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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21화 (121/135)

내 딸은 국힙원탑 121화

전생에 이하연으로 지내면서 있었던 일이다.

길었던 영화 촬영을 모두 마친 어느 날.

제작사가 부도를 맞게 되었다.

촬영은 모두 끝났는데 제작사의 부도로 영화는 언제 개봉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웠다.

결국 출연 배우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서야 후반 작업이 진행되었고, 영화는 간신히 상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급사가 배급과 마케팅에 전념하지 않으면서 영화는 그야말로 폭망.

국민가수 이하연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 수 10만 명도 모으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지우고 싶은 흑역사.

그때 깨달은 게 영화 제작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고, 개봉까지 절대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는 아빠한테 힘을 실어주는 게 옳아.’

게다가 소속 배우들의 말처럼 영화를 제작하고 나면 곰도리형제단의 위상도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질 테고, 영화가 성공한다면 OTT 등을 통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터.

사랑하는 아빠가 돈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스위스 은행에서 돈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숫자와 문자로만 이루어진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만 입력한 뒤 그것을 입력한 계좌로 옮기면 그만이었으니까.

별도의 수수료가 들어갔지만 이하연이 보냈다는 걸 숨기기 위해 조세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로 돈을 몇 번 옮긴 뒤 아빠 계좌로 돈을 넣어달라고 그랬다.

스위스 은행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처럼 비밀주의는 폐지된 지 오래라 예전처럼 고객 정보가 완벽하게 보호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한국과는 2012년 조세 정보를 교환하는 협약을 맺기도 하였고.

하지만 이하연은 이미 죽은 자였고, 한국 정부도 죽은 자의 재산까지 살펴볼 정도로 한가하진 않겠지.

혹여 그들이 알게 되더라도 뭘 어쩔 것인가. 내가 불법으로 모은 자금도 아니고 단지 전생의 아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예치한 금액인 것을.

덕분에 별 탈 없이 스위스 은행에 잠들어 있던 돈을 무사히 아빠의 계좌로 옮길 수 있었다.

‘794억 2천 382만 541원이라. 이자는커녕 보관료를 받는다고 하더니 정말로 돈을 뜯어갔나 보네.’

물론 보관료로 나간 돈이 큰 건 아니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아빠가 하고자 하는 영화 제작에도 큰 무리는 없겠지.

나는 돈을 아빠 계좌로 입금하면서 간단히 이런 내용을 덧붙였다.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후원금으로 보내드리오니 부디 좋은 곳에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나나 이하연이 아닌 어떤 마음씨 좋은 부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 후원을 한 것처럼 썼다.

이만하면 아빠도 돈을 출처에 대해 따져 묻진 못할 것이다.

지금도 상당한 액수가 아빠와 나의 후원 금액으로 들어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돈을 확인한 아빠가 어떤 표정을 보일지 벌써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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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난 나는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고는 은행 앱에 접속했다.

그리고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화면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794억. 도대체 이 많은 돈을 누가 후원한 거지?’

이세미?

그럴 리 없다. 그녀는 언제나 자기 이름으로 당당히 하연이에게 후원하고 있었으니까.

이창돌?

설마. 그가 내가 뭐가 예쁘다고 이런 거액의 돈을 후원하겠는가. 그것도 비실명으로 말이다.

분명 나나 하연이 채널을 즐겨보고 있는 팬 중에 누군가가 후원을 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거금은 생전 처음 보는 액수라 이걸 그냥 받아도 좋을지 모르겠다.

‘후원금은 일정 액수가 넘으면 세관에 신고해야 하는데 국세청에서도 이걸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나는 즉시 세무당국에 이를 신고했다.

그들은 돈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 같더니 도무지 어디서 온 돈인지 모르겠다며 곤란해했다.

“한국과 조세 계약이 맺어지지 않은 국가에서 들어온 금액이에요. 그것도 몇 번이나 옮겼는지 도무지 출처를 모르겠네요.”

“그럼 저는 어쩌면 좋죠.”

