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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13화 (113/135)

내 딸은 국힙원탑 113화

정성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하지만 이세미는 그런 그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나무라듯 말했다.

“아무도 없으니까 그렇게 두리번거리지 마.”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너랑 사귀고 있다는 사실이 걸리면 나 바로 회사에서 모가진 거 알지?”

“하하. 오빤 왜 그렇게 사람이 귀여워?”

“뭐?”

“설마 내가 오빠가 잘리도록 가만히 있겠어? 죽는시늉이라도 하면 울 아빠도 어쩌진 못할걸?”

정성수는 이세미가 이창돌 회장 앞에서 드러눕고 떼를 쓰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절대 그런 짓은 하지 마!”

“왜? 오빠랑 헤어지라고 하면 내가 뭔 짓을 못 하겠어. 호적에서 판다고 해도 절대 안 헤어질 거야. 메롱~”

“휴.”

어떨 때는 회장님의 재림인 것처럼 강인한 포스를 보이지만, 이럴 땐 영락없는 20대다.

그나저나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 나와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진 주로 호텔이나 차에서만 비밀스럽게 만남을 이어왔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릴 알아보는 인물이 있다면 곤란하겠지.’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외곽 쪽 구석진 자리에 앉아 온몸을 칭칭 감싼 채 낚시하고 있던 한 가족.

그런데 저 남자.

김진형이다.

‘응? 진형 씨가 여길 어떻게?’

두 남자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김진형이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침묵의 시간이 깨졌다.

“정 차장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진형 씨야말로 여긴 어떻게?”

“가족 여행으로 왔어요. 세미 씨도 오랜만이네요.”

“와. 이런 우연이! 언니랑 하연이도 함께 왔나요?”

이세미는 유주에게 언니라 부르며 친근감을 보였다.

그나저나 두 사람. 누가 봐도 연인 같단 말이지.

나는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두 분. 사귀는 사이세요?”

두 사람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서, 설마요!”

정성수 차장님의 반응이었고.

“네. 저희 사귀어요. 진형 씨가 보기에도 연인처럼 보이나요?”

이세미의 반응이었다.

정성수 차장님은 얼빠진 얼굴을 하며 나와 이세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냥 모른 척해주세요.”

“하하. 그럴게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두 분 사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이세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100일 됐어요!”

“축하드려요. 그럼 이제 곧 정 차장님도 재벌가의 일원이 되시는 건가요?”

그런데 이세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차장이 아니라 부장이에요.”

“아. 승진하셨구나!”

“아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부장 승진에 교제까지!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자리를 합쳐 함께 낚시했다.

이세미가 유주에게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언니. 결혼식에서 뵙고 오랜만이네요. 신혼 생활은 어떠세요? 하루하루가 즐거우신가요?”

“응. 결혼하니까 진짜 좋아. 너도 얼른 정 부장님이랑 결혼해.”

“음. 저는 그러고 싶은데 이 이가 주저해서요.”

“응? 왜? 이렇게 예쁘고 깜찍한 친구랑 사귀면서?”

두 여자가 동시에 정성수를 바라보자 그가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때요? 혹시 그룹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가요?”

“네. 비밀 연애에요. 그러니까 이 사실은 절대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정성수가 제발 부탁한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유주는 알겠다고 말하며 두 사람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 물었다.

이세미가 곧바로 답했다.

“제가 먼저 고백했어요.”

“세미 네가?”

“네. 아무리 눈치를 줘도 이 이가 모르는 거 있죠? 그래서 그냥 먼저 고백했어요.”

“정 부장님도 눈치가 없구나. 너도 고생이 많다. 우리 남편도 그랬거든.”

“어머. 진형 씨도요? 아니다. 그냥 앞으로 형부로 부를게요. 괜찮죠?”

“네. 뭐 편할 대로.”

“형부도 그런 스타일이셨구나. 언니가 마음고생 심하셨겠어요.”

