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30화
두 사람은 엄청난 기세로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해치웠다.
하지만 사회를 보는 직원은 아쉽다는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으. 아쉽습니다! 3분이 모자라네요.”
그러자 직원의 옆에 있던 한 젊은 여성이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고선 코웃음을 친다.
‘뭐 하는 사람이지? 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하연이와 유주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사이.
나는 두 사람에게 접근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뭐야. 지금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왔어? 뭐긴 뭐야. 아이스크림 먹고 있었지.”
“저기 포스터에 적힌 아이스크림 빨리 먹기 대회?”
“응. 진짜 아쉬워. 3분만 더 빨리 먹었더라도.”
유주의 말에 따르면 직원의 옆에 있는 젊은 여성이 지금까지 가장 빨리 아이스크림을 먹은 자라고 그랬다.
무려 7분 만에 쿼터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 치웠다고.
‘저 사이즈를 7분 만에? 아니 그걸 떠나서 혼자서 다 먹을 수 있긴 한 거야?’
나는 놀랍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그녀.
직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친다.
“새로 도전해보실 분들 안 계십니까? 우승하시면 오늘 먹은 아이스크림 값은 공짜! 여기에 추가로 30만 원 상당의 저희 가게 상품권을 전달해드립니다!”
그때였다.
강성식이 자기 동생들과 함께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여기요! 저희 세 사람. 도전해보겠습니다!”
“오. 좋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성식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하연이를 돌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하연이의 매니저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응원해준다.
“오오! 어쩐지 몸이 좋다고 했더니. 하연이 매니저구나. 응원합니다, 아저씨!”
“힘내세요!”
“파이팅!”
그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짓고는 동생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직원은 그에게 어떤 맛을 고를 거냐고 물었다. 한 사람당 총 4가지 맛을 고를 수 있고, 한 가지 맛으로만 해도 무방하단다. 다만 샤베트 종류는 단독으로 먹을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수진이와 성진이가 각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골랐고, 강성식은 딱 2가지 메뉴를 골랐다.
“우선 어머니는 외계인! 그리고 레인보우 샤베트. 이렇게 두 가지로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외계인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어머니는 외계인이라니. 빵 터지네.”
“하연이 매니저라고 하더니 유머 감각이 있는 분이네. 흐흐.”
“예의가 바른 분이신 듯.”
그런데 강성식 혼자만 왜 사람들이 웃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으응?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아무튼 시합이 시작되었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7분 17초 안에 저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 치워야 한다.
세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아이스크림을 떠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진이와 수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특히 수진이는 괴로운 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우욱. 저는 더 못 먹겠어요.”
“네! 여동생분은 기권 선언! 과연 두 남자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모두의 시선이 두 형제에게 집중되었고, 특히 7분 컷을 보여준 현재 1위 여성은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강성식이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까 강성식이 제법 머리를 썼다.
‘가만히 보면 엄마는 외계인 한 숟가락 먹고 그다음에 레인보우 샤베트를 먹네. 느끼한 거 먹은 다음에 샤베트로 입가심이라니. 머리를 굴렸어.’
주지하다시피 샤베트에는 유제품이 적게 들어가 있어 다른 메뉴에 비해서 느끼함이 덜하다.
그런 까닭에 메뉴를 고를 때도 샤베트 한 가지 종류만을 고를 순 없다고 못을 박은 것 같았다.
아무튼 시계를 보니 이제 막 8분이 지났다.
‘강성식! 힘내라!’
모두가 그를 응원하는 가운데 결국.
강성식이 7분 12초로 끝장을 봤다.
아이스크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운 것이다.
“와아아아! 이겼어! 하연이 매니저가 이겼다고!!”
“대단한데? 어떻게 인간이 저런 속도를 낼 수 있지?”
강성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포효했다.
“으하하하하! 내가 이겼다! 이겼다고!!”
지금까지 1위를 유지하던 여성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괴물 자식.”
누가 누구보고 괴물이라는 건지.
강성식이야 키가 185cm가 넘는 무도인이고, 상대는 고작 160cm나 될까? 키가 작은 것만이 아니라 빼빼 말랐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몸에 살이 없었다.
‘마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저런 몸으로 강성식과 겨우 5초 차이밖에 나지 않다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강성식은 이번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거기에 3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타며 일약 아이스크림 가게의 스타로 떠올랐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연이보다 하연이 매니저인 그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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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미디어의 문세경 대표가 곰도리형제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은하전쟁 초안원고가 나왔다며 내게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그랬다.
회의실에 들어온 우리는 빔프로젝터를 띄워 다 같이 보려고 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파일을 보내드릴 테니까 각자 스마트폰으로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스마트폰으로요?”
“네. 웹툰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PC가 아닌 모바일로 보니까요. 이렇게 큰 화면으로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녀가 보내준 파일을 열어 스마트폰으로 확인하였다.
현재까지 총 15화 원고 중 5화가 제작되었는데 작화 퀄리티가 그야말로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화당 컷도 100화 가까이 되었고, 인물뿐 아니라 우주선과 배경 등에도 엄청나게 공을 들였는지 세밀하기 짝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회의실에 같이 들어온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쩌는데요?”
“장난 아니네. 나 5화 만에 은하전쟁 세계관을 모두 다 이해한 기분이 들어.”
