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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90화 (90/135)

내 딸은 국힙원탑 90화

“지금은 90년대가 아니잖아요? 시청자들도 눈이 높아졌죠. 연출된 건 바로 알아채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장님도 아까 납득하셨잖아요! 이건 사전에 아무런 언지 없이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찍은 거라 당사자들은 이게 연출된 상황인지 몰랐을 거예요. 사장님도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요?”

“네. 하연이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저희가 섭외한 연출자가 등장한 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다른 편은요?”

나는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성식 씨 편도 좋았습니다. 공을 잃은 아이도 연출이라고 그랬죠?”

“네.”

“뭐 그 정도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 아이는 연출자라기보다는 동네 꼬마였어요. 저희가 지나가는 아이한테 부탁한 거죠. 공을 나무 위에 올린 건 저희 쪽이지만요.”

“그런데 민규 편은 조금 걸리네요.”

“왜요? 그것도 민규랑 민규 어머니는 전혀 모르고 있잖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거지 연출은. 조금 억지스러웠습니다. 평소 하연이 어린이집 인근에는 거지가 있었던 적이 없고, 민규에게 고맙다면서 일부러 손을 붙잡았던 것도 조금 황당했습니다.”

“그건..”

“생각해보세요. 거지는 보통 같은 곳에 계속 있잖아요?”

“그런가요?”

“네. 제가 봤던 거지들은 보통 늘 같은 곳에서 구걸하더군요. 그렇단 이야기는 만약 그 거지가 실존하는 인물이었다고 하면 민규에게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단 의미이기도 합니다.”

“으음.”

“그러니 민규가 갑자기 돈을 준다는 건 조금 이상하죠.”

“음.”

조유리가 알 듯 모를 듯 입술을 앙다문다.

“그래서 몇 명을 추가로 촬영했으면 합니다.”

“추가로요?”

“네. 민규 편을 날리자는 게 아니라. 쓰긴 쓰되 TV 광고에선 빼고 유튜브 등 풀 영상에서만 쓰자는 거죠.”

“풀 영상에서만요?”

“네. 추가로 찍은 분들은 저희 어린이집에서 제가 따로 섭외해보겠습니다. 마침 좋은 분들이 생각나네요.”

나는 소윤이와 주하네 가족을 떠올렸다.

두 가족에게도 비슷한 상황으로 장면을 찍으면 괜찮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미혼부고, 민규네는 이혼을 준비하는 가정이잖아? 성식씨네는 부모가 없는 고아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어.’

여러 가지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건 좋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을 일부러 외면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곤란했다.

조유리는 알겠다며 체념한 듯 내게 말했다.

“그래도 지금 사장님 인터뷰 찍는 건 괜찮죠.”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인터뷰 계속 진행할게요.”

그녀는 내게 하연이가 더러워진 옷을 입고 왔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물었다.

“그땐 조금 당황했죠. 하연이가 평소 그런 아이가 아니었거든요. 항상 지나칠 정도로 깔끔을 떨던 친구였으니까요.”

“화가 나셨나요?”

“음. 그랬던 것 같네요. 왜 옷이 더러워졌지? 어디 넘어졌나? 애는 괜찮은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요.”

조유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나중에 하연이 옷이 더러워진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솔직히 감동했습니다. 하연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정말로 착하구나. 친절하구나.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하하. 뭐 이런 기분이 들었어요.”

왜 아니겠는가. 4살짜리 꼬맹이들이 단체로 선행을 실현하고 있는데.

사실 아까 TV로 그 장면을 봤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났더랬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아이를 다그쳤구나. 아이를 의심했구나 싶어서.

조유리는 만족했다는 얼굴로 몇 가지 추가 질문은 던졌고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

다행히 소윤이와 주하네 부모님은 내 제의를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그저 미래 그룹 홍보 영상을 찍겠다고만 알려주었다.

저번에 허탕을 쳤던 연출자 할머니를 동원.

하원길에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촬영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두 아이는 모두 할머니가 떨어뜨린 물건을 줍는 걸 도왔고, 그렇게 해서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부모와 아이들의 개별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이제 편집에 돌입했다.

오랜만에 편집에 나서볼까 했더니 이번 영상을 기획했던 오세영과 조유리가 자신들이 직접 하고 싶단다.

