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넘버원-29화 (29/378)

< -- 29 회: 오티를 가다 -- >

"후우~ 이정도면 다 챙긴건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가방에다가 각종 세면도구를 비롯해서 속옷과 수건을 꾸깃꾸깃 집어넣었다.

시계를 보니 거진 8시가 다 되어갔다.

빵빵해진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급히 집을 나섰다.

오티 첫날인 만큼 첫인상이 매우 중요한법!

첫날부터 지각을 할순 없는 노릇이라서 빠르게 걸음을 재촉해신도림역에 당도했다.

어느덧 시간은 8시 15분이 되어 있었다.

"1호선 영등포 쪽으로 쭉 가면 되겠다"

서울역에 가려면 영등포쪽으로 일곱 정거장을 쭉 가면 된다.

대략 30분이면 넉넉히 도착할수 있을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신도림역에는 이미 사람이 만원...

한창 출근 시간대라서 그런지 발 디딜틈 조차 없다...

오우ㅤㅆㅙㅅ!!

"젠장 이래서 지옥철 지옥철 하나보군."

[이번역은 신길. 신길쪽 방면의 지하철역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지하철이 왔다.

지하철이 오자마자 사람들이 내림과 동시에 줄을 서고 있던 반대편 사람들이 우루루 진입을 시도했다.

나또한 그들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까딱했다간 지각을 할수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지하철을 타야만 하는 입장이라서 온몸을 내던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앞에서 문이 철컥 닫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손을 뻗었지만 짧다.

문은 닫혔고, 지하철은 야속하게도 제 갈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30분.

잘못했다간 정말로 지각을 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길 이렇게 된이상 얌전히 기다리는 수밖에)순간적으로 택시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한창 출근 시간대라서 시간이 걸리면 더 걸렸지, 덜 걸리진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거 계속 기다리기로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내가 제일 앞자리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꺄아아악!!"

"꺄아! 페이오빠다! 꺄악! 오빠!"

(뭐지?)

대략 5분정도가 지났을 무렵.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지하철 내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남자 하나가 신도림역 지하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 포진하고 있는 여성의 숫자만 해도 대략 50여명.

이건뭐 의자왕도 아니고 뭔놈의 여자를 저렇게 줄줄이 끌고 다닌담?

(페이라고? 페이가 누구지?)

자세히 살펴보니, 이게 왠걸?

TV에서만 보던 유명한 아이돌 가수였다.

그는 여성 팬들에게 인사를 꾸벅꾸벅 해주면서도 순간적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인즉 길게 늘어진 줄 때문이었다(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회사차량을 타고 역까지 갈걸 그랬나?)평범해보이고 싶었다.

오늘 만큼은 아이돌 페이가 아니라, 대학생 강승일이고 싶어서 평범하게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 차량을 마다하고 손수 이곳에 온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각각의 줄을 보니 대기하고 있는 사람만도 대략 15명에 달했다.

이정도 숫자라면 다음 지하철을 기다려야만 한다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100퍼센트 지각이었다.

[이번역은 신길! 신길 가는 열차 입니다.]

마침 안내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페이는 맨앞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또래의 남성에게 다가가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말을 건넸다.

"저기…"

(어 뭐지?)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아이돌 페이가 말을 걸어왔다.

기분이 좀 묘했다.

유명한 아이돌이 나에게 말을 걸다니…

"예?"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 자리좀 양보해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이번 지하철을 꼭 타야 하거든요. 부탁드릴게요"

페이가 진지하게 말을 건네왔다.

솔직히 말해서 자리를 양보해주는건 어렵지 않다.

1번이나 2번이나 매한가지니까.

하지만 뒷사람들이 문제였다.

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간 뒷 사람들이 한칸씩 밀릴테니 불만이 생겨날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일단 뒷분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셔야 할것 같은데…"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페이가 줄을 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페이를 알아보고 흔쾌히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때마침 지하철이 도착했다.

페이와 함께 지하철에 탔다.

사람들을 비집고 헤쳐 억지로 자리를 잡았다.

뭔놈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건지 참…

직장인들이 문득 존경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각은 면할수있을것 같네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어딜 가시는 건가요?"

"아~ 서울역에 가고 있습니다."

"오? 서울역이요? 나도 서울역 가는데."

"오호!?"

어쩌다보니 방향이 같아서 절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되었고, 페이와 함께 서울역에 도착할때까지 수다를 떨기에 이르렀다.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

"유명한 아이돌 가수와 수다도 떨고, 덕분에 색다른 경험을 했네요."

"하하 별말씀을요."

한창 떠오르는 가수와 20분동안 수다를 떨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크나큰 광영이었다.

페이와 작별을 고하고 약속장소인 서울역 1번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니 8시 58분이다.

2분만 있으면 지각이기에 달리고 또 달렸다.

저 멀리 5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바로 오티식에 참석하는 넘버원 학과 학생들일 것이리라.

"늦어서 죄송합니다."

빛나리 교수 황찬영에게 허리를 직각으로 꺽었다.

그러자 빛나리가 피식 웃더니 이내 괜찮다는듯 나의 어깨를 두드린다.

"59분이라서 지각은 아니야. 그러니 괜찮다네."

