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회: 소환수를 얻다 -- >
"여진아. 여진아!!!"
힘겹게 외친 그 이름.
강.여.진.
태어나 처음 사랑했던 그녀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가지말라고 애타게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부름도 무시한채다른 남자의 손에 이끌려 내 눈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가지마!!가지마아아!!"
"미안해요. 미안해요 오빠."
"가지마아아!!"
벌떡!
헉헉..헉헉.
온몸에서 비오듯 흘러내리는 구슬땀방울.
주위를 둘러보니 여진이와 정체불명의 남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아무래도… 꿈을 꾼 모양이다.
"하아… 요즘따라 왜 자꾸 꿈을 꾸는거지?"
군대 꿈을 꾸는건 물론이거니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할머니도 종종꿈에 나타났다. 지금처럼 첫사랑이 꿈에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게임만 주구장창 한탓에 심신이 지친 까닭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시침은 정확히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아침.
매번 게임만 해대는 통에 밤을 새는 일이 허다한데, 오늘은 여진이 덕분에 아침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배가 고파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제 산 재료들이 싱싱하게 널려 있어서 오므라이스를 해먹을 요량으로 당근과 양파, 그리고 햄을 꺼내들었다.
오므라이스 조리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
먼저 세개의 재료를 조그맣게 썰어서 달궈진 팬에다가 당근을 볶은뒤, 햄을 볶고, 양파를 볶으면 된다.
이렇게 볶는 이유는 당근이 제일 단단해서였다.
당근>햄>양파순으로 볶으면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다.
볶아진 세개의 재료를 밥에다가 얹은후 계란을 부쳐서 위에다가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기호에 따라 케첩을 뿌려도 되고 안뿌려도 되지만 왠만한 이들은 케첩을 첨가해서 오므라이스를 먹곤한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 내가 했지만 정말 맛있군!"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조깅을 하면서 집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후 샤워까지 완료했다이제는 다시 일을 할 차례였다.
캡슐장치가 있는 안방으로 걸음을 옮긴후 넘버원에 몸을 실었다.
-넘버원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초기 가동 중입니다. 홍채 인식과 더불어 지문 인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위이이잉!
맞은편에서 인식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문 인식란에 손을 얹은후 홍채인식까지 완료했다.
그러자 캡슐안에서 다시금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기존에 플레이 하던 캐릭터가 두개 있습니다.
-헨리와, 레오중 하나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헨리를 선택했다. 그러자 우웅 하는 기계음과 함께 찬란한 빛무리들이 쏴아아 하며 쏘아졌다.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바로 넘버원 세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에 할란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할란드 산맥에서 죽은탓에 이곳으로 리스폰이 된것 같았다.
"젠장 레벨이 22로군."
재수없게도 레오나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레벨이 다운되어 버렸다.
경험치는 레벨 22에 95퍼센트 상태.
보상이 두둑한 연계퀘스트를 하려면 일단 레벨을 25까지 올려야 한다.
그래야 죽이되든 밥이되든 뭐를 할수 있는것이다.
"한번 뜨거운 맛을 봤으니 이제 대호 파티를 하고 있는 초보들을 쉽게 죽일수 없을거야."
놈들도 생각이 있을테니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진 않을것이다.
헨리는 생각을 정리하고 중앙광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앙광장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있었다.
헨리는 많고 많은 인원들중에서도 마법사들만 추려냈다.
그의 시선이 마법사들이 끼고있는 스태프쪽으로 향했다.
(일단 불속성저항은 익혔으니, 전격을 다시 익혀보자)한창 사냥에 불이 붙었을때 레오나에게 죽임을 당한터라 아쉽게도 아직까지 전격계열 속성저항을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헨리는 전격속성을 익히기 위해 전격 마법사만 찾아다녔다.
(스태프를 보면 마법사의 속성을 알수 있다)운좋게 지척에서 전격계열 마법사를 찾아낼수 있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끼고 있는 아이템을 보니 마나량에 치중을 뒀군.
아무래도 직업군이 메디컬 서포터인거 같은데?)메디컬 서포터는 일종의 서폿 캐릭터다.
쉽게 말해서 인트(int)보다는 위스(wis)량이 더 많은 캐릭터라고 볼수있다.
