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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100화 (100/135)

내 딸은 국힙원탑 100화

원래 계획은 유주와 하연이.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셋이서만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성식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따라오겠다고 떼를 썼다.

자신은 하연이의 매니저이자 나의 부하라며.

응? 매니저는 알겠는게 부하는 또 뭐람.

그렇다고 강성식만 데리고 가자니 그의 동생들이 걸렸다.

그래서 큰맘 먹고 풀빌라를 하나 더 빌렸다.

강성식은 기분이 좋았던지 차를 하나 렌트하고는 우리를 따라나섰다.

그리하여. 총 6명의 인원이 다 같이 이곳 고성에 온 것이다.

“방에서 수영도 하고 좀 쉬다가. 이따 저녁 같이 먹읍시다.”

“네, 대표님! 이렇게 좋은 곳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생들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요.”

나는 짐을 모두 정리한 다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그제야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유주의 모습이 낯설다.

노란색 비키니를 입은 그녀라니.

예전에 나랑 사귈 때는 부끄럽다면서 그런 거 안 입었잖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두 사람과 물놀이를 즐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옆에는 사랑하는 유주. 그리고 하연이가 함께 있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전생의 나는 어쩌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처럼 나라를 구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유리창에 빗방울이 조금 맺히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내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해변에서 물놀이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유주가 그 모습을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로 숙소 잡길. 잘했지?”

“그러게. 하마터면 비를 쫄딱 맞을 뻔했네.”

“잘했으니까 여기 뽀뽀.”

유주가 자기 볼을 내게 들이밀었다.

옆에 하연이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뽀뽀를 해주었다.

- 쪽

그런데 이번에는 하연이가 내 옆으로 오더니 자기 볼을 들이민다.

어서 빨리 자기한테도 뽀뽀를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들어 올리고선 무한 뽀뽀를 반복했다.

“꺄아아!”

“으윽! 진형아. 이제 그만!”

먼저 해달라고 하더니 인제 와서 무슨 소리냐.

나는 두 여자의 볼이 빨갛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뽀뽀 공격을 계속했다.

내 얼굴로 사정없이 물이 튀었지만 나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

원래는 이날 저녁으로 회를 먹을 생각이었다.

인근에 있는 수산시장에서 회를 하나 떠서 숙소로 가져와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니 회 대신 여기 올 때 미리 준비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성진이는 회를 먹지 못해 아쉬웠는지 이런 말을 꺼냈다.

“뭐야. 난 회 먹고 싶었는데.”

그러자 눈치 빠른 수진이가 서둘러 주의를 준다.

“뭐라는 거야! 누구 덕분에 여기 올 수 있었는데. 하여간 정말 애라니까.”

강성식도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성진아. 원래 비 오는 날에는 회 먹는 거 아냐.”

“왜? 이유가 뭔데?”

“그, 그게.”

강성식은 거기까진 몰랐는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나는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점 성진이 앞 그릇에 올려다 주고는 입을 열었다.

“그건 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이야.”

“감염?”

“응. 비가 오면 바닷물이 순환하는데, 저층의 해수가 위로 올라오면서 물이 섞이는 거지.”

“그게 무슨 문젠데요?”

성진이가 궁금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해수가 서로 섞이면 저층에 있던 박테리아도 위로 올라오면서 물고기가 그걸 먹게 되지 않겠어? 그게 위험할 수 있단 거지.”

“아.”

성진이가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게다가 비 오는 날은 습도가 높아지잖아. 이런 날에는 생선이나 도마에 묻은 세균이 번식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무래도 주의하는 게 좋지.”

“그렇구나.”

물론 요즘은 식당의 위생 상태가 좋아지고, 유통과정이 발달하면서 비가 오는 날 회를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던데, 그래도 어른들만 먹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있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비슷하게 따지면 돼지고기 역시 완전히 익힐 필요 없이 소고기처럼 살짝만 구워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아직 그렇게 먹는 사람들이 많진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기분의 문제였다.

나는 맛있게 삼겹살을 먹고 있는 수진이를 향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수진아. 고기 맛있니?”

“네! 진짜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지금 사는 데 힘든 건 없고?”

“전혀요. 목숨도 구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집도 빌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하하. 중학교 2학년인 수진이는 제법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부모님 없이 자라다 보니까 집안에서는 혼자서 엄마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지금 사는 집. 마음에 들어?”

“네. 너무 좋아요. 마치..”

“마치?”

“여기가 계속 우리 집이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러자 강성식이 고개를 저었다.

“수진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어서 사과드려.”

“으응 오빠. 대표님 죄송합니다.”

수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성식이가 애를 잡네, 잡아.

나는 아니라고 손을 저은 뒤 이런 말을 꺼냈다.

“성식 씨만 괜찮으면.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사는 것도 괜찮아요.”

“네? 하지만 여긴 원래 직원 휴게소로 이용하실 생각이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거야 옆에 있는 사무실도 비어있으니까 거길 빌려도 되겠죠.”

“아닙니다, 사장님! 목숨도 구원받았는데 어떻게 집까지. 제가 조만간 방을 구해서 빨리 여길 뜨겠습니다.”

그 말에 수진이도. 성진이도. 시무룩한 얼굴을 지었다.

어지간히도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는 하연이를 슬쩍 바라다가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성식 씨는 하연이 매니저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하연이가 사는 곳이랑 가까울수록 좋은 거 아니에요? 갑자기 일이 터졌는데 멀리 있으면 곤란하니까.”

“대표님 집 근처로 집을 구하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지금 사는 곳이 딱이다. 이 말이죠.”

“그래도 여긴.”