“암. 심했지. 사실 나도 내가 먼저 고백한 케이스야.”

“진짜요? 와! 우린 진짜 통하는 데가 있나 봐요!”

“그러게.”

“그럼 부모님께는 결혼 이야기를 어떻게 하셨어요?”

“아 그거 말이지.”

두 여자의 수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나와 정 부장님은 말없이 낚시에 집중했다.

대한민국 남자들. 모두 파이팅이다.

#

우리는 잡은 물고기와 함께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식당으로 이동했다.

물고기를 넘기니까 반은 회를 떠주고 반은 구워준다.

직접 잡아서 그런지 괜히 더 맛이 좋았다.

하연이도 정신없이 젓가락질해가며 먹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세미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형부. 혹시 내년 초에. 저희 영상 하나만 찍어주실 수 있어요?”

“영상?”

“네. 내년이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거든요. 그래서 기념 영상을 하나 찍어야 하는데 형부네 회사가 제격일 것 같아서요.”

“냐아 뭐 일거리 주면 고맙지. 그런데 한신이 벌써 창립 50주년이구나.”

“네. 나름 역사가 깊은 그룹이에요. 아빠가 부지런히 발로 뛰면서 하나하나 만드셨죠.”

한국 경제의 산증인인 이창돌 회장의 신화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식사했을 때는 무척이나 영광이었고.

“회사에 돌아가서 스케줄 좀 확인하고 다시 연락해줄게.”

“네. 단가는 최고로 맞춰드릴게요.”

“하하. 고마워. 너한테는 여러모로 도움만 받는구나.”

“뭘요. 다 이 이가 나서준 덕분이죠. 아 참. 하연이 요즘 드라마 찍는다며? 잘하고 있니?”

이세미의 말에 하연이가 먹다 말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젠 가수에 이어 배우자까지. 정말 만능 엔터테이너가 따로 없구나! 역시 우리 하연이야!”

“헤헤. 감사아합니다아.”

“내년엔 5살이 되는 거지?”

“네에.”

“생일 되면 이야기해. 언니가 좋은 선물 보내줄게.”

좋은 선물이라니. 지금도 매달 천만 원씩의 거금을 아낌없이 투척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재벌가의 일원이 되면 어떤 느낌일까?

정 부장님이 조금 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유주와 하연이가 있었다.

정 부장님이 곤란해하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는데 유주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두 사람. 만약 결혼하면 자녀를 몇 명이나 낳을 생각이야?”

“음.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 요즘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자는 분위긴데. 의외네?”

“히히. 한 10명은 낳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치?”

이세미가 팔등으로 정성수 부장님을 툭툭 치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 그건 너무 많지 않아?”

“왜? 아빠도 나한테 손주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단 말이야.”

“회장님이 그냥 하신 말씀이겠지.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어떡해.”

“피이. 난 그래도 3명 이상은 무조건 낳을 거라고. 그래야 나중에 애들이 우리 없어도 자기들끼리 의지하고 살지.”

정 부장님도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근히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몇 명 낳을 거라는 이야기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을 테니까.

우리는 산천어와 송어를 맛있게 먹은 뒤 헤어졌다.

하연이는 새벽 일찍 집을 나온 뒤 차가운 얼음 위에서 낚시하느라 피곤했던지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주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진형아.”

“응.”

“우린 몇 명 낳으면 좋을까?”

“으음.”

“나는 세미처럼 10명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최소 2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미 말처럼 나중에 우리가 늙으면 아이들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살 수도 있을 테고.”

“...”

나는 1명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주가 하연이를 예뻐해도 친자식은 아니었으니까. 유주와의 사이에서 1명 정도 낳는 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소 2명이라니.’

그러면 자식만 셋이 되는 건데 내가 그 애들은 모두 다 훌륭히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운전에 집중하며 답변을 피했다.

강원도라 그런지 유독 길이 험한 느낌이었다.

