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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09화 (109/135)

내 딸은 국힙원탑 109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어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다시금 채팅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당장 사형시키자! 천하의 개쓰레기!

└ 어떻게 부모가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있지? 어이가 없어서 일이 제대로 손에 안 잡히더라!

└ 아무리 말세라도 그렇지! 화가 난다. 화가나!!

나는 가만히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다가 현모를 소개했다.

“오늘은 KBS 구현모 기자님과 함께 이 일에 대한 제 생각을 밝히려고 합니다. 구 기자님. 짧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KBS 구현모 기자입니다. 김 대표님하고는 친분이 있는 사이라 오늘 이렇게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 오! 구현모 기자님이랑 아시는 사이였구나!

└ 구 기자님. 팬입니다! 뉴스 잘 보고 있어요

└ 오늘 뭔데 기자까지 등장하는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문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이번 사건은 미혼부가 저지른 사건입니다. 해서 저 역시 한때는 같은 미혼부였던 사람으로서 깊은 참담함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긴급하게 라이브 방송을 켠 이유이기도 하고요.”

└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진형님이 저지른 일도 아니잖아요!

└ 힘내라 김진형! 슬픈 얼굴 하지 마!

└ 대표님 힘내세요. 저는 항상 대표님 편입니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우선 오늘 제가 하려는 말은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제 생각.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과 관련해서 정부와 국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입니다. 살인자를 옹호하려는 의도는 절대로 절대로 없어요.”

└ 잘 알겠습니다. 육아. 진짜 힘든 일이죠

└ ㅇㅇ 육아하느니 차라리 일하는 게 더 쉽지

└ 한국은 아이 키우는 가정에 너무 무심한 게 사실이에요. 다들 자기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나는 현모를 바라보며 물었다.

“구 기자님. 제가 알고 있기론 꼭 이 일이 미혼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모든 가정에서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현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맞습니다.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식을 살해하는 건 예상외로 자주 있는 일입니다.”

“예시가 있을까요?”

“네. 얼마 전에도 주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엄마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일이 있었고요. 이런 일은 매해 꽤 많이 벌어지는 사건들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단 뜻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번 사건은 미혼부. 그러니까 아빠가 저지른 사건이었지만 대개 한국 사회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건 엄마의 몫이니까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경험한 바 있지만 독박육아는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게 현실입니다.”

“맞습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사에 나가겠느냐, 아니면 집에서 애를 보겠느냐는 질문에 90%가 넘는 답변으로 회사를 선택하는 웃지 못할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아이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겠죠.”

“네. 저도 하연이가 처음 제게 왔던 1년간은.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제 선배 중 한 분은 자기 아이지만 정말 던져버리고 싶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네. 누구에게나 육아는 정말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우리는 이후 육아 스트레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독박육아는 미혼부, 미혼모만의 일이 아니었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가족 중에 누군가는 독박으로 육아를 하고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더 신경을 써야 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이 돈을 버는 데 집중하다 보면 남은 배우자는 육아에 더 전념할 수밖에 없지.’

다행히 시청자들도 우리에게 동조를 표했다.

└ 솔직히 갓난쟁이는 진짜 키우기 힘들지. 나도 그 1년이 너무 힘들어서 둘째는 엄두도 못 내고 있거든

└ ㅇㅇ 진심 내 새끼지만 때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아이 키우는 거 진짜 힘들어요. 남편은 일 핑계로 맨날 술만 마시고 늦게 들어오지. 너무 힘들어요 ㅠㅠ

└ 저는 부인이 있는 아빠지만 제가 주로 애를 보고 있습니다. 이거 쉽게 볼 일이 아니더라고요. 다시 회사 나가고 싶습니다 ㅜㅜㅜㅜㅜㅜ 육아휴직이라고 노는 게 아니라고요

└ 애 키우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주변의 시선이에요. 밤에 아기가 울면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건 그러려니 하는데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 애를 데리고 나갈 땐 괜히 더 기가 죽더라고요. 혹여나 애가 울어서 피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나는 해당 댓글을 가리키며 공감을 표했다.

“방금 말씀 주신 의견에 저도 공감합니다. 정말 애 데리고 돌아다니기 어렵죠.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차들은 쌩쌩 다니지, 시끄럽다고 뭐라 하지. 진짜 죄인이 된 기분이라는 말에 100% 동감합니다.”

현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 사회가 아이가 있는 가정에 너무 불친절해서라는 답변도 꽤 많이 나왔습니다. 결혼도 잘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니까 아이가 있는 가정을 배려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에요.”

“네. 그래서 저는 국가적인 지원과는 별개로 국민들께서도 아이가 있는 가족에 대해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시선이라면. 구체적으로 뭐가 있을까요?”

“그냥 길 가다가 만나면 고생이 많다거나, 애가 예쁘다. 이런 말만 해주어도 기운이 날 것 같아요. 애 데리고 다닌다고 너무 눈치 주지 않고요.”

“그러게요. 얼마 전에는 비행기에서 애가 운다고 막말을 퍼부은 사건도 이슈였는데요. 자신도 분명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텐데 너무 이기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후로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육아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그리고 정부에서는 어떤 대책을 마련 중이며 어떤 식으로 지원해주면 좋을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좋을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1시간이 넘게 대담을 이어갔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이 우리 방송을 보며 다양한 의견들을 내주었다.

다행히 살인자에 대한 비난이나 미혼부에 대한 비난은 없고, 대부분이 건설적인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이었다.

