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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88화 (88/135)

내 딸은 국힙원탑 88화

발리 전통 무용단의 리허설 무대를 지켜본 탑코리아스타의 김선정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박진감이 정말 대단하네요.”

“네. 그리고 저건 기존에 있던 공연이 아니에요.”

“네? 그럼?”

“이번에 하연이가 만든 신곡을 듣고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 곡을 해석해서 만든. 그러니까 하연이만을 위한 특별 안무죠.”

“아!”

짧은 감탄사와 함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안무네요.”

“그렇죠. 물론 이 건은 하연이 신곡이 발표하기 전까지는 비밀입니다. 아시죠?”

“후후. 물론입니다. 취재원의 비밀도 지키지 못하면서 연예계에서 계속 밥 벌어 먹고살 순 없으니까요.”

나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다 다유의 무용단을 한국으로 불렀다.

송형기 총지배인에게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하자 이다 다유가 흔쾌히 수락해주었던 것이다.

하연이의 신곡을 들은 이다 다유는 정말이지 놀라운 시도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곡에 발리 전통 음악의 색채가 녹아있네요. 그렇다고 완전 이쪽 노래는 아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 강해요. 이걸 정말 하연이가 혼자서 만들었다고요?”

“네. 우붓 예술가의 거리에 다니면서 들었던 발리 전통 음악에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제 나름 예술인이라고 자부하고 평생을 살았지만. 이렇게 독특한 곡은 처음 들어봤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하연이는 그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어보고 이걸 춤으로 표현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단 2주간의 연습 끝에 지금의 춤을 완성해내었다.

‘프로와 프로의 만남. 과연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기대가 되네.’

이 과정에는 발리 전통 무용단 이외에도 여러 사람의 협력이 있었다.

뮤직비디오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선종이 형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선의에 따라 공짜로 만든 촬영이 아닌. 제대로 돈을 주고 의뢰해서 그런지 스태프 규모부터 달랐다.

조명부터 음향까지. 무대 곳곳에 선종이 형이 부른 스태프들이 부지런히 자기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촬영이 진행될 이곳,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현모의 도움이 컸다.

현모는 동료인 문화부 취재 기자에게 장소 섭외를 부탁했고, 그의 도움으로 이곳을 대관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넓은 무대를 저렴한 대관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선정 기자의 도움으로 유명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동원되었다.

그러니까 국내 가요에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이 모두 접목된. 그야말로 전 세계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현장.

리허설이 끝나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하연이가 LED로 장식된 무대 가운데에 섰고, 뒤에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발리 전통 무용단은 하연이를 감싸듯 주변을 둘러싼 가운데 선종이 형의 목소리가 대극장을 가득 울린다.

“레디! 액션!”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를 시작으로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발리 전통 무용단의 정교한 율동이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윽고 스포트라이트가 하연이를 비추면서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대극장 전체를 울린다.

“우리인 어쩌다아 헤어지케에 됐눈지이...”

애절하고도 절제된 감성이 퍽 인상적이다.

이전에 하연이가 부른 곡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그렇지만 카메라는 결코 하연이 한 명에게만 집중하지 않았다.

무용단과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골고루 비추면서 정신없이 움직인다.

“저게 하연이가 따로 부탁했다는 거죠?”

“맞아요. 하연이는 이 곡의 주인공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거든요. 이건 동등한 아티스트끼리의 합동 공연이라며.”

“가수가 주인공이 아닌 노래라. 4살짜리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혼자 해낼 수 있었을까요? 정말로 아버님은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나요?”

“네. 음악에 있어서는. 저보다 하연이가 훨씬 더 뛰어난 친구니까요.”

김선정은 대단하다는 듯 시선을 다시 무대로 옮겼다.

그녀는 이날 촬영을 취재하고 후에 하연이의 신곡이 발표되면 그와 동시에 관련 기사를 쓸 예정이다.

사실 이것조차 하연이의 아이디어였다.

김선정 기자의 영향력이 크니 뮤직비디오 촬영에 대동해서 현장을 볼 수 있게 해주고, 그녀가 이에 대한 기사를 쓰게 하자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곡을 궁금해할 거라면서 말이다.

내가 봤을 때는 실수하나 없이 완벽한 무대였는데, 하연이도 그렇고, 선종이 형도 그렇고.

무려 10번이 넘게 반복해서 같은 모습을 찍고 또 찍었다.

거기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연이야 본인 곡이고, 선종이 형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이끄는 자니까 그렇다고 쳐도.

발리 전통 무용단도. 오케스트라도. 합창단도. 누구 하나 불만을 표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몇 번이라도 최선을 다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비밀리에 촬영된 하연이의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은. 촬영이 시작된 지 5시간 만에 모두 마무리되었다.

새벽 일찍 나와 준비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어갔다.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하연이의 신곡은 자동으로 입 안에서 재생되었다.

“우린 어쩌다 헤어지게 되었는지..”

하연아. 아빠가 생각하기로는 이번 곡. 반드시 차트 1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

나는 이날 하루 휴가를 내고, 멀리 발리에서 한국을 찾아준 발리 전통 무용단을 위해 한국 관광 투어 가이드를 자처했다.

“지금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광화문이라고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 년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어제 밤새도록 연습한 보람이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내 기억력이 제법이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들끼리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촬영하는데 정신이 없다.

눈물이 앞을 가리려고 하는데, 이다 다유가 자기 딸과 함께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하연이까지 해서 다 함께 사진을 찍자며 내게 말했다.

그녀의 딸과 하연이 모두 올해 한국 나이로 4살의 꼬맹이들.

나는 행인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고는 웃으며 말했다.