“대단해. 이것만 보면 영화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한눈에 들어오겠어!”
그녀의 작품은 우리의 우려 사항을 단숨에 씻었다.
단지 세계관에 대해 건조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었다.
괴수란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인간은 왜 기사(Knight)와 GP소드를 만들어서 괴수에 대적하게 되었는지 몰입감 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 엄청나네요.”
“호호. 뭐 이 정도 가지고요. 은하전쟁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와 지원에 나설 예정이니, 프로모션도 엄청 빵빵하게 들어갈 거예요.”
“사람들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웹툰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럴 거예요. 준비를 철저하게 하기도 했지만, 웹툰은 프로모션빨이 크거든요.”
“프로모션빨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웹툰 앱에 접속하자마자 온갖 배너와 팝업창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 아무래도 조회수가 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게다가 저희도 엄청 신경 써서 그리고 있고, 원작 스토리가 원체 좋잖아요? 잘만하면 프리퀄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식 연재에 들어갈 수도 있겠죠.”
“정식 연재라면?”
“영화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웹툰으로 꾸준히 서비스된다는 뜻이에요. 15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100화, 200화 계속 나온다는 얘기죠.”
오오. 그래 준다면 오히려 더 좋다.
나는 은하전쟁 IP가 계속해서 확장되길 희망하니까.
우리는 30여 분에 걸쳐 은하전쟁 웹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이 이야기는 이만하면 된 것 같고. 이제 ‘아빠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빠와 나요?”
“아.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구나. 전에 제가 여쭤보았던 거 있잖아요. 대표님과 하연이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고 싶다고.”
“아아.”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나와 하연이의 일대기랄까. 하연이를 만난 뒤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글로 정리해서 그녀에게 보냈었다.
이런 건 처음 써보는 거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유주와 하연이가 옆에서 큰 도움을 줬다.
일기 쓴다는 느낌으로. 혹은 수필 쓴다는 느낌으로 편하게 쓰라고 응원도 해주고, 내가 까먹은 사건이 있으면 하연이가 알려주는 한편, 유주는 교정작업을 도와주었다.
지금에서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그녀는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하. 그거 진짜로 웹툰으로 제작하시려고요?”
“네. 보내주신 원고 모두 다 봤어요. 한 10번은 넘게 본 것 같아요.”
“그렇게 나요?”
“네!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어떻게 하면 이걸 그림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사실 요즘은 은하전쟁보다 이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을 정도에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 클라이언트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람. 아무튼 저는 두 작품 모두 포기 못 해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리고 싶어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한 작품 하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다고 하던데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하고 싶다고 그러고.
“그런데 제가 추가로 뭘 더 해야 하나요?”
“아. 보내주신 원고를 읽어보고 제가 궁금한 부분들을 정리해 왔거든요. 간단한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그러죠 뭐.”
나는 다른 직원들을 사무실 밖으로 내보낸 뒤 그녀와 단둘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이 작품은 픽션이에요. 대표님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하겠지만, 제가 임의로 캐릭터와 사건을 만들 거거든요. 괜찮죠?”
“네. 상관없습니다.”
“후후. 고맙습니다. 그리고 작품 제목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빠와 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주인공이 두 사람인 건가요?”
“네. 아빠랑 딸이 더블 주인공이죠.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동시에 다뤄보려고요.”
“아 네. 그런데 저한테 궁금한 게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뭐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하연이 친모 말이에요.”
“..네.”
“그 뒤로 한 번도 연락 없었죠?”
“그렇죠.”
“휴. 답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질문이라서요. 저도 막상 여쭤보려고 하니까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른 인터뷰에서도 많이 대답했던 내용인데요 뭐.”
“혹시 대표님이나 하연이가. 그녀를 다시 만나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을까요? 어찌되었 건 그녀는 하연이를 낳은 친모잖아요.”
나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물론이고 하연이 역시 단 한 번도 그녀를 그리워한 적은 없습니다. 단언컨대 그녀를 다시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 따위는 없어요. 이젠 그녀가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도 만나줄 생각이 없고요.”
“역시. 알겠습니다. 작품에서도 이를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었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작품 안에서도 1화 정도를 제외하곤 다시는 그녀를 등장시키지 않으려고요. 그녀가 다시 작품에 등장하면 그건 고구마가 되잖아요? 힐링물 컨셉이니까 그건 없는 게 더 낫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수진 작가가 대본을 쓴 <환생자를 주웠습니다>에서는 하연이가 연기한 허은영의 친모가 환생자로 등장하여 어처구니가 없었더랬다.
그러니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게 작품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내가 원하는 바였다.
문세경은 내가 한 말을 노트에 적더니 추가 질문을 던졌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유튜버로만 설정하려고 해요. 대표님처럼 큰 회사를 만들어 키운다는 건 뭔가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 있어서요.”
“네. 그거야 작가님 작품이니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히로인이 될 인물. 그러니까 유주 님을 참고로 한 캐릭터 말이에요. 같은 유튜버로 설정하면 어떨 것 같나요?”
유주가 유튜버라고?
원래 유주가 배우로 전향하기 전에는 유튜버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건 맞다.
그런데 문세경은 조금 색다른 설정을 제시했다.
바로 먹방 전문 유튜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