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108화 (108/135)

내 딸은 국힙원탑 108화

“구현모 씨?”

“으응? 네네?”

내가 현모의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조금 더 놀려보기로 했다.

“구현모 씨. 지금 정신이 살짝 나가신 것 같습니다만. 괜찮으신 거죠?”

“아아 네. 제 정신이..앗!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크크. 이제 정신 차렸어?”

녀석은 부끄러웠던지 현관에서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는 내 팔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선 조용히 묻는다.

“야. 너희 뭐 하는 거야?”

“집에서 가족들끼리 요가 하는데?”

“요가? 그럼 저분은 요가 강사신 거야?”

“유진 씨? 그렇지.”

“이름이 유진이구나, 유진. 이름도 예쁘네..”

“왜? 관심 있어?”

“아니 관심은 무슨! 그냥 그렇다 이거지.”

“얼굴은 그게 아닌데?”

“야, 붙지 마! 땀냄새 나니까.”

녀석은 인상을 찡그리고는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티셔츠 하단을 잡고 흔들면서 바람을 일으켜 땀을 말리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요가라는 게 참 신기한 게 PT에 비해 정적으로 보이는데 땀도 많이 나고, 운동 효과도 뛰어났다.

게다가 유주랑 하연이도 재미있어라 하니 더 의욕이 났다.

역시 가족들과 함께하는 건 뭐가 됐든 즐거운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모 녀석이 그제야 여기 온 이유를 밝혔다.

“진형아. 혹시 인터뷰 좀 할 수 있어?”

“지금?”

“아니, 지금 말고.”

“그럼 전화로 물어보지, 그랬어. 왜 굳이 여기까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녀석은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잠깐 시간 괜찮아?”

“응. 나야 뭐.”

“그럼 아래로 내려가서 얘기하자.”

“그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아래에까지 내려가자는 걸까.

표정을 보아하니 유진 씨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우리는 로비로 내려와 1층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저녁 시간이라 커피 대신 따뜻한 우유를 시켰다.

“그런데 인터뷰라니. 무슨 인터뷰 말이야?”

“너에 대한 인터뷰는 아니고. 멘트 좀 따고 싶어서.”

“멘트?”

이게 무슨 소리지? 난 또 한초의 인터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녀석도 이와 비슷한 인터뷰 제안을 해오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말이다.

현모는 무겁게 입을 뗐다.

“오늘 새벽에 벌어진 일이야.”

“뭐가?”

“미혼부 아빠가 생후 한 달도 안 된 딸을 숨지게 한 거.”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녀석이 사정을 설명했다.

오늘 새벽. 출생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딸의 머리를 아빠가 내려쳐 숨지게 하는 사건이 있었단다.

“미친 새끼! 아니 친자식을 대체 왜!”

“젊은 나이에 혼자서 애를 양육하다 보니까 심리적 압박감이 컸나 보더라. 경찰 말로는 우발적인 사건으로 보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런 짓을 해!”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애 아빠는?”

“자수해서 경찰서에 있지.”

“꼴에 자수는 했대?”

“응. 울면서 자기가 잠깐 미친 것 같다면서 죽은 애를 안고 왔다더라.”

하아. 진짜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사건이란 말인가.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어떻게 친아빠가. 자기 손으로 애를 죽여.

현모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슬쩍 물었다.

“그래서 네 멘트가 필요해.”

“나?”

“그래. 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미혼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잖아.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

기자인 현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건 뭐라도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분명 언론에선 너한테 멘트를 따려고 나설 거야. 아직 정확한 사망원인이 밝혀지기 전이라 경찰에서도 나한테만 살짝 알려준 일이거든.”

“모르겠다, 나도.”

“진형아.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내 생각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어쩌면 하연이법을 만드는 데 공헌하고, 미혼부의 상징이 된 너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일 수도 있어.”

“뭐?”

내가 미간을 좁히자 녀석은 이런 말을 꺼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선 미혼부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이 훨씬 커. 네가 지금까지 노력하고, 하연이를 잘 키워오는 등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런 여론이 단번에 바뀔 수도 있지.”

“내가 한 게 아니잖아.”

“같은 미혼부니까.”

화가 났지만, 녀석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특정 신분인 A가 마약을 하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와 같은 신분의 사람들 역시 싸잡아 욕을 먹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당국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한편, 같은 미혼부로서 큰 슬픔을 느낀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괜히 엄한 너랑 하연이까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말이지.”

하지만 그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었다. 게다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딸랑 뉴스 기사에 멘트만 나가는 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현모에게 이런 제안을 던졌다.

“현모야. 너 내가 하는 방송에 출연할래?”

“뭐? 네가 하는 방송에?”

“응. 공중파 말고 유튜브에서 내 입장을 표명하면 좋겠다 싶어서.”

“유튜브로? 언론에다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그렇게 하면 기자들이 내가 한 말 중에 자신들 입맛에 맞는 부위만 멋대로 편집해서 내보낼 거야. 그냥 솔직한 내 심정을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나는 왜?”

“너랑 대담하는 식으로 방송하면 조금 더 이야기 전달하기 좋을 것 같아서.”

