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07화
인터뷰는 한초가 보유한 스튜디오 안에서 진행되었다.
텅 빈 스튜디오 안에는 인터뷰용 높은 의자만이 덜렁 놓여있었다.
그 앞으로 카메라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고 한초는 카메라 뒤에서 나를 보고 앉았다.
“시선은 날 보고 이야기해주면 좋겠네.”
“알았어.”
“사전 질문 이외에도 중간중간 내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볼 거야. 괜찮지?”
“그래. 너무 강도 높은 건 물어보지 말고.”
“크크. 알았다. 그럼 시작할게.”
박수 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한초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김진형 대표님은 최근 젊은이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인물 1위에 선정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계십니다. 알고 계시죠?”
“하하. 부족한 사람인데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김소라 과장이 이거 알고 있냐면서 관련 기사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
한 일간지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였는데,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20대에서 30대 1,000명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중 1위로 뽑힌 게 나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하연이의 아빠라서.’
‘혼자 힘으로 곰도리형제단을 키워서.’
‘막장춤의 대명사인 유주의 남편이라서.’
‘하연아빠TV의 운영자라서.’
‘하연이법 통과의 1등 공신이라서.’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
‘미혼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도적이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잘 생겨서.’
설마하니 잘 생겼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진짜로 이런 답변을 한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한초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물어보았다.
“대표님이 잘 생겨서 그렇다는 대답도 꽤 많았습니다. 스스로도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이건 노코멘트해도 상관없죠?”
“그렇다는 대답으로 알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런.”
한초는 웃으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녀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였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세심하면서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자료조사를 해왔는지 디테일한 질문도 이어졌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연예 기획사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딸인 하연이 이외에 두 번째 인사로 강은석 배우를 영입하셨습니다. 최근에는 김수진 작가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알려진 <환생자를 주웠습니다>에 소속 배우 두 사람을 모두 집어넣는 데 성공하셨고요. 혹시 강은석 배우를 두 번째 인사로 영입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예리한 질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시다시피 강은석 배우님은 제가 어린 시절 무척이나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열연을 펼치셨죠. 하지만 소속사 대표에게 배신당하고 가족을 잃자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칩거. 자연인과 같은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가 연예계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의 영입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한 달간 온산을 헤매며 겨우 강 배우님을 찾았죠.”
“그런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강 배우님이 꼭 필요한 인재였나요?”
“네. 저희가 연예기획사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소속된 연예인은 제 딸인 하연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연이와 같은 가수보다는 연기자를 영입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다양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왕이면 나이가 많은 분을 영입하고 싶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하연이가 어리잖아요?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면서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는 분이 오신다면 저희 회사에도, 하연이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러니까 하연이를 위해서 그를 영입했다?”
“하하. 그건 아닙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 배우님은 연기를 다시 하고 싶어 하셨지만, 연예계에 큰 실망을 안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곰도리형제단은 다른 곳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와 계약하면서 계약서에 회사의 재무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조항을 넣기도 했고요.”
“회사의 재무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요?”
“네. 연예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은 것 같더라고요.”
“맞습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죠.”
”그러니 회사의 재무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이들을 안심시켜주고 싶었습니다.”
“굉장한데요? 회사의 재무 현황은 비밀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곰도리형제단을 시작으로 해서 연예기획사도 조금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구성원에게 믿음을 줘야 할 필요가 있죠.”
“알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곳들과는 다르다는 걸 제대로 어필하기 위해 강은석 배우를 영입했다는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져볼게요. 연예 기획사뿐 아니라 MCN 쪽으로도 일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초의 인터뷰는 사정없이 진행되었다.
무려 4시간이 넘게 논스톱으로 진행된 끝장 인터뷰.
인터뷰에 응한 나도. 인터뷰한 한초도. 카메라가 꺼지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는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누워버렸다.
“헉. 한초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는 거야?”
“후우. 후우. 아니.”
“그런데 왜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후우. 아이고 죽겠다.”
“안 되겠다. 나 이거 인터뷰비 받아야겠어. 이대로는 못 간다.”
“크크. 알겠다. 후우. 차비 정도는 챙겨줄게.”
“그걸로 되겠냐? 봉투 두둑이 넣어서 챙겨줘. 하아. 진짜 뒤지겠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나는 한초가 이번에 찍은 인터뷰를 얼마나 공들여 만들지 알고 있다.
한초의 인터뷰는. 정말 최고의 작품이었으니까.
#
사무실 공사가 모두 완료될 즈음.
한초의 인터뷰가 유튜브에 올라갔다.
댓글을 살피니 올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댓글이 무려 200개가 넘었다.
└ 김진형씨. 그냥 얼굴만 잘생긴 사람이 아니라 완전 똑똑한 사람이었구나..
└ 미쳤다! ㄹㅇ인생이 완전 헬이었네. 그런데도 이렇게 사업가로 성공하다니. 완전 부럽습니다, 대표님은 저의 롤모델이세요!!!
└ 앞으로 대표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 그래 이게 진정한 사업가지. 진짜 똑똑하고 대단하다..
└ 어린 시절 부모님을 다 잃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는 블랙 기업에 들어가 고생하고. 거기에 난데없이 썸녀는 갓난쟁이만 맡기고 사라지고. 그런데도 하연이는 월드 스타로 키워내고, 이렇게 멋진 회사를 만드시다니. 대표님. 정말 멋지십니다. 앞으로 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응원할게요!!