그렇기 때문에 막강한 공격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어쩔수 없이 또 3인팟으로 가야하나?)어그로꾼과 매디컬 서포터, 그리고 인트마스터는 초보자들 사이에서도 무난한 조합구성으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셋이 활동하면 잘 죽지 않고, 쉽게 사냥할수 있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이 조합을 가장 선호하고 있었다.
헨리가 눈앞에 있는 메디컬 서포터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였다.
"우와!! 오랜만이에요!"
왠 여자가 헨리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헨리의 시선이 대번에 돌아갔다.
"어? 당신은?"
안면이 있는 여자였다. 바로 12시간전에 죽었던 그녀들.
솔이와 솔비가 바로 그녀들이었다.
"비슷하게 생겨서 혹시나 싶었는데 헨리씨가 맞았군요! 홋홋홋!"
"하하. 반가…"
지강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솔이가 헨리를 보자마자 대뜸 파티를 걸어왔다.
"헨리님 우리 대호 잡으러 가요."
"우리 사냥잘하는거 알죠? 그러니까 얼른 가요!"
눈앞에 있는 어그로꾼은 여타의 어그로꾼들과 달리 이동속도가 발군이다. 즉 파티원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쉽게 사냥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녀들은 필사적으로 헨리를 설득했다.
다행히 헨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아.예 뭐."
(음. 운이 좋다고 해야하나? 정말로 칼타이밍 이로군)헨리로서는 아쉬울게 없는 제안이었다.
무엇보다 두여자는 헨리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전격계열 마법사들이 아니던가?
오히려 헨리가 고개를 숙여야 할 판국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쪽에서 가자고 조르고 있는 것이다.
헨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여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자 갑시다!"
"호호 그래여!"
"고마워요 헨리님!"
(이 사람들은 꽤나 매너가 좋은걸?)사실 헨리는 파티사냥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레오를 할때부터 아는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너무 맞아서 절로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것이다. 더욱이 넘버원 세계에서 믿을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아이템 하나 때문에 니꺼다 내꺼다 하며 말싸움을 벌이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심할경우 서로에게 검을 겨누며 으르렁 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조금 힘들어도 혼자 사냥하는게 마음이 편할정도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솔이와 솔비는 달랐다.
뭐든지 헨리에게 우선권을 양보하면서 아이템을 나눠가졌다.
그 때문에 그들의 파티 사냥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어? 영혼의 결정체다! 헨리님 이거 드실래요?"
"헨리님 영혼의 결정체 드세요!"
그녀들은 대호에게 드랍된[ 영혼의 결정체 ]를 망설임없이 헨리에게 건네주었다.
시가 5만원에 달하는 고급아이템인만큼 초보들 사이에선 인기템에 속했다.
그래서 파티원들은 영혼의 결정체가 나오면 죄다 자기가 먹겠다고 아우성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솔이와 솔비는 어그로를 끄는 헨리가 가장 고생한다고 생각해서 [영혼의 결정체]를 서스럼없이 그에게 건네주었다.
"정말 제가 먹어도 될까요?"
"그럼요! 제일 고생하는게 헨리님이신걸요!"
"그냥 편하게 드세요 편하게! 호호)100원, 200원 하는 템이 아니었다.
무려 5만원이나 하는 값진 아이템인 것이다!
5만원이면 김밥천국에서 10끼의 밥을 사먹을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라서 헨리는 마다하지 않고 영혼의 결정체를 자신의 가방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곤 그녀들의 성의에 보답하듯 어그로를 더욱 열심히 끌면서 파티사냥에 임했다.
[플레이어 헨리님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25가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개가 생성되었습니다.]
2시간동안 열심히 사냥해서 드디어 25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헨리는 25가 되자마자 미련없이 파티를 탈퇴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대호산맥에 머물 필요가 없어졌다.
솔이와 솔비는 헨리에게 조금만 더 사냥을 하자고 졸라왔지만 이미 헨리의 마음은 다른곳에 가있었다.
(매너도 좋고, 아이템 분배도 공정해서 좋긴 하지만 지금은 연계퀘스트가 먼저다.)
헨리가 미련없이 자리를 뜨려했다.
그러자 솔이가 헨리의 손목을 잡아채며 말을 걸어왔다.
"그럼 친구등록좀 가능할까요?"
"다음에도 헨리님과 사냥하고 싶어요"
차마 그것까지 거절하긴 뭐했다. 헨리는 둘을 친구추가 한뒤 대호산맥을 빠져나왔다. 25부터 행해지는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