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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25화 (125/135)

내 딸은 국힙원탑 125화

아빠가 며칠 전부터 준비하던 게 있었다.

바로 엄마의 어린이집 퇴임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주는 일 말이다.

그는 작년 행복반 학부모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렸다.

아참. 올해 엄마는 담임을 맡고 있지 있었다.

3년 연속 담임을 해서 올 한해는 행정 일을 전담하는 쪽으로 빠졌다.

아무튼 아빠가 준비했던 건 어린이집에서는 깜짝 파티만이 아니었다.

그는 집에 와서도 엄마를 축하해주자며 내게 어떤 장식이 좋을지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인터넷을 뒤적이며 예쁜 풍선과 가랜드 등의 소품을 샀고, 아빠는 오늘 엄마의 퇴근 전에 혼자서 이를 꾸민다고 그랬다.

생각보다 꾸밀 거리가 많았는데 이걸 혼자서 모두 준비한 모양이다.

내가 보더라도 눈에 뒤집어질 만큼 휘황찬란하기 짝이 없다.

벽면을 수놓은 각종 풍선과 장식들.

누가 보면 이벤트 카페에라도 온 줄 알겠다.

엄마는 세수하고 나오더니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뭐야. 언제 이런 걸 나 몰래 꾸민 거야?”

“하하. 하연이랑 며칠 전부터 고민 좀 했지. 당신 좋아할 것 같은 장식으로만 꾸몄는데. 마음에 들어?”

“응. 정말 고마워. 하연이두.”

“헤헤. 엄마아. 그동안 수고오하셨습니다아.”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에 모으고는 그녀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하연아. 연기는 네가 엄마보다 선배니까. 잘 좀 부탁할게.”

“웅! 나만 믿어요오!”

엄마는 생각보다 감정 표현을 섬세하게 잘했다.

연기 중에 눈물 연기가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하는데, 그것도 곧잘 했고.

이렇게 뛰어난 인재가 이제야 배우로 제2의 삶을 산다는 게 아쉬울 정도다.

아무튼 엄마는 앞으로 잘 해낼 것이다. 엄마의 옆에는 나도 있고. 아빠도 있으니까.

우리는 집에서 두 번째 축하 파티를 했고, 엄마는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며 우리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다짐했다.

그렇게 즐거웠던 파티가 모두 끝나고.

두 사람은 내 볼에 굿나잇 뽀뽀를 해준 다음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부모님은 내가 자는 줄 알았겠지만 천만의 말씀.

타이틀곡의 작곡은 끝났지만, 아직 작사가 완성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빠가 제작하는 SF 영화의 OST로 쓰기로 결정되었으니 별도의 편곡도 거쳐야 했다.

‘조금 더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면 좋겠어. 가사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야 할 테고.’

모두 기다려.

이번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는 물론이고 아빠 영화에 부끄럽지 않은 OST를 만들어주마.

#

김수혁은 자신이 김진형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하연이라는 천재를 딸로 두어서. 신유주라는 재능 넘치는 여자를 아내로 두어서.

미혼부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주목받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의 폭이 굉장히 넓고 진취적인 생각을 하는 자였다.

지금도 보라.

내게 영화와는 별도로 장편소설 집필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겠는가.

“장편 소설이요?”

“네. 저는 이 작품을 영화로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나리오와 소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당장 쓰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천천히 집필하시면 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는 원작 소설이 있고 그걸로 영화가 큰 흥행을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 작품은 거꾸로 되겠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고, 이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된 장편 소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

한때는 나 역시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각색가와 소설가는 한 끗 차이랄까. 결국은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작가님 머릿속에는 이미 엄청나게 장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잖아요? 영화에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녹일 순 없을 테고요. 그래서 작가님은 소설을 쓰시고, 관련해서 웹툰과 드라마도 제작되면 좋을 것 같고요.”

“웹툰이랑 드라마요?”

“네. 저희도 IP 비즈니스 한 번 해봐야죠.”

“하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영화제작에만 올인하려고 했더니.

소설에 웹툰. 드라마까지.

비로소 그가 왜 지금 젊은이들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롤모델 1위로 떠오른 지 이해가 되었다.

‘엄청난 추진력에 아이디어도 좋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장편 소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참. 그리고 작가님이 아니라 감독님으로 부르는 게 맞겠죠?”

“편할 대로 불러주세요. 사실 저는 감독님 소리보다는 작가님이 더 마음에 드네요.”

“하하. 그럼 앞으로도 작가님으로 부르겠습니다.”

내가 만든 시나리오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부정했다.

다 좋은데 스케일이 너무 크다고.

한국 시장은 SF를 하기에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인간과 괴수와의 전쟁이라니. 무슨 허튼소리를 하냐고.

그런데 이 사람은 다르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영화로만 소개하기에는 아쉽다고.

영화뿐 아니라 소설로도. 웹툰으로도. 드라마로도 만들자고.

이 IP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확장해가자고.

조금 더 그의 옆에서 그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전속 계약이라도 맺자고 해야겠어.’

김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김진형에게 존경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

드디어 본격적인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영화제목은 아직 유동성이 있지만, 가칭 ‘은하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원래 김수혁이 생각했던 시나리오 제목은 ‘인간과 괴수와의 100년 전쟁’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았으니까.

‘제목이 너무 길기도 하고.’

촬영은 각색과 연출을 동시에 하는 김수혁이 책임지고 이끌고 있었기에 나는 IP 다각화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지금.

