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95화 (95/135)

내 딸은 국힙원탑 95화

“형! 여기 진짜 너무 좋아! 최고야!”

“성진아. 침대에서 그렇게 뛰면 안 돼! 여긴 우리 집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당장 내려와!”

강성진과 강수진이 실랑이를 벌였지만, 지금 강성식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매니저인 나만 빼고 두 사람만 가다니.’

대표님은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서 김하연을 데리고 둘만 이동했다.

아무리 극비사항이라도 그렇지.

자신은 하연이 매니저로 이곳에 채용된 게 아닌가.

나만 혼자 빼놓고 둘만 이동하는 게 어딘지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강성식이었다.

‘어서 빨리 대표님의 신임을 얻어야 할 텐데. 뭘 하면 좋을지.’

그러다가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사무실에 인원이 늘면서 정리 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

그는 동생들을 이끌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청소에 돌입했다.

“애들아. 이게 다 우리 생명의 은인이신 김진형 대표님을 위한 거니까, 최선을 다해서 청소해야 한다.”

“응! 맡겨만 줘!”

“열심히 할게, 오빠!”

세 사람은 진심을 다해 사무실을 쓸고, 닦고, 정리했다.

얼마나 세게 닦았는지 바닥에서 광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는 김진형의 자리를 청소하다가 주먹만 한 크기의 푸 인형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보였다.

“이게 대표님이 말씀하신 그 푸 인형이구나?”

“푸 인형?”

“그게 뭐야? 오빠?”

강성진과 강수진이 궁금하다는 듯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 이름이 곰도리형제단이잖아?”

“응.”

“이거 하연이가 대표님에게 선물한 인형인데, 이걸 모티브로 해서 이름을 지었대.”

“와! 엄청 귀엽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 다이소에서 이와 비슷한 인형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강성식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이소에서 대표님의 자리에 있는 것과 동일한 푸 인형을 하나 사서 자기 자리에 올려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진형은 자기 인생의 롤모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은 강성식이었다.

#

나는 썼다 지웠다는 몇 번이나 반복하고는 애플펜슬을 손가락에서 놓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눕혔다.

‘하아. 생각보다 쉽지 않네.’

직접 작사에 나서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밝혔는데.

의외로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전 지구인은 하나다. 인종이나 피부색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비유적으로 잘 표현해야만 하는데.’

이런 건 직설적으로 하면 오히려 반발이 컸다.

지금 시대에 PC(political correctness)를 강요하는 거냐? 유치하다, 너무 이상적이다 등등.

세계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각국 정부는 각자도생. 그러니까 자국민만 잘 먹고 잘살자는 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후진국들은 물론이고 패권국가를 자칭하는 미국과 중국까지.

슬프게도 글로벌, 지구촌, 우리는 하나. 이런 단어는 빛바랜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면 은유적으로. 이를 잘 표현할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빠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전해준 음악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모두 평화와 화합이란 키워드를 강조한 과거의 음악들.

그런데 그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주제곡인데 제목만 알고, 직접 들어보진 못한 곡이었다.

나는 아빠가 사준 아이패드를 들고선 서둘러 유튜브 앱을 실행하였다.

아빠는 연필의 뾰족한 부분이 위험하다면서 내게 필기도구의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아이패드를 하나 사줬는데, 이걸로 인터넷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손에 손잡고’로 검색하자 수많은 영상이 떴고, 나는 그중 가장 상단에 있는 영상을 클릭했다.

올림픽 폐막식으로 보이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촌스러운 자막이 아래 뜬다.

노란색으로 큼지막한 크기의 손에 손잡고란 자막 말이다.

신시사이저의 강렬하고도 화려한 연주를 시작으로 이내 한 남성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보이며 노래를 부른다.

“하늘 높이. 솟은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그들 주위로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듯 무대를 둥글게 돈다.

3분 정도나 되었을까?

짧고도 강렬했던 노래가 끝이 났다.

더 이상 음악이 들리지 않는 가운데 긴 여운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뚝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좋은 곡이었어?’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가사는 직설적인 한편 화합의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은유적으로. 시적으로만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 곡을 듣고 나자 오히려 생각이 바뀌었다.

직접적으로 서로 사랑해야 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가사가 더 마음에 와닿았으니까.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같은 내용을 영어로 하고 있었는데,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다.

‘그래. 어설프게 한국어와 영어를 섞느니. 이게 더 좋겠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 손잡고.

아. 진짜 너무 감동적인 가사다.

이런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화합의 메시지였다.

몇 번이나 이 곡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

핫레스트가 비밀리에 내한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우리는 다시금 그들이 머무는 한신호텔 VVIP실을 방문하였다.

하연이가 적어준 가사를 보여주자 이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지, 진짜로 이걸 하욘이가 만들었다고?”

“아. 가사 너무 좋다. 진짜 너무 좋다. 최고야.”

심지어 감수성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핫레스트의 기타리스트인 프랭크 롭슨은 엉엉 눈물을 쏟아내기까지 하였다.

“허어어엉! 이거 너무 감동적이야. 내가 듣고 싶던 바로 그 메시지라고!”

처음에는 우릴 향해 딱딱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들의 매니저 지미 킹도 촉촉이 젖은 눈가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완벽합니다. 이건 진짜 최고예요!”

