건드린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PK대상은 레벨 150~300레벨 유저가 대다수였다.

그것도 길드가 있는 플레이어들만 상대했지 길드가 없는 플레이어들은 절대로 해친 적이 없다.

왠줄 아는가?

길드가 있는 새끼들은 그 방자함과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알게 모르게 초보들을 괴롭히면서 악행을 일삼는 무리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래서 길드가 있는 놈들만 타겟으로 잡았다.

물론 그들이 값진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이유중 하나였다.

그 점은 애써 부정하지 않겠다.

"뭐해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니,

윤지가 뒷짐을 진채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중..

"하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봐.

머리가 어지러워서 바깥바람좀 쐬려고 나왔는데 바람이 안부네? 하하하하"

저벅 저벅..

아무런 말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윤지..

"그런데 너는 왜 나온거야?"

"오빠랑 이유가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대뜸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탁!하고 내려놓는다.

한동안 말없이 침묵만이 흐르는중..

대략 수십초가 지나고..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듯 피식 웃어보이더니 윤지가 하얀 강아지 인형을 꺼내든다.

(페이녀석. 윤지에게 준다더니 결국 준 모양이네)

"오빠가 말했죠?"

"응?"

"내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눈치는 제법 빠르거든요.

오빠가 페이에게 말했죠?"

"뭐를?"

"내가 강아지 좋아한다는거 말이에요."

"……"

"말이 없는걸 보니 맞나봐요? 호호"

"아,아닌데…"

갑자기 분위기를 잡으면서 나를 쳐다보는 윤지..

뭔가 할말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무런 대답없이 그녀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천천히 입을 떼면서 말문을 여는 녀석..

"저는요… 저는 심사숙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연애를 하는것도 심사숙고 하고, 그 사람을 오랫동안 살펴보다가 정말 좋아한다는 마음이 생겨야 연애를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페이라면 모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루고루 갖춘 완벽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에요."

"……"

"그런남자가 선물을 했어요. 보잘것 없는 저한테…"

"……"

"고마웠어요 하지만 동시에 부담이 됐어요. 천천히 알아가면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또 페이는 유명한 아이돌 가수잖아요?

스캔들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잠깐의 이슈가 될순 있겠지만, 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겠죠.

그런 아픔을 페이에게 주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남성상도 페이같은 스타일이 아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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