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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02화 (102/135)

내 딸은 국힙원탑 102화

강은석 배우의 출연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자면 내가 10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방영되었던 <우주를 내 가슴에>였다.

영화는 아니고 TV에서 방영한 드라마인데, 강은석은 사실 주연이 아니라 주조연이었다.

그런데 워낙에 강은석의 배역이 매력적이고 연기가 뛰어났던지라 남자 주연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강은석 신드룸이 일면서 그는 이 작품 이후 당당히 S급 배우로서 자리 잡게 된다.

‘한때는 가장 좋아했던 배우인데. 이런 꼴을 하고 있다니.’

가게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관계로 나는 카운터로 가서 그의 음식값을 대신 계산해주었다.

한창 맛있게 부대찌개를 먹고 있는데.

예상대로 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제 식사비를 대신 내주셨다고요?”

“네. 혹시 강은석 배우님 아니십니까?”

그러자 그가 급히 마스크를 위로 올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부대찌개값입니다.”

그는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 8장을 내게 내밀고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태도로 보건대 그는 강은석이 확실했다.

유주가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아는 분이야?”

“응. 너도 아는 사람일걸?”

“누구?”

“강은석 배우.”

“어라? 진짜로?”

유주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지만, 그가 분명했다.

낮은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

나는 하연이를 유주에게 맡긴 뒤 급히 식당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저 멀리 그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은석 배우님!”

그가 이쪽을 돌아보고는 인상을 찡그린다.

“거참. 아니라니까 왜 자꾸 쫓아오는 겁니까?”

“잠시만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에게 내 명함을 건네주었다.

최근에 새로 제작한. 연예 기획사 대표라는 직함이 함께 표시된 명함이었다.

그는 나를 스윽 훑더니 차갑게 말했다.

“연예계 관계자입니까?”

“네. 연예 기획사 대표입니다.”

“일 없습니다. 가세요.”

그는 내게 명함을 다시 쥐여주고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하지만 이렇게 그를 보낼 순 없었다.

‘그가 우리 회사에 합류해준다면 한순간에 무게감이 달라질 거야.’

하연이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고작 4살짜리 꼬마였다.

게다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쟁취했던 게 아니라 핫레스트의 후광이 큰 영향을 끼쳤다.

팬의 마음은 갈대 같아서 언제 다시 마음을 거둘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의 뒤를 쫓으며 이렇게 말했다.

“강 배우님이 이전에 몸담았던 소속사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됐어요.”

“정당하게 받으셔야 할 금액도 다 받지 못하시고. 심지어 당시 대표가 사모펀드와 연루되어 해외로 도피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강 배우님이 저희와 함께해주신다면. 이전과는 다른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막고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달리던 그는 갑자기 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가 떠난 곳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떠난 방향은 제법 높은 산이 자리해 있었다.

‘산에서 혼자 사는 건가? 자연인처럼?’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가족 문제 등으로 슬픔을 안고 속세를 떠나 산에서 홀로 사는 이들이 있지 않던가.

나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남은 식사를 마저 했다.

그를 설득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보다는 어떻게든 그를 곰도리형제단에 끌어오고자 하는 의지가 훨씬 더 컸다.

#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주말도.

나는 하연이를 유주에게 맡긴 뒤 이곳을 찾았다.

내가 갔던 식당을 비롯하여 그가 사라졌던 야산을 뒤지며 강은석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긴 그가 내 생각대로 자연인이라면 사람들이 있는 아래로 내려오는 경우보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가 더 많겠군.’

그래서 나는 가벼운 등산복 및 등산 장비를 마련한 뒤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던 야산을 샅샅이 뒤졌다.

나름대로 주말마다 운동도 되고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평소 가보지 않았던 길로 들어서 봤는데.

해발 300m나 되었을까?

산 중턱에 인가가 하나 보였다.

사실 인가라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했다.

다 찢어지기 직전의 비닐하우스가 넝마처럼 방치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갔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 멍멍!

귀여운 강아지가 나를 경계하며 시끄럽게 찢어댄다.

- 꼬꼬댁! 꼬꼬꼬꼬

닭도 몇 마리 키우는 것 같고.

- 졸졸졸졸

인근에 있는 계곡물을 급조한 파이프로 끌어와 물을 얻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분명해. 여긴 사람이 사는 집이야!’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계십니까?”

이내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

문이 열리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달 전.

부대찌개 식당에서 만났던 강은석이었다.

그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어떻게 여길?”

“이후 주말마다 이 잡듯이 근처를 뒤졌습니다. 혹시나 싶어 여기로 와봤더니. 정답이었네요.”

“일 없습니다. 가세요.”

“강 배우님! 저는 진심으로 배우님을 섭외하고자..”

- 쿵!

그가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사람 무안하게시리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나는 문 앞에 놓인 통나무에 걸터앉고는 일부러 그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야. 경치 좋다아. 이런 곳에서 살면 건강도 좋으시겠습니다. 공기도 좋고 운동도 되고. 하하.”

아침 일찍부터 산을 헤매고 다닌 덕분인지 배가 고팠다.

나는 넉살 좋게 배낭에서 유주가 싸준 도시락을 꺼내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수 싼 스팸 김밥이 아직도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맛있게 스팸 김밥을 먹다가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한 짐승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무척이나 김밥이 먹고 싶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 끼이이잉.