우드게이트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의 모습을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는 가사가 인상적이네요. 정말 아름다운 가사입니다.”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영어로 부르겠다는 하연이의 제안도 이들은 흔쾌히 수락하였다.

심지어 우드게이트는 이런 말을 했다.

“with 김하욘이 아니라. 김하욘 X 핫레스트로 표기하는 건 어떨까요?”

“네?”

“작곡은 저희가 했지만, 작사는 하연이가 다 했으니까요. 저희가 만든 가사가 부끄러울 수준이네요.”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이건 정말 최고의 가사입니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핫레스트와 하연이는 녹음을 마쳤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내한 일정을 마쳤다.

킹은 떠나기 직전 이후 스케줄에 대해 알려주었다.

“일단 곡을 다듬어야 하니까. 이걸 끝내면 공식 뮤직비디오 전에 가사부터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사부터요?”

“네. 메시지가 너무 좋아요. 하욘이와 핫레스트 멤버들이 직접 쓴 손글씨를 다듬어진 음악과 함께 내보내고. 이후 정식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공식 영상을 올리는 거죠.”

이리하여 일주일간의 협업이 끝이 났다.

핫레스트와 콜라보라니.

지금 생각해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

요즘 따라 사무실이 쾌적해졌달까? 먼지 하나 없이 광택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강성식의 책상 위에 올려진 저 푸 인형.

‘내 거랑 똑같은 거 아냐?’

그는 지나칠 정도로 나를 따라 하며 내게 충성을 다했다.

인사를 할 때도 90도로 허리를 숙이는가 하면, 내가 부르면 본인 자리에서 대답해도 될 텐데 내 자리까지 뛰어오는 등 남들 보기 민망할 수준이었다.

‘이번에 핫레스트 만날 때 함께 대동하지 않아서 저러는 건가?’

아무튼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강성식이 곰도리형제단에 합류하고 좋아진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동생인 강수진과 강성진은 방과 후 하연이와 함께 놀아주는 등 좋은 언니와 오빠가 되어주었다.

하연이도 두 사람을 잘 따르고 함께 노는 걸 좋아했다.

‘집도 가까우니까, 멀리 나갈 필요도 없고.’

한편, 드디어 미래 그룹 홍보 영상 제작이 완료되었다.

전주현 이사는 영상을 보고는 이 한마디를 남겼다.

“좋습니다. 이대로 가시죠!”

그래서 추가 편집 없이 그대로 영상을 납품할 수 있었다.

미래 그룹은 풀 영상을 자기네들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렸고, TV에는 편집된 영상을 공개했다.

슬쩍 반응을 살펴봤더니 나쁘지 않다.

└ 으앙. 애들 너무 귀엽다아!!!

└ 그렇죠. 애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이자 미래의 기둥! 우리는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 미래 그룹이 드디어 한 건 했네. 전작은 너무 억지스러웠는데 이건 자연스럽고 좋네요

└ 믿었다규 미래에!!

└ 광고 영상이지만 공익 캠페인 느낌도 들고. 좋네요. 응원합니다

└ 부모님들이 아이들 옷이 왜 더러워졌는지 깨닫고 눈물 흘릴 때 저도 울었어요. ㅠㅠ 진짜 아이들은 천사들인 것 같아요

└ 근데 저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님?

하지만 마지막 댓글은 이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미래 그룹 홍보팀에서 빠르게 보도자료를 배포.

몇 가지 연출이 있었지만, 촬영 당사자인 부모들과 아이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고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미래 그룹 홍보 영상 제작도 끝났겠다.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컴퓨터 폴더 깊숙이 저장한 ‘한부모 가족 대잔지’ 프로젝트에 다시금 손을 올렸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시즌과 맞물려 광화문 광장에서 이걸 개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선 말이다.

#

하연이의 신곡인 ‘어떤 두 사람’은 국내 음원 차트 1위를 휩쓴 다음 이제 세계로 무대를 확장했다.

유튜브에 올린 뮤비는 천만 조회수를 돌파. 지금도 끊임없이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확실히 유튜브가 좋긴 좋네.’

해외 방송국에서 섭외제안이 오는 등 하연이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뀐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거기에 핫레스트와 협업했다는 기사와 함께 가사만으로 만들어진 핫레스트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올라오면서 온라인 기사가 미칠 듯이 쏟아졌다.

<[단독] 김하연과 협업한 핫레스트..‘위아더원’ 공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우리는 하나”...김하연-핫레스트 협업곡 ‘위아더원’>

<소문이 현실로...김하연·핫레스트 협업곡 나왔다>

<공개되자마자 빌보드 1위 직행! 김하연-핫레스트 ‘위아더원’ 인기폭발>

<뮤직비디오에 오른 한글 가사, 김하연·핫레스트 꿈같은 협업곡 공개>

그들이 이번에 공개한 영상에는 가사만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지가 너무 인상적이다 보니까 순식간에 조회수가 치솟았다.

‘We are the One’이라는 제목 옆에는 Official Lyric Video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었는데, 레터링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 수 있다니. 나 역시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이후 하연이와 나는 쏟아지는 인터뷰 제안에 응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제 좀 편안해지는 것 싶더니만. 쉴 틈이 없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나섰고, 이제 누가 뭐래도 하연이는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수가 되었다.

아직 국민가수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국민아기라는 타이틀을 붙이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나는 유주와 함께 강남에 있는 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이제는 유주를 띄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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