“흐음.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 역시 이번 일에 큰 책임을 느낀다. 내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고.”

“네가 무슨. 나는 단지 너까지 피해를 볼까 봐 이렇게 찾아왔던 거지, 너를 책망하거나 화를 내려던 건 아니라고.”

“알아. 하지만 이대로 있자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게 너무 부질없이 느껴지네. 그럼 안되는 거잖아.”

“진형아..”

현모에겐 어떤 악감정도 없다.

녀석은 나를 도와주기 위해 이렇게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수고를 해주었으니까.

녀석 말대로 이번 사건으로 괜히 나와 하연이가 엉뚱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고 하니 녀석이 나를 찾은 건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허망하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니 이번 일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나는 한국 미혼부의 상징 같은 존재다. 미혼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도 사실이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와 하연이를 동정해서 인기를 모았을 지도 몰라.’

그러니 미혼부로서 덕만 보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현모에게 혹시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를 만나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를 만나겠다고? 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야, 진형아. 너무 일 키우는 거 아냐? 그러다가 정말로 이상하게 엮일 수 있어.”

“방송을 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내가 그와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 않고, 내 생각만 떠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 그가 왜 그랬는지, 지금 무슨 심정인지 정도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그는 현행범이야.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알아. 그를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런데 왜?”

“책임을 져야지.”

“책임?”

“그래. 나는 자의든 타의든. 미혼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진형아..”

녀석은 고민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창 누군가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것 같더니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5분. 그 이상은 나도 어렵다.”

“고맙다, 현모야!”

“내가 오늘 너한테 괜히 왔나 싶기도 하고. 진짜 괜찮겠어?”

“그래. 나만 믿어.”

우리는 택시를 타고 즉각 구로경찰서로 이동했다.

아이가 아비에게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들로 어지러이 빛나고 있었다.

#

경찰의 배려로 유치장 안에는 나 혼자만 들어갔다.

나는 영혼을 잃은 듯. 멍한 얼굴로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신경진 씨 맞습니까?”

“...”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

“저는 김진형이란 사람입니다. 신경진 씨와 같은 미혼부였던 사람이고요.”

김진형이라는 말에 그가 살짝 어깨를 움찔거리며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김하연의 아빠. 김진형?”

“네. 제가 김하연의 아빠, 김진형이 맞습니다.”

“당신이 여긴 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이야기? 하하.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을 게 있다는 겁니까.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 살인자인데.”

그가 바보 같은 웃음을 보이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나는 힘을 주어 강하게 말했다.

“신경진 씨가 한 행동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이 일은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럼?”

“다른 선량한 미혼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하하. 그래서 어쩌라고요.”

“왜 그랬습니까?”

“뭘?”

“왜 아이를 죽였냐고요.”

신경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곧 약속했던 5분의 시간이 흘렀고, 경찰이 다가왔다.

“진형씨. 시간 다 되었습니다.”

“잠깐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것도 구 기자님이랑 진형 씨 얼굴 보고 봐드리는 거니까요. 어서 나오세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엉덩이들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유치장 밖으로 나오려던 그 순간.

신경진이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나는 개새끼야. 변명할 가치도 없지. 그래도..”

“그래도?”

“너무 힘들었어. 내가 어쩌면 좋았지? 내가 어떻게 해야...크윽.”

그는 머리가 아픈 듯 무릎 아래로 얼굴을 처박더니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지금 무슨 심정인지 알 수 있었다.

후회와 자책. 거대한 분노와 슬픔. 사회에 대한 원망과 패륜을 저지른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한 인간이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의 쓸쓸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경찰서를 나왔다.

현모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하나 사 와서는 내게 건넸다.

“한 대 필겨?”

“됐어. 평소 담배도 안 피우는 놈이 갑자기 왜 이래?”

“안 피면 죽을 거 같아서.”

“..알았다. 난 됐으니까 너나 펴.”

현모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한참을 콜록거렸다.

“콜록콜록! 씨발. 좃나 맵네.”

“유진 씨는 담배 피우는 남자 싫어할걸?”

“뭐? 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현모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괜히 나까지 축 처질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고맙다.”

“내가 뭘. 네가 고생했지.”

“덕분에 내일 방송에서 뭘 말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는 녀석이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려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환한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구름에 가려져 있는지도 몰랐는데.

나는 보름달을 보며 부디 신경진의 아이가. 좋은 곳으로 가서 현세에서 느꼈던 나쁜 감정일랑 모두 잊어버린 채. 좋은 부모를 만나길. 그리 기도했다.

#

다음 날.

나는 퇴근한 현모와 함께 내방에서 긴급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마침 미혼부 살인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종일 이 문제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던 지라 이에 대해 내가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방송을 켜자 많은 이들이 접속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 진형님. 오늘 이건 또 뭔가요?

└ 같은 미혼부라고 살인자를 옹호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 설마. 그는 지금 결혼해서 미혼부도 아니잖아

└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네. 진형이 형 힘내요!

└ 살인자 쉴드치는 거면 나는 당장 손절한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나는 카메라를 틀고 마이크를 켰다.

“아아. 오늘 이렇게 많은 분이 접속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채팅창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