저렇게 의욕을 보이니 이번 건은 두 사람에게 넘기고 나는 최종적으로 검수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는 편이 이들의 성장을 돕는 길이기도 하겠지.’

그러는 사이 하연이의 뮤직비디오 편집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종이 형은 이번에도 직접 우리 사무실에 들러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무실을 슬쩍 둘러본 그가 놀랍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야. 사람 엄청 뽑아놨구나. 그 넓던 사무실에 이제 공간이 없네?”

“형도 이제 혼자서 일하지 말고 사람 뽑아야죠.”

“하하. 나는 그냥 혼자가 편해.”

선종이 형은 주변에 영상 관련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들에게 연락을 돌려 함께 뭉친다.

그리고 평소에는 각자 따로 활동하는 방식.

밑에 직원이 있는 것과 선종이 형처럼 프리랜서를 모아서 하는 것은 각자 장단점이 있다.

안정성에 있어서는 밑에 직원이 있는 편이 좋았지만, 확실히 매월 나가는 인건비는 부담이 되었다.

선종이 형처럼 하면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사람을 쓰면 되니까. 일종의 외주의 외주랄까? 인건비도 절약되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이제 회사를 키우기로 마음먹었으니 선종이 형과는 가려는 방향이 달랐다.

아무튼 그가 찍은 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그가 왜 이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형. 진짜 좋은데요?”

“그렇지? 이전에 대충 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 흐흐. 제대로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엄청 신경 써서 만들었어.”

물론 나도 안다. 형이 이전에 만들어주었던 ‘원패밀리’와 ‘달려’ 역시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한 수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어떤 두 사람’은 음향에서부터 달랐다고 해야 하나?

물론 장소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던 것도 있고, 유명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동원되었던 것도 있지만, 음향에 엄청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컴퓨터 앞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건데 마치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에 앉아 있는 기분인데요?”

“그렇지? 이쪽 전문 스페셜리스트를 썼거든. 음향 쪽 조율한다고 우리도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카메라 동선도 좋고. 하연이뿐만 아니라 출연한 모든 이들을 골고루 찍은 것도 재미나네요.”

“하하. 그거야 하연이가 특별히 부탁한 거니까. 나도 가수가 메인이 아닌 뮤직비디오는 이번이 처음이야.”

카메라는 가수인 하연이뿐만 아니라 발리 전통 무용단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을 골고루 비추며 이것이 하나의 합동 무대라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을 클로즈업할 때 그분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진짜 진짜 좋습니다. 이거 완성본이죠?”

“그래. 혹시 수정해야 할 사항 있으면 알려주고.”

“아뇨. 저는 좋아요. 그런데 당사자인 하연이도 보고 나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래. 하연이도 보고 나서 좋아해 줬으면 좋겠네.”

“좋아하겠죠. 누가 만든 영상인데요.”

“크크. 짜식. 사장님 되더니 말발도 같이 늘었네.”

나와 선종이 형은 동시에 웃었다.

#

예상대로 하연이도 별다른 수정사항 없이 컨펌했다.

내가 선물해준 헤드폰을 쓴 채 연신 엄지를 치켜올리는 하연이가 귀엽기 짝이 없다.

‘무슨 인형일 줄.’

나는 하연이의 이마에 입맞춤한 뒤 뮤비를 HiYeom하연 채널에 올렸다.

곧바로 반응이 온다.

└ 소으으으으르으으음!!!

└ 와. 여러분 이거 진짜 꼭 이어폰이나 헤드폰 쓰고 들으세요. 음향이 끝내줍니다!

└ ㅇㅇ 공간음향 키고 들으니까 소리가 완전히 달라지네

└ 음악을 이렇게 들으니 진짜 새로운 경험이네요...콘서트장에 온 거 같아요!!!

└ 춤추시는 분들 무쳤네...곱게 미친 느낌이랄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씨발. 이거 만든 사람 누구냐 노벨상 줘라

└ 하연이도 하연이지만 다들 엄청나다. 오케스트라랑 합창단 베이스 지리네

└ 꺄!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글로벌 무대의 중심 김하연!

나는 김선정 기자에게도 뮤비를 올렸다고 이야기해주었고, 그녀는 곧바로 준비한 기사를 풀었다.

