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국힙원탑 80화
“하연아. 아빠가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뭐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가 뜬금없이 물었다.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유주 선생님 있잖아.”
“응!”
설마.
“넌 어떻게 생각해?”
뭐긴 뭐야.
“쪼아요오!”
이제야 드디어 아빠가 마음을 정했구나. 나는 찬성일세.
“완조온 쪼아!”
하지만 아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응? 뭐가 좋다는 거야?”
“웅?”
“선배 유튜버로서 유주 선생님이 유튜브에서도 통할 것 같은지 물어본 건데.”
아. 난 또 뭐라고.
김샌다.
아빠가 결심을 굳혔나 싶어 내심 기뻐했더니 말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괜차늘 거엇 가타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유주 선생님이 자기 채널에 올리는 영상은 무척이나 아이덴티티가 짙고 자기만의 개성이 있었다.
‘누구도 그런 영상. 쉽게 찍어서 올릴 생각 못 하잖아?’
춤을 그냥 못 추는 게 아니었다.
이건 정말이지 어디에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될 수준.
그런데 당사자는 진심이다.
거기에 유주 선생님은 연예인 뺨칠 정도로 예쁘다.
그러니까 미인이 진심으로 막춤을 추는 영상이 시리즈로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던 것.
이런 영상은 세계 어디를 봐도 쉽게 찾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말은 즉.
차별성이 있고 매력이 있다는 소리다.
그녀가 채널을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구독자 수가 1만여 명에 이른 건 그런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는 것 같더니 내게 이런 말을 꺼냈다.
“아빠가 하는 회사에서 유주 샘을 데려와 키워볼까 고민 중이거든. 물론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대로 하고, 퇴근 후나 주말에 작업하는 식으로 말이야.”
“아!”
나쁘지 않다.
요즘은 사람들이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니까 연예인보다 인터넷 방송인이 더 각광받는 시대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아빠는 유주 선생님한테 별 마음이 없는 걸까?
분명 서로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말이다.
최근에 발리에 갔을 때도 그녀는 내 안부를 핑계 삼아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해왔다.
처음에는 나에 관해 물어보지만 종국에는.
‘아빠에 대한 질문으로 끝이 났지.’
유주 선생님이 아빠한테 마음이 있다는 건 명확했다.
반면 아빠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아직도 유주 선생님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아빠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이 유주 선생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세미 언니도 수상하고. 선정이 언니도 조금 이상했지?’
이세미는 확실치 않지만, 탑코리아스타의 김선정 기자는 자신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선정이 언니는 관심 있는 경우가 아니면 말 자체를 걸지 않아. 게다가 세 보이려고 일부러 강하게 나가는 건 상대에게 호감이 있을 뿐이잖아?’
아무튼 우리 아빠는 객관적으로 봐도 잘 생겼고, 이렇게 나만 키우다가 젊음을 허비하기에는 무척이나 아까운 사람이었다.
‘딱히 엄마의 필요성은 느낀 적은 없지만. 나 편하자고 아빠를 희생시킬 순 없어.’
아빠가 발리에서 케착 댄스를 하는 걸 보고 더더욱이 느꼈다.
이렇게 잘 생기고, 재능 많고, 열정적인 사람을. 나 혼자만 독차지하는 건 실례라고. 그에게도 그의 인생이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가 집으로 새엄마를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이다.
‘엄마라. 그런데 엄마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사실 내게 엄마란 나를 버린 사람들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현생에서도 그랬다.
전생에선 나를 낳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말이다.
현생에선 100일도 안 된 나를 아빠에게 맡기고 사라졌고.
그래서 엄마에 대해 애틋함이나 그리움 같은 건 전혀 없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하나뿐인 아빠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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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도장을 찍으면 되는 거야?”
“네, 고객님. 거기다 찍으시면 됩니다.”
“야, 김진형. 나는 진심으로 고민하고 여기 온 거야. 장난치지 마.”
“장난은 뭘. 나 역시 고민 끝에 네게 계약을 제안한 거라고.”
“휴.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물론. 이제부터는 나랑 우리 회사만 믿고 따라오면 돼.”
결국 유주는 우리 곰도리형제단 소속 방송인이 되었다.
곰도리형제단은 유주에게 채널 맞춤형 컨설팅과 음원 및 영상 라이브러리 등을 제공해주고, 유주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된다.
유주가 계약서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계약금은 따로 없어?”
“응. 유주 네가 아주 유명한 유튜버는 아니잖아.”
“크윽. 사실인 건 아는데 뼈가 아프네.”
“하하. 계약금은 없지만 네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수익이 나오면 우리랑 나눠 갖는 구조야.”
“비율이 9:1이랬지?”
“맞아. 네가 9고 우리가 1.”
“흠. 나쁜 조건은 아니네?”
“그렇지. 대신 영상은 지금처럼 네가 만들어야 하고 영상을 올리는 빈도나 주제도 네가 정해야 하지. 우리는 약간의 도움을 주고 거기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개념이야.”
“그래그래. 하지만 고민이 있을 땐 언제든지 상담받을 수 있는 거지?”
“물론. 최고의 서포트를 약속할 테니까 고민 있을 땐 언제든지 연락해.”
내 말에 유주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객님.”
우리는 웃으며 악수했다.
