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 회: 건드리면 안되는 사람 -- >
그시각 레오는 산봉우리에 앉아 초보들이 하는 사냥을 구경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악명이 높다고는 하나 이삼십 레벨을 죽일만큼 모질지는 않았다.
레오가 자리를 틀고 앉아있자 초보들은 그제서야 마음놓고 사냥에 임했다.
개중에는 레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초보들도 있었다.
"레오님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여."
"뭔데?"
"다른 사람들 아이디는 하얀색인데, 왜 레오님은 빨간색이에여?"
레오는 눈앞에 있는 초보가 무척이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가 피식웃으며 대꾸했다.
"나쁜놈이라서 그래."
"나쁜놈?"
"사람을 죽이면 아이디가 빨간색으로 변하거든.
그말인즉 나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되지."
"그,그런가요?"
초보자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눈앞에 있는 레오가 자신을 죽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회피하는 것이다.
레오가 안심하라는듯 그녀에게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마. 너희같은 초보자들은 죽이지 않으니까."
"그,그래요?"
눈초리를 보니 [니가 퍽이나~?] 이런 느낌이었다.
"사냥이나 열심히해. 그래야 내가 널 죽여주지."
"……"
초보자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레오가 재미있다는듯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농담이다. 좌우지간 빨리 사냥이나 해라."
"아,알겠어요. 그럼 저 가볼게요."
* * *
"지루하군."
레오는 산맥에 진을 치며 레드길드원들을 부리나케 찾아다녔다.
하지만 레드 길드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더욱이 산맥은 레벨 20-30대의 사냥터라서 고수들이 올리가 만무했다.
온다고 한들 레벨 100대가 전부였다.
그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초보들을 죽여 득템을 하기 위해서였다.
"레?레오!? "
"으악 레오다!!"
산봉우리에서 레오를 발견한 그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귀환 스크롤을 찢었다. 몇몇 초보자들이 레오에게 다가와 고맙다며 사례를 했다.
그때마다 레오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초보자들을 대했다.
"너희들을 구하려고 한게 아니야. 저놈들이 지레 겁먹고 튄거지."
"헤헤 그래도 고마운건 고마운거져. 자 이거 선물이에요."
초보자가 내민건 특대 쌀과자였다. 특대 쌀과자의 가격은 개당 100골드.
레오에게 있어 푼돈에 불과했지만, 초보자에게는 실로 귀중한 아이템이자 돈이었다.
"멍청하기는. 너나 먹어라. 난 필요없다."
"아무튼 지켜줘서 고마워요."
"……"
"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 소리와 함께 소서리스의 몸이 축 늘어졌다.
레오에게 기습을 당해 절명해 버리고 만것이다.
레오는 소서리스의 몸을 뒤적거렸다.
운좋게도 소서리스가 가지고 있던 마나의 지팡이를 획득할수 있었다.
"응?"
막 아이템을 챙기던 찰나.
저 멀리서 한떼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는게 보였다.
레오는 재빨리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은신스킬을 가동했다.
전장에 수십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전부 풍월길드에 속해있는 길드원들이었다.
풍월 길드의 분석원 하나가 소서리스의 몸을 분석하더니 부마스터 풍연에게 다가가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독화살과 실명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무래도 레오의 짓 같습니다."
풍연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벌써 레오에 의해 죽은 풍월 길드원만 해도 자그마치 다섯명이나 되었다.
오히려 레드길드원 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풍연은 길드마스터 풍월에게 모든상황을 보고했다.
풍월은 화를 참지 못하고 유레카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신네들 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
벌써 다섯명이나 숨을 거두었고, 마나의 지팡이를 비롯해 드랍한 아이템도 세개나 된다고!! 도대체 어떻게 배상할 거지??"
풍월은 모든 잘못을 유레카에게 덮어씌웠다. 레드길드원들 때문에 레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로인해 죄없는 길드원들이 다섯이나 죽어버린 까닭이었다. 만에하나 레드 길드원들이 레오를 건들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유레카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유레카가 입을 다물고만 있자 풍월은 더욱 화가 났다. 급기야 그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될 말까지 나오고 말았다.
"야이 개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마스터냐? 뭐라고 말좀 해보란 말이다!!"
자신이 속한 길드 마스터에게 욕을 하자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소운의 자신의 애검인 망자의 검을 치켜들며 풍월을 위협했다.
"욕은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
그러자 풍월 길드원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도 덩달아 검을 빼어들며 소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말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유레카가 나선것은 바로 그때였다.
