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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33화 (133/135)

내 딸은 국힙원탑 133화

아빠가 아련한 얼굴로 매장을 둘러보기에 슬쩍 물어보았다.

나랑 같이 다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지 않겠냐고.

마침 배경음으로 예전에 여기서 아빠와 함께 불렀던 ‘미리 크리스마스’도 흘러나오고 있고 말이다.

아빠는 조금 주저하는 것 같더니. 이내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하셨다.

아빠는 지나가는 종업원을 붙잡더니 이리 말했다.

“저기요.”

“네? 뭐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혹시 하연이랑 제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앗! 노래를요?”

상대는 깜짝 놀라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이더니 윗사람으로 보이는 이에게 뛰어가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아빠와 대화를 나눴던 종업원이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너무 감사한 일인데, 여긴 일반 식당이라 제대로 된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요.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예전에도 여기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거든요.”

“아! 저 알아요! 저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노래 이벤트 말씀이시죠?”

“네. 그때 하연이랑 둘이서 노래를 불러 우승했거든요. 덕분에 1년 무제한 이용권도 얻을 수 있었고요.”

아빠가 즐거운 듯 이야기를 꺼낸다.

종업원은 영광이라며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마이크 2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잠시만요. 다른 손님들도 있으니까 먼저 양해를 구한 다음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얼마든지요.”

그녀는 마이크를 켜더니 가볍게 손으로 두드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리십니까?”

사람들이 이쪽을 돌아보며 수군거린다.

“응? 뭐 하는 거야?”

“하연이 생일인가?”

“바보. 하연이 생일은 지금 아니거든.”

“그럼 종업원은 저기서 뭐 하는 거지?”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더니 수줍게 입을 열기 시작한다.

“식사 중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매장 안에 하연 양과 가족분들이 와계시는데요. 손님들을 위해 즉석에서 공연해주시겠다고 합니다. 다들 괜찮으실까요?”

그녀가 말을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물론이죠!!”

“대박!! 노래해! 노래해!!”

“이게 무슨 일이야! 하연이 노래를 라이브로 보는 날이 오다니!”

사람들이 열화와 같은 성화를 보내자 그녀도 조금 자신감이 붙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두 분이 노래를 부르시는 동안에는 잠시만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감상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두 분. 무슨 노래를 부르실 건가요?”

나는 아빠와 눈이 마주쳤고, 둘 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쳤다.

“미리 크리스마스!”

식당 안에 있던 이들도 큰 호응을 보였다.

“오오! 미리 크리스마스 좋지!”

“이거 예전에 두 사람이 여기에서 같이 불렀던 곡 아냐?”

“최고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어쩜.”

나는 아빠와 함께 식당 한쪽에 자그마하게 마련된 무대 위로 올랐다.

성탄절은 이미 지났지만, 여전히 이 곡은 겨울 감성에 꼭 맞는 노래였다.

아빠는 반주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반주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를 타이밍이 왔다.

“하늘에선 하얀 눈이 오고~”

“모투카아 즐거우운 성탄절~”

아빠가 첫 소절을 부르면 내가 이어서 다음 소절을 부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리 크리스마스’로 대동단결한 패밀리 레스토랑.

여기에 있는 이들은 고작 해봤자 100여 명 안팎이었지만. 결코 6만 5천여 명이 밀집한 얼리전트 스타디움에 밀리지 않는 열기와 호응이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이제 내일이면 나도 6살이 되는구나. 그땐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 흥분으로 설레오기 시작한다.

#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더니.

해가 바뀌었고, 벌써 2월이 되었다.

설날 연휴를 맞아 처가댁을 방문한 우리는 TV 앞에 옹기종기 앉아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시작한다!”

장인 어르신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눈을 반짝였다.

바로 하연이가 특별 게스트로 초대받은 음악 다큐멘터리 드라마 ‘이하연의 환생’ 2부가 방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부는 어제. 그러니까 설날 당일에 방영되었는데 이하연의 명곡을 배경으로 그녀의 옛 지인들이 나와 홀로그램으로 표현된 이하연과 여러 가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 으아아앙 ㅜㅜ 이하연 언니. 이거 보고 있어요? 홀로그램이라지만 너무 진짜 같아서 나 펑펑 울었어요

└ 요즘 기술력 진짜 좋구나. 레알 이하연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어

└ ㅇㄱㄹㅇ ㅋㅋ 내 동생은 저거 진짜 이하연 아니냐며 TV 앞으로 달려가더니 얼굴을 처박더라. 덕분에 나한테 디지게 혼났지만

└ 언니 보고 싶어요. 다시 돌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

└ 와......진짜 너무 좋다. 이 말밖에 할 게 없어..

└ 그녀가 떠난 지 5년. 그녀의 노래는 아직도 세상에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 국민가수 이하연도 정말 역경이 많은 사람이었네요.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음

└ 이하연한테 저런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지 전혀 몰랐어. 이하연 아빠 이 개새끼. 아직도 살아있나 모르겠네

중반 부분까지는 그녀가 어떻게 국민가수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와 함께 그녀가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들이 나와주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이하연이 친부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내용이 그녀의 심리상담 전문의와 지인들의 입을 통해 나오면서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이하연과 그녀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넘쳤다.

대부분 이하연의 친부에 대한 욕이었다.

아무튼 2부는 이하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선후배 가수들이 나와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이하연과 합동 무대를 펼치는 콘서트 무대로 꾸며졌다.

유명한 가수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나와 이하연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로 눈앞에 이하연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하연과 체격과 얼굴이 닮은 배우를 오디션을 거쳐 뽑은 뒤 그 대역이 촬영한 영상 위에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 시각효과 기술을 덧입혀 이하연을 되살려낸 것이다.

