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82화
<‘아기춤’ 대박 김하연, 또다시 광주에 뜬다!>
<개막전 이어 두 번째 축하공연 하러 광주 오는 김하연>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김하연 축하공연 확정>
하연이와 상의 끝에 정 차장님의 제안을 승낙했더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르르 관련 기사가 떴다.
‘미리 보도자료를 만들어 뒀던 건가?’
아무튼 광주에 있는 챔피언스필드는 좋은 추억이 있는 장소다.
하연이의 첫 오프라인 무대.
‘여기서 하연이가 관중들의 눈도장을 찍으면서 인기를 더욱 높일 수 있었지.’
한신 그룹 이창돌 회장이랑 같이 식사도 할 수 있었고, 공연 보수도 나쁘지 않았다.
‘홈런볼도 득템했고 말이야.’
이전 개막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준비기간이 무척 짧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연습 기간이라고 해봤자 겨우 이, 삼일 정도의 시간밖에 없다.
하지만 하연이는 문제없다면서 쿨하게 넘어갔다.
오히려 저번에 불렀던 곡을 다시 불러야 한다며 신곡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하연아. 겨우 두 달 만에 재방문이야. 신곡은 무슨.’
하여간 하연이의 음악 욕심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축하공연이 확정된 이후 인터넷에서 한신 타이거스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았다.
최근 정신이 없어서 야구 기사를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 친구들 왜 이러지?
분명 하연이가 개막전 축하공연을 한 날. 멋진 역전승을 이끌고는 이후에는 파죽지세로 연전연승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5월부터는 말 그대로 죽을 쑤고 있었다.
‘총 26경기에서 17패 9승이라니. 같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네.’
조금 더 조사를 해봤더니 팬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 구단은 당장이라도 승리 요정 김하연을 데려와라!!
└ 옳소! 이대로는 이번 시즌도 꼴찌하겠다 ㅜ 4월의 한신을 돌려도...
└ 감독 자르고 선수들 절반 이상 내보내야 할 듯. 4월에 반짝 잘했다고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 요즘 애들 눈빛 보면 무슨 동태눈깔 같음. 부상도 없으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역시 한신은 한신이란 말인가 ㅠㅠㅠㅠㅠㅠㅠ
└ 승리 요정의 재소환이 긴급합니다. 승리 요정의 재소환이 긴급합니다. 승리 요정의 재소환이 긴급합니다.
그러니까 한신 타이거스의 팬들은 팀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하연이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승리 요정이라니. 개막전에서 축하공연을 했을 뿐인데.’
상황이 이러다 보니 너무 성급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나 싶기도 하고 살짝 걱정이 들었다.
축하공연을 하는 건 별문제가 아니었지만, 만약 하연이가 축하공연을 했음에도 한신 타이거스가 홈구장에서 진다면.
‘분노한 한신 팬들이 하연이에게까지 욕을 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제발 별일이 없길 기원하며 하연이가 춤 연습을 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
삼일 뒤.
이왕 내려온 김에 전라도 여행도 할 생각으로 내가 직접 차를 몰고 하연이와 함께 광주로 내려왔다.
낮 경기였기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하연이가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하연이는 이날 직접 편곡해서 조금 느린 템포의 ‘달려’를 라이브로 소화했다.
노래보다 춤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편곡한 곡인데, 그래서 그런지 관중석에선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연이의 아기춤을 따라 하는 등 큰 호응을 보였다.
“읏짜! 하연아아아!! 삼촌도 아기춤 따라한다아!!”
“원곡보다 느리게 해서 그런지 따라부르기도 훨씬 쉽네. 달려나간다아! 힘차게에!!”
카메라는 하연이뿐만 아니라 관중석과 양 팀의 덕아웃까지 골고루 잡으며 경기장 곳곳을 보여주었다.
한신 타이거스 덕아웃은 그야말로 모든 선수가 난간 인근으로 몰려 나와 떼춤을 추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졌다.
덕분에 나까지 절로 어깨춤이 나왔고, 카메라는 이를 놓치지 않고 전광판에 나를 클로즈업해서 비추었다.
“오! 하연이 아빠다! 하연이 아빠도 춤춘다!”
“하연이 아버님! 춤 잘 추십니다! 하하!”
“저 사람이 하연이 아빠야? 연예인인 줄 알았네. 역시 그 아빠에 그 딸인가?”
이윽고 ‘달려’의 막바지 연주가 나왔고 카메라는 상대 팀인 TC의 덕아웃을 비추었다.