"하하 그런가요?"

"활기차보여서 좋구만. 그럼 맨 뒤로 가서 줄을 서게나"

"응?"

막 내가 뒷자리로 가려던 찰나.

어디서 많이 뵌분이 황급히 달려오더니 빛나리 교수에게 다가가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페이였다.

나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온 페이가 빛나리 교수에게 허리를 꺽는것이다.

(뭐지? 설마 페이도 우리과 학생인가!?)찰칵 찰칵! 찰칵 찰칵!

난데없는 셔터소리에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기자로 보이는 수많은 무리들이 페이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고작 오티식일 뿐인데 이토록 많은 기자들이 와서 페이를 찍어대다니…

역시 잘나가는 아이돌은 뭐가 달라도 달라보였다.

"자네는 9시 정각에 도착했네. 그러므로 지각이 아니야."

"예 교수님"

"그나저나 이제 올사람은 다 온듯 싶구만"

이곳에 모인 인원은 정확히 60명.

교수들을 포함해 총 65명에 달하는 대인원이었다.

빛나리는 교수들과 학생들을 모조리 이끌고 서울역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허리야!"

주위사람들은 간단하게 세면도구만 챙겨온듯 싶었다.

그에 비해 나는 온갖 잡동사니를 전부 가져온탓에 가방이 매우무거웠다. 더욱이 오랫동안 지하철을 타면서 계속 서있질 않았던가?

기차에 앉으니 삭신이 쑤셔옴은 물론이거니와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어쩌다보니 또 형이랑 같이 있게 되네요."

옆에 있는 녀석은 바로 페이 강승일..

나는 59번째로 도착.

페이는 60번째로 도착.

그래서 59번과 60번이 같이 앉게 되었다.

같이 앉자마자 서로 나이를 공개하고 통성명했다.

내 나이가 23살이라는것을 알자 깜짝 놀라는 녀석.

처음과는 달리 싹싹하게 나를 대해주고 있는중..

"크큭. 근데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왔어요?"

"뭐 어쩌다보니…"

나의 가방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모습.

2박3일동안 펜션에 있어야 한다길래 옷이랑, 갖가지 용품들을 싸온건데 너무 많이 챙긴듯 싶다.

이걸 버릴수도 없고 참.. 짐일세 짐이야!

"우와!? 그럼 고1 때 아이돌이 되었다는 거네!?"

"그건 아니고, 연습생이었죠. 정식 데뷔는 고2때에요"

"그럼 연습생 생활을 단 1년만에 청산했다는거야?"

"운이 무척 좋았어요. 게다가 신곡 [RING RING]이 대박을 치는바람에 단숨에 수직상승하게 되었죠. 각종 음악차트에서도 1위하고, 프로그램을 맡아보라고 권유까지 받았고."

"우와 정말 대단하다."

"반은 운인걸요. 하하"

"아냐. 나도 링링 들어봤는데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

내가 노래 잘 안듣는 타입인데 너희 노래는 알고 있어"

"크큭 들어줘서 고마워요 형."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다. 니가 우리과에 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야. 보편적으로 연예인들은 연영과쪽으로 많이 빠지지 않나?"

"대개는 그렇죠. 하지만 저는 어릴때부터 게임을 워낙 좋아했던탓에 게임학부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회사에서 반대가 좀 심했을거 같은데?"

"물론이죠. 연영과 가라고 사장님께서 설득했을 정도니까요.

연예계 자체가 뜨면 먹고 사는데 지장없지만, 뜨지 않으면 거의 바닥생활을 해야하거든요. 특히나 가수쪽은 더욱 심하죠.

그래서 연기쪽으로 빠지거나 다른쪽으로 가닥을 잡곤 해요.

요즘 음반시장도 예전보다 무척 안좋아졌고..

그래서 대부분 연영과에 진학해서 제2의 직장을 알아보는 거죠"

"음. 그렇구나. 생각보다 빡센걸?"

"쉬운일 하나도 없어요. 더욱이 저희는 아직 신입이라서 눈치도 많이 봐야하고, 언행도 각별히 조심해야 하거든요."

"하긴 그렇겠다. 요즘 인터넷이 많이 발달해서 악플러가 판을 치고 있으니까. 연예인 직업 진짜 힘들겠네."

"다 각오한 일이니까 별 상관은 없어요. 이젠 내성도 많이 생겼고"

"아무튼 정말 존경스럽다."

"크큭. 존경은 무슨 존경이에요 형."

"어린나이때부터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꿈을 이룬거잖아? 당연히 존경 받을만 하지."

"뭐, 그건 그렇지만."

"저,저기요."

한창 페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때였다.

무려 다섯명에 달하는 여자아이들이 페이를 둘러쌓으며 말을 건네왔다.

"그룹 패스트 팬이에요. 실례지만 사인 한장만 해주실수 있어요? 호호"

"그야 쉽죠. 펜이랑 종이 있으세요?"

"네 여기요"

펜과 종이를 집어든 페이가 능숙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들이 꺅꺅 거리며 어찌할바를 몰라한다.

"고마워요!"

짤막하게 한마디를 남기고 후다닥 사라지는 동기생들.

문득 페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나도 연예인이나 한번 해볼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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