뮤직비디오 현장 후기 및 이번 곡이 가진 의미와 하연이 인터뷰 기사 등.

총 5개의 기사가 시리즈로 구성되어 한 번에 풀렸다.

그런 영향일까? 하연이의 신곡 ‘어떤 두 사람’은 즉각 음원 차트 순위 탑10에 들었다.

음원이 풀린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유튜브 조회수도 50만을 순식간에 돌파하면서 이전 기록을 단숨에 깨버렸다.

이런 기세라면 500만은 물론 1,000만도 가뿐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튜브 조회수는 2,807,718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미 이전에 발표했던 ‘달려’ 뮤직비디오의 성적을 앞지르고 있었던 것.

나는 당장 아래로 내려가 곤히 자는 하연이를 깨웠다.

“하연아! 일어나봐! 네 신곡이 하루 만에 200만 조회수를 돌파했어!”

하연이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이백마안?”

“응. 아빠가 어제저녁에 올렸으니까 오늘 중에 500만은 찍을 것 같아.”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 국내 이용자들만이 하연이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음악 차트 및 통계’ 사이트에 접속하면 현재 영상을 어디서 주로 감상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 한국은 물론 인도네시아와 태국, 미국, 멕시코, 터키, 브라질 등 전 세계 곳곳에서 하연이의 신곡을 감상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보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접속해 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인도네시아야 발리 전통 무용단이 출연했으니까 이해해도. 태국과 필리핀, 베트남은 뭐지?’

아마도 기존의 K-POP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이들 나라에도 하연이를 좋아하는 팬들이 생긴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하연이에게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소푸웅?”

“응. 유주 샘 불러서 인근 공원에 놀러 가자! 날도 좋잖아?”

어느덧 계절은 초여름이 되었고 6월의 끝이 다가왔다.

더 늦장을 부리다가는 땡볕 더위가 우리를 찾아올 터였다.

그렇게 해서 나와 하연이. 그리고 유주는 인근에 위치한 보라매공원으로 소풍을 떠났다.

유주는 하연이 신곡 뮤비 200만 돌파를 기념하겠다며 집에서 손수 김밥 등 도시락을 싸 와 주었다.

돗자리를 펴고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았다.

다행히 그늘에 앉으니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유주가 하연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연아. 축하해.”

“헤헤. 고맙뜹니다아.”

그렇게 유주가 싼 도시락을 먹으며 즐겁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우중충해지기 시작하더니.

구멍이라도 뚫린 듯 미칠 듯이 비가 쏟아졌다.

“으아아! 폭우다! 폭우!”

“꺄아! 엄마 우산! 우산은?”

“우산이 어딨어! 빨리 나가자!”

사람들이 혼비백산하고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요즘 기후 위기로 날씨가 미쳤다더니.

이렇게 갑자기 날씨가 바뀌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세차게 비가 내렸다.

반대편 하늘은 저렇게나 맑은데 말이다.

황급히 차 안으로 대피한 우리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크하하하. 유주야. 너 진짜 웃겨.”

“뭐? 내가 왜?”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인데?”

“푸훗. 그러는 너는? 너는 안 그런 줄 알아?”

우리는 그렇게 차 안에서 웃고 떠들며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평화롭던 소풍이 갑자기 취소되었지만 그래도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어 행복했다.

유주가 옆에 있어 줘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그랬다.

마침 주말이기도 하고, 하연이랑 한번 꼭 같이 잠을 자고 싶었다면서.

그래. 나도 그 기분 잘 알아. 하연이 베개는 못 참지.

그나저나 이 비. 대체 언제까지 내릴 생각인 걸까.

분명 일기예보에는 다음 주까지 계속 맑음이라고 그랬는데.

뉴스 속보를 보니까 서울 일부 지역에만 국지성호우가 내린다는데 진짜로 내가 죽기 전에 지구가 먼저 죽는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 관악구 봉천동과 내가 사는 신림동 등. 상대적으로 지반이 낮아 상습침수지역이 위험하다면서 조심하라는 경고가 보였다.

우리 집이야 꼭대기 층에 있으니 별일 없겠고.

그런데 강성식의 집은 봉천동. 그중에서도 반지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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