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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89화 (89/135)

내 딸은 국힙원탑 89화

강성식을 비롯해서 추가 인원을 채용한 이후 우리는 미래 그룹 홍보 영상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를 믿고 맡겨준 만큼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영상을 찍고 싶었다.

원래 처음 기획은 나와 하연이. 두 사람만 출연해서 아이의 소중함을 알리는 영상을 찍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사람이 아니라 출연자가 일곱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왜냐고?

내가 강성식과 그의 동생 두 사람. 그리고 민규와 민규 어머니를 여기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으.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너무 이상한데?”

“성진아. 4살짜리 하연이도 저렇게 의젓하게 잘 있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아 진짜 누나는! 왜 연예인이랑 비교를 해!”

강성식의 막냇동생인 강성진이 둘째인 강수진의 꾸지람을 듣고는 화를 냈다.

하지만 본인도 스스로 부끄러웠는지 이내 화장을 마치고 얌전히 누나 옆에 앉는다.

강성식은 재차 내게 괜찮냐며 물었다.

“대표님. 정말 감사한 일인데, 저랑 저희 동생은 이런 게 처음이라서요.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닐지 모르겠네요.”

“민폐는 뭘요. 그냥 평소 동생들이랑 집에 있을 때처럼 편하게 임해주세요.”

“그런데 저희는 뭘 찍는 건가요? 사전에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서요.”

“하하. 그건 나도 그래요.”

“네? 대표님도요?”

처음 기획은 내가 한 게 맞다.

하지만 미래 그룹에서 이전에 찍었던 전편이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욕을 먹었다고 하니까 광고에 출연하는 나 역시 모르고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세영과 조유리에게 기획을 맡겼고, 두 사람은 며칠을 쑥덕거리는 것 같더니 스토리보드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오늘 촬영장에 나오라고 그랬다.

첫 번째 촬영은 나와 강성식. 그리고 민규 엄마 세 사람만 회의실에 들어와 진행되었다.

민규 어머니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애들은 같이 안 찍는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네? 하연이 아버님도 모르면. 그럼 누가 알아요?”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오세영과 조유리는 절대로 말해줄 수 없다면서 입을 꾹 닫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김지환이 크게 외치며 말했다.

“촬영 시작합니다!”

그 말과 함께 정면에 설치되어 있던 대형 TV가 켜졌다.

모두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처음 등장한 아이는 하연이었다.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찍은 영상이었는데 하연이가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놀다가 다 같이 외출하는 장면이 나왔다.

유주가 아이들을 향해서 엄하게 주의를 준다.

“자. 지금부터 모두 밖으로 외출할 거예요. 친구들 손 꼬옥 잡고 선생님 지시를 제대로 따라주세요. 알았죠?”

“네에!”

어린아이들이 유주의 말에 크게 대답하고는 서로를 손을 잡고 어린이집 밖으로 나온다.

그 모습이 오리 새끼들이 아장아장 걸으며 단체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손을 잡고 단체로 걷고 있는데.

오르막길에서 한 할아버지가 힘겹게 폐지가 가득 담긴 수레를 밀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힘이 들어 보이는 모습.

아이들은 그 옆을 조심히 지나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다가가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영차영차!”

“끄으응. 젖먹더언 힘까지이이!”

유주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피다가 다가오는 차가 없자 자신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수레를 민다.

밑에 자막으로 <이건 연출된 영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 할아버지는 저희가 섭외한 인물이 아닌 지나가는 분 중 한 명이었습니다>라는 말이 스치듯 지나간다.

나중에 오세영한테 따로 들은 이야기인데 원래 계획은 사전에 섭외한 연출자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잔뜩 싣고 가다가 아이들이 지나가면 이를 떨어뜨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를 돕는지 지켜보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더 좋은 그림이 나오면서 연출자 할머니는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고.

아무튼 자신들의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아이들은 언덕배기 끝까지 수레를 밀어주었다.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한다.

“고마우이. 정말로 고마우이.”

그에게 단체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아이들.

‘어쩐지. 그래서 하연이가 며칠 전에 옷이 더러워진 채로 집에 왔구나.’

