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14화
내가 그의 옷을 한동안 쳐다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요? 제법 그럴싸한가요?”
“..돈 주고 사신 건가요?”
“네! 모름지기 방송인이란 컨셉이 생명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마술 하나 보여드릴까요?”
“마술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한테 지갑 있으면 잠깐만 자기 줘 보란다.
내가 그에게 지갑을 건네주자 그는 양손으로 지갑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자. 제가 지금 대표님의 소중한 지갑을 이렇게 해서 얍!”
순식간에 그의 손에서 지갑이 사라졌다.
내가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다른 손으로 내 지갑을 다시 돌려주었다.
“뭘 어떻게 하신 건가요?”
“후후. 영업비밀입니다.”
재미난 사람이다.
이런 재능과 끼가 있으니 업계 TOP이 될 수 있었겠지.
우리는 곧바로 합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마법사는 우선 자기 채널에 유주가 먼저 방문해주면 이어서 유주의 채널에 자신도 방문하겠다 그랬다.
“그런데 대마법사님은 주로 게임 방송을 전문으로 하시지 않나요? 유주와 합방하면 어떤 방송을 하실 계획입니까?”
그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저스트 댄스라고 댄스 형 리듬 게임이 있는데, 이걸 유주 님과 함께 진행할 생각입니다.”
“저스트 댄스요? 그게 뭐죠?”
“춤추는 게임이랄까. 잠시만요.”
그는 무언가 조작하더니 내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곡을 선택하니 화면에 신나는 음악과 함께 댄서 아이콘이 나오면서 이에 맞춰 춤을 추는 게임이었다.
무언가 동작을 인식하는 센서가 있는지 춤만 추는데도 기계가 알아서 판정했다.
유주가 막장 춤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로 보였다.
“재미있는 게임이네요.”
“네. 저는 전부터 유주 님이 이 게임을 저와 함께하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방송할 때 저도 같이 가도 괜찮죠?”
“물론입니다. 혹시 대표님도 함께 출연해주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저도요?”
“네. 대표님도 나름 유명 유튜버시지 않습니까? 최근에 미혼부 살인사건 관련해서 라이브 방송하신 건 저도 잘 보았습니다. 무척 공감하는 내용이었고요.”
그는 평소에도 내가 올리는 요리 및 일상 방송을 무척 즐겨보았다며 기회가 되면 내 채널에도 방문하고 싶다고 그랬다.
“저야 뭐 감사한 일인데. 저는 유주처럼 춤을 잘 추진 못해서요.”
“하하.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아닐까요?”
“네?”
“잘 추면 무슨 재미로 보나요. 못 추니까 재미있는 거죠. 안 그런가요?”
뭐. 듣고 보니 그랬다.
“그럼 제 딸도 함께 가도 될까요?”
“딸이라면 하연이요?”
“네.”
“어이쿠! 하연이까지 함께 온다면 가문의 영광이죠!”
그는 손을 싹싹 비비며 굽신거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역시 유명 방송인. 웃기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아무튼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대마법사와 함께 합방을 진행하였다.
대마법사는 게임 방송을 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더니 집이 무려 3층짜리 저택이다. 그것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도대체 얼마나 벌어들인 거야?’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그가 게임 세팅을 끝마쳤다며 우리를 부른다.
저번에 나와 미팅했을 때 입었던 그 요상한 마법사 복장을 하고 말이다.
그의 의상과는 별개로 여긴 그의 집 거실이었는데 설치된 카메라만 무려 4개다.
TV 위에 하나. 뒤에 하나. 그리고 좌우에 하나씩.
촬영 스태프도 5명이나 있다. 이들의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그가 얼마나 많은 금액을 방송을 통해 벌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유쾌했고, 또한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이 게임 해보신 적 있나요?”
“아니요.”
나와 유주. 그리고 하연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집에 게임기는 따로 없었으니까.
그는 오히려 좋다며 바로 실전에 들어가잖다.
“마침 하연이도 있으니까. 이 곡이 좋겠네요.”
그가 선택한 곡은 하연이와 핫레스트가 협업한 <위아더원>.
발표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빌보드 차트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흥겨운 반주와 함께 배경에 핫레스트 멤버들과 하연이의 얼굴을 한 캐릭터가 나오더니 조금씩 몸을 흔든다.
그리고 그 아래로 동작을 따라 하라는 듯 댄서 아이콘이 나왔다.
‘이렇게 하면 되나?’
