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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24화 (124/135)

내 딸은 국힙원탑 124화

영화 배급 문제로 배급사를 찾던 중 정성수 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한신 그룹에는 영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신 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가 있는데, 그곳에서 이번 작품에 대한 배급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배급까지 책임지겠단다.

미팅은 빠르게 진행됐다.

“세미 씨는 호텔&리조트 쪽만 담당하는 거 아니었어요?”

“호텔 쪽에서 성과를 올리자 회장님께서 이번에 한신 엔터테인먼트까지 맡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도 좋은 작품을 찾아보던 중이었는데, 곰도리형제단에서 영화 배급사를 찾고 있다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뭘요. 제 회사도 아닌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웃음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데 부장님. 혹시 한신 엔터에서 배급뿐만 아니라 투자도 하시나요?”

“물론이죠. 투자가 필요하신가 보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SF 영화다 보니까 제작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서요.”

“총제작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죠? 그리고 필요로 하시는 투자 비용은요?”

“총제작비는 400억 수준이고, 필요한 금액은 200억입니다.”

200억이라는 숫자를 불렀지만, 그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반응했다.

“SF 영화라면 VFX 비용이 많이 들겠네요. 총제작비 400억에 그 절반인 200억이 필요하다라. 그렇단 이야기는 200억은 이미 모으신 건가요?”

“네. 200억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후후. 많이도 모으셨네요. 적은 금액은 아닌데.”

나는 그에게 익명의 기부자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입이 무거운 그라면 어디 가서 소문낼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그제야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많은 금액을 후원하다니. 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일까요?”

“한국어로 된 문서를 남겼으니 한국인이 아닐까요? 제 영상을 좋게 봐주신 분 같은데 국세청에서도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끝내 밝히지 못하더군요.”

“그거참 놀랍군요. 요즘은 웬만한 국가들과는 조세조약이 맺어져 있어서 명의를 숨기는 게 쉽진 않을 텐데.”

“그러게요. 아 참. 그러면 저희 영화에 투자해주시겠다는 말일까요?”

“회사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더 나눠봐야겠지만 대표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제가 왜요?”

내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그가 웃으며 답했다.

“얼마 전에 한신 그룹 창립 50주년 영상 만들어주셨잖아요.”

“네.”

“그게 내부에서 정말 큰 인기를 끌었거든요. 덕분에 직원들 애사심은 물론 회사에 대한 긍지도 높아져서 계약을 총괄한 세미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부 반응이 좋았다니 다행이다.

평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정 부장님과 이세미의 의뢰였으니 나름 공을 많이 들인 영상이기도 했고.

“회장님도 앞으로 영상 외주는 곰도리형제단이랑만 하라는 말씀을 주시더군요.”

“하하. 감사한 말씀이네요.”

“뭣보다 대표님도 무언가 확신이 있으니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생각하셨을 거고요. 그렇죠?”

“네. 시나리오도 좋고, 최고의 배우들만 캐스팅하였습니다.”

“좋네요. 그런데 혹시 어떤 내용인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배급과 투자 계약해준다는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안 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도 단지 내가 추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할 따름.

나는 30여 분에 걸쳐 쉴 새 없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먼 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과 괴수가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영화는 그 안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과 동료애. 그리고 괴수와의 전쟁보다 더 피 말리는 인간 내부 사회의 음모와 배신 등을 그리고 있다고 말이다.

정 부장님이 엄지를 치켜올리며 입을 뗐다.

“이야. 이야기만 들어도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군요. 그런 작품을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다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큰 제작비가 들어가는 만큼 잘 만들어야겠죠. 아 참. 각본과 연출을 같은 분께서 하십니다.”

“그래요? 재능있는 분이신 가 보네요?”

“네. 시나리오는 이미 5년 전에 다 완결이 되었는데 마땅한 투자자를 만나지 못해서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더군요.”

“알만하네요. 한국에서 제작하기에는 스케일이 엄청나게 큰 작품입니다. 그런데 1, 2부로 나눠서 하는 게 아니라 한 편에 그 이야기를 다 집어넣으실 생각이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있을까요? 러닝타임을 2시간으로 잡아도 꽤나 빡빡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영화에서 작품의 세계관에 대해 모두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그럴 수도 없고요. 게다가 SF 영화는 일종의 진입장벽이 있는 장르인데 세계관 설명만으로도 2시간은 뚝딱 지날 테죠.”

“그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개의 작품을 함께 제작할 생각입니다.”

“네? 그게 무슨?”

정성수 부장님이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니까 웹툰이나 드라마 등도 제작해볼 생각입니다.”

“오호라. 원소스멀티유즈인가요?”

“아뇨. 그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 동일한 내용을 다른 포맷으로 하자는 건 아닙니다.”

“으흠.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예를 들면 웹툰에서는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 되는 세계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드라마에서는 영화에 등장한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장편소설을 낼 수도 있겠죠.”

“오오. 영화는 영화의 이야기로만 끌어가겠다는 거군요?”

