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34화
“야. 김호연.”
“네, 이병 김호연!!”
“너 누나 있냐?”
“네, 있습니다!!”
“그래. 누나가 몇 살인데?”
“26살입니다!!”
“나이 차이가 좀 있네. 예쁘냐?”
“네에?”
김호연이 얼빠진 표정을 짓자 고참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옆에 있는 자를 불렀다.
“이 자식 봐라. 반응이 그게 뭐야? 야, 박준수.”
“네, 일병 박준수!”
“후임 관리 똑바로 안 할래?”
“시정하겠습니다!”
“됐다. 26살이면 나보다 누나네. 김샜다. 가봐.”
“네!!”
박준수는 김호연을 데리고 생활관 뒤로 나왔다.
“호연아.”
“네, 이병 김호..”
“조용히 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어떤 말씀이신지..”
“무조건 예쁘다고 했어야지. 하아. 어떡하냐. 저 새끼 완전 사이콘데.”
박준수는 자신도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이제는 군 복무기간도 1년밖에 안 돼서 6개월 빨리 왔다고 저 지랄 떠는 게 나도 참 싫긴 한데. 그래도 어쩌겠어. 여긴 군댄데.”
“...”
“그런데 말이야. 누나가 좀 못생겼나 보지?”
“그게.”
“괜찮으니까 말해봐. 뭐 어때. 우리 둘밖에 없는데.”
김호연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군 당국이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하면서 이제는 군인들이 부대 안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제 누나가 조금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래? 누군데?”
“여기.”
“오. 그래. 사진 좀 보자.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낫지.”
김호연이 건넨 스마트폰을 본 박준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김호연이 건넨 스마트폰 화면에는 국민가수 김하연과 나란히 찍은 김호연의 사진이 있었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스마트폰과 김호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너 이 새끼.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진짜로 김하연이 네 친누나라고?”
“네, 그렇습니다!”
“하하..”
박준수는 김호연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준 다음 한참 동안 제자리에서 웃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이다.
“크크크. 이 새끼. 이거 완전히 복덩이잖아? 너 진짜 내 밑에 잘 와주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이건 당분간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할까?”
박준수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김호연이 김하연의 친동생이라는 이야기는 금방 부대에 퍼졌다.
오래지 않아 김호연의 가족이 면회를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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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회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무슨 카페에 온 것처럼 내부 인테리어도 좋고, 밝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여기가 과연 군대가 맞나 싶기도 하다.
‘요즘 군대. 진짜 좋아졌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릴 보며 속닥거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
“대박. 김하연이다, 김하연. 게다가 김진형 대표도 있고 신유주 배우도 있어.”
“헐. 나 김하연 실물은 처음 봐. 진짜 예쁘네.”
“쟤가 김하연 동생인가? 어쩐지. 일반인이라기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네.”
나는 피식 웃어넘기고는 둘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연아. 군대 생활은 할 말 하니?”
“네, 아빠. 그런데 혼자서 오시지 왜 엄마랑 누나랑 같이 왔어요.”
그러자 유주가 툴툴댄다.
“얘는 사람이 기껏 찾아와줬더니. 무슨 말이 그래? 엄마가 우리 호연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하연이도 거들고 나섰다.
“엄마 내버려 둬. 아직 사회 물이 덜 빠져서 그래. 이 시키, 고생 좀 해봐야 하는데.”
호연이가 하연이를 노려보았지만 하연이는 계속해서 호연이를 놀려댔다.
얘들은 예전부터 그랬다.
하연이는 호연이 놀려먹는 재미에 사는 듯 아주 호연이를 가지고 놀았다.
호연이도 누나랑 5살이나 차이 나는데 맞먹으려고 했고.
호연이가 태어났을 때는 너무 예쁘다고 뽀뽀도 해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러더니.
‘호연이가 5살 때부터 누나를 이겨 먹으려고 하니까 그때부터는 쥐잡듯이 쏘아붙이네.’
그래도 말만 저러지 사실은 엄청나게 동생을 아꼈다.