나는 빙그레 웃으며 녀석에게 김밥을 하나 던져주었다.

그러자 덥석 이를 받아먹고는 더 달라는 듯 내게 꼬리를 흔드는 녀석.

그렇게 녀석에게 김밥을 주면서 함께 놀고 있는데 비닐하우스 문이 열렸다.

“흰둥아. 남이 주는 걸 그렇게 함부로 받아먹으면 탈 난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먹다 남은 음식을 녀석의 밥그릇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새 스팸 김밥의 매력에 빠져버렸는지 거들떠보지도 않는 흰둥이.

강은석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 충성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똥개 같으니라고.”

그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겨 입을 열었다.

“거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이오?”

“배우님이 집 구경시켜 줄 때까지요.”

“허허. 사람 하고는.”

그는 더 이상 나를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손짓했다.

후다닥 그를 따라 들어갔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오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장판으로 깔린 바닥과 싱크대. 수도시설. 심지어 화목난로와 흔들의자까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제법 아늑해 보이는 실내.

나는 유독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던 흔들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내가 직접 만든 거요.”

“강 배우님이요?”

“그 배우라는 말은 말은 닭살 돋으니까 그만하고.”

“에이. 요리사가 주방을 떠난다고 해서 요리사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한번 배우는. 영원한 배우이지 않습니까. 하하.”

그는 질렸는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창고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꺼내오더니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는 낡은 프라이팬을 그 위에 올렸다.

“뭐 하시는 거죠?”

“가만히 보고 계세요. 내가 좋은 걸 대접해 드릴 테니.”

그는 수납장에서 간장과 마늘을 꺼내오더니 프라이팬에 붓고는 이윽고 창고에서 꺼내 온 무언가를 거기에 투하했다.

저게 뭔가하고 자세히 봤더니 무언가의 애벌레로 보였다.

“이게 뭐죠?”

“말벌 애벌레입니다.”

“말벌 애벌레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지만, 그는 더 이상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요리하는 데 집중하더니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간장에 조려진 애벌레를 하나 떠서 내게 건넸다.

“먹어보세요. 별미도 이런 별미가 없으니.”

내가 비위가 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건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정성 들여 음식을 내줬는데 외면하는 건 손님 된 도리가 아니겠지.

나는 눈물을 머금고 눈을 딱 감고. 그가 건넨 애벌레를 입안으로 삼켰다.

우물우물. 쩝쩝.

그럭저럭 간장에 조려져서 그런지 짭짤하기도 하고 씹히는 맛이 나쁘진 않다. 대형 번데기를 먹는 느낌.

“이런 걸 먹고 사시는 건가요?”

“설마. 이건 간식이고 밥은 따로 챙겨 먹습니다.”

“대체 여기서 몇 년을 사신 거예요?”

그는 아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대략 5년 됐나.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일이라는 건 아마도 교통사고로 가족들을 잃은 걸 말하는 것일 테다.

나는 그를 향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강 배우님. 계속 이런 식으로 여기서 사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나는 이제 여기가 좋아요. 흰둥이도 있고, 더 이상 속 썩이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얼마 전에는 마을로 내려와 부대찌개도 먹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부대찌개를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지. 일 년 중 그런 날은 며칠 없어요.”

부대찌개를 먹고 싶다는 말은 곧 MSG가 당겼단 뜻이다.

그러니까 그 역시 속세의 맛을 끊을 순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나는 정중히 그에게 말했다.

“강 배우님. 저는 배우님이 필요합니다. 부디 저희 회사에 들어와 주세요.”

“허허. 난 이제 배우 같은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가족을 잃은 일뿐만 아니라 연예계에 대한 불신이 크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버럭 화를 냈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손님이라고 오냐오냐 봐줬더니!!”

“회사의 모든 금액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됐어. 더 이상 지껄이지 말고 당장 내 앞에서 꺼져! 네가 날 알아? 아냐고!”

“저는 어린 시절 강 배우님이 연기했던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강 배우님이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시고, 배역에 진심인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영화 <특공> 촬영 땐 배역을 위해 20kg이나 감량하셨고, 바로 그다음에 찍을 드라마를 위해서는 30kg를 다시 찌우셨잖아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오래전 일이야. 배우 강은석은 이미 죽었다고!”

그는 울부짖듯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의 눈빛에서 여전히 연기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느낄 수 있었다.

‘연예인이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에 목마른 존재. 지금은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이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역시 분명 다시 재기해서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클 거야. 내가 그의 돈을 떼먹을 생각이 없다는 것만 제대로 어필하면 된다.’

그리고 그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내가 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가족. 내가 건실한 청년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지.’

나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청첩장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얼마 뒤에 결혼합니다.”

“...”

“원래는 주례 없이 결혼하려고 했는데. 오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강은석이 호기심이 동했는지 슬쩍 나를 돌아본다.

“부디 제 결혼식의 주례가 되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를 향해 절을 올렸고, 그는 당황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당하겠지. 섭외도 모자라 난데없이 주례를 부탁하다니.

하지만 이건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속세를 떠난 그가 어떻게든 외부로 나오기 위해서는 합당한 명분이 필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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