“따님이 진짜 귀여워요.”

“뭘요. 하연이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무리한 부탁이었는데. 이렇게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뇨. 저야말로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의 대중가수 및 서양 관현악단과 함께하는 자리라니. 저는 이런 식의 합동공연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하연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정말 대단한 친구예요.”

우리는 동시에 하연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처럼 하연이는 보면 볼수록 놀라운 아이였다.

말로만 아이디어를 꺼내놓았을 때는 머릿속에 잘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오늘 무대를 보니까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대중가요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야말로 예술이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몸이 쭈뼛 서면서 환상적인 무대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내일모레 떠나신다고요?”

“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안내도 해주시고. 감사드립니다.”

“내일도 안내해드리고 싶은데. 회사에 일거리가 많아서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쉽지 않으십니까?”

“네?”

이다 다유가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저번에 발리에서 함께 공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진형 씨가 함께 우리와 춤을 췄으면 더 의미가 있었을 텐데요.”

“하하.”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거야 현장에서 이들의 지도를 받아 빡세게 연습했다 쳐도.

이번 공연은 그들은 발리에 있고, 나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연습하는 데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안무는 내가 봐도 도저히 며칠 연습한다고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

이들을 데리고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다 마지막 코스로 예약해두었던 삼겹살집에 들렀다.

마음 같아서는 한우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힌두교도들은 소고기를 기피하니까 말이다.

이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삼겹살을 맛나게 즐겼다.

잠깐이나마 나와 한 무대에서 공연했던 동료들이 내가 산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뿌듯했다.

#

곰도리형제단은 새로 10명이 넘는 인원을 채용했다.

촬영과 편집 등 영상 전문 인력뿐 아니라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도 한 명씩 뽑았다.

사실 매니저의 경우에는 지금 당장 필요한 인력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쁠 때는 그가 대신 하연이를 돌봐줄 수도 있을 거고,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가르치다 보면 언젠간 제 몫을 해주리란 기대감으로 채용한 인재였다.

아무래도 어린 하연이를 믿고 맡겨야 할 사람이니 경력보다는 인성과 성실성에 크게 중점을 두었다.

“대표님. 앞으로 운전은 제가 하면 될까요?”

“아뇨. 성식 씨는 인터넷에서 하연이 댓글 모니터링 작업 좀 진행해주세요. 관련 기사가 있으면 그것도 따로 스크랩 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올해로 27살인 강성식은 태권도학과 출신의 무도파였다.

원래 꿈은 태권도 국가대표였다고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운동을 계속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몇 년 적,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두 분 모두 돌아가셨는데 혼자서 어린 동생 둘을 보살피고 있다는 말에 가산점을 주었다.

키는 185cm가 훌쩍 넘고 다부진 체격을 한 친구인데 얼굴은 얼마나 선한지. 배우를 시켜도 잘할 것 같은 마스크였다.

육체파다 보니 사무적인 업무는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게 웬걸.

시킨 건 곧잘 했다.

무엇보다도 하연이를 바라보는 저 표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치 자기 친동생을 바라보는 것 같은 부드럽고 따스한 눈길.

그는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다고 면접에서 토로했다.

갑자기 무거운 이야기가 나오자 함께 면접을 봤던 이들이 모두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입을 뗐다.

“그런데 그때. 하연이가 부른 원패밀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내가 죽으면 어린 동생들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정신 차려야지. 내가 더 힘을 내야지 하고 말이에요.”

그 말에 면접장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나는 그를 따로 불러 저녁을 사주었다.

아직 채용되기 전이었던지라 그는 어색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 저한테 왜 밥을 사주시는 건가요?”

“밥 먹고 힘내라고요.”

“아. 채용된 건 아니구나.”

그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풀죽은 모습을 보이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채용됐으면 좋겠습니까?”

“물론이죠! 제가 좋아하는 하연이의 매니저가 된다니. 정말 꿈만 같을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동생들도 먹여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졸업도 한 마당에 장학금도 더는 탈 수가 없거든요.”

그는 현재 아는 선배의 도움으로 태권도장의 강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집이랑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생들 밥을 해주기 어려워 곤란해하고 있었다.

“집이 이 근처시죠?”

“네. 봉천역 인근인데, 여기까진 걸어서 와도 될만한 거리입니다.”

“동생이 몇 살이에요?”

“한 명은 중학생. 막내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나이 차가 제법 크네요.”

“하하. 그러게요.”

성식 씨의 부모님은 성식 씨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그럼 도대체 몇 년을 혼자서 동생들을 돌봤을까.

“그간 고생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고생은 뭘요. 주변에서 불쌍하다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봉천역 인근이면. 다세대주택에서 사나요?”

“네.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저도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까요. 혹시 반지하?”

“네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감사해하며 살고 있어요. 집도 없는 친구들도 많잖아요?”

정말 천사도 이런 천사가 없었다.

이런 인성이면 하연이의 매니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이만하면 합격점이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식사를 마쳤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가 내가 남긴 음식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런데, 대표님.”

“네?”

“실례가 아니라면 이거 제가 좀 싸갈 수 있을까요? 저희 동생이 스테이크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아.”

이 무슨 눈물 나는 사연이란 말인가.

나는 고개를 젓고는 즉시 추가로 스테이크 2인분을 주문하고는 포장해달라고 그랬다.

물론 추가 주문은 따로 돈을 주었다. 아무리 공짜 시식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남용할 정도로 염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포장이 완료된 스테이크를 성식 씨에게 쥐여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성식 씨.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네?”

“성식 씨를 곰도리형제단에서 채용할 테니까 내일부터 출근하라고요.”

강성식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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