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101화
김시덕은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이다.
최근 야당의 계속된 공격에 심신이 피로해진 그는 일찍 잠이 들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밖이 시끄러웠다.
‘광화문 광장은 당분간 집회를 열지 말아 달라고 누누이 서울시장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가 인상을 구기자 비서실장이 조용히 읊조렸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한부모 가족 대잔치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부모 가족 대잔치? 그게 뭐 하는 행사죠?”
“미혼부나 미혼모처럼. 부모 중 한 사람만 있는 가족들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가수를 불러 축하 공연을 하는 자리라고 하더군요.”
“그런 행사가 있는데 왜 지금까지 보고가 없었습니까?”
“그것이.”
비서실장을 고민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대통령의 앙숙인 한명진 대표가 와 있으니 말이다.
괜히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는 판단하에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건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이 모일 줄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 자리에 한명진 대표도 와 있습니다.”
“뭐요? 그놈은 왜?”
“주최 측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젠장. 거기서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어쩌시렵니까. 지금이라도 잠깐 얼굴을 비추시는 게.”
김시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소음으로 고통받느니. 그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최근 잘 나가는 김하연이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안 그래도 그녀는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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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나기 10분 전 도착한 대통령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아 네. 여긴 어쩐 일로?”
“청와대 근처에서 좋은 취지로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고 그래서. 동네 주민으로서 잠깐 방문해봤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물론이다. 예고도 없이 깜짝 방문.
그는 고개를 흔들며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사전에 보고받았으면. 어떻게든 참석하겠다고 알렸을 텐데, 제가 조금 늦었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혹시 서울시장과 한명진 대표가 여기 왔다고 해서 그에게까지 연락이 간 것일까?
아무튼 TV에서만 보던 대통령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까 신기하긴 했다.
그는 ‘어떤 두 사람’을 열창 중인 하연이의 무대를 흘깃 보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저 아이가 따님이라죠?”
“네. 제 딸입니다.”
“대단한 친구입니다. 듣기로는 저 친구의 경제적 효과가 1조를 넘는다던데. 아이가 창출하는 직간접적인 부가가치와 국가 브랜드 홍보. 그리고 위상 제고 등 효과가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마치 걸어 다니는 대기업이 따로 없군요. 하하.”
나도 그 기사는 봤다.
연구기관마다 조금씩 수치는 달랐지만 대략 7천억에서 3조 억 원까지.
하연이의 경제적 파급효과라며 연구 결과가 쏟아졌다.
‘조 단위라니.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이 안 잡히는 수치긴 하지.’
그는 내게 이런 말을 꺼냈다.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무척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네, 대통령님. 사랑이 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미혼부가 혼자 출생신고를 하는 건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한번 각료들과 잘 의논해서 조속히 풀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야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와 출생신고 개정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에서 사회를 보고 있던 유주가 이런 말을 외쳤다.
“우와! 속보입니다, 여러분. 대통령께서 지금 이곳을 방문해주셨다고 하네요!”
“오오오!!”
“대통령님을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크게 소리 질러주세요.”
“와아아아!!”
떠나갈 것처럼 광화문 광장 가득 울리는 외침에 대통령이 쓴웃음을 짓는다.
“하하. 몰래 왔다 가려고 했는데. 이거 어쩌지.”
그는 참모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결심을 굳혔다.
“국민들이 이렇게 저를 부르는데 가만히 있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섰다.
진짜로 대통령이 무대 뒤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힘찬 박수와 함께 목청을 높였다.
“김시덕! 김시덕!”
그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손을 흔들더니 이내 마이크를 쥐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사랑해요, 김시덕!”
“잘 생겼다아!”
“하하. 감사합니다. 남의 잔치에 연락도 없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어 송구한 마음입니다.”
“아하하하.”
“오늘 좋은 행사가 있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취임한 이후에 광화문 광장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이 모인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이곳에서 이렇게 대규모 행사가 열리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시가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늘 열린 ‘한부모 가족 대잔치’는 그 취지가 좋았기 때문에 쿨하게 통과되었지만 말이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동감하시겠지만, 한부모 가족은 정말 쉽지 않은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그는 앞자리에 앉은 한부모 가족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에 있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구호 중 하나입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하고요. 정부는 앞으로 한부모 가족들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만들 계획입니다. 모두 힘드시겠지만. 정부도 더욱 노력할 테니 부디 힘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와아아아!!”
역시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야당 대표인 한명진 대표 못지않게 그 역시 웅변을 참 잘한다.
그러니까 저 자리에 오른 거겠지만.
그는 짧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행사장을 떠나려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대통령님!”
“네?”
그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차를 타려다 말고 나를 돌아본다.
“방금 무대 위에서 하신 말씀. 꼭 기억하겠습니다.”
“하하. 물론입니다.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행사장을 떠났다.
사실 이 자리는 한부모 가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정부의 정책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발로였다.
그런데 야당 대표인 한명진과 차기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서울시장.
거기에 대통령까지 나서 한부모 가족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하니 어쩌면 내가 하고자 했던 목표를 200% 달성한 느낌이 들었다.
‘뿌듯하네! 정말.’
나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행사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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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행사를 기획한 진형 씨를 위하여!”
“위하여!!”
광화문 광장 인근의 대형 호프집.
나는 이날 이곳을 통으로 빌려 오늘 행사에 힘써준 무료 봉사단과 스태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3층까지 전부 호프집인 이곳은 300명이 넘는 인원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는 1층과 3층을 분주하게 오가며 한 명 한 명에게 감사를 전했다.
“오늘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대표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한 건 난데 오히려 그들이 더욱 고마워했다.