‘역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구나.’

나는 사람들에게서 따뜻함을 느끼며 현모와의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대한민국의 아빠와 엄마들이 이번 일로 조금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혹여 극단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잠시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의 여유를 두었으면.

그리고 주변 사람들 역시 조금 더 따스한 시선으로 이들을 배려해주었으면 좋겠다.

노키드존도 그렇고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시끄럽다는 타박도 그렇고. 그런 건 좀 잠시 넣어두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리 생각했다.

#

라이브 방송 이후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나와 하연이에게 악플이 달린다거나 미혼부에 대해 도가 넘는 공격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약자인 아이들과 아이 키우는 가정. 특히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더 배려하고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그런 여론이 일고 있었다.

정부의 공익광고 캠페인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이 그런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뿌려가며 여론을 선도했고, 커뮤니티에서도 긍정적인 호응을 받고 있었다.

그런 영향인지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체감할 수 있었다.

주변에 유모차가 보이면 차들도 천천히 속도를 늦추는가 하면 아이가 운다고 해서 인상을 찡그리기보다는 아이 보호자에게 힘들지 않냐는 말을 걸어주는 등 한결 따스해진 분위기다.

<“이번 미혼부 살인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독박 육아에 대한 공감대 형성>

<김진형이 쏘아 올린 육아 스트레스와 한국 사회의 문제..정부 “깊게 공감하며 대책 마련할 것”>

<독박육아 이대로 방치해도 될 것인가? 전문가들 “당장이라도 대책 마련 시급”>

언론에서도 독박육아가 주는 스트레스와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대한 무관심이 큰 문제라며 이에 대해 대책을 촉구하는 등 큰 역할을 해주었다.

그나저나 퇴근하고 왔더니 오늘도 현모가 현관 근처를 기웃거린다.

그것도 꼭 요가 강의를 받고 있을 때 말이다.

녀석은 몇 번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더니 오늘은 결심을 굳힌 듯 이런 말을 던졌다.

“혹시 말이야. 나도 너희랑 같이 배울 수 없을까?”

“요가? 주변에 학원 많잖아. 거기 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좀 부끄러움이 많잖아. 그래서 너희 집에서 나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부끄러움이 많다는 놈이 우리 집에는 왜 이리 자주 오는지.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없다.

나는 유진 씨에게 슬쩍 의사를 물었다.

“저기 강사님.”

“네?”

“제 친구가 오늘도 밖에 와 있는데 말이죠.”

“네.”

“그 친구도 여기서 함께 요가를 배우고 싶다고 하네요. 혹시 괜찮을까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레슨비만 내시면. 저는 상관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 요가에. 현모가 동참하게 되었다.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놓으시고,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구부리세요.”

“아 네.”

“두 다리는 골반 간격으로 벌리고, 얼굴에 불필요한 힘을 빼세요. 그냥 편한 자세를 유지하시면 됩니다.”

“진짜로 그냥 이렇게 누워있기만 해도 되는 건가요?”

“쉿. 두 눈을 감고 조용히 호흡하세요.”

현모는 가만히 누운 채 그렇게 한 10여 분을 있었다.

그러다가 스스로가 민망했든지 아니면 어딘가 불편했든지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팔짱 낀 자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자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올리며 그를 다시 눕혔다.

“안 돼요. 몸의 움직임을 없애 마음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그런데 왜 저만 하나요?”

“현모 씨는 늦게 합류하셨잖아요? 이건 현모 씨를 위한 특강이랍니다.”

박유진이 눈을 찡긋거리자 현모가 뭐에 홀린 듯 아하하 웃으며 다시 몸을 눕힌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몸을 뒤척거리더니 결국 5분을 더 버티지 못하고 일어섰다.

“어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마음속에 번뇌가 많으셔서 그래요. 이 동작을 통해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뒤척거리시네요?”

“아. 그게. 마음이 영 진정되지 않아서.”

녀석. 유진 씨 앞이라서 마음이 쿵쾅거렸던 게지.

박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일으켜 세운 뒤 말했다.

“집에 가시면 이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해 보세요.”

“네, 선생님. 요가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하하.”

이후 우리는 30여 분간 여러 가지 동작을 배웠고 다시 한번 사바아사나 자세를 마지막으로 행했다.

박유진은 이 말을 끝으로 수업을 마쳤다.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성장하는 것. 사바아사나는 이를 위한 좋은 도구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존재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라.

철학적인 것 같기도 하고, 묘한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그래. 모든 아이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 대해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되길 나는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

한편, 하연이와 강은석의 드라마 촬영은 이제 중반을 지나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강은석은 오늘도 하연이가 촬영장 분위기를 압도했다며 스승으로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하. 누가 가르쳐서 그런지. 아주 좌중을 휘어잡는 힘이 대단하다니까.”

“강 배우님. 지금 스토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은영이. 그러니까 하연이가 나, 박 회장의 친손녀라는 게 드러나서 아주 개판 오 분 전이지.”

“김수진 작가는 잘도 그런 식으로 스토리를 엮네요.”

“원래 막장 드라마의 대모였던 사람이니까. 그래도 제법 이야기는 그럴듯하다고. 하하.”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날까요?”

“모르지. 여전히 남은 대본은 꽁꽁 감춰둔 채 촬영 전에나 알려주니까.”

“가상의 이야기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래. 자네는 그런 사람이었지.”

강은석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촬영장 현장은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강성식만 촬영장에 딸려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연이가 잘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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