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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31화 (131/135)

내 딸은 국힙원탑 131화

“히로인은 먹방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라는 설정이에요.”

“먹방 유튜버요?”

“네. 그러니까 주인공과 히로인 모두 같은 유튜버인데, 분야는 서로 다른 거죠. 주인공은 IT 전문 리뷰어. 그리고 히로인은 먹방 전문 유튜버.”

“으흠. 흥미로운 설정이네요.”

“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유튜버 커플이 많다고 해요. 서로의 방송을 보다가 호감을 느껴서 사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나 역시 유튜버를 자처하곤 있지만, 유튜버가 메인잡은 아니라서 자세히 알진 못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는 건데요?”

“각자 서로의 방송을 즐겨보다가 우연한 계기로 합방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주인공이 너무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먹는 거 아니겠어요? 히로인은 한눈에 그에 반하고, 그러다 서서히 연인 사이로 발전해 가는 거죠.”

“그럼 딸은 직업이 뭔데요? 어린아이한테 직업이라는 말이 조금 웃기게 들릴 순 있어도 하연이는 가수잖아요?”

“아. 딸은 그냥 평범한 일반인으로 하려고요. 솔직히 하연이는 너무 재능이 충만한 아이잖아요?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면 독자들도 몰입하기 어렵지 않나 싶어서요. 단지.”

“단지?”

“엄청 앙증맞고 귀엽고 예쁘다는 설정만 있는 평범한 꼬마예요.”

“하하. 일리가 있네요. 솔직히 제 딸이지만 가끔은 속에 어른이 들어있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오홍. 그 이야기 재미있네요. 조금 더 해주실래요?”

나는 하연이가 작곡이든 작사든, 노래든. 심지어 연기와 외국어까지 못하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대단하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아이네요. 하연이가 전에 출연한 작품 있잖아요?”

“<환생자를 주웠습니다>요?”

“네네. 거기 나온 제목처럼 환생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사실 저도 과거 웹소설을 즐겨보았는데, 회빙환이라고 해서 웹소설 주인공 중에는 그런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많잖아요? 저 역시 하연이가 환생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맞아요. 음. 이건 이것대로 다음에 또 다른 작품으로 그려보고 싶네요.”

“네?”

“그러니까 유명한 국민가수가 어린아이로 환생하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것도 나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아주 작품 욕심이 끝이 없다.

아무튼 우리는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나는 IT 전문 리뷰어고 유주는 먹방 유튜버. 그리고 하연이는 평범한 꼬마라는 설정이라.

세 명이 동시에 등장하니 스파이 패밀리라는 작품도 떠오르고. 나름 재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것 같다.

#

어느덧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나 무더웠는데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에어컨 타령을 했던 게 언제인가 싶다.

강성식은 결국 류하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우리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로 동생들과 함께 떠났다.

대부분의 돈은 류하선이 빌려주었지만, 명의는 강성식의 이름으로 했다고 하니 류하선이 얼마나 강성식을 아끼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류하선은 실제로 강성식과 결혼이라도 할 생각인지 자주 그의 집으로 놀러 와 동생들을 챙겨주는 한편 강성식과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이번 작품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 공개 연애를 해도 괜찮다고 한 건 나였으니까 모쪼록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하연이는 빠르게 신곡 작업을 모두 완성하고는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이전에 냈었던 4개의 노래가 모두 수록되어있는 한편, 새로 3곡의 신곡을 추가해서 정규앨범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타이틀곡이었던 ‘열정’은 스페인 음악인 플라멩코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하연이 말에 따르면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드미컬한 연주와 정열적인 안무는 ‘열정’이라는 제목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곡은 발표하자마자 국내 차트 1위를 휩쓴 것은 물론이고.

빌보드 차트에서도 발표 하루 만에 핫 100(Hot 100)에 들며 호조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게 뮤직비디오를 먼저 선보이지 않았는데, 선종이 형이 뮤직비디오 제작을 완성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했던 지원군이 등장했다.

FC 바르셀로나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딱 좋아할 만한 노래라며 하연이의 신곡을 소개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뿐 아니었다.

맨체스터 시티 FC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엘링 홀란드 등. 감독과 주요 선수들이 모두 이번 노래에 대해 극찬을 남겼다.

특히 엘링 홀란드는 이 노래는 자신의 소울 뮤직(Soul Music)이라는 짤막한 말과 함께 기상송으로 최고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작년에 하연이와 협업했던 핫레스트 멤버들은 물론 유명 아티스트들이 대거 극찬 대열에 동참했다.

동방의 꼬마가 또 일을 냈다며 말이다.

그런 까닭일까?

하연이의 신곡은 발표 나흘째인 오늘. 10위권을 파고들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건 뮤비를 선보인 다음에야 가능한 순위라고 생각했는데.

하연이가 정말로 일을 내고 있었다.

#

벌써 4주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바로 내가 만든 ‘열정’ 말이다.

전 세계 많은 분이 내 노래를 들어주신 덕분이다.

한국과 동남아는 물론이고. 스페인과 남미. 그리고 미국에서도 <열정>의 음반 판매량은 빠르게 늘고 있었다.

<김하연 4주째 빌보드 1위...전 세계는 ‘열정’으로 하나 돼>

<김하연 4주째 1위...‘열정’ 올해 최다 1위 곡 등극하나>

<미국도 반해버린 김하연, 타임지 표지모델로 선정>

<김하연의 ‘열정’ 1위가 가지는 7가지 의미>

끊임없이 관련 기사가 나왔고, 인터뷰 문의도 폭증했다.

