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32화
“요즘 요런 게 유행이라고 해서 말이지. 어때? 먹을만 하누?”
“네네. 맛있네요. 그런데 이거 안에 들어있는 게 두부 맞죠?”
그녀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원래 이 집의 순대는 어느 분식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찹쌀순대였다.
다만 이 집만의 노하우가 있어서 쉽게 질리지 않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두부가 추가되고 선지의 비중이 높아졌는지 훨씬 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바꾸신 거예요?”
“두부가 들어가면 훨씬 더 꼬숩다 아니가. 뭐라 카더라? 순대 홀리익? 거기 순대도 두부가 들어가꼬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라던데?”
여기서 최철상 대표님의 ‘순대 홀릭’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확실히 최 대표님의 ‘순대 홀릭’ 음식들은 요즘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하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순대라는 이미지 덕분에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요즘도 잊을만하면 무상으로 순대를 보내주신 등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기도 하였고.
다만 하나분식의 순대는 이 집만의 매력이 있었는데 무언가 잡다하게 뒤섞이면서 아쉬움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할머니. 혹시 요즘에도 사람들 많이 와요?”
그러자 주인 할머니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전보단 조금 떨어졌구마.”
“그래요? 혹시 순대를 이렇게 바꾼 뒤로 아닌가요?”
“그걸 어키 알았노?”
“역시.”
나는 할머니에게 지금 이 순대도 맛있지만, 예전의 순대. 그러니까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찹쌀순대가 훨씬 더 좋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옆에서 하연이도 나를 지원사격하고 나섰다.
“마자요! 예전 순대가아 훨씬 더어 마시 조았어요!”
이렇게 말이다.
할머니는 순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카구먼. 그카였어. 내가 뭔 짓을 저질렀누.”
그녀가 워낙에 낙담하기에 나는 원래 순대로 돌아오면 그걸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주기로 했다.
“유투브으? 머리에 쪼그마한 카메라 쓰고 찍는 거?”
“네. 전에도 저희가 그렇게 찍고 유튜브에 올려서 손님들이 많이 늘었잖아요?”
안 그래도 요즘 유튜브 영상은 많이 못 찍고 있던 참이었다.
하연이는 하연이대로 바쁘고 나 역시 회사 일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
‘하연이랑 주로 찍었던 영상이 순대 먹방이었던 만큼 예전의 순대로 다시 돌아온다면 나쁘지 않은 콘텐츠가 되겠지.’
빈말이라도 지금 이 순대가 엄청나게 맛있다며 영상을 찍어 올리기는 조금 그랬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맛이랄까.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예전의 그 순대 맛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그녀와 약속을 한 다음 분식집을 나왔다.
그런데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하연이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아빠아.”
“응.”
“나 오늘 깨달아써요.”
“응? 뭘?”
“다른 데서 유행한다고 해서 그걸 너무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요. 나만의 색을 유지해야 한다고요.”
오호라. 분식집 순대를 먹고 그런 깊은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역시 내 새끼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스스로에게도 다짐했다.
외부의 바람에 흔들리지 말자고.
내 본질을 깨닫고 그걸 깊이 팔 때 다른 이와는 다른 차별성과 매력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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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전쟁은 막바지 작업으로 VFX 팀이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몇 달 뒤면 영화가 본격적인 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되겠지.
영화와는 별개로 문세경 대표가 직접 그린 은하전쟁의 프리퀄 웹툰은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웹툰계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
└ 퀄 미쳤네. 문세경은 로맨스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띵작을 만들 줄이야
└ 원작 세계관이 뛰어난 듯. 이거 영화로 나오면 꼭 봐야겠다
└ ㅇㅇ 김수혁 씨 나름 충무로에선 만년 유망주로 손꼽히던 사람이었음. 드디어 터지네
└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뭐라고 하기는 이르지만 최소 웹툰만 놓고 보았을 때 SF 영화의 본류인 미국에서도 충분히 먹힐 듯
└ 이거 15화로 끝인가요? 더 보고 싶은데 그 뒤로 없네요?
└ 현재 한신 코믹스에서 장기 연재 준비 중이라고 하니까 영화 개봉에 맞춰서 16화가 나올 거예요
└ 으 재밌다 재밌어!!!! 빨랑 다음 화를 가져오란 말이야!
은하전쟁 웹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한신 그룹의 웹툰 플랫폼인 한신 코믹스에 몰리면서 신규 가입자가 폭증했다.
덕분에 웹툰 플랫폼 3위였던 한신 코믹스는 단숨에 2위로 약진.
기존에 있던 다른 한신 코믹스 웹툰들의 조회수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세미는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은하전쟁 프리퀄이 엄청 잘 나왔던데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한신 그룹에서 프로모션을 잘해주신 덕분이죠.”
-아네요. 아빠가 저보고 한신 코믹스도 직접 관리해보라고 하시는 등 덕분에 제가 요즘 아주 그룹 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어요.
“한신 코믹스까지요? 이러다가 한신 그룹에서 문화관광사업 관련해서는 다 가져가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러면 좋겠네요. 아무튼 영화도 잘 될 테니까 샴페인은 너무 빨리 터트리진 않을게요. 그런데 지금 미국이라시죠?
“맞아요. 하연이 콘서트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예정이니까요.”
-힝. 꼭 보고 싶었는데. 유튜브로도 생중계한다죠?