이렇게 좋은 행사를 준비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달라면 말이다.
안발렌티나 수녀님은 나와 하연이를 <아이에게 사랑을>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하겠다고 그랬고, 서울시장은 하연이가 서울시 홍보대사가 되어줄 수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다 뒤늦게 하연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그 옆에는 아일라와 유주의 모습도 보인다.
아일라는 자기 옆자리가 비었다며 내게 손짓했다.
“대표님. 여기 자리 비였어요!”
하지만 유주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내게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마치 저기 앉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유주의 옆에 앉자 아일라가 토라진 듯 중얼거렸다.
“히잉. 여기도 비였는데.”
“저기 아일라 씨.”
“네?”
“진형이는 제 남자친구니까. 넘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세요.”
“응? 전에 두 분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일라가 큰 눈을 깜빡이며 묻자 유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됐어요.”
“와. 두 분 축하드려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만!”
아일라는 아이돌 출신이라 예민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게 마찬가지로 털털한 성격의 유주와 궁합이 맞았던지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언니. 어쩌다 두 분이 만나게 되신 거예요?”
“우리 원래 이전에 연인이었어.”
“연인이었다고요? 그런데 왜 헤어졌어요?”
“그게 말이지.”
유주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고, 곧이어 아일라도 나를 향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게 뭐예요. 남자답지 못하게.”
거기에 하연이까지 가세해서 내게 뚱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 셋이서 동시에 나를 노려보기에 나는 서둘러 맥주잔을 들고 옆자리로 피신했다.
이태식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환영합니다, 대표님. 때로는 청일점보다 꼬추밭이 더 좋은 법이죠. 하하.”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뭘요. 서울시장에 대통령까지. 대표님 인맥도 장난 아닌데요? 다음엔 저도 좀 소개해 주세요.”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봐.
그런데 그의 옆에는 어디서 많이 본 양반이 앉아 있었다.
PKT 엔터 송규형 실장이었다.
그는 어색한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네. 저야 뭐.”
한때는 거드름을 피우며 내게 하연이 스카우트를 제안했던 양반인데 지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그의 얼굴을 보니 민규가 떠올라서 살짝 물었다.
“요즘 민규는 어떤가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연기력도 갈수록 좋아지고요.”
“다행이네요. 민규는 똑똑한 친구니까 분명 앞으로 잘할 겁니다.”
그러자 이태식이 대뜸 내게 말했다.
“혹시 하연이도 연기를 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연기요?”
“네. 훌륭한 아역배우는 언제나 부족하거든요. 요즘은 가수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하하. 물론 하연이는 이미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친구지만 연기 쪽도 파보면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연기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건 한번 고민해보겠습니다.”
“네. 대표님 회사도 연예기획사 일을 함께하시죠?”
“네.”
“그럼 하연이가 됐든, 대표님이 됐든. 더더욱 연기 쪽도 한번 경험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공연이랑은 또 다른 세계니까요.”
연기라.
아직 하연이가 어려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의 말처럼 여러 가지 경험을 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한번 하연이랑 직원들이랑도 상의해봐야겠군.’
그런데 그러려면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도 구해야 할 거고, 지금 보다 챙겨야 할 게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지금은 소속 연예인이 하연이 한 명뿐이지만. 연예 기획사를 표방한 만큼 소속 연예인이 더 많아져야 할 테고.
마찬가지로 MCN 쪽도 유주 이외에 다른 방송인들을 섭외해서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한부모 가족 대잔치’도 성대하게 막을 내렸으니. 이제 슬슬 회사를 조금 더 키워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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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와의 결혼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유주 부모님은 당장 이 골칫덩어리를 데려가라면서 서둘러 결혼식 날짜를 잡으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결혼식 일자가 10월 말로 잡혀버린 상태.
원래는 내년 초에나 할까 생각했었는데, 유주 부모님이 어디서 점을 보고 오시더니 길일이라며 날짜를 받아오셨던 것이다.
뭐가 뭔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결혼은 여자 쪽 의견을 들어주는 게 맞다고 하니까 대충 그러려니 했다.
아무튼 나는 주말을 맞아 유주와 하연이와 함께 부모님과 외할머니의 산소가 있는 동두천 공원묘지에 왔다.
이분들에게도 나의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란히 설치된 가족묘.
나는 절을 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 진형이가 왔어요.”
유주와 하연이가 나를 보고는 따라서 절을 한다.
“저 이제 곧 결혼해요. 제 색시 예쁘죠? 그러고 보니 하연이는 처음 인사시켜드리네요. 제가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산다고 딸도 못 보여드리고. 죄송해요.”
나는 허망한 얼굴로 두 번 절을 올리고는 일어섰다.
“오늘은 저 결혼 소식 전하려고 방문해봤어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시면서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기도해주세요.”
유주는 꾸벅 반절을 올리더니 내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할머님. 저 진형이랑 결혼할 사람이에요. 진형이랑 하연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그곳에서 지켜봐 주세요.”
이윽고 하연이까지 입을 열었다.
“저도오 자알 할게요오!”
우리 셋은 서로를 꼭 껴안고는 공원을 떠났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부대찌개 전문점으로 이동했다.
동두천까지 왔는데 부대찌개를 안 먹고 갈 순 없잖는가.
주문하고 주변을 살펴보는데 저쪽 구석 자리에 낯이 익은 인물이 한 명 보였다.
50대 정도 되었을까? 한 남성이 혼자서 쓸쓸히 부대찌개를 먹고 있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얼굴도 너무 핼쑥해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지만 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가 주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던 한 사람이니 말이다.
왕년에 S급 배우였다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뒤 홀연히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춰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강은석 배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