#

드디어 해가 바뀌었고, 하연이가 촬영한 드라마. <환생자를 주웠습니다>의 첫 방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모두 TV 앞에 나란히 앉아 드라마에 집중했다.

하연이도 그렇지만 곰도리형제단의 소속배우가 같은 드라마에 4명이나 등장하니까 어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넷 다 연기 참 잘하는구나.’

이동혁이야 요즘 가장 잘나가는 배우니까 그렇다 쳐도.

이번이 첫 작품인 하연이는 정말 끝내주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류하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는 그녀의 연기가 물이 오른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느낌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느꼈는지, 커뮤니티 반응이 좋다.

└ 와! 이동혁, 류하선, 김하연 셋 다 연기력 지렸다!

└ 김수진 작가의 복귀작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다고!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 믿고 보는 강은석. 5년 만에 복귀인데도 어색한 게 없네

└ 이거 병맛이 50%인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잼나네

└ 이동혁은 김하연 아빠인 김진형이 실제 모델임? 미혼부로 등장하네?

└ 그건 아닐걸? 저번에 김수진 작가 인터뷰 기사 보니까 요즘 미혼부가 인기 키워드라서 대본을 급하게 수정했다고 함

└ 김수진은 진짜 괴물이다. 이런 스토리를 어떻게 짜낼 수 있는 걸까? 그런데 왜 제목에 환생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네. 환생한 인물은 안 보이던데

└ 그건 나중에 밝혀지겠지. 숨기고 있다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터트리는 건 김수진의 특기니까

└ 김하연은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진짜 나중에 크면 뭐가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 류하선은 얼굴만 예쁘고 발 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생각 외로 잘하는데?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음

└ ㅇㅇ 아직 1화라서 모르겠지만 지금 연기력 그대로 이어가면 인생작 될 듯

강은석도 재벌 회장의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빌런역을 제대로 소화해줬고, 모두가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다음날.

회사로 출근했더니 직원들이 모두 어제 <환생자를 주웠습니다>를 재미있게 봤다며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네온다.

“대표님! 어제 드라마 잘 봤습니다. 진짜 재미있던데요?”

“하연이는 왜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거예요?”

“우리 소속 배우들이 4명이나 동시에 등장하니까 괜히 어깨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여기 오길 진짜 잘한 거 같아요!”

이대로 좋은 반응이 이어진다면 곰도리형제단은 연예 기획사로도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MCN 쪽도 좀 더 키워봐야 할 것 같은데.

그동안 유튜브에 소홀한 게 사실이었다.

하연이도 그렇고 나도 업데이트를 안 한 지 제법 되었다.

요즘은 다들 너무 바빠서 개인 촬영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MCN 쪽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조소담이 내게 다가왔다.

‘또 거물급 배우한테서 연락이 왔나?’

조소담이 저렇게 눈을 반짝거릴 땐 거물급 배우들에게 연락이 왔을 때였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대표님! 대마법사님으로부터 제안이에요!”

“대마법사? 인터넷 방송인이요?”

“네! 신유주 님과 합방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에요!”

오. 드디어 유주에게도 합방 제안이 오는구나.

이전에 하연이에게 합방 제안은 많았는데, 굳이 하진 않았더랬다.

컨셉도 달랐고, 신비주의를 유지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대마법사라면 인터넷 방송인 중에서는 최고봉이나 마찬가지인 인물. 그와 합방할 수 있다면 유주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터이다.

나는 즉시 그와 미팅을 잡았다.

감사하게도 그가 직접 우리 회사로 방문해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대마법사와 단독으로 미팅을 진행하였다.

유튜브에서는 자주 보았는데 실물로 보니까 연예인 뺨치는 미남이다.

그런데 이 사람. 아무리 닉네임이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렇지.

‘지가 진짜로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무슨 이런 옷을 입고 다 왔어.’

게임 속 마법사들이 입는. 그런 이상한 복장을 하고 우리 회사에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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