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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국힙원탑-83화 (83/135)

내 딸은 국힙원탑 83화

그 소리를 들었던지 김호진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귀도 참 밟다.

“하하. 맞아요. 우리 감독님 진짜 더럽게 폭탄주 못 만들죠?”

“이 자식. 오늘 MVP 뽑혔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아니 그렇잖아요, 감독님. 진짜 감독님 폭탄주 너무 맛이 없다니까요?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다들 저랑 같은 생각일걸요?”

그러자 모두 인정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김재호는 입을 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내가 만든 폭탄주가. 그리 맛이 없다고?”

이어서 김호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하연이 아버님이 한번 말아주시겠습니까?”

“네? 제가요?”

“네!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모두 좋다며 아우성친다.

이왕 쏟아진 물. 어쩔 수 없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오늘 식당을 방문한 40여 명에 이르는 1군 엔트리 전원의 맥주잔에 폭탄주를 제조했다.

한 번에 40잔의 폭탄주를 제조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비디오쉐어에 있을 때 폭탄주 장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숙련된 나였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잔에 소주를 주르륵 담은 뒤. 이어서 맥주를 따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선수단이 연신 감탄사를 자아냈다.

“오오오. 이 무슨 영롱한 모습이란 말인가.”

“무슨 기계가 따로 없네.”

“밑에 소주 한 방울 안 흘린 거 봐. 신묘한 기술일세.”

이어서 모든 이들에게 잔이 돌아갔고, 김재호가 잔을 들며 외쳤다.

“오늘 우리를 위해, 이 먼 곳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하연이와 하연이 아버님을 위하여!”

“위하여!!”

우락부락한 운동선수들 40명이 합창하자 식당이 떠나갈 것만 같다.

내가 만든 폭탄주를 마셔본 이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크으! 바로 이거지! 이 맛이 폭탄주지!”

“카! 하연이 아버님 폭탄주 진짜 잘 만드시는데요? 감독님 것보다 100배는 더 맛있습니다! 하하.”

“이것들이! 그래도 진짜 맛나긴 하네.”

후후. 폭탄주 제조만큼은 자신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든 폭탄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원샷해준 선수단에 고마움을 표하며 내심 뿌듯해했다.

이런 게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자 장인의 마음이지 않겠는가.

오늘 경기에서 오랜만에 대승을 거둬서 그런지 아니면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서 그런지 선수들은 술이 들어갈 때마다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일명 한신 노래자랑 타임.

평소 이런 자리가 있으면 가장 먼저 노래를 불렀는지 김호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빈 맥주병에 숟가락을 꽂고는 뜬금없이 허밍을 하기 시작했다.

반주도 없는데 노래를 부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테스형이라니. 제법 인생을 아는 남자다.

모두가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어서 다른 이들이 한 곡조씩 노래를 불렀고 이윽고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김재호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연이 아버님도 한 곡조 부르셔야죠?”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런 말이 뒤따랐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허허. 이 사람들이.

나는 빼는 척하다가 맥주병을 들고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와아아아!”

내가 어디 가서 빼는 사람이 아니다. 이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진짜 가수인 하연이가 ‘원패밀리’를 부르는 것으로 한신 노래자랑은 성대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김재호가 지갑에서 오만 원권 네 장을 뽑고선 하연이에게 건네며 오늘 노래자랑 1등 선물이라고 주시는데. 하하. 감사합니다, 감독님. 이 돈은 올라갈 때 기름값으로 잘 쓰겠습니다요.

#

“으어엉. 하여놔아. 아빠누운 우리 하여니가 이 쎄상에서 제이이일 조타아! 알쥐?”

“으으. 술 냄새에. 알았으니까아 빨리이 자요오!”

아빠가 그동안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데, 기분이 아주 좋으셨나 보다.

한신 선수들과 미칠 듯이 폭탄주를 마시더니 그들이 잡아준 택시를 타고 겨우 호텔까지 올 수 있었다.

어찌나 취했던지 카운터에 있던 호텔직원 두 사람이 아빠를 부축해서 방까지 데려다준 다음 떠났다.

그는 드르렁 코를 골며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왜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그렇게 꼴깍꼴깍 마셔대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술은 나도 조금 마시고 싶었다.

전생에도 가끔 캔맥주를 마시며 잠이 들곤 했는데 김하연으로 환생한 뒤에는 알코올이란 한 모금도 입에 대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서 커서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하지만 이제 4살. 언제 성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성인이 될 수는 있는 걸까?

아이의 시간은 어른보다 느리게 간다고 그러던데 정말 24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나저나 오늘 챔피언스필드는 두 번째 방문인데 처음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모두가 나를 환호하며 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그뿐인가?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같이 몸을 흔들지 않았던가.

‘역시 오프라인 공연은. 온라인 무대와는 다른 뭔가가 있어.’

‘달려’는 현재 인기가요 차트 3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빠 말처럼 어서 1위를 찍고 다음 신곡을 준비하면 좋겠는데.

아기춤의 인기와는 별개로 아직 2% 부족함이 느껴졌다.

전생엔 곡을 발표하면 바로 당일에 차트 1위를 찍었는데.

‘아직 국민가수는 아니라 이거지.’

아무튼 오늘 축하공연을 했는데 응원한 팀이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고, 그들과 함께 저녁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괜히 더 기분이 좋고 힘이 난다.

혼자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아빠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 빛이 나는 게 보였다.

호기심에 다가가 슬쩍 보았더니 유주 샘으로부터의 문자다.