“물론 공짜로 빌려주겠단 의미는 아니에요. 일종의 기숙사라고 생각합시다.”

“기, 기숙사요?”

강성식이 두 눈을 꿈벅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월급에서 매달 30만 원씩 기숙사비로 제하고, 관리비는 별도. 이러면 공짜가 아니니까 성식 씨도 괜찮을 것 싶은데. 어떤가요?”

“3, 30만 원은 너무 저렴한 것 같습니다, 대표님! 이전에 살던 반지하도 월세를 받으면 70만 원을 줘야 했어요.”

“기숙사라는 게 원래 직원 복지 차원에서 싸게 빌려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쓰세요. 성식 씨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어린 동생들도 함께 잖아요.”

“그, 그래도.”

한마디 더 하려는데 옆에 있던 유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하라면 해요. 충성을 맹세하겠다던 사람이 뭘 그렇게 말이 많아요?”

“윽.”

“진형이도 좋은 의미로 말하는 거니까 이런 건 그냥 모른 척하고 받는 게 예의라고요. 그렇지, 하연아?”

“웅!!”

하연이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강성식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뗐다.

“고마워, 하연아. 고맙습니다, 사모님.”

“네?”

사모님이라는 표현에 유주가 기가 차다는 얼굴을 했다.

그녀의 표정을 눈치챈 강성식이 어쩔 줄 몰라 한다.

“대표님 여자친구시니까. 뭐라고 불러드리면 좋을지.”

“그냥 유주 씨라고 불러요. 제 나이가 몇갠데 사모님이 뭐예요, 사모님이!”

“아니 그래도 그게 좀.”

“됐어요! 유주 씨! 따라 해보세요.”

“유, 유주 씨.”

“오케이. 이제 됐네. 한 번만 더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나 화낼 거예요.”

“알겠습니다, 사..유주 씨.”

집에서는 엄한 가장을 연기하던 강성식이 이렇게 대놓고 혼이 나자 수진이와 성진이는 그 모습이 무척 웃겼나 보다.

“오빠 웃겨.”

“흐흐. 그러지 마. 누나. 형 가오 떨어지잖아.”

“...”

강성식이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동생들은 계속해서 그를 놀려댔다.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무척 사이가 좋은 형제다.

혹시라도 나중에 유주와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와 하연이도 이렇게 사이가 좋은 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땡볕 더위에 힘들어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을 안내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오래전부터 기획해왔던 ‘한부모 가족 대잔치’가 이곳,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것이다.

<아이에게 사랑을>의 도움으로 이곳 소속의 미혼부, 미혼모들과 그들의 자녀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수많은 한부모 가족들이 이곳을 찾았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준비한 음식이 부족하면 어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한부모 가족들만 이 자리에 모인 건 아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우리가 준비한 행사장을 찾아주었다.

그들은 행사장 곳곳에 설치한 배너와 모니터를 통해 한부모 가족의 어려움을 살펴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출생신고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이건 좀 너무하네.”

“힘들겠다, 정말.”

사실 그들이 온전히 한부모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만으로 이 자리를 찾은 건 아니었다.

오늘 행사에 참석하는 게스트의 스케일이 남다른 영향도 컸다.

우선 서울시장의 축사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내가 얼마 전 있었던 봉천동 의인이라는 걸 파악한 서울시는 부랴부랴 서울시장도 오늘 참석하겠노라며 어젯밤 늦게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

그뿐인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태식을 비롯. 저번에 그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처음 만났던 아일라와 한명진 대표까지 이곳을 찾아주었다.

이런 좋은 자리에 왜 자기들에게 연락을 주지 않았느냐면서 출연료도 마다한다.

덕분에 아주 풍성한 행사가 되었다.

특히 행사 초반에 있었던 한명진 대표의 연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가족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아이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정부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들이 처한 궁핍한 현실을 제대로 마주 봐야 합니다. 출생신고 제도도 당장 손봐야 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국민과 함께! 한명진 대표입니다!”

“와아아!!”

이건 무슨 대선을 앞둔 정치인 연설 같다.

이어서 이태식과 아일라. 그리고 하연이의 축하 무대가 나오자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나는 자리를 옮겨 의료 봉사 중이던 성현이에게 다가갔다.

성현이는 정신없이 진료에 힘쓰고 있었다.

“고생 많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너 잘하는지 감사하려고 왔지.”

“감시는 무슨. 그나저나 오늘 완전 대박이네. 도대체 몇 명이나 여기 온 걸까?”

“몰라. 경찰 말로는 대략 5만여 명 정도 모인 것 같다더라.”

“장난 아니네. 나는 많아 봤자 1만 명 정도나 모일까 싶었는데.”

“아무튼 고생 많다. 끝나면 내가 살 테니까 동료 의사분들하고 다 같이 술 한잔하자.”

“크크. 알았다. 좋은 거 기대할게.”

“그려.”

성현이만 동료들과 함께 온 게 아니었다.

상준이도. 현모도. 당초 혼자서 오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동료들과 함께 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덕분에 오늘 이 행사장을 찾은 많은 미혼부, 미혼모들이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격려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성식이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오더니 내게 소리쳤다.

“대, 대표님. 허억. 허억.”

“성식 씨 무슨 일이에요?”

“허억. 대, 대통..”

뭐지? 대통주가 마시고 싶단 이야긴가? 물론 그 달달한 맛은 나도 좋아하는 거긴 한데.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지금 대통령께서 여기로 오시겠답니다!”

응? 대통령이 여길 왜 와?

설마 자기 집 앞 마당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한 소리 하려고 오는 건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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