실제로 하연이의 말에 따르면 녹화 현장에서는 대역 없이 혼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특별게스트 가수가 혼자 노래를 부르면 대역이 녹화한 장면과 합성하여 지금 이런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는 건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어색한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새삼 VFX 기술의 놀라움을 실감한다.

방송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하연이의 차례가 왔다.

장모님이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탄성을 터트렸다.

“하연이다. 김하연이랑 이하연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어!”

그러게.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게 정말이지 한 무대에 같이 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연이의 선창으로 시작된 <완벽한 날>은 점점 더 분위기가 고조되며 하이라이트 부분에 이르렀다.

지금 들어보니 한 사람이 따로 녹음을 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흡사하다.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달라서 그게 더 절묘한 하모니를 이뤘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완벽한 날>의 가사를 따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의 합창 무대가 끝이 났고, 장인 어르신이 먼저 입을 여셨다.

“대단하구먼. 정말.”

“그러게요.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도중에 겹쳐 보이더라니까요.”

동의한다. 인터넷 일각에선 우리 하연이가 이하연의 환생자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빠인 나 역시도 정말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하연은 친부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택했다.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적어도 우리 하연이만큼은 절대로 그런 길을 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지.

나는 바닥에 있던 하연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하연아. 우리 예쁜 딸 하연아. 아빠가 절대 우리 하연이 힘들지 않게 잘 보살필게. 언제나 지금처럼. 내 옆에 있어주렴.’

하연이도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손에 힘을 주며 미소를 보였다.

정말 착하고 예쁜 아이다.

#

7월을 맞아 극장가는 은하전쟁의 개봉을 맞아 발 디딜 틈 없이 소란스러웠다.

팬데믹도 거의 끝물인데다가 프리퀄 웹툰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개봉에 앞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선 엄청난 호평을 받았지만, 기자와 관객의 시선은 다를 수 있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지나친 우려였다.

영화관을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엔딩 크래딧이 모두 내려가기까지 단 한 명도 출입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엔딩크레딧이 모두 끝나자 엄청난 박수와 함께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밖으로 몰려나오더니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진짜 진짜 재밌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 수가 있지?”

“난 내일 또 보려고. 예매가 가능한지 모르겠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네. 마지막에 나온 OST가 하연이가 부른 곡이지? 영화랑 너무 잘 어울리더라.”

얼굴을 가리기 위해 챙이 큰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사람들은 내가 김진형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휴. 다행이다. 사람들이 좋게 봐준 모양이야.’

그렇게 은하전쟁이 개봉된 지 불과 10일 만에.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은하전쟁’ 역대 최단기간 1천만 관객 돌파>

<영화 ‘은하전쟁’ 10일 만에 1천만 관객 돌파...SF 장르에도 꽃바람 부나>

<영화 ‘은하전쟁’ 천만 돌파, 끊이질 않는 인기>

<다시 보겠다는 사람 줄이어...‘은하전쟁’ 흥행 신기록 어디까지?>

<은하전쟁, 한국 영화 흥행의 새 역사를 쓰다>

덕분에 공동투자사인 한신 엔터테인먼트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올랐다.

해외판권 및 부가판권 계약까지 따낸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은하전쟁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지 고민한 끝에 영화 개봉 1달째가 되는 시점에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에도 영화를 풀겠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도 너무 이른 시각에 극장이 아닌 OTT 시장에 영화를 푸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단 10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차라리 그편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힘을 얻었단다.

‘하긴. 너무 오랜 기간 영화가 풀리지 않으면 해외에서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불법으로 유출된 버전을 몰래 볼지도 모를 일이지.’

아무튼 요즘은 쏟아지는 축하 전화로 휴대폰을 쳐다보는 게 두려울 정도다.

지금도 모르는 전화로 전화가 걸려 오고 있지 않나.

한편, 영화의 흥행과 함께 OST 역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특히 타이틀곡인 <도전>은 국내 차트는 물론이고 아직 영화가 개봉되지 않은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도 TOP 10에 오르며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갔다.

궁금해서 엘링 홀란드의 트위터를 살펴봤더니 역시나.

녀석은 이 곡으로 기상송을 바꿨다면서 엄지 이모티콘을 10개나 붙여놓았다.

OST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주연 여배우인 류하선의 파격 인터뷰로 또 한 번 주목을 끌었다.

<‘은하전쟁’ 히로인 류하선, 매니저와 공개 연애 밝혀>

<류하선 “그동안 몰래 연애했지만, 대표님과 천만 관객 달성하면 당당히 밝히기로 약속”>

<천만 배우 류하선의 마음을 사로잡은 매니저는 누구? 키 185cm에 태권도학과 출신 훈남>

이게 앞으로 류하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뒷일은 그녀가 감당할 일이었다.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서 주연배우들뿐 아니라 조연배우들까지 덩달아 큰 인기를 누렸다.

한은선 역을 200% 소화한 유주에게도 찬사가 이어졌고, 벌써 방송가와 영화계에선 그녀를 섭외하고 싶다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유주가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선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

“으응?”

유주가 내 가슴팍을 야릇한 손길로 쓰다듬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 말이야.”

“어어. 갑자기 왜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 하하.”

내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자 도망가지 말라며 내 손을 붙잡는 유주.

“우리 둘째 가져야지. 안 그래? 응?”

커억. 지금까지는 특별히 하연이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는데.

유주가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은선은 혼자서 힘겹게 딸아이를 키우다가 결말 부근에 다른 남자 조연과 이어져 둘째를 낳는다는 설정이었으니까.

내가 당황하는 사이.

유주가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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