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국힙원탑-92화 (92/135)

내 딸은 국힙원탑 92화

그가 건넨 종이 상단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충성 계약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본문을 읽어봤더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강성식은 최선을 다해 곰도리형제단과 김진형. 그리고 김하연을 위해 근무를 하겠다.

절대로 다른 곳으로 이직하지 않을 것이며, 업무를 태만히 여기지 않겠다.

야근과 주말 근무도 상관없으니 자기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달라.

뭐 이런 식의 얼토당토않은 내용들.

게다가 웃긴 게 뭐였냐면 끝에 작은 글씨로, 분명 이전보다 훨씬 작은 폰트 사이즈로, 이런 말이 적혀있었던 거였다.

<혹여 역량 부족이라고 판단되더라도 연봉을 깎을지언정 해고는 불가능하다>

‘이게 뭐야. 평생 고용 보장 조건도 아니고.’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강성식의 표정이 워낙에 진지했기에 나는 애써 웃음을 감추고는 말했다.

“성식 씨.”

“네, 주인..아니 대표님!!”

방금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하려던 거 맞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21세기에 충성 계약서라니. 이런 건 오히려 저한테 마이너스라고요.”

“네?”

“나중에 누가 이런 정보를 언론 쪽에 흘려봐요. 곰도리형제단 사장은 밑에 직원과 염전노예계약급의 불리한 조건의 계약을 맺고 있다. 조사해봐라. 이럴 수도 있잖아요?”

“헉! 저희 회사에 그럴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곰도리형제단은 피로 맺어진 사이인데.”

말은 그렇게 해놓고선 주변을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지금 말고 나중에요. 그러니까 이건 그냥 서로 웃자고 하는 애기도 넘어가고..”

“아뇨! 대표님! 저는 절대 농담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 충성을 받아주십시오!”

“...”

운동을 한 사람이라 그런지 의리, 충성. 이런 단어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팔뚝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깨를 두드리고 싶었는데 그가 원체 키가 컸으니까.

“아무튼 성식 씨의 진심은 알았으니까 이만 됐어요. 동생들은 다 괜찮죠?”

“네넵, 대표님! 모두 아무 이상 없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집은요?”

“그게..”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현재 인근에 위치한 중학교 체육관의 임시대피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런. 집엔 가봤어요?”

“네. 가재도구가 모두 젖어서. 집주인이 군부대의 도움으로 물은 다 빼낸 것 같은데 당분간 다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는 집주인이 한 달 치 월세를 면제해주고,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해줬지만, 가재도구를 새로 사기에는 한참 모자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전에 우리 집과 사무실 계약을 주선했던 공인중개사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 양쪽이 모두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두 곳과 계약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안 그래도 사무실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사람이 많아져서 조금 좁은 감이 있다.

‘회의실도 없고 말이지.’

나는 벽 넘어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사무실 옆에 807호 있죠?”

“네. 그렇습니다!”

“지금 거기랑 계약하려고 하니까 당분간은 그쪽을 사용해주세요. 풀올션이라 몸만 들어가면 될 거예요.”

원래 지금 쓰고 있는 사무실도 침대 및 세탁기. 에어컨과 싱크대 등이 기본으로 딸린 곳이었다.

내가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밖으로 들어낸 것일 뿐.

강성식은 정말로 그래도 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대피소 같은 곳에 계속 있으면 몸 상해요. 그러면 성식 씨도 제대로 일하기 어려울 텐데 그러면 사장인 나로서는 손해 아니겠어요?”

“그, 그래도.”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그러니까 당장 이쪽으로 짐 옮겨요.”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정말 이 은혜를..”

“됐고. 지금 당장 대피소로 가서 동생들 데리고 이쪽으로 와요. 어서.”

일단 확장공사는 반대쪽에 있는 805호만 뚫는 것으로 하고 807호는 강성식에게 빌려주었다가, 그가 새로 집을 구하면 직원들 휴식 공간이랄까. 수면실 혹은 휴게실 정도의 명목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자. 그러니 여러분. 빨리빨리 일들 합시다. 투자한 만큼 일해서 저를 기쁘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주 단체로 난리도 아니다.

감동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사장님..”

“우리 사장님 너무 멋진 분이셔.”

“나도 성식 씨처럼 사장님한테 충성을 바칠 테야!”

“곰도리형제단에 뼈를 묻겠습니다!”