그때 하연이가 머리에 고프로를 착용하고 있어서 그게 뭔가 물어봤더니 하연이는 그저 자기 유튜브 채널에 새로 올릴 영상을 실험 중이라고만 했다.

화면이 바뀌면서 우리 집이 등장했다.

나는 하연이를 나무라듯 말했다.

“하연아. 옷은 왜 그렇게 더러워졌어?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대청소라도 한 거야?”

하지만 하연이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휴. 옆에 유주도 있는데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나는 말없이 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TV 화면으로 그대로 송출되었다.

내가 김지환을 바라보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웃기만 했다.

이어서 박민규의 차례.

녀석은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와 PKT 엔터로 연습하러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옆에 지저분한 거지 차림을 한 남성이 앉아 있었고, 주변이 떠나가라 도와주십쇼! 하고 소리친다.

민규는 엄마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단숨에 그쪽으로 뛰어가 주머니에 있던 오천 원을 그에게 내민다.

그런데 거지가 갑자기 민규의 두 손을 우악스럽게 붙잡더니 고맙다며 절을 한다.

민규의 손에 빠른 속도로 이물질이 묻는 등 더러워졌지만 민규는 괜찮다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저 손으로 털털 털고 엄마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는 민규.

정작 당사자인 민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민규 엄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민규야. 너 손이 그게 뭐니? 손 세정제 차에 있으니까 차에 타자마자 발라!”

내 앞에 앉은 민규 엄마가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이게 연출된 장면이었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녀의 눈엔 한 방울 눈물이 맺혔다.

사려 깊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한편. 자식인 민규가 자랑스러웠을 테지.

마지막으로 수진이와 성진이가 화면에 나왔다.

카메라는 중학교를 나와 하교하는 수진이의 뒷모습을 담았다.

이어서 수진이가 성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성진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마도 성진이는 누나의 하원 시간에 맞춰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 후 수업을 들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어린이공원에서 자기보다 어린 꼬마 아이가 나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나왔다.

“히잉. 어쩌면 좋지.”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자 성진이가 꼬마가 바라보는 나무를 보더니 선뜻 나섰다.

“뭐야? 저거 네 공이야?”

꼬마가 고개를 끄떡이자 성진이가 가방을 누나에게 맡기고는 원숭이라도 된 듯 재빠르게 나무에 올라탄다.

녀석은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발을 길게 뻗어 나뭇가지에 걸린 공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어찌나 날렵하던지 과연 무도가 집안의 막내다웠다.

“주웠어?”

“응!”

“그래. 다음부터 조심하고.”

성진이는 순식간에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옷을 털어냈다.

하지만 하얀 옷 곳곳에는 나무를 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수진이는 그런 성진이를 보더니 놀랍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생했네. 늦겠다. 빨리 집에 가자.”

대화로 유추하건대 평소 이런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몸을 움직이는 친구들인 것 같았다.

둘이 집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조유리가 깜짝 화면에 등장하고선 고프로 두 개를 그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안녕 친구들.”

“응? 누구세요?”

“나는 성식 씨 회사 동료야. 곰도리형제단이라고 들어봤지?”

“아! 이번에 형이 들어갔다는 회사요?”

“그래 맞아. 누나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니?”

그러자 남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고프로라는 카메라인데, 나중에 형이 퇴근할 때 이걸 머리에 쓰고 녹화 버튼을 누른 다음에 촬영해줄 수 있겠어? 전원을 켜려면 이 버튼을 누르면 돼. 녹화 버튼은 이렇게 하면 되고.”

강성진이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이거 TV 프로그램에서 봤어요!”

“그래. 방송에서 많이 쓰이는 액션캠이거든. 형한테는 절대로 이거 왜 찍는지, 어떻게 얻었는지 말하지 말고 학교 숙제라고만 해줘. 학교에서 숙제를 위해서 빌려줬다고.”

“아하.”

“혹시 형이 이상하다고 계속 물어보면, 학교에서 영상에 대해 배워보는 수업이 있는데 이걸 찍어서 브이로그라는 걸 만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찍는 거라고 말하면 형도 이해해줄 거야.”