[신유주] : 진형아. 누나 다음 주에 선본다. ㅋㅋㅋㅋ 부럽지?

응? 유주 샘이 선을 본다고?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가 훌쩍 넘었다.

그런데 이 시각에 이런 문자라니.

절대 자랑하려고 보낸 문자가 아니다.

‘자기를 구해달라는 신호 아니야?’

같은 여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걸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된다.

유주 샘도 벌써 서른이다.

안 그래도 저렇게 예쁜데 그동안 남자친구도 없이 일만 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더랬다.

게다가 아빠는 의외로 이런 면은 둔해서 분명 파이팅! 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었다.

‘내가 나서서 도와줘야 하나?’

나는 고민하다가 아빠 손에서 스마트폰을 가져와 비밀번호를 해제했다.

아빠는 단순하게도 내 생일을 자신의 스마트폰 비밀번호로 하고 있었다.

정말 딸바보도 이런 딸바보가 없다.

배시시 웃으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 그래서. 어디서 하는데?

금방 답이 온다.

[신유주] : 오? 궁금해?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너랑 갔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지. 이제 누나도 드디어 시집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HAHAHA

> 하연이 봐야 해서 이만

[신유주] : 앗! 그래그래. 오늘 경기 한신이 이겼더라? 하연이 축하공연 덕분이겠지. 좋은 밤 보내고~

나는 즉시 그녀와의 대화 목록 전체를 날렸다.

아빠가 이걸 알면 깜짝 놀랄 테니까.

‘다음 주 수요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선을 본다 이거지. 오케이. 접수 완료.’

나는 코를 골며 자는 아빠 손에 다시 스마트폰을 쥐여주고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다 아빠 잘되라고 하는 일입니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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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전라도에 왔으면 반드시 남원에 들러야 한다며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남원으로 이동했다.

덕분에 우리나라 4대 누각 중 하나라는 광한루원에 도착해서 그네를 탈 수 있었다.

아빠랑 같이 그네에 올라 보는 남원의 하늘이 참 푸르렀다.

이후 우리는 이곳의 명물인 추어탕을 점심으로 든든히 먹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아빠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는 넌지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아.”

“응.”

“아빠누운 내카아 왜에 조아요오?”

그러자 룸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본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아빠는 하연이가 그냥 제일 좋아. 하하.”

수천 번. 수만 번 들었던 말인데도 저 말을 들으면 왜 이렇게 가슴이 콩닥거릴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도오.”

#

4시간을 내리 달려 우리는 서울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일이 있다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좀 쉴 법도 한데 전생의 나처럼 워커홀릭이 틀림없다.

‘저러다가 병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나는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 끼이익.

인기척을 느낀 아빠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응? 하연아. 아빠 일 하는 중이야. 여긴 왜 올라왔어?”

“무스은 이일?”

내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말하자 그는 나를 안아서 자기 무릎 위에 앉히더니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었다.

“저번에 우리 성당에 가서 놀았던 거 기억나지?”

“웅.”

“그때 아빠가 했던 말 기억나?”

아빠가 했던 말? 무슨 말을 했더라?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우리와 같은 처지. 그러니까 우리랑 비슷하게 아빠만 있거나 엄마만 있는 친구들 도와주는 행사 열고 싶다고 했잖아?”

“아아. 기억났쪄요.”

맞아. 그가 그런 행사를 열고 싶다고 했었지.

“그래서 지금 그 행사 기획하는 중이거든. 여유가 있을 때 준비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까먹을까 봐.”

여유가 있다니. 지금 4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오지 않았나.

하지만 아빠는 관련해서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지 내게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밝혔다.

“우선 첫 행사는 서울에서 개최하려고 해. 아무래도 서울에 가장 인구가 많으니까. 그리고 나서는 전국 투어를 떠날 생각이야. 우리가 이번에 갔던 광주나, 부산, 대구, 대전 등. 사정이 있어서 서울로 올라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아빠의 계획은 이랬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광화문 광장에서 미혼부와 미혼모를 위한 행사를 열자는 것.

그들을 한데 모아 서로의 아픈 사연을 공유하는 시간도 갖고, 함께 놀면서 즐거운 자리를 마련하자는 게 주요 골자였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를 보면서 미혼부와 미혼모의 힘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면 금상첨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내카아 공연해도오 쪼을거엇 가타요.”

“하연이 네가 공연?”

“웅! 사람드리 조아하자나요!”

“오호라. 그렇네? 요즘에 우리 하연이 인기 짱 높으니까!”

애초에 행사의 목적이 많은 사람이 보게 하려고 광화문 광장 같은 곳에서 열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름 유명인인 내가 거기서 공연한다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잘하면 기사화도 될 테고. 그럼 정책변화로 이어지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지.’

아빠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기획서에 내 공연을 한 줄 추가했다.

사실 미혼부와 그들의 자녀가 얼마나 힘든지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나로서는 아빠와의 생활에 대만족하고 있고, 감히 전생의 삶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니까.

하지만 집에 아빠처럼 좋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같이 목욕도 할 수 있고,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그러려고 유주 샘을 밀어주고 있는 거기도 하고.’

그나저나 아빠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 역시 다음 신곡을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 광주에서 공연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같은 무대에서 똑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하려니까 무언가 뮤지션으로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이왕이면 다음 오프라인 무대에서는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신곡을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빠 방을 빠져나와 신곡에 대해 구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발리에서 들었던 그곳의 전통음악과 엮어서. 이색적이면서도 흥겨운. 그런 노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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