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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11화 (111/135)

내 딸은 국힙원탑 111화

하연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연아. 왜 무리를 하고 그래.”

“나아 괜차나아요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촬영하다가 쓰러졌다며! 그게 괜찮은 일이야?”

하연이는 아무 소리도 못 했다.

생각해보니 하연이는 이제 겨우 4살인데. 애가 하고 싶다고 해서 기뻐하기만 했지, 하연이의 체력은 신경 쓰지 못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아빠가 잘못했다. 이게 다 내 책임이야.”

하지만 하연이는 절대 아니라는 듯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아! 이거언 아빠아 잘모시 아냐!”

아니긴. 너는 성인이 아니라 아이라고.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자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해.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병실.

그러다 하연이가 등을 세우고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마치 자책하지 말라는 듯.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빠아. 나눈 괜차나요오. 이게 다 하여니가 하고 시포서 그런 건데에?”

“아니다. 아빠가 너무 무심했어. 네가 이렇게 힘든 상태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어.”

“아냐아냐아. 하연이 괜차나아. 이거 봐봐요오.”

하연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위로 치켜올리더니 팔뚝에 힘을 주었다.

뽀빠이를 흉내 내듯 말이다.

푸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하여간 내 딸이지만 엉뚱 대마왕이다.

내 웃음을 본 하연이는 만족했다는 얼굴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아.”

“응.”

“나눈 으막도오. 연기도오. 최고가아 되고오 시포요.”

“그렇구나.”

“그래서어. 스스로에게 부끄러업지 안은 사라미 되고 시퍼요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게 4살 꼬맹이가 할만한 대사인가?

요즘 연기 연습하겠다고 대본도 보고, 이것저것 관련 서적을 참고해서 보는 것 같더니 하연이의 어휘량이 엄청나게 는 것 같다.

원래부터 말을 참 잘하는 아이였지만 이제는 옆에 웬 성인이 한 명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하연이를 바라보았다.

언제 연기를 그만두라고 하면 좋을지 타이밍을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누운 무대가아 조아요오. 그러엄 마치이 딴 사람이 된 것 가타서 기분 조아.”

“그래 우리 딸. 아빠도 하연이가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면 마치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웅. 아프로오 건가안 관리이도 잘 할 테니까아. 너무우 걱정하지 마라요오. 응?”

하아. 하연이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어떻게 연기를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연이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을 해 준 뒤 지금부터라도 더 하연이에게 신경을 쓰리라 다짐했다.

절대로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

하연이는 그날 저녁에 유주와 함께 퇴원했다.

어린이집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유주는 병실에 누워있는 하연이를 보더니 엉엉 울음을 보였다.

자기가 부족해서 하연이가 이리되었다며. 엄마 실격이라면서 말이다.

‘그거 내 대사인데..’

아무튼 우리는 함께 귀가했고, 하연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9시에 잠이 드는 걸로 결정되었다.

“하연아. 너 앞으론 무조건 9시 취침이야. 알았지?”

“시러어요! 너무 일러어!”

“이르긴 뭐가 일러. 너 또 한 번만 이런 일 있으면 연기든 노래든 절대 못 할 줄 알아!”

“히이이잉! 실타고오! 실탄 말이야!”

하연이가 떼를 썼지만, 유주는 단호했다.

좋아. 잘하고 있다, 신유주. 엄마의 강력한 힘을 보여줘!

나는 속으로 유주를 응원하며, 하연이에게는 안됐다는 얼굴을 보였다.

유주가 안 자겠다는 하연이를 겨우 재운 뒤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쓰러지듯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왜 나한테 바로 연락을 안 했어?”

“너 일하고 있는데 신경 쓰이게 할까 봐 그랬지.”

“그래도 그렇지. 딸이 쓰러졌다는데 어떻게 연락 한번 안 할 수 있어? 이건 진짜 너무했어.”

“미안. 그래도 나 역시 정신이 없었어. 다음부턴 조심할게.”

“응. 너도 고생했어.”

유주는 내 손을 꼭 잡아주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내가 그동안 하연이에게 너무 무심했나 봐. 언제나 잘 웃고 활기찬 아이라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앞으론 먹는 거나 잠자는 데 더 신경을 써줘야겠어.”

“응. 어린이집에서는 내가 더 잘 돌볼게. 미안해, 진형아.”

“뭘.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는 윗방으로 올라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나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유주에게 오늘 하연이가 내게 했단 말을 전해주었다.

유주가 놀랍다며 눈을 깜박인다.

“하연이가 진짜 그런 이야기를 했어?”

“응. 자기는 무대가 제일 좋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랬고.”

“휴. 무슨 애늙은이도 아니고. 그런 표현을 어디서 배웠지?”

“난들 아나. 아무튼 나도 하연이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많아.”

“느끼는 바가 많다고? 뭐?”

유주는 궁금하다는 듯 내게로 몸을 돌려 물었다.

나는 한 팔을 내어 유주에게 팔베개해준 뒤 입을 열었다.

“고작 4살짜리도 저런 생각을 하는데. 나도 조금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고 말이야.”

“뭐어?”

“난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을까?”

“너는 이미 충분히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잖아. 하연이의 아빠로. 나의 남편으로. 곰도리형제단의 대표로 말이야. 너야말로 조심해, 김진형!”