그걸 보고 동작을 따라 하는데 괜히 어색하고 부끄럽다.
대마법사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자신 있게! 적극적으로!”
그는 마치 에어로빅 강사처럼 보였다.
하연이는 익숙한 듯 자기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고, 대마법사도 춤 실력이 수준급이다.
유주야. 뭐. 말을 말자.
아무튼 나도 적당히 동작을 보며 따라 췄다.
처음에는 되게 부끄러웠는데, 곡이 진행될수록 이걸 어떻게든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역시 게임은 게임이다.
승부욕을 자극한다.
키넥트라는 장치에 얼굴이 인식되면서 별도의 컨트롤러가 없어도 내가 하는 동작에 대한 평가가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위아더원>을 무사히 마쳤다.
연주가 끝나니까 그제야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며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하하. 어떤가요? 이제 어떻게 하시는지 아시겠죠? 안녕하세요! 여러분. 대마법사입니다. 오늘은 정말 엄청난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막장 춤의 대명사! 신유주 님과, 가수를 넘어 배우에까지 도전하고 있는 월드 스타 김하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신유주 님의 남편. 그리고 곰도리형제단의 대표이신 김진형 님과 함께 합방이 진행됩니다!”
벌써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는지 실시간으로 댓글이 올라온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연이 아부지 귀엽
└ 역시 자기 노래라 그런지 하연이가 제일 잘 추네요 ~~~>0<~~~
└ 신유주 댄스 지렸다. 크크크 로봇이네 로봇
└ 언니. 그거 각기춤이죠?
└ 세 분 너무 귀여우세요♥♥♥
└ 대마 형님. 이제 몸 풀었으니 더 난이도 있는 춤으로 도전하셔야죠
└ 오늘 방송 컨셉은 코미디인가요? 대마님 마법사 복장도 그렇고 처음부터 완전 웃겨 ㅋㅋㅋㅋ
└ 국민체조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방송 시작인가요?”
“네. 놀라셨나요?”
“자기소개도 없이 바로 춤부터 추고 들어가는지 몰랐네요.”
“하하. 댄스 신고식 정도로 생각해주시죠. 그럼 잠깐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댄스를 이어가 볼게요.”
우리는 각자 한 명씩 자기소개했다.
유주, 하연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까지.
역시 우리 중에서는 하연이의 인기가 가장 많다.
그런데 나에 대한 반응도 상당하다.
└ 진형 님 팬입니다. 항상 즐겨보고 있어요~
└ 대표님 요즘 너무 방송 뜸하신 거 아닌가요? 회사 키우는 것도 좋지만 방송도 종종 올려주세요!!
└ 진형 씨 사랑해요! 품절남 되셨지만 그래도 사랑해요~♥
유주가 그 댓글을 보더니 인상을 찡그린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다시 댄스 타임이 시작되었다.
대마법사는 일부러 난이도가 높은 곡만 골라서 진행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춤을 추는 건지 몸부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다.
그래도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다.
‘나중에 하나 사서 집에서 가족들이랑 플레이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댄스 삼매경에도 빠지고. 후폭풍이 두려웠지만, 마음껏 몸을 흔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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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유주가 투덜거린다.
“그 게임 이상해. 왜 내가 꼴찌야?”
그녀는 자신의 판정이 너무 짰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그래도 유주야. 아무리 봐도 네가 제일 못 췄어.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나.
“기계가 다 그렇지 뭐. 다음엔 우리도 이거 하나 사서 집에서 함께 하자.”
“뭐? 난 다시는 그 게임 안 해. 아주 이상한 게임이라고.”
“아하하하.”
그 소리에 하연이가 끝내 웃음을 터트렸고 나 역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
“뭐야? 너희들! 아주 딸이랑 아빠랑 쌍으로 엄마를 공격하네?”
“하하. 하연아. 우리 이거 사서 다음에 내기할 때 사용하자.”
“쪼아요!”
“꼴등 한 사람에게 벌칙. 어때? 좋지?”
“네에!!”
유주의 입이 댓 발 나왔지만, 아무튼 대마법사 덕분에 좋은 경험 했다.
그나저나 저번에 류하선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나는 유주에게 넌지시 물었다.
“유주야.”
“왜?”
유주는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토라진 듯 내게 등을 돌리고 답했다.
“혹시 너 말이야. 연기해볼 생각은 없어?”
“연기?”
유주가 다시 내 쪽을 바라보며 묻는다.