“네!”

하지만 강수진은 중학생이니만큼 강성진과는 달랐다.

“그런데 이거 왜 찍어야 하는 거예요? 오빠 동의도 없이?”

“응. 회사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거든. 거기에 너희 오빠가 나올 예정인데, 그걸 위한 깜짝 선물이야.”

“깜짝 선물?”

“응. 이거 나중에 보면 오빠도 엄청 좋아할 걸?”

깜짝 선물이라는 말에 수진이의 동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평소 오빠한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도 변변치 못한 것들만 줘야 했을 텐데. 깜짝 선물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인 거겠지.’

두 사람을 알았다는 듯 고프로를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고프로 화면이 나온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응. 누나. 지금 녹화되는 중이야.”

“너는 이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

“딱 보면 척이지! 난 누나랑 다르게 기계치가 아니거든.”

“어이구, 잘 나셨습니다.”

“형 기다리겠다. 이제 빨리 나가자.”

두 사람은 빠르게 현관문을 열었고 이내 강성식이 화면에 나온다.

그는 막냇동생의 옷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강성진. 형이 사고 치지 말라고 그랬지?”

“사고 아냐! 나무에 올라간..”

“형이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안 그래도 부모님 없다고 눈칫밥 먹는 거 뻔히 알면서. 맨날 그렇게 사고를 쳐야겠어?”

“아니 형 나는..”

“됐어. 그리고 강수진.”

“으응.”

“오빠가 분명 성진이 간수 잘하라고 시켰을 텐데.”

“오빠. 성진이 말대로 사고 친 게 아니라 성진이가 다른 아이를 돕다가 이렇게 된 거야.”

“그럼 옷이라도 갈아입혔어야지. 그동안 뭐 했어?”

“그게.”

강수진이 쭈뼛거리며 말을 주저했고, 강성식은 그런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이 따졌다.

“뭐?”

“다른 옷은 모두 빨래한다고 세탁기에 넣어서 저 옷 말고는 없었어. 그렇다고 애를 맨몸으로 다니게 할 순 없잖아.”

수진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하자 강성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알았어. 오빠 이제 취직도 했으니까 조만간 옷 사줄게. 야. 강성진.”

“으응!”

“이번 한 번은 봐줘도 다음에는 조심해. 또 옷 버리기만 해봐라.”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TV가 꺼졌다.

강성식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는 말이 없다.

애써 눈물을 참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말했다.

“괜찮아요. 모르고 그러셨잖아요.”

“...”

이후 김지환이 카메라를 껐고, 이번 영상을 기획한 오세영과 조유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아이들 영상은 잘 보셨나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내가 먼저 타박하듯 말했다.

“취지는 좋은데. 미리 얘기해주지, 그랬어요.”

“어머나. 사장님은. 이걸 말해드렸으면 어떻게 이런 장면이 나올 수 있었겠어요.”

아니 그건 그런데. 그래도.

나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말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으니까.

연출된 장면으로는 자연스러움을 100% 끌어내기 어려웠다.

물론 몇몇 장면은 일부러 연출된 상황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와 민규 어머니. 그리고 강성식과 아이들은 이를 모르지 않았나.

게다가 하연이의 경우에는 정말로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고.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조유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한 분씩 개인 인터뷰에 들어갈 거예요.”

“개인 인터뷰요?”

“네. 지금 함께 본 영상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주시는 건데요. 3개 방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한 분씩 방으로 들어가 주시면 됩니다.”

그런 관계로 나는 함께 있던 회의실을 떠나 옆방으로 이동했다.

지금 이곳은 우리 회사가 아니라 오늘 촬영을 위해 빌린 별도의 공간이었다.

현재 사무실은 좁아서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촬영을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옆 사무실 2개를 터서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유리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자. 사장님. 그래서 영상을 보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카메라 돌고 있는 거예요?”

“네. 사장님이 잠시 딴생각하시는 사이 녹화가 들어갔습니다.”

나는 복장을 매만진 다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전방에 있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연출된 장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조유리가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같은 편끼리 왜 이러냐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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