“네. 미국의 마블이나 스타워즈도 비슷한 방식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도 IP 비즈니스로 사업영역을 넓힐 생각입니다.”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대표님.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제가 처음 생각한 건 아닙니다. 승리호도 비슷한 방식으로 웹툰을 영화 개봉 전에 선보인 적이 있고요. 아무튼 영화는 이번 한 편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생각입니다. 속편 제작 없이요.”

“알겠습니다. 혹시 웹툰이나 드라마 쪽 관련해서는 작업이 진행된 게 있을까요?”

“아뇨. 아직은 구상 중인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저희 한신 그룹 자회사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웹툰도 제작하고 드라마도 제작하고 있거든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나는 그와 악수한 뒤 헤어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던 게 아마 신림역 인근에 있는 분식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와 하연이의 먹방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그는 자신을 ‘내꿈은한신사장’이라고 밝혔더랬지.

그사이 나는 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그는 부장으로 승진. 게다가 그의 여자친구인 이세미는 한신 그룹 회장이 가장 아끼는 외동딸이자 차기 회장 자리를 넘보는 다크호스였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한신그룹 계열사의 사장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와 분식 이야기를 나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IP 사업과 영화 배급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참 격세지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노을이 지고 있는데 그게 참 아름다웠다.

언제 내 인생에 황혼기가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부디.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부장님이 자신의 꿈을 위해 뚜벅뚜벅 한 걸음 내딛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내 꿈을 위해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

한은선 역을 맡기로 하면서 아쉽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들이 내가 떠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아쉬움을 표했다.

“히이잉! 선생니임 가지마요오! 네?”

“선생님 그만두며언 나도오 그만둘 꺼야!!”

“시러! 유주 선생님 계소옥 나와요오!!”

아이들이 떼를 쓰고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이 와중에 하연이가 아이들을 말리며 나무란다.

“그만! 선생님은 얼마나 슬프시게쪄! 웃는 얼굴로 보내드려야지이!”

얼마나 의젓한지. 얘가 정말 5살이 맞나 모르겠다.

아이들 대부분이 하연이의 일갈에 더는 입을 열지 못했지만, 몇몇 아이들은 더 크게 소리쳤다.

“넌 선생니임이 엄마니까 매일 보잖아! 하지만 우린 달라아!”

“선생니임! 가지 마요오! 제발요!”

나는 우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보듬어주고는 말했다.

“선생님이 바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이번 달까지는 나와. 그러니까 너무 슬퍼들 하지 마렴.”

“시러요오! 싫다고요!”

주하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널브러져서는 땡깡을 부린다.

정말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이다.

선생님이 떠난다고 이렇게나 슬퍼할 줄도 알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학부모님들께도 한 분 한 분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해 드렸더니 모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내 앞길을 응원해주셨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꼭 성공하길 바란다며.

물론이다.

그동안 어린이집 선생님이란 직업에 내 모든 것을 걸었던 만큼 배우라는 직업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그만두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일을 잘 마무리 지어야겠지.

“대신 선생님이 촬영 없는 날에는 틈틈이 와서 너희들이랑 놀아줄게. 괜찮지?”

“쩡말요오?”

“응. 약속할게.”

아이들이 모두 근처로 몰려들어서는 하나하나 새끼손가락을 걸고 절대 잊지 말라는 말을 당부한다.

아무렴. 누가 키운 새끼들인데. 선생님이 꼭 틈날 때마다 올 테니까 너무 서운해하지들 말렴.

그렇게 마지막 근무일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하연이랑 함께 하원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집으로 떠난 아이들이 우르르 어린이집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학부모들과 함께 말이다.

“애들아. 여길 왜 다시 왔어?”

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자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친다.

“선생니임!!”

아이들이 모두 내 품에 안겨서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윤이 어머니가 내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웃으며 말했다.

“유주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선생님 마지막 근무일이셔서 저희가 깜짝 파티를 준비했어요.”

“깜짝 파티요?”

“네. 하연이 아버님. 이제 들어오셔도 될 것 같아요!”

하연이 아버님? 진형이 말인가?

그러자 진형이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케이크를 들고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왔다.

케이크 윗면에는 ‘사랑하는 유주 선생님의 배우 변신을 축하합니다. 제자 일동’이라는 글씨가 버터크림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너희들..”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들을 끝까지 돌보고 가지 못한 내게 뭐가 예쁘다고. 이렇게까지 정성을 보이는지.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선생니임 울지마요!”

“울지마! 울지마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나를 다독여준다.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선생님 같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노라고. 멋진 배우가 되더라도 자신들을 잊지 말라며.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잊겠니.

마지막만큼은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종일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흘러넘쳤다.

고마워. 애들아. 선생님,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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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열하는 유주를 둘러업다시피 해서야 겨우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렇게나 슬프면서 뭘 그리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던 건지.

유주는 집에 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슬피 울다가 그제야 무언가 변화를 눈치챘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이게 뭐야?”

“뭐긴. 깜짝 파티 시즌 2지.”

“뭐?”

유주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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