“응. 류하선 알지?”
“당연히 알지. 그녀는 왜?”
“전에 그녀가 그러더라고. 너 연기해도 잘할 것 같다고.”
“그뤠에?”
유주가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지 입이 귀에 걸린다.
“내 생각에도 춤만 추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어떤 거 같아?”
“음. 사실 갑작스럽긴 한데. 그래도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래?”
“응. 사실 유튜브 처음 할 때도 별 생각 없이 한 거였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줬잖아? 연기도. 뭐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런 자신감 좋다.
다만 유주가 연기까지 하게 된다면 본업인 어린이집 선생님을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연기자는 바쁘니까.’
내가 이에 관해 묻자 그녀는 고민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끙. 그렇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을 그만두고 싶진 않은데.”
“당장 결정을 내리라는 건 아니니까 한번 천천히 생각해봐.”
“알았어. 일단은 유튜브 방송에 전념하고 있을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유주가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곰도리형제단에 배우는 이미 충분한데다가 유주가 연기를 하게 되면.
‘남자 배우들이랑 이상한 장면을 찍을 수도 있잖아? 그건 절대 못 참지.’
상상만 해도 화가 불끈 난다.
그러고 보니까 하연이가 아직 어려서 그렇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니까 나중에 크면 그런 장면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윽.”
나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는 괴로워했다.
하연이와 유주가 놀라며 묻는다.
“진형아!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빠아?”
그만. 아무도 나한테 말 걸지 마!
대답할 기분 아니니까.
내가 살아있는 한 죽어도 내 딸이 그런 꼴은 못 본다. 알겠지, 하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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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식은 최근 회사에 합류한 류하선의 매니저도 함께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남들과는 다르다.
또래라 그런지 편하게 대하는 것까진 이해하겠다. 사실 나 역시 그녀에게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니.
하지만 이건 뭐지?
“아. 해봐.”
“괜찮아, 하선아. 나 운전 중이니까 집중하게 조심해 줘.”
“그러니까 입만 벌리라니까?”
오늘따라 하연이가 없어서 그런지 뒷좌석이 아니라 보조석에 앉은 그녀는 배고프지 않냐며 자신에게 떠먹는 요구르트를 먹이려고 했다.
‘얘가 오늘 왜 이래?’
평소에도 장난을 잘 치긴 했지만, 오늘은 조금 심했다.
그는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리 말했다.
“하선아. 고마운데, 너 이러면 나만 곤란해져.”
“네가 왜?”
“매니저가 배우 관리도 제대로 못 하냐고.”
“배우 관리가 뭐? 너처럼 잘하는 매니저가 어디 있다고.”
“사람들 오해하겠다. 적당히 해줘.”
“피이. 하연이한테는 나긋나긋하게 잘만 하면서 나한테는 엄하게 구는구나?”
“걔가 너랑 같아? 하연인 겨우 5살이라고.”
“그래그래. 하연이는 아주 음악이고 연기도 다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고 나는 그저 얼굴만 예쁘고 연기는 못하는 바보지.”
“내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잖아?”
“됐어. 기분 상했으니까 말 걸지 마.”
하아. 피곤하다.
누가 보면 여자친구인 줄 알겠네.
그녀는 강성식이 안절부절못하자 다시 웃으며 말했다.
“바보.”
“뭐가?”
“그냥 너 바보라고.”
“내가 왜?”
“그런 게 있어.”
“류하선 배우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네?”
“어머. 강성식 매니저님.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저처럼 매니저한테 잘해주는 배우가 어디 있다고요? 운전 중에 배고플까 봐 요구르트까지 떠 먹여주는데. 그런 배우가 또 있을까요?”
도저히 그녀를 말로 이길 것 같진 않다.
얼마 전 동생인 강수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빠. 하선이 언니 조심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튼 조심해. 오빠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그땐 그게 무슨 소리인지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자기 같은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에 호감을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다.
괜히 마음을 보였다가 여배우에게 농락당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뭣보다 소속 여배우가 매니저 나부랭이와 연애라도 한다는 이야기가 대표님 귀에 들어간다면.
‘잘리는 건 둘째 치고 평생 연을 끊고 살아야겠지.’
자신의 롤모델이자 생명의 은인인 김진형과 그런 사이가 되는 건 죽기보다도 싫었다.
강성식은 앞으로 류하선과 적당히 거리를 둬야겠다고. 그리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류하선이 얼마나 행동력이 강한 여인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