└ 황태진 회장이랑 독대했다는 것부터 보통 인물이 아니셨네. 이창돌 회장이랑도 아는 사이라고 하니 이미 회장님들은 그의 능력을 꿰뚫어 보신 듯
└ 연예계를 뒤바꾸겠다는 그 포부, 정말 멋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연예기획사가 더욱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네요!!
한초도 참 대단한 게 인터뷰를 진행한 건 4시간이 넘었는데 그걸 1시간으로 압축해놓았다.
알맹이만 쏘옥 뽑아놓았달까?
덕분에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유주가 늦다.
‘이 시간이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어린이집에 전화했더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이 든 나는 서둘러 유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유주도 연락이 안 됐다.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나는 황급히 외투를 걸치고선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던 참이었다.
그 순간.
유주와 하연이가 재잘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에는 고깔모자가 씌어있고,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든 채 말이다.
유주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쇼핑백을 들이밀었다.
“짜잔! 우리 남편 생일 축하해!”
“아빠아! 생이일 추카해요오!!”
하연이도 케이크로 추정되는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생일이라고?”
“응! 오늘 자기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어?”
내 생일? 그게 뭐지?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버린 두뇌를 다시 회전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생일을 기념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외할머니랑 둘이서만 살다 보니 그런 걸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커서도 내 생일을 누구한테 공개한 적이 없었다.
유주랑 사귈 때도 유주 생일만 챙겨줬지, 내 생일은 지나쳤고.
유주가 넌 왜 생일을 알려주지 않느냐고 타박했지만, 그냥 웃고 넘겼다.
하연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생일이라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 생일을 축하해주겠다고 선물을 내미는 두 사람을 보니 나도 모르게 무언가 욱하고 올라온다.
“진형아!”
“아빠아?”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한 방울 뚝. 하고 떨어졌다.
생일이라는 것은 나랑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친구들에게도. 카톡에서도. 생일 같은 건 공개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내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한초의 인터뷰 영상에 나를 칭찬하는 댓글들이 그리 많이 달렸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나도 생일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두 사람을 울지 말라면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나라는 존재에 대해 부정하면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살기 위해. 하연이를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 정작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나는 그저 나일 뿐. 로봇처럼 마구 쓰다 버려도 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다.
유주가 같이 울먹거리며 말한다.
“야, 김진형! 너 하연이랑 살 때도 한 번도 자기 생일 챙긴 적 없었다며? 하연이 생일만 챙기고.”
“으응.”
“나랑 사귈 때도 그랬잖아? 아무리 생일 알려달라고 해도 말을 피하고. 대체 왜 그런 거야!”
그러게. 왜 바보처럼 그랬는지 모르겠다.
생일이라는 게 알려진다고 해서. 이걸 누구 축하해준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때의 나는 생일이라는 걸 밝혀버리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살아왔던 동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우리는 식탁으로 이동하여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긴 초 3개만 꽂으면 되는데 둘이 고집을 부리기에 30개의 초를 케이크 위에 모두 다 꽂았다.
덕분에 불을 붙이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하연이와 유주가 진지한 얼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이일 추카합니다아~”
“사랑하는 내 남편~”
“사랑하누운 우리이 아빠아!”
“생일 축하합니다~”
“생이일 추카합니다아아!!”
“진형아, 사랑해!”
“아빠아! 사랑해요오오!!”
두 여자가 동시에 내 볼에 뽀뽀해준다.
왼뺨은 유주가. 오른뺨은 하연이가.
진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는 강하게 바람을 불어 촛불을 꺼뜨렸고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나는 세상 전부를 다 가진 남자니까.
지금 내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 유주와. 사랑하는 딸 하연이가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힘껏 안아주고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유주가 나지막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진형아. 앞으로는 너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어.”
응. 그럴게. 앞으로는 나도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유주야, 고마워.
서울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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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의 말도 있고 해서 나는 다니던 PT를 그만두고 요가 강사를 집으로 불러 개인 강습을 받았다.
근력 강화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고, 심신을 함께 단련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배우는 건 아니고 유주랑 하연이도 다 함께 배웠다.
요가의 장점은 몸을 단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단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상을 통해 내면에 있는 나와 만날 수 있다는 게 요가의 모토였으니까.
요가는 산스크리트어로 ‘결합하다’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라고 하는데, 자신의 의지와 신의 의지와의 진정한 결합이라는 뜻도 있다고 했다.
요가 선생님인 박유진은 올해 29살로 무척이나 붙임성이 좋은 분이었다.
또래다 보니 말도 잘 통하고, 어린 나이부터 인도에서 요가를 배워오는 등 경력도 많아서 요령 있게 자세를 잘 알려주었다.
그렇게 즐겁게 요가를 배우고 있던 와중에.
어느 날 현모가 불쑥 연락도 없이 혼자 우리 집을 찾아왔다. 마침 식구들이 다 함께 요가를 배우고 있던 도중에 말이다.
박유진을 본 현모가 자리에서 굳어버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너. 설마 유진 씨에게 한눈에 반한 거야?’
누가 보아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녀석. 얼굴 시뻘게진 것 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