한신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몇몇 선수들이 아기춤을 따라 하며 즐겁게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홈팀이든 원정팀이든 관중들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연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축제 한 마당.
확실히 아기춤이 대세는 대세였다.
나는 공연을 마친 하연이에게 다가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는 구단이 준비해준 VIP실로 자리를 옮겼다.
샤워? 이번에는 한신 구단에서 먼저 하연이를 위한 샤워실을 마련해주면서 하연이는 개운해진 몸으로 나와 함께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를 보고 있는데.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한신 타이거스의 주장인 신용균 선수가 시원한 장타를 뽑아냈다.
“오오오 신용균! 오오오오! 신용균!”
“신.용.규우우우운!!!”
덕분에 3회 2사 만루의 상황.
한신이 2-0으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역전 찬스가 다가왔다.
다음 타석은 개막전에서 역전홈런을 쏘아올린 4번타자 김호진의 차례.
그는 특유의 엉덩이 흔들기로 투수의 정신을 심란케 했다.
하지만 상대 투수는 TC의 에이스.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려대며 호락호락하지 않는 실력을 보인다.
“스투우라이크으!!”
김호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심판 판정에 불만을 제기했지만 내가 봐도 저건 스트라이크였다.
두 번째 공 역시 몸쪽 꽉 찬 직구가 뿌려지면서 김호진의 헛스윙으로 이어졌다.
투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보인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잘 마무리하여 다음 이닝으로 넘어가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하연이가 걱정된다는 듯 고사리 같은 두 손을 꼬옥 잡고는 중얼거린다.
“홈러언. 홈러언. 제바알 홈러언.”
나 역시 하연이를 따라 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제발 김호진 선수가 홈런 치게 해달라고.
우리의 바람이 전달되었는지 김호진은 방망이를 꾹 움켜쥔 채 평소보다 더욱 강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높이 뜬 공.
아쉽게도 1루 쪽 파울망을 넘어 관중석으로 힘없이 떨어진다.
김호진은 아쉽다는 얼굴로 방망이를 다시 움켜잡았다.
누가 봐도 상대 팀이 더 유리한 상황.
하지만 김호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나이였다.
그는 네 번째 공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대로 밀어 쳤다.
중계 카메라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멀리 날아가는 타구.
죽죽 뻗어나가더니.
결국 챔피언스필드 장외로 나가버린다.
“우아아아아아아!!!”
“홈런이다아!!!!”“만루홈런! 김호진! 김호진! 김호진!”
이어서 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이런 노래를 불러댔다.
“우~ 우우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김호진이 홈런을 날렸다는 그 말을~”
“우~우우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김호진이 만루홈런을 날렸다는 그 말을~”
흐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원곡이 있는 노래를 개사해서 이렇게 부르다니. 야구팬들이란 참 재미있는 족속들이다.
스코어는 4-2.
한신이 3회 말 김호진의 만루홈런 한 방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
이날 경기는 16-4라는 큰 점수 차로 홈팀인 한신의 승리로 끝이 났다.
5연패 뒤에 맛보는 값진 승리.
특히 김호진은 5타석 4타수 4안타(3홈런) 1볼넷이라는 맹활약으로 경기 MVP를 차지하는 등 그가 왜 한신의 4번 타자인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경기도 끝났겠다 예약해두었던 호텔로 이동하려는데 구단 관계자들이 잠시만 더 방에서 기다려달란다.
‘뭐지? 따로 인터뷰 요청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신의 떡대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신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하연이를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며 연신 칭찬했다.
“우와! 하연이다! 승리 요정 하연이라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귀엽다잉.”
“워매! 눈 큰 거 보소! 내 입만 하네!”
“얌마. 개소리는 작작 하고 빨리 사인이나 받자. 하연이 피곤하겠다.”
선수들이 우르르 하연이 앞으로 몰려와서는 사인펜을 들이민다.
찐한 땀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하연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유니폼에 하나하나 친절히 사인을 해줬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남성이 내게로 접근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연이 아버님 되십니까?”
“네. 제가 하연이 아빠인데요.”
“저는 한신 타이거스 감독인 김재호라고 합니다. 오늘 하연이 덕분에 우리 팀이 간만에 승리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요. 하연이는 노래를 불렀을 뿐인걸요.”
그러자 하연이에게 사인을 받은 김호진이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죠, 아버님.”
“네?”
“승리 요정이 오늘 경기에 앞서 축하 공연을 딱! 하고 해주니까! 저희 팀이 이긴 겁니다.”
