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91화
나는 즉시 강성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상대는 연락을 받지 않는다.
불안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설마?’
나는 유주에게 하연이를 맡기고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걱정되는 사람이 있어서.”
“누구?”
“우리 회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 강성식 씨라고 있는데 봉천동에 살거든.”
“그런데 왜?”
“지금 침수 위기라잖아. 반지하에 산다는데 내가 가봐야겠어.”
“뭐? 위험해! 가지 마!”
유주가 절규하듯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같이 영상도 찍었는데.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못 본 척할 순 없었다.
게다가 그는 하연이의 첫 매니저이지 않나. 내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나는 유주의 손을 꾸욱 잡고선 조용히 말했다.
“유주야. 너까지 이러면 하연이도 불안해하잖아. 하연이 데리고 집에 조심히 있어.”
“위험하다니까!”
“나 믿지?”
그러자 불안해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주.
“난 하연이 아빠고, 너의 남자친구야. 절대 위험한 짓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세 사람 안전한지만 체크하고 올 테니까.”
“알았어. 대신 절대로 위험한 짓 하면 안 된다.”
“응. 약속할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처음에는 차를 가지고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도로는 꽉 막히기 일쑤다.
그런 것보다는 그냥 뛰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우산을 쓰고 갔는데 하도 비가 많이 오니까 더 이상 본연의 기능은 상실한 지 오래.
나는 쓰레기통에 우산을 버리고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돌파했다.
벌써 도로에 물이 차오르는데 반지하는 어떨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한 10분 넘게 뛰었을까?
영상에서 보았던 빌라촌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미 발목 부근까지 차오른 물.
나는 지도 앱을 이용해서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강성식의 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했다.
이미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문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길 만큼 침수된 상태다.
나는 창문을 두드리며 크게 소리쳤다.
“성식 씨! 성식 씨 거기 있어요?”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대표님? 대표님! 저희 여기 있어요! 지금 문이 안 열려서!”
“잠깐만요. 창문 열 테니까 이쪽으로 나와봐요!”
강성식은 희안하게 나를 사장님이 아닌 대표님이라고만 불렀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다행히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온몸이 홀딱 젖은 꼴을 보니까 그 역시 동네 주민으로 비 피해를 피해 어딘가로 대피하는 것 같았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창문이 안 열려서. 이걸 깨야 할 것 같은데. 뭐 없을까요?”
그는 소지품을 뒤지더니 품 안에서 십자드라이버를 하나 꺼냈다.
평소 저런 걸 들고 다니지는 않을 테고 급히 몸을 피신하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아무 물건이나 들고나온 것 같다.
“그거 줘봐요!”
“네, 여기요.”
나는 그에게 드라이버를 빼앗듯 낚아채고는 온 힘을 다해 유리창을 내려쳤다.
수압 때문인지 한 번에 깨지지 않는다.
‘잠깐. 유리를 깰 때는 가운데 부분이 아니라 끝부분이 약해서, 거길 깨라고 그랬던 거 같아.’
언제나 뉴스에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가운데 부분이 아닌 유리창 끝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렇게 몇 번을 강하게 내리쳤더니. 서서히 금이 가면서 결국 유리가 박살 난다.
나는 크게 외쳤다.
“성식 씨! 일단 애들부터!”
“네! 여기요, 여기! 막내부터 구해주세요.”
쭈그리고 앉았더니 종아리부위까지 올라오는 물.
나는 이렇게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바닥에 엎드리고는 창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성진아! 손잡아! 손!”
그러자 작은 아이의 손이 오른손에 느껴졌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아이를 끌어올렸고 이내 성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안에는 물이 가득 차올는지 발부터 머리끝까지 흙탕물로 젖은 성진이를 말이다.
“케케켁. 누나아! 혀엉!!”
성진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방 안에 있는 누나와 형을 애타게 불렀다.
나는 곧바로 다시 바닥에 엎드려 창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게 고개를 들어도 얼굴까지 물이 차오르는 데다가 흙탕물이니까 안에 내용물이 보이지 않아서 구조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비는 억수로 쏟아지지, 수위는 계속 높아지니까 이러다가 나까지 다치는 건 아닌지라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하연이를 떠올렸다.
만약 내기 갑자기 세상을 떠서 하연이만 혼자 남겨진다면?
그런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건 성진이도. 수진이도. 모두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다시 손끝으로 감각이 느껴졌다.
쭈욱 당겨 올렸더니 이번에는 수진이가 나왔다.
“커커컥. 하아하아.”
“누나아아!!!”
성진이가 울면서 그녀를 와락 안았고, 수진이는 마셨던 흙탕물을 토해내며 고통스러워했다.
‘저 정도면 빗물이 방안에 거의 다 들어찼다는 건대. 시간이 없다.’
나는 다시 한번 철퍼덕. 바닥에 엎드리고선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휘저어봐도 누군가가 내 손을 잡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성식 씨. 이렇게는 안 돼. 이렇게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강력한 힘이 나를 끌어당겼다.
강성식이었다.
그는 다 큰 어른이니만큼 이전의 성진이와 수진이와는 무게가 달랐다.
아무리 물속에 잠겨 가벼워졌다고는 해도 내 자세도 편한 자세는 아니었기에 상당한 근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는 최근까지도 열심히 PT를 다니고 있었고, 이전에 비해 몸이 좋아진 상태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잡아당겼다.
덩치가 큰 만큼 유리창에 그의 몸이 걸려서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무사히 창문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오빠아아아!!”
“혀엉!!!!”
그의 모습이 드러나자 아이들이 그를 껴안고는 울음을 터트린다.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을까.