갑자기 유주가 내 코를 세게 꼬집었다.

“아야! 이거 왜 이래?”

“하여간 누구 아빠 아니랄까 봐! 그러다 너까지 쓰러지면 나는 누굴 믿고 사니?”

“유주야..”

“둘 다 200% 자기 몸을 혹사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좀 내려놔! 하연이에 이어 너까지 쓰러지면. 난 진짜.”

유주가 슬픈 얼굴을 하기에 빠른 속도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유주야. 너한테 걱정 끼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어.”

“알아. 하지만 둘 다 너무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우지 마. 너무너무 잘해주고 있으니까.”

“고마워. 하연이한테도 네가 잘 좀 이야기해줘. 어릴 때부터 유독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으니까.”

“응. 걱정하지 마. 내가 아무런 각오도 없이 너랑 결혼한 건 아니니까.”

유주가 진지한 얼굴로 입술을 굳게 다무는데 이거 왜 이렇게 귀엽냐.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그녀의 위에 올라타고는 그녀를 간지럽혔다.

“히이이익! 그, 그만! 간지럽다고! 하, 하연이 깨겠다, 그마안! 이히히히!”

후후. 네가 귀여운 걸 어떡해. 이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귀여운 네 잘못이야, 신유주!

#

이동혁은 어제 하연이가 쓰러진 이후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극 중에서는 그녀의 아빠이자, 배우로서는 그녀의 선배인 자신이 아니던가.

하연이에게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반성하여 그녀에게 어린이 홍삼 세트를 선물로 전했다.

“이게에 뭐에요오?”

하연이가 큰 눈을 반짝이며 묻기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린이 홍삼 세트. 촬영하는 틈틈이 먹어. 또 쓰러져서 아빠 놀라게 하지 말고.”

“고맙뜹니다아!”

하연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찬 목소리로 선물을 받는다.

극 중 자신의 딸이었기에 이동혁은 사석에서도 그녀를 딸이라 불렀고, 자신을 아빠라고 일컬었다.

주변에서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주었고.

그나저나 하연이가 쓰러진 일 말고도 자신을 괴롭히는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소속사 대표가 영화제작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드라마를 하기 전에 찍었던 <마약상의 하루>의 출연료로 5억 원을 제작사 측으로부터 받았는데 3억 원만 자신에게 입금하고 2억 원을 아직 돌려주지 못한 상황이라고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5억 원을 제작사에 모두 받은 뒤 이를 무단 전용한 뒤 내게 줄 전속계약금이 부족해지자 제작사 측에 1개월 이내에 갚겠다며 2억 원을 빌려 그중 1억 원을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가상화폐에 투자하여 계약금을 날렸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이런 소속사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나 의심부터 들었다.

‘그래도 내가 데뷔한 곳인데. 어쩌면 좋지.’

인상을 쓰고 앉아 있었더니 강은석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동혁 씨. 뭔 일 있어? 얼굴이 안 좋네?”

“아, 선배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냥 좀 피곤해서요.”

“이런. 주연 배우가 그러면 쓰나. 어제는 하연이가 쓰러졌는데 자네까지 쓰러지면 큰일 나. 틈틈이 쉬면서 찍어. 배우에겐 몸이 재산이니까.”

“네, 선배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 선배 역시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실례지만 뭐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편할 대로.”

하늘 같은 선배였지만 정말 격의 없는 사람이었다.

이동혁은 최근에 겪은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제가 있는 소속사 대표가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어요.”

“저런. 왜? 제작사에 돈을 빌린 뒤 무단전용이라도 했나?”

“그걸 어떻게?”

강은석은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이 바닥에서 그런 일은 너무 흔하게 일어나니까. 나도 뭐 비슷한 케이스지. 그래도 대표가 해외로 뜨기 전에 잡혀서 다행이네.”

이동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물었다.

“저기 선배님 계신 회사요.”

“곰도리형제단?”

“네. 거긴 좀 어떤가요?”

요것 봐라?

강은석은 얼마 전 주연 여배우인 류하선도 자신에게 소속사에 대해 묻더니 이동혁까지 곰도리형제단에 대해 묻자 기분이 좋아졌다.

곰도리형제단 홍보 대사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우리 회사 최고지.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투명하고, 배우들에게 진심인 회사는 단언컨대 우리 곰도리형제단 밖에 없을걸?”

“그래요?”

“물론. 자네 회사 대표가 사기로 기소되었다니까 자네도 계약서를 근거로 언제든지 거길 떠날 수 있을 걸세. 생각나면 연락하라고.”

“네, 선배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동혁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고, 강은석도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러냐며 웃음을 보였다.

강은석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곰도리형제단에 만족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경력 있고 실력 좋은 매니저를 한 명 붙여주었고, 자기 집까지 따로 알아봐 주는 등 김진형은 자신을 극진하게 대접해주었다.

회사의 재정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연예기획사와 MCN뿐만 아니라 본업인 영상에서 엄청난 돈을 모으고 있어. 이런 곳이라면 절대로 부도가 나거나 대표가 돈을 횡령할 일은 없을 거야.’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주변에 아는 이들에게 연락을 돌려 곰도리형제단에 오라고 권유하기 시작했다.

그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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