“네. 마지막 공연은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될 예정이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하연이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이세미는 호텔&리조트 사업을 시작으로 영화사업. 그리고 웹툰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며 경제 기사의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가 한신 그룹의 차기 회장으로 부각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오빠들도 긴장해야 한다며 언론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모양새.
눈썰매장에서 처음 만났던 인연이 이렇게 거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하연이 미국 콘서트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머무는 중이었다.
지난달에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대규모 콘서트가 있었는데 1달 만에 새로운 공연이 잡힌 것.
그만큼 현재 미국 내에서 하연이를 찾는 수요가 높아진 탓이다.
총 4차례 진행되는 라스베이거스 콘서트는 이미 모든 표가 매진되어 대략 3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몰릴 예정이었다.
콘서트가 열리는 얼리전트 스타디움은 한 번에 약 6만 5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영향으로 공연장 인근 숙소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숙소 구하기 경쟁이 치열했다.
‘한신 그룹에서 운영하는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잡지 못했더라면 우리 가족 역시 숙소가 없어 고생했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유주와 함께 호텔 1층에 위치한 카지노로 이동했다.
하연이는 공연 준비한다고 여념이 없었고, 라스베이거스 하면 역시 카지노 아니겠나.
나는 무슨 도박이냐며 집에서 쉬겠다는 유주를 끌고서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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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요물이었다.
잃을 만하면 따게 해주고, 딴다 싶으면 또 잃고.
원래 카지노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해보니까 왜 사람들이 카지노에 빠지는지 알 수 있었다.
“유주야. 그거 그만하고 다른 데 둘러보자.”
“잠시만. 조금만 더 하면 터질 것 같은데.”
진형이는 이제 슬롯머신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며 다른 곳을 둘러보자고 했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화면에 같은 그림 3개가 나오며 기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와우. 5만 불에 당첨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5만 불이라고?
지금 1달러에 환율이 1,400원이니까 이게 다 얼마야.
무려 7,000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지금까지 여기에 투자한 돈은 불과 15만 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꺄아아아!!”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진형이도 대단하다며 나를 축하해준다.
“하하. 뭐야. 여기 오기 싫다더니 초심자의 행운이 터진 거야?”
“아 몰라. 나 어떡해, 진형아.”
“어떡하긴 어떡해. 고맙게 쓰면 되지. 축하한다.”
진형이는 자기도 조금 더 슬롯머신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나는 진형이의 손을 잡고 서둘러 카지노를 빠져나왔다.
갑자기 큰 돈을 벌었는데, 여기 더 있다가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경제관념이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진형이가 아쉬워했지만 이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한국에 돌아가면 절반은 기부해야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대낮처럼 훤한 라스베이거스 거리를 진형이와 함께 거닐었다.
돈도 따고, 데이트도 하고.
하연이 덕분에 미국 여행 와서 아주 좋은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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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전트 스타디움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수많은 팬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내 공연을 즐겁게 관람해주셨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명을 모두 끄자 팬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동시에 켜며 빛무리를 만들어주셨던 것.
마치 더 이상 어둠은 없을 거라는 듯 하나 둘 켜지는 불빛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는 데뷔곡인 <원패밀리>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이번 타이틀곡인 <열정>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를 채웠다.
하지만 이쯤 되면 팬들은 궁금할 것이다.
왜 가장 유명한 <위아더원>을 부르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나는 공연이 끝난 것처럼 한동안 무대 위에 가만히 서 있었다.
팬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무대 위로 <위아더원>의 반주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핫레스트의 리더이자 메인보컬인 헤리 우드게이트가 바닥에서 위로 튀어 올랐다.
“Let’s go!”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와아아아아아!!!”
관객들이 엘리전트 스타디움이 무너져라 함성을 질렀고, 나와 우드게이트는 신나게 <위아더원>을 불렀다.
사전에 전혀 그가 무대에 오르리란 걸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우드게이트는 내게 눈을 찡긋거리고선 무대 뒤로 빠졌다.
아마 이 콘서트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 나라는 걸 부각해주기 위함일 것이다.
고마워요, 우드게이트.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한 번. 좌우도 두 번.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관객들에게 인사했고, 이것을 끝으로 오늘 콘서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킴하요온!! 킴하요온!!”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온다.
전생의 이하연으로는 결코 이루지 못했던 대업을. 5살 꼬마가 이뤄냈다.
모두 내 곁에 아빠가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아빠. 나는 팬들에게 크게 손을 흔드는 한편, 마음속 깊이 아빠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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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차례의 콘서트가 끝나고 나와 유주. 그리고 하연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벌써 올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인근의 패밀리레스토랑을 방문하여 하연이의 미국 콘서트가 무사히 끝난 걸 자축했다.
“하연아 축하한다!”
“하연아 정말 수고 많았어. 공연 너무 멋지더라.”
“헤헤. 감사합니다아!”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우리의 방문을 기념하여 계속해서 하연이의 노래만 틀어주었다.
나는 주변을 한 바퀴 스윽 둘러보며 감상에 빠졌다.
‘여기서 하연이랑 둘이서 노래를 불러 우승을 차지했었지. 그 뒤로 유주가 이상한 남자와 소개팅을 한 곳도 여기였고.’
그만큼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장소다.
그런데 하연이가 기분이 좋았던지 내게 이런 제안을 던지는 게 아니겠는가.
“아빠아. 우리 여기서 또오 노래 부를까요오?”
응? 노래를 부르자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