“저도 충성계약서 쓰면 안 되나요?”

역시 사람은 직접 몸을 움직여 행동할 때. 다른 이의 마음을 얻는 것 같다.

#

-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끊임없이 들리며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저기 의인님. 조금 더 활짝 웃어주시겠어요? 이렇게요.”

“아 네네.”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울시장과 함께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감사패를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자신의 몸을 던져 수해 지역 피해 주민들을 구해 1,000만 시민의 귀감이 된 김진형씨의 용감한 행동에 대해 서울시가 표창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울시 인구는 950만 아니었어?’

아무튼 나는 서울시장의 격려를 받고는 감사패와 함께 서울시청을 빠져나왔다.

오래지 않아 서울시청 관계자가 내게 기사가 올라갔다는 메시지와 함께 기사 링크를 보냈다.

클릭해서 보니까 내가 어색한 얼굴로 서울시장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관련 기사가 보였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뒷머리를 긁으며 감사패를 가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직원들이 또다시 선망에 가득 찬 얼굴로 나와 감사패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말없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이러다가 따봉에 배불러 죽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회사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세 얼간이가 있는 단톡방까지 소란스러웠다.

[구현모]: 이야. 내 친구. 진짜 자랑스럽다. 의인 김진형!!

[박성현]: 왜? 또 진형이가 사고쳤냐?

[구현모]: 사고는 무슨. 너 내가 방송한 뉴스도 안 봤냐? 이거 확인해봐라.

현모가 서울시장 표창 관련 기사를 단톡방에 공유하였고, 그걸 본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박성현]: 지녕아. 나는 항상 너를 나의 베스트 프렌즈 오브 베스트 브렌즈로 생각해왔다

[신상준]: 미안하지만 진형이의 베프는 나다. 진형이가 학창 시절에 나랑 짝궁이었던 거 알지?

[박성현]: 바보 같은 녀석.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신상준]: ???

[박성현]: 나는 지녕이 집에서 함께 인생 첫 담배도 같이 피운 사람이다. 베프가 아니면 과연 누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후후후

[신상준]: 담배 어디서 샀냐?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 당장 신고해야겠다

[박성현]: 변호사라는 놈이 멍청하기 짝이 없구나. 그거 시효 지났을걸?

[신상준]: 그러는 의사라는 놈은 백해무익한 담배를 피워대? 이 미친놈!!!

그만해, 이 자식들아!

그런데 둘의 만담에 아무 말이 없던 현모가 또다시 링크 주소를 보내주었다.

[구현모]: 하연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터넷에서도 제법 반응이 뜨겁네

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녀석이 보내준 링크 주소를 클릭했다.

그러자.

└ 이분 하연이 아버님 아님?

└ 오! 맞다!! 하연이 아빠가 맞음. 장난 아니네. 사람을 다섯 명이나 구하다니!

└ 나는 전부터 이분 팬이었음. 하연아빠TV라고 아는지 모르겠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상한데서 부심 느끼는 사람은 꼭 어딜 가나 한 명씩은 있네

└ 나 이거 TV 뉴스에서 본 적 있음.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자기 몸은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다 구하더라. 진짜 이 시대의 영웅이심

└ 정말 눈물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에요!

└ 사람 살리신 분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정치인들은 본받아라

└ 서울시가 어쩐 일로 제대로 일했네. 상패만 주지 말고 돈도 좀 주지

└ 김진형씨 당신은 멋진 남자예요!~♡

아 진짜.

님들이 계속 이러시면 어깨 뽕이 들어가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단 말입니다.

보도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와 하연이의 채널 구독자 수도 이전보다 훨씬 더 늘어나 있었다.

하연이의 신곡인 ‘어떤 두 사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500만을 넘어 800만에 다다르고 있었고.

‘이러다 진짜 천만 찍는 거 아냐?’

유튜브는 단 하루에만 50억 번 이상의 영상이 재생되는 곳이다.

그중 약 90%에 이르는 영상이 조회수 1,000을 찍지 못했다.

이것조차 몇 년 전 자료이니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영상이 올라오고 있을 터.

통상 1뷰에 1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렇게 조회수가 높고 다양한 국가에서 시청할 경우 1뷰의 가치는 1원을 훌쩍 뛰어오른다.

하연이가 이전에 올렸던 ‘달려’ 뮤비의 수익 역시 조회수보다 훨씬 높은 500만 원 이상의 유튜브 광고 수익을 벌어들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후원으로 받은 금액이 유튜브 광고 수익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영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후원료를 앞지를지도 모르겠다.