“하아. 일단 나쁜 목적으로 돈을 보낸 건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김진형 씨와 하연 양에게 그동안 다양한 분들이 후원을 하고 있다는 건 저희도 확인했으니까요. 신고도 꾸준히 해주셨고요. 기부자가 누구인지는 저희가 더 찾아보겠습니다. 다만 이번 기부 건에 대해서는 380여억 원에 이르는 증여세가 발생합니다.”

“어우. 거의 절반이 세금이네요.”

“네. 30억이 초과되면 50%를 과세하니까요. 아무튼 어떤 분에게 이런 돈을 받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금액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내 수중에는 413억여 원 정도가 남게 되었다.

어디 사는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이 돈은 제가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나는 김소라 과장에게 오늘은 조금 늦게 출근하겠다고 말한 뒤 곧바로 <아이에게 사랑을>을 운영하는 안발렌티나 수녀님을 찾았다.

내가 연락도 없이 아침 이른 시각부터 성당을 찾자 그녀는 격하게 나를 환영해주었다.

“이게 누구신가요. 대표님께서 이 시각엔 어쩐 일이세요?”

“오랜만입니다, 수녀님. 별일 없으셨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는 궁금해하는 그녀를 바라보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기부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하고 계시지 않나요?”

“그거랑 별개로 하려고요. 조금 액수가 많아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하하. 얼마나 많이 하시려고요?”

나는 두 손가락을 펼쳐 올렸다.

“2, 2천만 원이요?”

“아뇨. 그보다 더요.”

“그, 그럼 2억?!”

나는 고개를 젓고는 숫자를 밝혔다.

“200억을 후원하고자 합니다.”

“네에?”

수녀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셨다.

그래. 믿기지 않으실 테지. 나 역시 처음 이 금액을 확인했을 땐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었으니까.

아무튼 내가 직접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이 아니었다.

어떤 고마우신 분에게 좋은 곳에 써달라는 의미로 받은 거액의 후원금.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 금액은 <아이에게 사랑을>에 기부하고 싶었다.

게다가 종교단체에의 현금 기부는 증여세가 면제된다고 하니 내가 별도로 내야 할 세금은 없을 것이다.

NGO 단체 운영은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다.

돈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쓰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누군가를 후원하고 지원하려면 내부에 사람이 필요한데, 이들에게 너무 많은 금액이 사용될 경우 후원금의 상당 부분이 운영비로 사용되면서 사회적인 비판을 받곤 했다.

좋은 일 하면서도 욕먹는. 어지간한 사명감이 아니라면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후원금을 자신들의 배 속에 집어넣으려는 나쁜 놈들이겠지. 하지만 <아이에게 사랑을>은 그런 이상한 단체는 아니니까.’

이들이 얼마나 투명하게 후원금을 운영하고 있고, 또한 진심으로 미혼부와 미혼모.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지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아서 잘 알고 있다.

“200억 모두를 현금으로 드리면 절반은 건물을 짓는 데 쓰고, 절반은 시드머니로 운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물과 시드머니요?”

“네. 빈말이라도 지금 시설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열악한 환경이었다.

물론 이 정도의 시설이 있기에 많은 이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열악한 게 사실이었다.

“보금자리도 새로 짓고,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과 심리치료 강사 등을 정직원으로 채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시드머니라는 건 뭘까요?”

“현재 금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까 100억을 그대로 은행에 넣어두면 1년 이자 소득만 3억 정도 되겠죠. 세금 등이 나가겠지만 단체를 운영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대표님! 이렇게나 저희에게 많은 신경을 써 주시다니.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면 좋을지.”

수녀님은 소매로 눈물을 훌쩍이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물론 나는 어디까지나 후원자였지 운영자는 아니다. 돈을 기부하고 나면 운영은 수녀님을 비롯한 <아이에게 사랑을>에서 알아서 굴려야 할 터.

하지만 약간의 가이드를 준다면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주제넘게 참견해봤다.

수녀님은 몇 번이나 감사하다며 내게 허리 숙여 인사하셨고, 덕분에 나 역시 몇 번이나 맞절을 해야 했다.