지금도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연이가 보고 싶다, 얘가 여린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갈 수 있는데 왜 현역으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등. 호연이 걱정 일색이었다.
하지만 막상 호연이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같으니까 저렇게 애를 놀리는 거다.
아무튼 호연이가 밝아 보여서 다행이다.
녀석은 제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아주 똥고집도 이런 똥고집이 없었다.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호연이는 병역특례에 따라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아도 되었다.
IT 스타트업 창업을 이끈 병역 특례 제도가 축소되자 벤처기업의 인재 확보에 비상이 생기면서 이를 확대하라는 여론이 커졌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대학생이더라도 일정 요건만 만족시키면 산업기능요원에 선발될 수 있도록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그런데도 호연이는 현역으로 군대를 복무하겠다며 고집을 피웠고, 최근 입대했다.
뭐 아빠인 나로서는 이왕이면 아들이 현역을 나오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녀석이 나중에 뭘 할진 모르겠지만 현역으로 군 생활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부모 앞에서 왜 저렇게 티격태격 싸우는지.
그 모습이 현실 남매를 보는 것 같아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면회장에 와서까지 보일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쯤에서 아빠로서의 권위를 보여주기로 했다.
“애들아. 호연이도 누나가 바쁜 와중에 이렇게 면회를 와줬는데 고마워해야지. 하연이도 호연이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존중 좀 해주고.”
“어휴, 아빠. 얘가 무슨 군인이에요. 이런 애들이 전방에 있으면 나라 망해요.”
“진짜 사람들이 눈이 삐었나. 이런 사람을 국민가수랍시고 물고 빨고.”
“...”
이것들이 아주.
다행히 유주가 둘을 잡았다.
“떽! 그런 말하면 못써. 한마디만 더하면 아주 요절을 내버릴까 보다.”
두 남매는 요절이란 말에 뚝 입을 다물었다.
유주가 화나면 아주 무섭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아빠로서의 나의 권위는.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고개 숙인 대한민국 가장들이여. 모두 힘내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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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도리형제단은 한 해 매출만 1조 원에 달하고, 직원 수는 500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연예 기획은 물론 드라마와 영화도 제작하는 등 콘텐츠 제작사로 명성을 떨쳤다.
나는 직원들에게 회장님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국민들에겐 무척이나 친숙한 존재였다.
문세경 작가가 연재한 ‘아빠와 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민아빠라는 별명을 얻은 탓이 컸다.
요즘에는 블록체인으로도 사업영역을 확장하여 단순한 연예 기획사가 아니라 IT 회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등 젊은이들이 가장 취업하고 있는 회사 1위라는 명예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떠나면 한 여자의 남편이요, 두 자식의 아비인 가장이었다.
유주는 은하전쟁 이후 꾸준히 배우 활동을 이어오면서 간간이 주연 자리도 꿰차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호연이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유주에게 요즘 촬영 중인 영화는 어떠냐며 물었다.
“당신 지금 찍고 있는 거. 잘 진행되고 있어?”
“응. 배우들도 다 연기를 잘하고, 감독도 열정 있는 사람이야.”
“다행이네.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
“물론. 그런데 여보.”
“응.”
“하선이 있잖아.”
“류하선?”
“어. 하선이 또 임신했다는 소식 들었어?”
“뭐? 또?”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유주를 바라보았다.
류하선은 자신의 매니저인 강성식과 결혼한 다음 무려 5명이나 되는 아이를 출산했다.
요즘 같은 시국에 그녀를 보고 애국자라니 다산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걔 나이도 이제 결코 적지 않은데 또 애를 낳는다고?
“막내랑 몇 살 차인데?”
“10살.”
“대박. 부부간에 금슬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나이에 애를 보다니. 대단하네.”
“요즘은 하도 결혼이 늦어지고 의술은 좋아지니까 50살 넘어도 출산하는 경우 많잖아. 늦둥이라니. 귀엽겠다.”
유주가 늦둥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나를 보고 웃자 나는 천천히 시선을 회피했다.
요즘은 결혼하는 평균 나이가 40대였다.
