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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12화 (112/135)

내 딸은 국힙원탑 112화

곰도리형제단의 계약담당인 조소담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계약을 맺고 싶다면서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들에게 답변한 다음 사장인 김진형에게 보고했다.

“사장님. 오늘만 벌써 3명째에요.”

“오늘만? 요즘 연락이 부쩍 늘었네요?”

“그러게요. 이러다가 소속 배우만 10명이 넘겠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이동혁 씨한테 연락해 온 뒤로 봇물 터지듯 문의가 들어오네.”

이동혁은 조소담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키 크지, 잘 생겼지, 매너 좋지.

그런데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에게서 연락이 올 줄이야.

조소담은 행복했다.

어쩌면 자신이 이 회사의 복덩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이번에는 현재 이동혁과 함께 드라마를 찍고 있는 류하선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곰도리형제단의 계약담당 조소담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류하선이라고 하는 배우인데요.

“아 네네. <환생자를 주웠습니다> 주연 여배우이신 류하선 님 말씀이시죠?”

-맞아요. 혹시 오늘 오후에 대표님하고 미팅이 가능할까요?

“아. 잠시만요. 확인하고 다시 이 번호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대는 공손하게 답변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류하선까지? 이게 어쩐 일이야?’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보고했고, 그렇게 그날 류하선과의 미팅이 잡혔다.

그날 오후.

류하선은 과연 잘나가는 여배우였다.

현직 여배우를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나름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자신이 오징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쪽에서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혹시 마실 것 좀 있을까요?”

“아. 커피 혹은 녹차 중 뭘 드시겠어요?”

“녹차면 좋겠네요.”

“네, 가져다드릴게요.”

그녀는 그녀에게 녹차를 가져다준 다음 다시 한번 유리 벽 넘어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

예쁘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게 같은 여자가 봐도 예뻤다.

그런데 지나가던 회사 동료가 그 모습을 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소담 님. 거기서 뭐 해요?”

“앗. 성식 님이구나. 배우 류하선이 찾아왔거든요.”

“류하선이요? 그녀가 무슨 일로?”

그는 안쪽을 바라보더니 그녀와 알고 있는 사이인지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조소담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류하선 씨와 아는 사이에요?”

“하연이 촬영하면서 자주 봤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그녀는 부러운 얼굴로 강성식을 바라보았다.

강성식은 키도 컸지만, 체격도 좋고 얼굴도 잘생겨서 여직원들 사이에선 제법 인기가 있었다.

‘로드 매니저지만 이 정도 외모면 여배우와도 인사를 나눌 수 있는가 보구나.’

그런데 갑자기 강성식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녀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대체 얼마나 친하길래?

류하선은 연예계에서 까칠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욕심이 많고 낯을 가리는지 웬만하면 사석에서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라니.

‘나도 매니저나 할 걸 그랬나.’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

“우리와 계약을 맺고 싶으시다고요?”

“네, 대표님. 지금 회사랑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약 끝나면 곰도리형제단으로 옮기고 싶네요.”

“지금 계신 회사랑은 이야기된 사항인가요?”

“지금 회사는 저랑 재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답변을 주지 않는 상황이에요. 이쯤 되면 그쪽도 대충 눈치채지 않았을까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이동혁에 이어 류하선까지 곰도리형제단에 합류하게 된다면 회사의 명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회사가 보유한 배우도 50대부터 4세까지. 이동혁이 30대이고 류하선은 20대니까 다양한 연령 및 성별을 보유하게 될 테고.

“저희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공하는 표준계약서를 사용합니다.”

“좋네요. 저랑도 회사의 재정 상황에 대해 알려주신다는 조건이 들어가나요”

“그 전에. 혹시 왜 이전 회사와 재계약을 맺지 않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불공정 조항이 있다거나 회사가 그녀를 별로 챙겨주지 않았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신생 회사이니만큼 회사에 불리한 조건을 부르기 위해 왔다면 곤란한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그녀는 현재 회사가 자신을 그다지 챙겨주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배우하고 두 번째 회사인데, 처음과는 말이 달라져서 실망이 커요.”

“어떤 점이 그렇죠?”

“저한테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요즘은 좀 방치되었달까? <환생자를 주웠습니다> 출연도 회사가 저한테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 제가 백방으로 뛰어가며 얻어온 결과니까요.”

“그래요?”

“네. 저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니까 케어는커녕 방치하는 기분마저 들어요.”

배우 류하선에 대해 세간에서 어떤 평을 내리고 있는지는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연이가 출연하는 첫 작품의 주연 여배우니까 말이다. 나름 출연자들의 정보를 열심히 조사해보았더랬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녀가 연기를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 예쁘니까 연기가 이에 묻힐 뿐. 낯을 가리는 것 같긴 한데 인성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냐.’

물론 욕심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 욕심도 없고서야 어떻게 배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알겠습니다. 저희는 소속 배우님들에 대해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배우님들 역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셔야겠지만요.”

“물론이죠. 자기 관리도 못할 만큼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시겠죠. 그나저나 요즘 촬영은 어떠신가요? 이제 촬영 분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환생자를 주웠습니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가 눈을 빛냈다.

“대표님 따님이 하연이죠?”

“네. 하연이는 잘하고 있나요?”

“잘하는 정도가 아니에요. 얘는 진짜 연기를 위해 태어난 아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하하. 그런가요? 강은석 배우님이 자주 칭찬해주시는데 저는 아빠라 그런지 아직 실감이 나질 않네요.”