수녀님. 세상에 당신 같은 분들이 있어서 아직은 살만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고개 숙이지 마시고 당당히 사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주세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언성 히어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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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사랑을>에 200억 원을 기부한 나는 나머지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했다.

한 번에 200억이라는 거금이 내 계좌에서 빠져나가자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어제까진 내 돈이 아니었고,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을 수 있겠지.

아무튼 당장 회사에 투자하거나 내가 개인적으로 쓸 일은 없었다.

지금 벌고 있는 돈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다 영화 제작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남은 돈이 대략 213억 정도. 이 정도 금액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액수다.’

그것도 외부에 일절 손을 벌리지 않고서 말이다.

VFX 작업에 공을 들일 수 있을 테고, 스태프 처우 개선에 따른 인건비 상승과 멀티캐스팅에 따른 배우 출연료 상승도 큰 문제는 없을 터.

하지만 나는 영상제작자일 뿐 영화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주변에도 뮤직비디오 제작이라면 모를까 영화제작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명함집을 만지작거리다가 탑코리아스타의 김선정 기자의 명함을 들어 올리고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영화 제작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그녀가 지금 당장 만나잔다.

안 그래도 자기가 알고 있는 작가 중에 엄청난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를 찾지 못해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녀는 감사하게도 곰도리형제단의 사무실에 직접 방문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를 대접하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님.”

“뭘요. 우리 사이에. 그런데 곰도리형제단에서 영화도 찍을 생각이신 건가요?”

“네. 소속 배우님들도 영화를 찍자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고, 저 역시 이번 기회에 회사에서 영화를 한 편 제작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좋은 생각이세요. 요즘은 꼭 극장 관객 수로만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OTT 등 부가판권 시장이 커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충 제작비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신가요?”

나는 고민 없이 곧바로 200억을 불렀다.

그러자 작살에 찔려 허공에 버둥거리는 물고기처럼 깜짝 놀라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그렇게나 많은 돈을 모으신 거예요?”

“네. 어쩌다 보니.”

“정말 대단하네요! 외부 투자 없이 곰도리형제단 자체적으로 그 정도 돈이 있다는 말인가요?”

“네.”

“하하. 대표님. 도대체 사업수완이 얼마나 좋으신 거예요?”

사실 사업수완이 좋은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후원을 받은 거지만 거기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런데 엄청난 시나리오는 대체 뭔가요?”

“아. 제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시나리오 작가분이신데 5년 전에 이미 완결을 써놓은 시나리오가 하나 있거든요.”

“그런데요?”

“이게 SF 장르라. 연출하려면 VFX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 해서요. 아직까지도 마땅한 투자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비운의 작품이죠.”

“음. 시각효과를 떠나서 작품은 괜찮나요?”

“네! 제작만 제대로 된다면 천만 관객은 떼놓은 당상이죠. 아차. 요즘은 천만 관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가판권 시장이 더 중요해졌지만요.”

“그 작품을 쓰신 시나리오 작가님은 유명한 분이신가요?”

“아뇨. 그건 아닌데.”

그녀는 작가가 기존에 유명한 기성 작가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렇다고 아예 초짜는 아니고 중고 신인인데, 대박을 터트리지 못해서 그렇지, 아이디어 하나는 기가 막히다면서 한동안 그에 대한 칭찬을 줄줄 늘어놓았다.

“알겠습니다. 한 번 그 분이랑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자리를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지금은 작가 생활만으로는 힘드셔서 회사원으로 근무 중이신데. 그래서 약속을 잡으려면 그분이 퇴근하고 나서야 가능할 거예요.”

“네, 상관없습니다. 자리만 만들어주세요.”

그녀는 곧바로 당사자에게 문자를 보냈고, 무언가 연락을 주고받는 것 같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저녁 여기에서 뵐 수 있냐고 하시네요?”

“내일 저녁이요?”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바로 약속을 잡고 말이다.

물론 나야 좋았다.

‘질질 끌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지.’

다음날.

나는 김선정 기자와 함께 그녀가 천재 시나리오 작가라며 침이 마르지 않도록 칭찬한 상대방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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