“그, 그런가요?”
“물론이죠! 오늘 하연이 무대를 보고 나서 몸에 딱 감이 왔다니까요.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기겠다고. 절대 질 수가 없는 경기라고.”
이건 무슨 기적의 논리인지 모르겠다.
하연이가 공연을 했을 뿐인데 그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니.
야구계에는 내가 잘 모르는 어떤 미신 같은 게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신없었던 사인이 모두 끝나고.
김재호 감독은 내게 이런 말을 남기고 방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갔다.
“다음에도.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저야 뭐 불러주시면 감사하긴 한데.
아무튼 우리는 기분 좋게 경기장을 떠나 숙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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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인근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기도 하고 마침 광주에는 한우 탕탕이라는 게 유명하다고 해서 찾은 집이다.
하연이가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되긴 했지만, 비주얼을 보여주었더니 문제없다며 식당으로 가자고 했던 하연이가 아니던가.
메뉴판에는 무시무시하게도 한우탕탕이만이 시가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운이 좋으면 싸게 먹을 수 있지만.
운 나쁘면 엄청 비싸거나 혹은 재료가 없어서 먹지 못한다는 뜻.
다행히 주인아저씨는 주문을 받았고, 재빨리 상자리를 세팅해 주었다.
“아랑 둘이 먹기에는 좀 많은데. 괜찮겠소?”
“네. 상관없습니다.”
이윽고 한 상이 차려졌다.
메인에 위치한 한우 탕탕이는 물론이고 테이블 가득 차려진 각종 반찬들이 푸짐하기 그지없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지.’
산낙지가 살아서 꿈틀거리는데 신선하다는 느낌이 팍 왔다.
나는 이런 게 좋은 아재라지만. 어린 하연이는 어떨까 싶어 살짝 얼굴을 보았더니 벌써부터 침을 주르륵 흘리는 게 요놈이 벌써 이 맛을 아는구나 싶다.
“하연아. 산낙지 먹어본 적 없지?”
“으웅.”
살짝 애매한 대답이 돌아온다.
분명 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하연이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다.
“이거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꼭꼭 씹어서 조금씩만 먹어야 해. 알았지?”
“네에!!”
우렁찬 대답과 함께 우리는 서둘러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노른자를 톡 터트린 다음 쉐킷쉐킷.
소고기를 한 점 집어 올리자 자기도 따라가겠다며 낙지가 같이 딸려온다.
첫 젓가락질부터 입질이 좋다.
나는 김에 싸서 기분 좋게 이를 한입 먹어보았다.
으어!
싱싱하고도 감미로운 맛이 입안에서 폭죽을 터트린다.
하연이도 탕탕이를 한 입 맛보고선 만족했다는 듯 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한다.
나는 하연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연아. 이거 이름이 왜 탕탕이인지 알아?”
하연이가 도리질을 하기에 바로 답을 주었다.
“산낙지를 다질 때 탕탕 내리쳐서 잘게 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거든. 재밌지?”
“웅!”
우리는 맛나게 한우 탕탕이를 흡입했다.
그런데.
가게 앞으로 대형버스가 한 대 서더니 떡대들이 우르르 내린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조금 전 하연이에게 사인을 받았던 한신 타이거스 선수들이다.
주장인 신용균 선수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어? 승리 요정이 요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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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아버님 입 벌려 보세요. 한우 한 마리 들어갑니다요!”
“아~”
꿀꺽.
김재호 감독이 직접 싸준 한우 쌈이 내 입 가득 들어오면서 입안으로 차원이 다른 육즙이 물씬 퍼져나간다.
크으. 역시 고기의 왕은 소고기지. 그중에서도 한우면. 뭐 말 다하지 않았나.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우리를 발견한 한신 선수들이 한목소리로 외쳤기 때문이다.
“합석합시다!”
“같이 먹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리를 옮겨 그들이 예약한 안쪽 방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감사하게도 이전에 주문한 한우 탕탕이는 구단에서 대신 지불해준다고 그랬다.
김재호 감독은 내 옆에 턱 붙어 앉더니 시종일관 질문을 던져댔다.
“이렇게 예쁜 딸이 있어서 참 좋으시겠습니다. 아. 술 드시죠?”
“딸이랑 와서 술은 좀.”
“에이. 근처 호텔에서 숙박하신다면서요. 괜찮으니까 드세요. 자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술을 입에 대었다.
그런데 이거 맛이 좀.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비율이 엉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