그런데 유주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 시각엔 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구나?”
“응. 벌써 7시가 넘었으니까.”
“만약에 내가 상담받을 일이 있으면 빨리 와도 이 시간일 텐데. 괜찮겠어?”
“어. 어차피 지금 회사에서 유튜브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나니까 상관없어. 다른 직원들은 영상 만든다고 정신없기도 하고.”
“그래?”
응? 유주가 순간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린 것처럼 보였는데.
우리는 한동안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연 하연이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앞으로 하연이를 어떻게 키울 생각이야?”
“하연이? 잘 키워야지?”
“아니 그런 거 말고.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이 있냐 이 말이야.”
구체적인 계획이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하연이가 아프지 않고 즐겁게.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화목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유주는 다시 본연의 선생님 신분으로 돌아와 내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넸다.
“하연이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잖아?”
“응.”
“그러니까 더 세심하게 케어해야 하고, 아빠인 네가 더 신경 써서 돌봐야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겠지. 지금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긴 한데. 어딘가 부족했던 걸까?”
그러자 유주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단지 로드맵이랄까? 하연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네가 어느 정도 계획을 짜뒀는지 궁금해서.”
“아. 로드맵 말이지? 일단은 가요 차트 1위를 한번 찍어보자를 단기 목표로 삼고 있어.”
“가요차트 1위라. 왠지 실감이 안 나는 말이지만. 하연이라면 할 수 있겠지. 그다음은?”
“500만 조회수 찍기? ‘달려’ 뮤비가 200만 나왔거든.”
“500만이라니. 나는 지금까지 가장 잘 나온 영상이 5만 뷰도 채 안 되는데 나랑은 차원이 다르구나?”
“하하. 하연이는 너보다 유튜브를 먼저 시작했으니까. 너도 금방 따라올 거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가장 마지막으로 목표를 두고 있는 건 뭐야?”
마지막 목표라.
그건 뭐니 뭐니 해도 하연이가 이하연처럼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유주가 재미난 이야기를 던진다.
“만약 국민가수를 생각보다 일찍 달성하게 된다면? 그다음도 있어?”
“그러면 한 번 월드 스타를 노려봐야겠지? 그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월드 스타라.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느낌이 든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은 더 이상 자국의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국내 프로그램만 보는 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 영상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유주는 하연이가 월드 스타가 되는 상상이라도 했는지 행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월드 스타가 된 하연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으로 나를 언급해준다면. 후훗. 진짜 행복할 거 같아.”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
“적어도?”
“앞으로 초중고에 다니면 다른 선생님을 만나게 될 테지만. 지금은 너 말고는 다른 선생님을 만나본 적 없잖아?”
“김진형 너어. 마치 앞으로 하연이가 크면 내 순위가 뒤로 크게 밀린다는 것처럼 말한다?”
“모르는 일이지. 너는 어렸을 적 유치원에 다녔을 때 선생님 이름 기억나?”
“그, 그건.”
“거봐. 미래는 모르는 일이지.”
유주가 낙담한 듯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다.
나는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으응.”
“그럼 위에 올라가서 먹고 가. 하연이도 배고프겠다. 빨리 올라가자.”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펴진다.
유주는 미래를 걱정하지만 그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지금 현재 하연이에게는 유주가 세계 최고의 선생님이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도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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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은 오늘 나를 위해 수제 탕수육을 해주었다.
‘갈수록 요리 실력이 느네.’
덕분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 왔어요.”
“뭐야? 왜 이렇게 늦었니? 밥은?”
“친구네 집에서 먹고 왔어요.”
“그래?”
엄마가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리 오라며 손짓한다.
“왜요?”
“일단 오고 이야기해.”
“엄마는.”
엄마 옆에 앉았더니 엄마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딸.”
“응?”
“우리 딸 시집가야지.”
“아이참. 그 이야기 그만 꺼내라니까? 나 어린이집에서 일한다고 바빠!”
“이놈의 기집애가! 서른이 다 되어 가지고 언제까지 일 얘기만 할 거야!”
“아악! 아프다고, 아파!”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날이 갈수록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 호르몬에 비해 남성 호르몬이 상대적으로 적게 줄면서 터프해진다고 하더니.
그런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맞은 부위를 문지르고 있는데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웬 남자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게 뭔데요?”
“뭐긴 뭐야. 너 선 볼 상대지.”
“아 진짜! 싫다니까요?”
“야! 신유주!”
“아 왜!”
“너 이거 안 나가면 이모가 하는 어린이집에도 안 보낼 거야!”
“뭐?”
엄마는 배수의 진을 치고 강하게 나왔다.
이 남자와 선을 보지 않으면 더 이상 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며.
‘하아. 귀찮다 정말.’
분명 이모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 분명했다.
“이 남자가 얼굴은 이래 생겼어도 한국대 법대 출신이라더라.”
이거 봐라. 전에 이모가 말한 내용과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지.
아 모르겠다. 일단 살고 봐야지.
“알겠어, 알겠다고. 선 볼 테니까 이 남자 이야기는 제발 그만해!”
“진짜다. 너 엄마랑 약속한 거야?”
“알았다고오!!”
나는 방문을 쿵 하고 닫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휴. 김진형. 나 어떡하면 좋냐.’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