나는 아이패드를 배게 위로 던져버리고는 벌러덩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빌보드에서도 1등을 먹었어. 내 노래가. 내 춤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야.’

물론 이전에도 핫레스트와 협업한 <위아더원>이 오랫동안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었지만, 그땐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열정>을 달랐다.

작사도, 작곡도, 안무도.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

이제는 더 바랄 게 없다.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전생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연이어 실패했던 것을.

지금은 어린 나이에 단숨에 이뤄버렸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게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아빠가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지 않았더라면 결단코 이런 일을 해낼 순 없었겠지.

엄마에게도 감사하다.

그녀는 내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만약 신이 있다면. 내게 환생이란 이런 특별한 기회를 준 자가 바로 그라면. 그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전하며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방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나보고 잠깐 산책 좀 하고 오겠냐며 물었다.

“하연아. 아빠랑 둘이서만 잠깐 어디 나갔다 올래?”

“지금?”

“응. 엄마는 외갓집에 가셨잖아. 우리 둘이서만 오랜만에 데이트하자.”

“쪼아요!”

아빠와의 둘만의 데이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 아닌가.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하연이와 함께 찾은 곳은 나와 하연이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였다.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 말이다.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서 느긋하게 걸어왔더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하연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아. 여긴 왜에?”

“그냥. 너랑 꼭 다시 와보고 싶었거든.”

하연이가 흥미로운 얼굴을 짓더니 안으로 들어가 보잖다.

으응? 안으로? 그래도 괜찮으려나?

하지만 하연이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한 우리는 복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 층당 총 6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

여기서 하연이를 처음 만났고, 함께 지냈는데.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장소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옆집 문이 활짝 열리더니 누군가와 마주쳤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하연이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며 외쳤다.

“에엑? 김하연이랑 김진형? 당신들이 여긴 어쩐 일로?”

“안녕하세요. 예전에 하연이랑 제가 여기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었네요.”

“아. 그러셨구나. 대박. 진짜로 두 분이 여기 사셨던 거예요?”

물론이지. 여기서 하연이 똥 기저귀 치우고 분유도 주고. 하하. 그때 생각을 하니까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상대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 옆집에 두 분이 사셨다고 하니까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드네요. 그런데 어쩌죠. 여기 곧 철거하는데.”

“네? 철거한다고요?”

“네. 들어오실 때 입구에 붙어 있던 스티커 못 보셨어요? 올해 모두 철거하고 집주인이 새 건물을 짓는데요. 너무 낡았잖아요.”

그렇긴 한데. 하연이와 추억의 장소가 곧 허물어진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뭔가 허전했다.

“그리고 지금 그 집은 아무도 안 살아요. 문 열어보세요. 그냥 열릴걸요?”

진짜다.

문고리를 잡고 열었더니 그냥 스르륵 열렸다.

“사실 저도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서 아직 방을 빼지 못하고 있네요. 아 참. 혹시 두 분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우린 그에게 사인해주었고, 그는 약속이 있다면서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천천히 둘러보셔도 돼요. 어차피 지금 이 건물에 남은 사람은 저뿐이라서 아무도 없거든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래서 우리는 여유롭게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 안으로 들어와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나간 뒤로 아무도 이곳에서 살지 않았는지 그때 방을 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제법 많은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그 뒤로 누가 이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깨끗했다.

나는 하연이를 한 손으로 안아 올리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하연이 분유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목욕도 시키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부하가 걸려 터질 것 같은 노트북을 부여안고 영상 작업도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연이가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크게 소리쳤다.

“아빠아! 저기 봐봐요!”

“응? 뭔데 그러니?”

하연이가 가리킨 곳을 봤더니 내가 예전에 읽었던 <재벌가로 환생>이라는 책이 구석에 덩그러니 나뒹굴고 있었다.

‘없어져서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놔두고 갔었구나.’

나는 하연이를 다시 아래로 내리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책을 주었다.

책 모서리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게 예전에 하연이가 이 책을 들고 있다가 모서리에 베여 다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죽일듯한 기세로 책을 노려보자 하연이가 내 옷을 잡아당긴다.

그만하고 나가자는 듯이.

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책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 환생은 무슨. 그리고 환생이면 뭐 어때서? 누가 뭐래도 하연이는 내 소중한 딸이다.’

나는 불을 모두 끄고는 하연이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저 책은 건물이 철거되면서 같이 사라지겠지.

하지만 우리의 추억까지 모두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하연이도 나도. 우리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아빠와 딸로 함께 할 테니까.

#

예전에 살던 집을 나온 우리는 오랜만에 하나분식에 들렸다.

하연이가 인기를 얻고부터는 아무래도 여기 오는 게 부담스러워 방문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주말 오후 4시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

우린 주인 할머니를 바라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오!”

그러자 그녀가 우리를 눈치채고는 서둘러 이쪽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반갑다는 표정을 하고선 말이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한참 찾아도 안 보이더니. 어쩐 일이누!”

헤헤. 그동안 바쁘게 살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네요.

그녀는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분식을 내오셨다.

예전에 하연이와 이곳을 찾으면 늘 먹었던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오뎅 말이다.

그런데 순대 말이다.

내가 알던 하나분식의 그 순대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할머니. 이거 뭐예요?”

그러자 그녀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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