힘이 다 빠져 버린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비틀거리며 원래는 화단으로 보였던 난간에 기대앉았다.
양손을 보니 유리에 긁혔는지 피투성이다.
아까는 사람을 구한다고 아픈 줄도 몰랐는데 피가 나는 걸 보니까 이제 좀 쓰라렸다.
정신을 차린 강성식이 내게 다가와 걱정 어린 말투로 묻는다.
자기 꼴도 말이 아닌데 말이다.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손. 괜찮으신 거예요?”
“하하. 네. 뭐. 이정도야.”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대표님은 저랑 동생들의 은인이세요! 이걸 어떻게 해야!”
은인은 무슨. 그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했을 뿐인데.
그나저나 이렇게 계속 비를 맞다가는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강성식에게 얼른 동생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고, 나 역시 이곳을 떠나려고 그랬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기 말고도 반지하방이 곳곳에 보였다.
‘아이 씨발.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주변 곳곳의 반지하 창문을 두드리며 혹시나 더 사람이 안에 있나 살폈다.
그렇게 해서 그날.
나는 강성식과 그의 동생 두 명을 비롯. 총 다섯 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나중에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집안으로 돌아오니까 유주와 하연이가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뭐야! 너 꼴이 왜 그래?”
“아빠아아아!!!”
나는 쓰러지듯 유주의 품에 안기고는 정신을 잃었다.
사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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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뭐지? 내가 언제 여기 온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연이가 내가 깨어난 걸 눈치챘는지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아빠아!!! 괜차나아?”
“으응. 우리 딸. 아빤 괜찮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여길.”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쪽에 있던 유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를 무서운 얼굴로 내려다본다.
울상이 되어서는 입술을 강하게 깨무는 게 진짜 엄청 화가 났나 보다.
그녀는 여전히 입술을 깨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진형. 너어..진짜.”
유주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진짜 아무 이상 없어.”
“손은. 손은 왜 그런데?”
“아 이거? 찰과상이야. 유리에 긁혔거든?”
“나쁜 놈. 절대 위험한 짓 안 한다고 했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나도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실 밖이 시끄러워지는 것 같더니.
이내 ENG 카메라와 함께 기자들이 물밀듯이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기 김진형씨 되십니까? 봉천동에서 5명을 구한 의인이요?”
“김진형씨. 지금 괜찮으십니까?”
“TTS 기자입니다.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병원 관계자에 의해 다시 병실 밖으로 쫓겨나듯 나가야만 했다.
유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5명을 구한 의인?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그러게. 나도 내가 뭔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연이는 옆에서 울지 유주는 계속 잔소리해대지.
‘분명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랑 같이 근처 공원에 소풍을 갔었는데.’
내가 한순간 꿈을 꾼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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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에 갑작스러운 국지성호우가 쏟아진 상황에서 인명 구조에 나선 의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려 혼자서 5명이나 되는 인명을 구했는데요.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쏟아진 가운데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는 반지하 집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한 생생한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지금 전해 드립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 익히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모였다.
“폭우로 물에 잠긴 다세대 주택 반지하. 고립된 세 형제를 구하기 위해 한 남성이 안간힘을 씁니다.”
조금 전 내가 겪었던 장면이 TV에 나오는 가운데 내 목소리가 들렸다.
“성진아! 손잡아! 손!”
이내 내 손에 잡힌 성진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에도 내가 수진이와 강성식. 그리고 이후 추가로 구한 두 사람까지.
내가 이들을 구한 모습이 여과 없이 TV 뉴스로 보도되었다.
‘뭐지? 나는 이때 정신이 없어서 카메라로 촬영할 생각을 못 했는데?’
하지만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내게 십자드라이버를 건네준 남자가 인터뷰에 나선 것이다.
“3명을 구하고도 성의 차지 않으셨는지 혼자서 2명을 더 구하셨어요. 저요? 저는 그냥 옆에서 그걸 찍고 있었죠. 그분은 5명을 구한 뒤 홀연히 자리를 뜨셨어요. 손을 많이 다치신 거 같던데 제발 무사하셨으면 좋겠네요.”
다시 현모의 목소리가 나왔다.
“봉천동 의인 덕분에 5명의 생명이 목숨을 구하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성식이 등장하며 보도가 끝났다.
병원에 누워있던 그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진짜 감사합니다. 저랑 제 동생의 생명을 구해주셔서요. 저는 평생 대표님한테 받은 이 은혜를 갚으면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주와 하연이가 TV에서 시선을 떼더니 나를 노려본다.
아니 잠깐. 나 좋은 일 한 거잖아. 이러지들 말자.
“꾸에엑!”
하연이와 유주가 동시에 내 배를 주먹으로 내리쳤고, 나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질러야만 했다.
아 진짜! 좋은 일 했는데 왜들 그러는 거야. 나도 괜찮고 5명이나 목숨을 구했잖아!
나는 꽤 오랫동안 두 사람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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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다음날 무사히 병원을 퇴원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로 출근했는데.
직원들이 날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무언가 영웅을 보는 듯 경외심이 가득 어린 표정들.
특히 강성식은 내 앞쪽으로 달려오더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대표님! 괜찮으신가요?”
거인이 코앞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니 하마터면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나는 괜찮다며 그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연신 내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대표님. 앞으로는 대표님의 개가 되겠습니다! 핥으라면! 핥고,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계속 대표님을 모시게 해 주세요! 네?”
허허. 이 사람이 참.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가 뜬금없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방금 만든 듯 아직 따근한 온기가 느껴지는 A4 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