한신 그룹의 웹툰 계열사인 ‘SK 미디어’ 사무실에 와서 그곳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 대표는 나랑 동갑의 여성분이었는데, 원래는 웹툰 작가를 하다가 작품이 대박을 내면서 웹툰 에이전시로 전향. 지금은 한신 그룹의 투자를 받고 자회사가 되었다고 그랬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곰도리형제단의 김진형입니다.”

“어서 오세요, 김 대표님. SK 미디어 문세경입니다.”

“SK가 세경의 영문 약자인가요?”

“네, 맞아요. 어떤 분들은 선경 그룹의 약자가 아니냐고 하던데 세경의 약자가 맞습니다.”

그러게.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SK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왜 한신 그룹 자회사인지 말이다.

우리는 우주전쟁 웹툰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내주신 시나리오는 모두 읽어봤습니다. 엄청나던데요? 영화 한 편만으로는 이 넓은 세계관을 모두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요.”

“네. 그래서 웹툰으로 영화의 프리퀄을 제작하면 어떨까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잘 찾아오셨어요. 저도 딱 그 생각을 했거든요.”

영화의 도입부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게끔 우주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장비를 장착한 인간 기사와 괴수와의 전투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과 귀는 즐겁겠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바로 전투가 벌어지니 사전 정보가 없이는 분명 의문이 들 것이다.

‘둘이 왜 싸우는 거지? 그리고 아무리 미래라지만 인간이 어떻게 저런 복장을 하고 우주에서 괴수와 싸울 수가 있어? 말도 안 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웹툰이 먼저 나오고,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사전에 웹툰을 보게 할 필요가 있었다.

즉, 방대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웹툰이 대신해주는 방식.

그녀는 갑자기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뭔가 쓱쓱 하는데 순식간에 엄청난 작품이 나왔다.

내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인간 기사가 GP소드를 들고 괴수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녀는 마카를 손에서 놓으며 말했다.

“대충 이런 느낌으로 작화를 그리면 어떨까 싶은데.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엄청나네요! 이거 사진으로 찍어도 됩니까?”

“물론이죠.”

그녀가 방긋 웃으며 답한다.

“제 상상 속에만 있던 인물이 갑자기 현실로 툭 튀어나온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계약을 맺게 되면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릴 생각이거든요.”

“대표님이요?”

“네. 한동안 펜을 손에서 놓고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우주전쟁 시나리오를 읽고는 팍! 느낌이 왔어요. 이건 반드시 제가 해야 한다고요.”

“괜찮으실까요? 신경 쓰실 게 많으실 텐데.”

“물론이죠. 저희는 에이전시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작품도 생산하고 있거든요. 내부에 그림 작가분도 많고, 어시스트 분들도 계시니까 이들과 함께라면 제가 직접 그려도 일에 크게 지장을 주진 않을 거예요.”

“그래 주시면야 저야 고맙죠.”

우리는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덕분에 많은 걸 배워간다.

‘웹툰이라는 게 생각만큼 그리기 쉬운 게 아니구나.’

콘티를 짠 다음 밑그림을 그리고, 선을 따고, 이후 채색과 명함을 입히고.

이후로도 수많은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웹툰이 완성된다고 그랬다.

“많은 분이 왜 일주일에 한 편밖에 못 내놓느냐고 하시지만 이건 웹소설이 아니거든요. 물리적인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니까 일주일에 한 편 작업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영화 완성 전에 작품이 모두 올라올 수 있을까요?”

“노력해봐야죠. 영화가 나오기까지 대략 1년 정도 걸린다고 하셨죠?”

“네. 촬영만으로는 3~4개월 정도가 걸릴 것 같지만 SF 영화니만큼 후반 CG 작업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할 테니까요.”

“그럼 충분해요. 장편으로 연재할 작품은 아니고 프리퀄 성격의 작품이니까. 대략 6개월 정도면 15화 정도 제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좋네요. 그럼 대표님만 믿고 계약하면 될까요?”

“하하. 제가 오히려 김 대표님을 믿고 계약하는 거죠. 참고로 저 대표님이랑 하연이 오랜 팬이에요. 유튜브도 구독해서 잘 보고 있어요.”

“이런. 그 말씀을 먼저 하시지.”

“왜요? 그럼 계약조건이 달라지나요? 하하.”

그녀와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SK 미디어를 떠나려던 순간.

입구에 진열된 상품에 눈길이 갔다.

“이건 뭔가요?”

“아. 저희가 만든 작품들 관련 굿즈에요.”

“퀄리티가 좋은데요?”

“물론이죠. 작품과는 별개로 독자분들이 돈을 주고 사는 제품이니까요.”

“저 피규어는 얼마씩 하나요?”

“이거요? 원래는 50만 원인데 지금은 더 이상 제작하고 있지 않아서 중고 사이트에선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있어요. 이게 마음에 드셨나 보죠? 계약 선물 겸해서 하나 드릴까요?”

아니.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너무나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고 크기가 커서 물어봤을 뿐.

‘그래. 작품이 잘 되면 굿즈 사업도 해볼 만하겠네. 웃돈이 붙을 정도로 팬들의 충성심이 높다니. 왜 모든 기업에서 IP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지 알만해.’

그런데 그녀가 인사하고 떠나려는 나를 붙잡으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대표님.”

“네?”

“우주전쟁과는 별개로 말이죠. 대표님과 하연이 이야기. 이거 저희가 웹툰으로 한번 그려볼 수 있을까요?”

뭐? 나랑 하연이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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