30개까지는 각자 인생을 즐기다가 뒤늦게 결혼하는 게 유행이랄까. 일반적인 흐름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혼하는 커플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에선 이대로 있으면 곧 대한민국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며 전전긍긍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래도 늦은 나이지만 결혼하고, 애를 낳는 게 자연스러워진 모습이다.
아무튼 하선이가 늦둥이를 봤다니 조만간 축하 선물이라도 보내야겠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하연이를 보며 물었다.
“하연아. 너 미국엔 언제 가지?”
“내일모레.”
“그럼 오늘 이세미 회장이랑 저녁 먹는 거 문제없지?”
“응. 부회장님도 같이 오신데?”
“그래. 건우도 오늘 온다더라.”
그러자 하연이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건우도? 와. 오랜만이네. 건우는 잘 지내지?”
하연이는 유독 이세미와 정성수의 아들인 건우를 챙겼다.
가끔 보면 친동생인 호연이보다 건우를 더 예뻐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건우가 하연이를 잘 따라서 그렇다곤 하지만 아빠로서는 때때로 서운한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곧바로 이세미 회장 내외와 만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강원도에 있는 면회장에 들렀다 다시 서울로 오니까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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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하연이는 갈수록 미모가 물이 오르는구나?”
“오랜만이에요, 정 부회장님. 별일 없으셨죠?”
“별일이야 있겠니. 건우가 맨날 너 보고 싶다고 그래서 언제 한번 미국에 갈까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나와줘서 고맙구나.”
하연이는 건우를 스캔하듯 훑어보더니 엄지를 치켜올렸다.
“건우야. 너 안 본 사이에 몸이 엄청 좋아졌구나? 네가 올해 몇 살이지?”
건우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19살이요.”
“그렇구나. 헤헤. 우리 건우 다 컸네. 언제 이렇게 늠름해졌지?”
하연이가 건우의 볼을 꼬집자 건우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이세미와 정성수가 그런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더니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자. 이만하면 인사는 됐고. 자리에 앉으시죠.”
“그러죠.”
“오늘 대표님 가족들 만난다고 해서 여기로 장소를 잡았는데. 괜찮으시죠?”
“저야 좋죠.”
지금 이곳은 순대홀릭에서 순대의 고급화를 내걸고 만든 프리미엄 식당이었는데, 나와 하연이가 순대를 좋아하기에 이세미 회장 내외가 특별히 이곳으로 약속 장소를 정한 듯싶다.
오래지 않아 순대 스테이크가 첫 번째 요리로 나왔다.
순대를 스테이크처럼 바싹바싹하게 구워낸 요리로 이 집의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하연이가 이걸 보더니 냉큼 한 입 집어 먹는다.
“와.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순대야.”
“왜? 미국에선 먹기 힘드니?”
“물론이죠. 외국 사람 입맛에는 순대가 별로인가 봐요. 이렇게나 맛있는데.”
하연이는 본인이 연예인이라는 자각도 없는지 순식간에 눈앞의 순대를 해치웠다.
나는 이세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 사업은 어떠세요?”
“좋죠. 그런데 대표님은 최근에 블록체인 쪽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계시다면서요?”
“네. 요즘은 가상화폐로 경제가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긴. 저희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곰도리형제단이 커진 만큼 한신 그룹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이제는 국내 대기업 정도가 아니라 세계 100대 기업 안에도 자주 이름을 올릴 만큼 덩치가 커졌던 것.
이 모든 게 이세미 회장과 정성수 부회장의 공이 컸다.
두 사람은 결혼 이후 맡은 사업을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당당히 이창돌 전임 회장으로부터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았고, 오빠들도 순순히 이를 인정하며 형제간의 골육상잔으로 유명한 국내 재벌가에 큰 충격을 안겼다.
언론들도 이제는 더 이상 피의 잔치를 끝내야 한다며 무혈입성으로 회장에 오른 이세미 회장 내외를 칭송하기 여념이 없었다.
즐겁게 식사하고 있는데 건우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이런 말을 뱉었다.
“저기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힐 내용이 있습니다.”
응? 건우야. 갑자기 그렇게 정색하고. 무슨 일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