"소운 그만해라!"
"하,하지만 이자식이 형님을"
"그만 하라고 했다!!"
"크윽.."
소운이 어쩔수 없다는듯 검을 거두었다. 그러자 풍월 길드원들도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검을 검집에 꽂아넣었다.
풍월이 유레카를 노려보면서 으르렁 거렸다.
"길드원 하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니! 아주 가관이군. 가관이야!
카오 길드가 쓰레기인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
풍월은 급기야 레드 길드 마스터 유레카를 보며 최후의 통첩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오늘부로 너희들과의 혈맹관계를 철회하겠다! 그렇게 알아라!"
말뿐만이 아니었다. 풍월은 크라우드 길드마스터가 있는 집무실로 걸음을 옮긴뒤, 크라우드를 만나 혈맹에서 빼줄것을 요구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크라우드 마스터와 루시퍼 마스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놈들 때문에 우리 길드원 다섯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욱이 피해본 아이템의 금액이 300만원에 육박하고 있지요.
더 피해를 보기전에 혈맹에서 탈퇴를 하려고 합니다."
풍월길드가 혈맹에서 빠진다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때문에 크라우드와 루시퍼는 필사적으로 풍월을 설득해야만 했다.
다행히 화가좀 가라앉았는지 풍월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다른건 몰라도 소운과 유레카에게는 꼭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길드원들을 납득시키려면 그수밖에 없으니 이점은 이해해 주십시오."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건 풍월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풍월의 비위를 맞춰줘야만 했다.
"너는 지금 당장 유레카와 소운을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쾅!!
화가 풀리지 않은듯 소운이 집무실에 있는 책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질 한방에 책상이 와지끈 하며 부서져 버렸다.
"그만해라 소운."
"형! 형은 분하지도 않습니까!?"
"……"
"레오는 아군 적군 가릴것없이 모두 죽여버리는 잔인한 놈입니다.
풍월 저자식이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은거죠!
그런데 왜 우리가 배상을 해줘야 한단 말입니까!?"
풍월길드는 레드 길드보다 월등히 좋은 전력을 가지고 있다.
혈맹을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다른 혈맹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때문에 레드 길드는 어쩔수 없이 그들에게 사과를 해야만했다.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유레카는 집무실에 불려가 풍월에게 배상금 300만원을 물어주기로 합의를 봤다.
뿐만 아니라 소운과 더불어 풍월에게 사과까지 했다.
마음같아선 혈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넘버원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강자에게 맞춰줘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발을 빨든 손을 빨든 하라는대로 해야만 했다. 그래야 살수 있는거다.
"약자는 어쩔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그만하자."
"분해서 그럽니다! 분해서요!!"
"나도 분한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오는것이야."
"어흐흐흑.."
레오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실착으로 상황이 이토록 변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레카는 레오나를 살며시 안아주면서 그녀를 달랬다.
"울지마라. 다 내잘못이다."
"미안해. 미안해 오빠. 정말 너무너무 미안해 흑흑."
길드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가장컸다.
유레카는 레오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달래기만 할뿐이었다.
"녀석이 제법 달아오른 모양인걸? 흐흐흐흐"
유레카에게 편지가 왔다. 편지내용은 별거 없었다. 사과를 하고 싶으니 일단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전부였다.
(패널티는 한시간 남았다. 그러니 여기서 종지부를 찍자.)질질 끌어봤자 좋을게 없었다. 레오는 유레카에게 텔레포터 앞에서 보자고 답신을 보낸후 귀환스크롤을 찢었다.
"오는군."
대략 5분정도 지나자 저 멀리 유레카가 보였다. 그의 곁에는 레오나와 소운을 비롯해 레드를 이끌고 있는 실세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레오는 손가락으로 여관을 가리켰다. 레오의 의중을 알아차린 유레카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여관에 방을 잡은 레오와 유레카는 책상머리에 앉았다.
소운과 레오나는 석상마냥 유레카의 뒤에 시립해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연것은 유레카였다.
"먼저 편지를 읽고 이렇게 만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고마울게 어지간히도 없는 모양이군.
썰 풀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유레카 또한 시간을 질질 끌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레오와 마주한다는것 자체가 무척이나 불쾌했다.
그는 곁에 있던 소운에게 곁눈질 했다.
그게 무슨 신호였는지 소운이 마법배낭에서 두툼한 주머니를 꺼내더니 책상머리에 얹어놓았다. 무게가 꽤나 나가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