“분명 이번 작품 방영되면 한국의 나탈리 포트먼이 나왔다며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을 거예요.”

“나탈리 포트먼이라니. 엄청난 영광이네요.”

나탈리 포트먼은 물론 나도 좋아하는 여배우다.

영화 <레옹>의 마틸다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녀는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 얼굴도 예쁘지만, 연기도 잘하고 똑똑한 이미지로 지금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선 씨는 이번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한때 미혼부였지만. 사실 좀 억지스러운 전개이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서요.”

“아. 개연성 말씀이시구나. 하하. 그 막장 드라마의 대모, 김수진 작가님의 작품이잖아요. 그 정도 자극성은 있어야 시청자들도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재미있게 보겠죠.”

“하연이가 재벌가 여주의 친조카라는 설정은 진짜..”

“하하. 왜요? 저는 그래서 더 재미있던데. 그래도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나는 의자에서 등을 떼고는 그녀 쪽으로 허리를 당겼다.

류하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원래 배드엔딩을 즐기시는 분이지만 이번에는 어린 하연이도 있고 하니 가능하면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마무리하시겠다고 했거든요.”

“그건 다행이네요. 저는 또 출연진 다 죽이고 막장 엔딩으로 갈 줄 알았는데 말이죠.”

“설마요. 그랬다가 또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상대는 그 김수진이었다.

‘끝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되겠지.’

그런데 류하선이 갑자기 강성식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성식 씨가 하연이 매니저죠?”

“아 네. 맞아요.”

“이전에는 뭐하던 분이셨어요?”

“태권도학과 나와서 지인분의 도장에서 강사로 일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그건 왜요?”

류하선의 얼굴이 살짝붉어진다.

설마?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서 처음에는 배우신 줄 알았거든요.”

“아. 성식 씨가 몸이 좋긴 하죠.”

“나중에 하연이 매니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곰도리형제단은 배우든 매니저든 얼굴 보고 사람을 뽑나 싶었어요.”

“하하. 설마요.”

“혹시 제가 여기랑 계약하게 되면요.”

“네.”

그녀가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성식 씨를 제 매니저로 쓸 수 있을까요?”

“성식 씨를요?”

“네. 옆에서 지켜봤더니 하연이한테 정말 잘하더라고요. 평소엔 다정다감하다가 방송국 나갈 때는 보디가드 역할도 해주고. 저런 사람이 제 매니저면 무척 든든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강성식을 하연이와 류하선의 공동 매니저로 한다라.

아직 하연이가 어려서 스케줄이 그렇게 빡빡하진 않으니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굳이?

“한번 고민해보겠습니다.”

“네. 지금 매니저가 너무 낯을 가리는 친구라. 이왕이면 성식 씨처럼 듬직하고 사교성이 좋은 분이면 좋겠어요.”

“참고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곧 촬영이 끝나고 간단한 회식이 있다고 하니까. 대표님도 시간 되시면 놀러 오세요.”

“네. 시간 되면 방문할게요.”

“그럼 저희 계약은 확정인가요?”

“세부 사항을 조금 더 조율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죠?”

“와. 다행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잘 부탁드리죠. 저희 회사 첫 여배우시니만큼 잘 부탁드릴게요.”

첫 여배우라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유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신유주 씨도 여기 소속 배우시지 않나요?”

“유주요?”

“아 참. 대표님 아내 분이시구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 유주는 방송인으로 MCN 계약을 맺은 거라 배우는 아니에요.”

그러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예쁘신데. 배우 하셔도 잘하실 것 같은데요?”

하하. 아서라. 그랬다가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라고.

지금도 막장 춤 때문에 개그 캐릭터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연기까지 했다가는 큰일이 날 터였다.

#

어느덧 시간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었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참 빠르게도 흐른다.

우리 가족은 주말을 맞아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산천어 얼음낚시를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를 두껍게 착용하는 등 중무장했다.

‘혹시라도 우리 가족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할 테니까.’

이른 아침 행사장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낚싯대와 미끼를 산 뒤 가장 외곽에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조용히 낚시만 즐기고 싶었으니까.

다행히 일찍 와서 그런지. 아니면 구석에 자리한 덕분인지 우리를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가져온 간이 의자에 앉아 일정 간격으로 미리 뚫려있는 구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는 강하게 입김을 불어보았다.

- 하아아

입에서 엄청난 입김이 나왔고, 유주가 그걸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울 진형이 용가리네.”

“그래! 난 사실 용가리였다! 하아아!”

나는 유주와 하연이게 입김을 쏘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하연이가 붙잡고 있는 낚싯대가 강하게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입질이 온다.

“하연아! 꽉 잡고 있어! 아빠가 도와줄게!”

우린 힘차게 낚싯대를 잡아당겼고, 이윽고 팔뚝만 한 산천어가 얼음구멍 속에서 딸려 나온다.

“와! 물꼬기다아! 물꼬기!”

하연이는 자기가 물고기를 잡았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했다.

진짜로 이 얼음 아래에 산천어가 살고 있긴 하나 보다.

그렇게 열심히 낚시하고 있는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선지 외곽 쪽에 자리한 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낯이 익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선글라스를 내리고 자세히 살펴보자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맞았다.

바로 정성수 차장님과 이세미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 뭘 그렇게 겹겹이 껴입고 여길 온 거지?

마치 비밀스럽게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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