‘하연이를 우리 소속 연예인으로 삼았으니까, 유튜브를 통해 나오는 수익도 앞으로는 곰도리형제단의 매출로 나올 테고. 유튜브도 정신 바짝 차리고 올려야겠어.’

덩달아 유주의 유트브 채널 역시 성장세가 뚜렷했다.

하연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라는 정보가 외부에 풀리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체감됐다.

심지어 유명 음료 그룹에서 유주를 광고 모델로 섭외하고 싶다는 제안까지 와 있던 차였다.

‘열심히 일하자, 김진형.’

어째서인지 유주와 사귀기로 한 다음부터 좋은 일들이 넝쿨째 굴러오는 기분이었다.

#

신유주는 김진형의 집에서 못 보던 물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오늘 서울시장으로부터 받아온 감사패였다.

그가 자랑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정말 놀랐더랬다.

‘하마터면 진형이까지 위험한 뻔했어.’

그의 양손에 피가 철철 흐르는 가운데 온몸이 흙탕물로 젖은 채로 겨우 집에 와서는 내게 기대 쓰러질 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당장 119를 불러 병원으로 호송.

다행히 피로가 겹쳐 일시적인 탈진으로 그랬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한 건데 계속 구박하자니 자기가 속 좁은 여자친구가 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고 일부러 과장된 제스처로 감사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뭐야? 저게?”

“아. 오늘 서울시청에 다녀온다고 했잖아? 서울시장이 수고했다면서 주더라.”

“대단하네, 우리 남친. 진정 이 시대의 의인이야!”

“고마워, 유주야.”

그런데 뜬금없이 하연이가 이런 말을 날렸다.

“아빠아.”

“응.”

“만야게에. 나랑 유주우 새미 무레 빠지면언.”

“응?”

“누쿠부터 구해줄꼬야아?”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지만 나 역시 궁금했다.

진형이는 어렸을 적 아빠가 좋아, 아니면 엄마가 좋아 물어봤을 때 당황하는 꼬마 아이처럼 강하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그게 말이지.”

“누쿠우?”

“하하. 내 정신 좀 봐라. 배고프지? 아빠가 빨리 식사 차려줄게!”

그는 그 말만 남기고 후다닥 주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하연이는 피이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자기 방문을 쿵 닫으며 들어갔다.

이야. 그래. 하연아. 너도 여자라 이거지?

그래도 그런 상황이 오면. 걱정할 거 없어.

선생님 수영 잘하거든. 진형이가 걱정하지 않아도 내가 널 구해서 진형이한테 갈 거야.

나는 하연이가 들어간 방문 쪽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는 주방으로 몸을 옮겼다.

며칠 잔소리를 해댔으니 오늘은 진형이가 식사를 준비할 때 옆에서 재료라도 다듬으며 도움을 줘야겠다.

#

핫레스트(Hot Rest)는 영국의 유명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21세기 들어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밴드로 꼽히는 그들은 지금 동양의 한 꼬마 가수가 올린 뮤직비디오를 보며 흥분을 금치 못했다.

“오오오. 이게 3살짜리 꼬맹이가 만든 곡이라고? 쩌는데?”

드럼을 맡은 조 필립스가 극찬을 날리자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헤리 우드게이트는 동감한다는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박이지? 기사에 따르면 뮤비도 자기 혼자 생각해낸 거라더군.”

“그래? 가수가 메인이 아닌 뮤비라니. 신박하기 그지없어.”

우연히 유튜브를 서핑하다가 찾은 곡인데 한눈에 꽂혀버렸다.

절제돼 있으면서도 아련한 느낌의 여린 보이스.

여기에 화려한 군무와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화음까지.

그야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악이었다.

“한번 콜라보를 제안해볼까?”

“콜라보? 좋지! 난 찬성일세!”

“나도.”

“리더가 좋다면 나도 좋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우드게이트의 말에 찬성의 뜻을 표한다.

그는 즉시 채널 정보에 기입된 이메일을 통해 협업을 제안했다.

자신들이 유명하다고 해서 대충 쓴 메일이 아니라. 이 곡이 어째서 좋았으며, 어느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지. 왜 우리가 그녀에게 협업을 제안하는지 등. 무려 3천 자가 넘게 길게 쓴 이메일이 발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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